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이든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말은 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표기 수단인 문자 유무는
달라진다. 우리 민족은 음성 언어인 말을
삼국 시대부터 문자 언어인 향찰,이두로 표기하다 조선 시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지명도 마찬가지이다.고유어로 부르던 말을
문자로 표기해 왔다. 고향 산이면의 지명 중
건머리(검은머리)는 흑두리로, 푼머리(풀머리)는 초두리로 고유어와 한자어가 일치한다.
구성리는 돈다리,구성리라는 고유어와 한자어의미가 전혀 다른 두 개의 지명을 지니고 있다. 두 지명을 고지도와 한국지명유래집과
각종 문헌을 통해 역사적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
1.돈다리
이두식 표기이다. 이두는 뜻이 있는 실사는
훈,뜻으로 읽고 뜻이 없는 허사는 음으로
읽는다.
돈달이, 돈달리敦月里,돈다리로 표기했었다.
발음할 때 敦은 음인 돈, 月은 뜻,훈인
'달'로 발음하여 '돈달'에 후대에 행정구역을 가리키는 里가 붙어 '돈달이>돈다리'로 연음화되어 불리었다.
돈다리에서 '돈'은 의미가 없는 허사이고 문자로 표기할 때 음만
맞으면 되므로 흔히 쓰는 도타울敦이나 조아릴 頓을 혼용해왔다. 뜻은 달[月]에 있다.
돈다리(頓多里)의 이 한자는 후대에 주민들이 발음하는 것을 그저 흔히 쓰는 한자로 표기했을 뿐이다.
또 그 후대는 문자로 표기된 기록을 절대시한다. 언어도 마을 이름도 사람이 발음하기 쉽게
변천해 왔다.그러다 보니 원래의 의미는 없어지고 구전되다가 음만 표기했던 기록을 보고
또 뜻을 찾으려 한다. 그러니 원래의 뜻은
없어지고 엉뚱하게 변질되어 전해진다.
이두식 표기는 현대에도 '맹견 조심
주인 백'에서 白이 아뢰다,말하다의
이두이다. 주인 아룀,알림으로 사용하고
있다.
里를 거리의 단위인 1리,20리라 쓸
때는 '리'로, 촌락이 모인 마을 뜻으로는
'이'로 쓰인다.1리는 약 4km이다.
'돈달이>돈다리'로 음운이 변하는 건 'ㄹ 연음화 현상'이다.
구성리 자연 지형이 해남반도에서 또 산이면이 반도인데 또 북쪽으로 곶을 이루어 쭉 뻗어 나가고 삼면이 바다이다. 달을 좋아하는 민족인데 삼면이
또 바다이니 그곳에 뜨는 달은 더욱 아름답고
정겨웠으리라. 도타운 정감도 쌓였으리라.
'달과 정감이 도타운 마을, 달을 좋아하는 마을',
그래서 돈다리라 했다.
2. 구성리
고유어의 이두식 표기인 돈달(돈月),돈다리로
해오다가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頓多里로 발음하는 대로 한자 표기를 했다. 1882년 고종 19년부터 새로운 마을 이름이 명명되고 한자어인 九星里로 표기된다.
구성 마을 주위를 둘러싼 9개의 섬에서
九, 군 소재지 북쪽 마을이므로 북두칠성의
星자를 따와 구성리로 명명했다.
9개의 섬은 구전된 명칭이 시대에 따라
달리 불려 왔지만 마을의 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망미도,소뢰도,바우섬,달도(소달도), 뇌도
(독도),문가도(민가도),송도,뽕섬,증도이다.
오랜 세월 방조제를 쌓기 쉬운 곳부터 간척
사업을 하여 작은 섬들이 육지가 되었다가
영암호와 금호호 방조제를 쌓은 이후 지금의 육지가 되었다.
고향 산이면의 지명 몇 개는 고유어가 살아 있어 뜻에 대해 가벼운 의문을 가졌었다.
돈다리를 쉽게 현대적 개념으로 고유어로 여기고 바다 물결이 휘돌아가는 곳에 놓인 다리라고 잘못 유추했었다.
문헌을 보면 돈다리는 지명 뜻을 모르고 표기자는 주민이 말하는
대로 한자만 갖다 붙여 표기했었다.
여러 문헌의 고증을 통해 돈다리라는 지명은 이두식 표기인 돈달이(돈月)>돈다리로 'ㄹ연음화'가 나타났고, 뜻은 '달과 정감이 도타운 마을, 달을 좋아하는 마을'이다.
새로운 지명인 한자어 구성리는 1882년부터
사용되었다.
* 참고 문헌
1.지방지도 1872
2.국토지리정보원,한국지명유래집
3.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4.해남군지
5.디지털해남문화대전-구성리
6.해남군,마을 유래지,1987
산이서교 15회 졸업생, 부동리
이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