저자 초대석(오성인)
농밀해진 슬픔, 인간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하는 시집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 출간한 오성인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시 쓰는 오성인이라고 합니다. 1987년 9월,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기독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우연인지 이 병원이 264번지입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 1904∼1944) 선생의 수인번호와 똑같지요. 출생 당시 아버지가 벌교세무서의 세무공무원이었던 까닭에 벌교에서 잠시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세무공무원이 적성에 맞지 않은 아버지가 세무서를 그만 두셨어요. 그 바람에 자주 직장이 바뀌어서 순천, 정읍, 인천, 의정부, 창원으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태어난 곳인 광주로 돌아왔습니다. 이 때가 1996년 가을이에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이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는 2006년 초까지 10년 가까이 광주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앞두고 재개발에 들어가고, 대학 통학 문제도 있어서 형편에 맞는 곳을 알아보다가 부모님과 나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2006년 봄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까 이제는 광주보다 오래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등단까지 했네요.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고 2013년에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푸른 눈의 목격자』와 금번에 출간한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가 있습니다. 대산창작기금과 나주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시집 소개와 함께 소회도 말씀해주시지요.
5년 전에 첫 시집 『푸른 눈의 목격자』로 광주와 전남 지역이 지니고 있는 생태, 문화, 역사 등을 조명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서려 있는 비극성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그 비극성에는 할아버지부터 시작되어 아버지, 어머니 대까지 이어져 온 집안의 잔혹사와 본의 아니게 모순과 슬픔으로 얼룩진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린 한 소시민의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1980년 5월 군부대에서 상부의 지시로 계엄군들의 진압봉(충정봉)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진압봉이 계엄군들 손에 쥐어져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했습니다. 이때 아버지와 절친한 삼촌들도 크고 깊은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는데요. 그런 일로 아버지는 평생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폐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언젠가 저에게 “나는 죽은 사람.”이라고 치를 떨 듯 말한 바 있었는데, 그런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시간을 시로 옮기면서 광주라는 공간을 이전보다 심도 있게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또, 그런 과정에서 소멸 위기가 점점 가속화되는 지역의 소리를 채록할 수 있었습니다. 한층 농밀해진 슬픔을 선사하면서 인간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하는 시집입니다.
-이번 시집을 내게 된 동기가 있다면?
광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바라보면 변두리에 속하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광주 출신인 저에게 만큼은 변두리가 아닌, 중심지이지요. 또 광주는 단순한 생활공간이라기보다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역사적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요. 여전히 곳곳에서 혐오 발언을 일삼거나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광주를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광주를 말하지 않고서 저는 시를 쓸 수 없습니다. 더불어서 남도만이 가지는 고유한 정서와 문화가 있는데 기존의 흐름을 답습하지 않고 이를 제 나름의 호흡과 감각으로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광주가 중앙에 대비되는 지역이 아닌, 동등한 지역으로 인식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번 시집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이번 시집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무려 구십여 차례나 나옵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제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데요. 다만, 아버지 안의 비극성을 폭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담겨지는 목소리는 아버지의 것이 아닌 저의 목소리여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의 시간이되 동시에 저의 이야기이지요. 그런 이유로 이번 시집의 화자 대부분은 유년(과거)과 성년(현재)을 오가며 끊임없이 대화를 청하고 증언하는 행태를 보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 앞에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고자 했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을 추천하신다면?
시집 2부 후반부에 있는 「심부름」이라는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면목이 없다 나처럼 살지 말아라 절대로
나를 닮아서는 안 된다
일체 곡기를 끊고 소주로만 속을 채웠던
아버지는 심부름을 보내며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남은 돈은 너 쓰려무나 하고 싶은 일
하고 갖고 싶은 것 있으면 사려무나
나처럼만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처럼만
소주를 사러 가는 동안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고작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아버지는 될 수 없겠지만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그러려면 곡기를 끊은 아버지에게
소주 대신 밥과 반찬을 사 드려야 하는데
그것이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인데
알면서도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는 결국 소주 서너 병을 사서 돌아간다
술을 사고 남은 몇백 원으로 어떻게 하면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골몰하는 사이
나를 기다리다 빈 병처럼 누워
쓸쓸히 잠든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시집을 내면서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
사회의 모순, 물질문명의 폭력성, 자본의 폐해 등을 주로 소재로 다뤄왔던 까닭에 대부분의 시가 계몽적(교훈적)이라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호흡이나 감각이 낡았다는 인상을 준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출판사에 투고했던 원고 대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썼습니다. 이번 시집에 실은 작품들 대다수가 어떤 매체도 발표된 적 없는 신작이에요. 원고를 아예 새로 준비하느라 그 좋아하는 술과 거리를 뒀는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건강도 챙겼어요. (웃음)
-앞으로의 계획
시집이 출간된 지 꼭 세 달 되었습니다. 첫 시집은 설익은 부분이 많아서 많이 아쉽고 부끄러웠는데 이번 시집은 첫 시집에서 단점으로 치부되었던 점들이 상쇄돼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집 전반에 걸쳐 아버지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했음에도 당신이 어째서 이런 삶을 살게 됐는지에 대한 원인은 아직 밝히지 않고 있는데요, 조만간 첫 시집과 두 번째 사이를 잇는 에세이를 출간할 예정에 있습니다. 책 내는 일과는 별도로 나주에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시 읽기 프로그램도 진행합니다. 광주와 아버지를 거쳐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모색하고자 합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마디
‘아름답다’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고들 하는데 저의 경우는 ‘아(我) 답다’에서 파생되지 않았는지 유추해봅니다. 그렇게 본다면 나를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틀어 아름답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생명의 유무를 떠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또 다른 ‘나’로 인식할 때 시는 발현됩니다. 시를 사랑하는 누구나 시인입니다. 시심(詩心) 충만한 가을이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집이 저의 아버지만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뷰티라이프> 2023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