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에 대한 정보는 군청 홈페이지에서도, 괴산군 관광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었어요.
네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간 곳은 어느 산골, 사료공장이 있는 곳....
"여기 홍명희 생가가 있나요?"
"아니오. 그런 건 모르는데요. 얼마 전에도 어떤 사람이 여기 홍명희 생가가 어디 있냐고 찾아 왔던데?"
허걱!
또 한번 아연실색할 일이 벌어진 것이에요.

문학기행 떠나기 전에 홍명희에 대해 공부를 해 보았어요.
"필명 가인(假人·可人)·백옥석(白玉石)·벽초(碧初). 1888년 충청북도 괴산(槐山)에서 출생하였다.
일본의 다이세이[大成]중학에서 수학했으며, 귀국 후 휘문고보 교사, 오산고보 교장, 연희전문 교수를 역임했다.
시대일보(時代日報)》 사장으로 있다가 1927년 신간회가 결성되면서 부회장으로 참여했으며,
1930년 신간회 주최 제1차 민중대회사건으로 일본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일제하 민족운동의 지도자적 인물이던 그는 단 1편의 소설 《임꺽정(林巨正)》(1928∼1939)으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는데, 이 작품은 《조선일보》에 10여 년에 걸쳐 연재된 당대 최대의 장편 역사소설이었다. 조선 명종(明宗) 때의 도적 임꺽정의 이야기를 허구화한 이 소설은, 천민계층의 반봉건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생활양식을 다룬 데 그 특징이 있다.
또한 봉건 귀족을 우월성의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천민계층을 이상화함으로써 계급의식과 집단의식을 현저하게 드러냈다.
그는 역사소설을 통해 계급의 관점에서 식민지적 모순보다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겨냥하는 특수한 역사의식의 시야를 노출시켰다.
8.15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월북했다."

홍명희, 그는 어마어마한 부잣집에서 태어났더군요. 명문 풍산 홍씨 가의 장손....
게다가 그들의 조상 이력 또한 어마어마하네요. 선조의 부마(홍주원)도 있고, 영조 때 이조판서(홍상한)를 지낸 분도 있고, 사도세자 장인(홍봉한)도 있고, 정조 때의 홍국영.....
홍명희의 증조부는 대사헌, 이조판서를 지냈고, 할아버지는 정2품 중추원 참의, 부친인 홍범식은 1910년 금산군수로서 경술국치를 당하자 비분 끝에 제일 먼저 자결한 인물로 유명하고요.

아버지 홍범식 고택으로 더 잘 알려진 홍명희 생가....
지금 한창 수리 중이었어요.
아무런 책자 또는 자료가 없어 좀 황당하기도 했지요.
미리 공부해 오거나, 누군가의 강의가 없다면 이 여행은 무료할 지도 모르겠어요.

홍명희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그가 지독한 독립운동가 였으며, 지독한 독서광이었으며 사상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그가 임꺽정을 연재하게 됩니다. 1928년 10월 조선일보에....
그러면서 홍명희는 신간회를 주도하게 되요. 좌우 양 진영에서 균형을 취하며 다양한 세력을 규합하려 했던 그의 노력..그러나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반일 시위로 확대하기 위해 민중대회를 추진하다 잡혀
2년 동안 옥중 생활을 합니다.

출옥 후, 그가 심혈을 기울였던 신간회도 해산되고, 그가 추구했던 민족해방운동도 불가능하게 되자
광범위한 독서와 임꺽정 집필에 몰두하게 되지요.
1928년 조선일보에 첫 연재한 임꺽정은 세 차례나 중단되다가 광복 직후 미완의 상태로 총 10권이 간행되었어요.
임꺽정은 반봉건적인 천민계층을 내세워 조선 시대 서민들의 생활 양상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에요.
귀족 계층의 계급적 우월성을 배격하고 하천민의 활약을 당위론으로 보여주었으며 식민지 현실 모순 그 자체보다도 봉건적인 체제 모순에 더욱 비판한 점은 그의 계급적 의식과 세계관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다양한 삽화를 처리하는 서사적 기법과 풍부한 토속어의 구사력은 조선 시대 사회상과 풍속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는 작품이고요.

주인 없는 집에 홀로 남아 고택을 지키고 있는가....

해방이 되자 홍명희는 민주독립당의 대표로서 민족통일국가의 건설을 위한 통일전선운동에 뛰어들었다가....월북하게 되고 그곳에서 부수상, 과학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사상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된 사상일까요?
이 세상에 옳고 그른 사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옳은 것이고, 틀렸다고 생각하면 틀린 사상 아닐까요?
월북했다고 해서,
홍명희 그가 반역자는 아니잖습니까?
월북했다고 해서, 그의 작품마저 허투루 취급당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괴산 문학기행을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스리느냐에 따라,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안목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작은 이정표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도 있겠다.
등등......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리고
곶감 말리는 모습이 특히나 아름다웠던 괴산........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 실망감도 많이 안겨준 곳이었어요.
다음에 다시 찾을 때는 그 실망감 모두 사그라들기를......
새롭게 변화된 괴산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첫댓글 홍명희 집중 조명, 잘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사상에 대해서는 저도 뭐라고 할 말이 없어요.
임꺽정 세트를 대학 때 읽었어요. 너무 재미있게 잘 읽혀서 손에서 차마 놓을 수가 없었지요. 지금도 그때 책을 갖고 있지요.
누렇게 바래고 벌레가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책들...버릴 수가 없어 저도 갖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