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로 달려가는 금강둑길은 복사꽃이 도열한 꽃대궐로 들어간다. 골짜기 가득한 안개가 뒤늦게 일어나 봄밤을 설친 꽃들을 깨운다. 대청댐 언저리를 금강의 발원쯤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숨은 듯 용틀임하며 흐르는 금산·영동·옥천·보은의 금강은 놀라운 물줄기다. 농염한 벚꽃이 하룻밤 비바람으로 져버린 강둑, 거기로 한 박자 죽여 꽃 피우는 산벚꽃의 향연이 흘러내린다. 이 봄이 가고 나면 다시 한 해를 기다려야 저 비단강 꽃대궐이 문을 열겠지
무주에서 대청댐까지의 긴 여정은 아침을 서둘러야 한다. 무주읍을 안고 있는 수릿재를 넘어 앞섬마을(내도리)을 지나면 강둑길은 벼랑에 가로 막힌다. 그러나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총론에도 등장하는 ‘내륙의 섬’ 내도리를 들리지 않고는 강둑길 여행이라 하기가 무색하다.
- 강 건너 더덕이 마을로 가는 다리가 놓이면서 잠수교로 이용하던 다리는 낚시꾼들의 포인트로 남겨졌다. 잠수교는 물살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겸손한 다리다. 물이 넘치면 넘치는 대로 순응한다. 가볍게 넘치는 봇둑에 물을 튀기며 자전거 페달을 젓는 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내도리는 우리나라 4대 물돌이동 중 하나다. 안동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 나주 영산포와 더불어. 지도에서 봐도 쇠불알처럼 단단한 지심이 느껴지니 마을사람들의 자부 또한 크다한다. 그냥 앞섬으로 불리는 이곳에 다리가 놓인 사연이 기구하다. 1976년 6월 나룻배가 뒤집혀 학교 갔다 오던 어린 생명이 대부분인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있었다. 박대통령이 다리를 놓아줄 것을 특명하고, 모윤숙 시인이 진혼의 시를 썼으니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물안개 자욱한, 봄 강
적벽강까지 한 5㎞면 족할 길이 막혀 금강을 홀로 보내고 다시 무주읍으로 나오는 길은 시작부터 힘겹다. 멀리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전라북도의 경계에 있는 삼도봉(1172m)의 물까지 합세한 무주남대천의 물길은 금강의 자식들 중 둘째가라면 서럽다. 무주반디불이와 구천동의 시원함까지 청정의 이미지를 한껏 품고 있어 더 소중하다.
무주남대천을 따라 서면교를 건너서 이제는 뒷방물림이 된 용포교까지 강둑길은 우리 독차지다. 누에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잠두마을이라 불리는 물돌이동은 짧지만 벼랑길 구간이 있어 위안이 된다. 더구나 비포장이라 여백이 깊다.
37번 국도를 따라 금산군 부리면까지 가는 길은 강을 혼자 보내고 돌아가니 지루하다. 부리면 양곡4거리에서 다시 강을 찾아든다. 원심을 버리고 구심으로 찾아오듯…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이름 적벽강을 붙였을까 싶은 수통리와 방우리의 아름다운 계곡풍경은 강마을 여행지로 남겨 놓아야 할 일이겠다.
150㎞가 넘는 먼 길을 혼자 하루에 가야하는 자전거여행은 이제 내겐 버겁다. 죽어라 간다 해도 스스로에게 주는 기록경신 이상의 의미는 없다. 친구 김기태 군을 합류시킨 건 순전히 내 속셈이었다. 일정 구간을 릴레이식으로 타고 뒤에는 차량이 따라가기로 했다. 원점 회귀가 어려운 코스를 여행할 경우, 조금씩 지친 심신을 조절해 가면서 가는 ‘시니어 라이딩’ 방식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혼자 대견스러워 한다.
- 1976년, 나룻배전복사고로 18명의 어린 목숨을 앗아간 참사 후,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진 사연이 있는 다리. 내도교
복사꽃 꽃대궐, 금산에서 영동으로
김기태 군이 금산IC에서 선두에 선다. 그는 나의 고교동창이다. 그가 자전거를 열광적으로 타고 있다는 소식은 풍문에 들었지만 둘 다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한번도 자전거길에서 조우하지는 못했다. 그는 시흥시 부시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두어 번의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자전거를 사랑했다. “금강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 감탄사 연발이다. 초행길의 그를 안내하며 카메라 구도를 잡는 내 손길도 즐겁다.
제원대교를 건너면서 민물고기 어죽과 매운탕 간판이 즐비하다. 금강 물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제원대교를 건너지 않고 천태산산림휴양랜드를 지나면 벚꽃이 흐드러진 다음에 다투어 피는 산벚꽃 축제의 숨은 명소 신안리 마을로 넘어간다. <길 위의 세상>을 노래하는 한 기자의 산벚예찬은 꽃대궐에 대한 절절한 헌사다.
- 동창생 김기태군과 릴레이식으로 150㎞가 넘는 긴 코스를 하루에 여행하기로 했다
- 금산에서 영동으로 가는 국지도 68번. 직선화공사가 끝나면 자전거에겐 한가한 옛길이 선물이 될 것이다
산벚꽃은 화사하지 않고 해사하다.
아찔하고 나른하도록 화려한 게 아니라 맑고 깨끗하게 곱다랗다.
벚꽃이 화장한 도시 미인이라면 산벚꽃은 세수한 산골처녀다.
질리는 농염(濃艶)대신 상큼한 청신(淸新)이다.
오태진의 ‘길 위에서’ - 충남 금산 보곡산골
- 복사꽃을 사열하며 달릴 수 있는 것은 봄의 특권이다
금강을 따라가는 68번 국지도(국가지원지방도)는 교통몸살을 감당할 수 없어 터널과 다리공사가 한창이다. 강 따라 가는 아름다운 드라이브보다는 속도가 필요한가보다. 이제 초승달처럼 군데군데 생겨나는 옛길의 잔해는 자전거를 위한 여백으로 돌아올 것이다.
- 세월교 앞에서 휴식하면서 봄의 새 생명을 제대로 느껴본다
송호국민관광지 입구에서 강둑길로 내려선다. 잠수교인 ‘세월교’다. ‘세월’이라는 이름이 주는 엄청난 충격이 이 한가한 다리에서 다시 떠오르다니. 세월이 흘러도 그 참혹을 잊을 수 없게 물고 늘어지는 ‘비극적 좌파’의 집요함에서 대한민국의 서글픈 그림자를 목도한다. 그 어려운 ‘트라우마’라는 정신의학용어를 온 국민의 상식으로 만든 사건이 현재진행형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교 아래 대나무로 엮은 뗏목과 강 건너 정자는 한가롭기 그지없다. 잠시 쉬어가는 길에서도 산천은 깨달음을 일러주는 스승이다.
송호국민관광지는 호탄교 건너 십여리에서 만날 수 있는 숲속의 아름다운 절 영국사와 함께 오래전부터 꽤나 유명한 솔밭이다. 그냥 관광지가 아니라 국민관광지다. 캠핑이나 아웃도어라는 말이 바람을 타기 전에도 사람들은 솔숲에 차일을 치고, 솥단지를 걸고 여름 한철을 보내며 더위를 달랬다. 더위를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니라 삽상한 솔바람과 서늘한 그늘에 몸을 맡겼다. 천렵이라도 해서 수제비를 띄우면 내장을 풀어줄 얼큰한 국물이 고사리를 헤치고 솟구치며 끓었다. 세월이 지났어도 송호리 솔숲은 국민관광지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있다. 그 흔한 ‘인형 쏘아 맞추기’ 하나 없으니 말이다.
송호관광지에서 길게 쉬지 못한 것은 강둑에서 낙향한 한 자전거마니아를 만난 덕이다. 봉곡교를 건너 용바위 강선대(降仙臺)로 간다. 바위에 세운 두 개의 정자는 한국화의 배경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메인 컷 사진을 여기서 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 송호국민관광지의 솔숲, 벌써 그늘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 때로 비포장인 강둑길은 거의 강바닥 눈높이라 비가 조금 많이 오면 잠긴다
다리를 넘나들면서 강을 따라가는 길은 분명 하류로 가는 흐름이지만 북진하고 있어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복사꽃은 아예 강 양안(兩岸)을 뒤덮어 연분홍 잔치다. 봄나물을 뜯으러가는 아낙들의 수다, 루어 낚싯대를 들고 서 있는 태공들의 진지한 응시만이 사람의 인적이다. 양강면 구강리, 양산면 죽산리와 심천면 기호리를 지나는 동안 길은 거의 우리 독차지다.
국도 4호선과 교차해서 만나는 고당교와 양강교 사이에 난계국악박물관이 있다. 난계가 누구인가?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3대 악성(樂聖)에 드는 고려의 박연이다. 그가 태어난 곳이 바로 심천면 고당리라 난계사당도 함께 있다. 가난한 시골 군(영동군)에서 이미 1991년에 상설국악단(난계국악단)을 만든 것도 국악의 뿌리가 깊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감이 특산이던 영동에 포도와이너리가 40여 군데나 들어섰단다. 한 와인회사의 집념과 코레일의 장사수완은 영동을 와인의 고장으로 부각시켰다.
- 할아버지도 자전거를 타고 밭으로 가다가 인기척이 궁금해 섰다
- 인삼도 비료를 먹고 큰다. 인삼은 자연그대로 라는 건 도시인의 착각이다
추풍령의 물, 초강과 심천역의 추억
추풍령, 황간의 물을 데려오는 초강이 합류하는 물돌이동에 날근이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모래톱이 유난히 발달하고, 샛강도 갈래갈래 나 있는 날근이다리 건너가 경부선 심천역이다. 군대 시절, 철도수송병과였던 내게 가끔 군용트럭 같은 화물을 호송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화물보다는 여객운송이 우선이다. 어둠을 뚫고 달리던 화물열차는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어느 시골역 대기선로로 피양한다. 우린 그걸 ‘해방’이라고 불렀다. 기관차도 다른 임무에 차출되어 떠난다. 편평화차(flat car) 위에 업힌 트럭을 멀리 원두막에 올라 앉아 지켜보며 무더운 여름날 하루를 보내던 곳이 심천역이었다.
구탄터널과 고가교 위로 KTX 열차가 그야말로 총알같이 지나간다. 그 아래 초강수변생태공간으로 난 자전거길은 휴일인데도 독채전세다. 지탄역 근처가 적등진(赤登津)이고, 금산, 영동, 옥천을 지나는 금강의 또 다른 이름이 적등강이다.
- 복사꽃 사이로 달리는 강둑길, 그 기분도 복숭아 빛이다
옥천 동이면 적하리에서 다시 금강을 만나기까지 4번 국도 신세를 져야 한다. 조선조 제일의 문신인 우암 송시열의 유허비가 손짓하건만 우리는 그의 생가가 있는 용방리 입구를 지나친다. 이원은 과수묘목에 관한 한 전국최고를 자랑한다. 유실수와 무궁화를 재배하는 묘목업 종사자가 490호나 되는 건 순전히 전지역의 70%가 사질토양인 덕도 크다.
뛰어난 인물 하나로 그 지역을 기억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시인 정지용의 고향 옥천, 그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지줄 대던 실개천”이라고 말한 개울은 어디일까. 필시 금강으로야 흘러가겠지만 우리가 가는 강둑에서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 봄 강에는 강태공들도 채비를 들고 나섰다
- KTX 열차는 터널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다
금강휴게소와 강등된 옛 경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가 금강을 건넌다.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금강휴게소가 들어서 있다. 상하행선이 한꺼번에 이용하는 휴게소는 그럴만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행담도가 그렇고 덕평자연휴게소가 그렇다. 경부고속도로의 거의 한 가운데 위치한데다 서울부산 기점으로 두어 시간 달려 금강보에 내려서면 잠깐의 낚시까지 가능하니 다시없는 휴게소다. 도리뱅뱅과 어죽촌인 지우대 마을 몇 가구는 고속도로로 갇힌 마을이 되었으나 끈질긴 민물고기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입맛 아는 사람들은 금강휴게소에 차를 세우고도 토끼굴을 기꺼이 건넌다. 어죽과 도리뱅뱅 한 판으로 점심을 때우고 주자를 바꾼다. 김기태군이 핸들을 잡는다.
옛 1번 고속국도는 9번 옥천군도로 몇 단계 강등이 되었다. 옥천에서 청성으로, 심천으로 가는 지방도와 이어진다. 경부고속도로의 최난공사구간이었던 당재터널(옥천터널)이 시작하는 우산리에서 좌회전하면 향수100리길에서 본격적인 금강변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 금강휴게소 근처, 강물 가까이 가보면 봄소식이 좀 더 있을까
까마득한 산 가슴께에 걸려 있는 마을이 우릴 내려다본다. '높은벌' 고현부락이다. 이 작명에도 정지용의 ‘넓은벌’이 기준이 되었음직하다. 하늘아래 첫 동네인 높은벌 10여 호는 서남향을 하고 있어 볕이 좋은 편이다. 옻나무가 자생하여 옻진과 옻칠로 생계를 이었고, 참가죽나무도 이 마을의 특산이다. 다리가 놓이기 전엔 행정구역만 옥천이지 재 너머 심천장이나 영동장을 보면서 살아가던 또 다른 섬동네 사람들이었다. 옥천을 찾는 자전거꾼들이 이 언덕을 오르면서 그 시원한 조망과 금강의 용틀임에 새삼 감탄하는 곳이다.
지방도 575호는 합금리를 지나며 비포장이다. 정확히 말해 포장중이다. 강 건너 더덕이 마을로 가는 다리가 놓이면서 잠수교로 이용하던 다리는 낚시꾼들의 포인트로 남겨졌다. 잠수교는 물살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겸손한 다리다. 물이 넘치면 넘치는 대로 순응한다. 가볍게 넘치는 봇둑에 물을 튀기며 자전거 페달을 젓는 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 옛 경부고속도로 당재터널 근처에서 주자를 바꿔 릴레이식으로 간다
- 금강휴게소를 지나 안남면으로 향하는 575번 지방도. 비포장길도 얼마 남지 않았다
대청호의 영향권인 안남과 역 한반도지형
강으로 붙어서 계속 달리면 역(逆) 한반도지형이 있는 안남면에 이른다. 면 소재지에서 강가로 가봐야 고작 안피실이 끝이다. 대청댐의 물이 굽이굽이 밀려서 한반도 모습을 한 동이면 청마리까지 영향권에 잡아 가둔다. 기어이 역 한반도의 모습을 보거나 사진으로 남기려는 사람들은 둔주봉 정상까지 오르는 수고를 마다 않는다.
이제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도저히 강둑길을 상상할 수 없는 100리 길이 이어진다. 안내면 답양리를 지나 이름조차 못 얻은 고개 아래 언목(을미기)마을까지 접어든다. 이 길이 502번 지방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승용차로는 곤란한, 제대로 된 비포장 고갯길을 넘자 벌써 기우는 해에 멀리 대청호의 수면이 검푸른 호마이카 장롱처럼 빛난다.
산 정상부에 이르자, 절개지에는 검은 탄층이 보이고 길바닥도 온통 까맣다. 태백과 고한의 운탄(運炭)도로처럼. “저거 석탄 아닌가?” “아냐, 저게 셰일층일세. 물론 뿌리를 캐 나가다보면 석탄이 나오기도 하겠지만.” 친구 김기태군의 대답은 명쾌하다. 대학에서 광산학을 전공한 그에게 이 정도는 쉬운 문제이리라. 절개지에 흘러내린 단층을 보면서 석영과 변성암을 얘기하는 그가 갑자기 든든해진다.
- 셰일층이 나타난 절개지. 길바닥도 탄광지대처럼 온통 검정색깔이다
- 송호국민관광지 건너 강선대의 정자와 용바위의 조화는 금강 풍경 중 백미다. 한국화 한 폭의 소재가 되고도 남는다
충전이 부족한 전기자전거를 접어둔 채로 최종 주자를 바꾼다. “야, 이거 전기자전거에 맛들이면 큰일 나겠는걸. 언덕길에서는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는 거 있지.” 그가 소년처럼 웃는다. 분저리와 회남면을 지나면서 만나는 최대의 복병은 염티재(290m)다. 대전과 청주의 자전거꾼들이 즐겨 타는 대청호 일주의 한 포스트이기도 하다. 염티재 정상에선 서너 겹 굽이로 올라온 고개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겹쳐 보인다.
수몰로 다시 태어난 문의, 그리고 대청댐
이른 새벽 출발에서 오는 피로는 끝판에 나타나는 별스럽지 않은 언덕길도 허덕이게 만든다. 웬만하면 치고 올라갈 수 있다던 김기태군도 혀를 내밀었다. “야, 이거 보기보다 경사가 센데….” “그래, 대청댐을 만들면서 물을 피해 낸 길이라 더 가파를지도 몰라.” 그를 위한 그럴싸한 위로다. 문의에 이르자 어둠이 한 겹 더 내려앉아 호수를 배경으로 달리는 자전거도 실루엣에 가깝다
‘의(義)를 위해 글(文)을 쓴다’는 마을, 시인 고은이 삶과 죽음은 다른 갈래 길을 지나가지만 결국은 하나라고 담담하게 말한 문의다. 이곳이 고향인 신동문 시인 모친의 장례를 주관하고 1974년 그는 네 번째 시집 ‘문의마을에 가서’를 펴낸다.
- 강둑이 아니라 완전 산악코스다. 멀리 대청호가 보이는 비포장고갯길이다
- 염티재.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감겨있는 고갯길이다
겨울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적막만큼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문의마을에 가서’- 2연 생략)
- 문의에 거의 다 왔다. 햇구멍이 막혀버려 여명이 오는 호수 같다
어둠이 사위를 덮었다. 만인보에서 끌어내던 그 숱한 기억과 사람들의 봄날도 결국은 돌고 돌아 이 한편의 시로 삶과 죽음의 합일을 말한다. 철학강의의 종강에 가름할 수 있는 예사롭지 않은 시가 문의라는 종점 그 어둠속에 어른거린다.
굳이 민초에게 볼거리 하나를 되돌려 준다고 빗장을 연 청남대, 여백을 빼앗긴 대통령이 쉴 곳은 어디인가. 청남대로 가는 버스 편도 해가 남아 있을 때 이미 끊겼다. 매표소 마당에 봄밤이 고요하다.
<여행 만들기>
무주에서 문의에 이르는 150여㎞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무주에서 하루 전 숙박을 하고 아침 일찍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필자가 하듯이 친구들과 어울려 릴레이식으로 라이딩을 하며 휴식과 주행을 병행하는 방법은 특히 시니어의 자전거여행에 하나의 패턴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시간이 넉넉하게 허락되면 무주-영동, 옥천-문의구간을 나누어서 여행하면 한결 여유가 있을 것이다.
- 김기태(61)
<강둑길 동행>
필자의 고교동창이다. 공업기술분야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시흥시 부시장까지 역임했다. 현재 시흥산업진흥원장으로 있다. 집근처 수리산을 중심으로 산악자전거를 오래 타서 자전거에 대한 이해가 깊다. 고교동창이라고는 해도 오랜만에 함께 하면 살아가는 방식이나 인생관에 대해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이제 그만 일하고,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야지 뭐. 이제 해외도 가보고 싶어.” 공직에 오래 매여 지냈던 사람에게 그런 아쉬움은 공통분모다. “언제든지 불러줘. 자네 여행에 내가 조수 해줄테니….” 아무래도 그가 나의 강둑길 여행에 자주 등장할 듯하다.
<길섶에서 만난 사람>
배석권(61)
영동 양산면 송호국민관광지에서 만난 자전거 애호가다. 평생 주택건축사업을 하던 그가 은퇴 후의 삶은 낙향으로 정했단다. 놀랍게도 그는 자전거생활이 주관한 일본여행에도 동행했었단다. 혼자서 일본의 서해안(그들은 일본해라고 부르지만)을 비롯해 10여회나 자전거여행을 했으니 마니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희 집이 봉곡교 건너 고개 너먼데 커피나 한잔 하고 가시지요.” 자전거 동지를 이렇게 만나다니 그저 감읍이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지요. 평생 집만 짓던 사람 집 치곤 너무 심플하지요? 고향집을 헐고 있는 듯 없는 듯 지었어요.” 영동 금강 변에 참 좋은 지기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박순미(54)
답양리로 가는 길목에서 나물을 뜯고 있던 아낙이다. 울산에서 현대자동차를 퇴직한 형부가 이 산골로 이주하여 큰 언니네 왔단다. 본인은 원주에 살고 있어 정작 산나물을 뜯을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뿌리째 뽑는 게 뭐냐는 질문에 “이게 엉겅퀴라는 풀인데 혈액순환에 그리 좋다네요. 뽑아서 건강원에 맡겨 내려 먹을 작정이여요.” 골짜기서 만나 이름과 나이까지 물어보는 낯선 자전거 객에 대한 경계를 풀고 포즈를 다시 취했다.
<금산, 영동, 옥천, 보은 음식점>
- 옥류관 백반(무주)
무주옥류관 063-322-6910
이름만큼 대단치는 않지만 숙소인 덕화리버사이드모텔의 1층에 있는 음식점이다.
우선 아침식사가 되는 것이 장점이다. 가정식백반이 주메뉴다. 봄철에는 쑥국, 산나물 같은 제철 반찬도 내 놓는다.
가정식백반, 김치찌개 6000원
- 경상식당(금강휴게소)
경상식당 043-732-3485
금강휴게소에서 경부고속도로 아래 토끼굴로 들어갈 수 있는 민물매운탕촌의 초입에 있다.
어죽에는 들깨와 수제비가 잘게 들어 있어 맛을 더한다. 도리뱅뱅은 달콤한 물엿에 졸인 맛에다 한판 빙 두른 피라미들의 배열에 눈도 호사스럽다. 버스기사들의 단골이니 맛은 합격점이다. 어죽 7000원, 도리뱅뱅 1판 6000원
배바우손두부 043-732-2137
안남면 연주길 30. 두부전골이 주메뉴다.
<무주, 옥천 숙박>
덕화리버사이드모텔 063-322-6900~2
무주읍내 초입에 있는 모텔이다. 목욕탕이 1층에 있어서 따뜻한 물을 넉넉하게 쓸 수 있어서 좋다. 더구나 관리인 아주머니의 인심이 요즈음 보기 드물다. 단체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모텔이어서 시설이 썩 좋지는 않지만 자전거 숙박에 주인 눈치를 보는 일은 없다. 1박 4만원
타워팰리스 043-731-0814
옥천읍 옥천로에 있는 모텔이다. 민박은 대부분 가족단위 투숙만 받는 펜션개념이라 비싸고, 자전거여행자에게는 적합지 않다. 아예 옥천에서 1박할 경우, 읍내로 나와서 숙소를 정하고 정지용생가 등도 둘러보며 가는 것도 좋다.
<참고자료>
1. 신 택리지, 충청 편, 신정일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문의, 한국학중앙연구원
3. 고은 제4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1974
4. 대한민국구석구석, 옥천 높은 벌, 한국관광공사
<협찬>
팬텀 26XC(전기자전거) - 삼천리자전거
풍경에 건네는 말(39) by 조용연
- 금강 중상류, 옥천군 이원면 날근이 제방 근처에서 총알갈이 달려가는 KTX 열차를 만났습니다. 부럽다기보다 굉음이 무서웠습니다. 복사꽃이 지천으로 피어 꽃대궐을 만들면 그 사이에서 잠시 임금이 되어보는 게 사는 것 아닐까요. 사진을 찍고 보니 헬멧에 고압전선이 지나고 있어요. 마치 내 머리로 전류가 흐르는듯해 KTX 열차를 닮아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들어 피식 웃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슈우웅
어~어 지나갔네요
날근이 강둑쯤 알 바 아니지요
그 사람 눈 맞추기 위해
그 하루 끝 만나기 위해
죽어라 달려 죽는 소리를 흩뿌리네요
깜박 조는 봄 강
여울목에 걸려 아차 쌍거풀 집니다.
복사꽃 그늘 달라진 게 없네요
자전거가 얼핏 아는 체 합니다
바쁜 것들 다 떠나보내고
나 하나 믿고 가다
봄 한가운데 우리 서 있네요
닮아갈까 겁 납니다
전기가 내게 흘러 달려갈까 겁 납니다
가락국수도 잃어버리고
두런두런 얘기도 잃어버리고
두 바퀴마저 잃어버릴까봐서
글·사진 조용연(여행작가, 前 울산지방경찰청장)
·1954년 경북 문경 출생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경기 여주경찰서장, 서울 동부경찰서장(현 광진경찰서)
·경찰청 기획과장, 주중국대사관 참사관(북경)
·서울청 교통지도부장,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충남지방경찰청장, 울산지방경찰청장
·현 에스원 감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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