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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19. 토요일(날씨 : 맑음)
0900 한국도로공사 수원지사 출발
- 구내식당 아침식사
- 온형근, 염충, 전익요, 안행준(주연 동반)
- 강한민 : 신입회원(시설물업체 근무경력 현재 고려대학교 심우경 교수 지도 석사과정 1학기)
1150 대전통영고속도로 서상인터체인지 도착
1205 백전고개 정상 도착(원통치)
- 송전삼거리 → 백전 방향 진입
1210 신진섭 합류
1220 식당 도착(송정원 식당)
- 버섯전골, 표고튀김
- 안행준 일본소주 갖고 옴(太宰府 소주)
1230 정명렬, 박수미 합류
- 희말라야 트레킹 논의(해발 4000m Base Camp)
- 6000m 산 등반한 노부부(할머니 관절이 않좋음)...
1345 식당 출발
- 원통치 → 거연정 방향
- 층층나무 식생이 길가에 눈에 띰
1420 거연정 도착
- 경호강 계곡 사이의 중도에 위치, 철재 홍교(花林橋)로 연결(인위적 분위기)
- 계곡(강), 바위 경관 양호, 복원형태는 부실
- 거연정
강원도 정선 전씨의 중시조이면서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 분이신 전오륜 공의 7대손인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전시서 공이 산세가 힘차고 경관이 아름다운 이 곳 봉전마을에 자리를 잡고 번성하였는데 그 후손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872년 건립하였습니다. 흐르는 계곡물과 우거진 숲, 구름다리가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는 비경은 자연과 하나되는 아름다움과 감동이 있어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하는 곳입니다. 주변에 둘러 볼만한 곳으로는 마주 보이는 곳의 괘관산, 뒤편의 황석산의 항일 의병활동을 한 문태서, 전성법 대장의 공적비가 있습니다.(출처 : 안내간판)
1435 군자정 도착
- 군자정과 거연정 사이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 온선생님 물푸레나무 종자 채종(길에 떨어진 종자, 학교에 파종할 계획)
- 군자정
조선조 5현이며 동국 18현 중의 한 분이신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의 처가 마을이 이 정자가 있는 서하면 봉전마을입니다. 선생께서 처가에 오시면 자주 찾아 쉬시던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봉전마을 정선 전씨 문중의 전세걸 진사 등이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1802년 이 곳에다 정자를 건립하고, 군자가 올라 쉬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는 이름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던 곳입니다. 주위에 우거진 나무들과 바위 틈을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건너편 절벽의 절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정자 위에 오르면 항상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오므로 마음 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아 시와 노래가 절로 우러 나오게 하는 곳입니다.(출처 : 안내간판)
1500 동호정 도착
- 동호정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이신 동호 장만리 공께서는 함양군 서하면 황산마을 태생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등에 업고 의주로 피난을 하셨는데 선조께서 그 충성을 가상히 여겨 호성공신의 원종 공신에 책록 하시었으며 고종황제께서 1892년 좌승지에 추증하고 충신 정려를 내리셨습니다. 훗 날 공께서 관직에서 물러나신 뒤 이 곳에서 심신을 수련하시며 때때로 낚시를 즐기던 곳입니다. 공은 당시 성리학에 정통하여 사림의 추앙을 받던 충의지사로서 후손들이 충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이 곳에다 1890년경 정자를 세우고 공의 호를 따서 동호정이라 하였습니다. 동호정은 아름다운 수변 경관과 더불어 넓은 강폭에 펼쳐진 차일암은 보는 이의 마음에 시심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어 예로부터 이 곳에서 많은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으며 도처로부터 찾는 이가 많은 곳입니다.(출처 : 안내간판)
- 차일암(次日岩) : 詠歌臺, 琴笛岩
- 계곡 하상 자갈톱 지역 소나무림 : 계곡부에 소나무림은 자갈톱, 모래톱 등 물이 차더라도 쉽게 배수될 수 있는 지역에 잘 생육한다.
- 소나무, 굴참나무의 동거
- 정자 올라가는 계단 독특(통나무로 계단을 만듬)
1530 동호정 출발
1535 농월정 도착
- 식당 많고 주차장 큼지막한 유원지 분위기
- 소나무 수림(계곡 옆 내측 토사 충적지의 자갈톱)
-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흔적만 있음
- 농월정
조선 중기 때의 학자인 함양 안의면 성북마을 출신인 지족당 박명부(1571-1639) 공께서 광해군 때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대비의 유배에 대한 부당함을 직간하다가 파직되자 고향에 돌아와 은거생활을 하시면서 방대한 너럭바위(넓은바위)와 주변 경관이 수려한 이 곳에 서당을 짓고 심신을 수련하였습니다. 인조반정 후 예조참판과 강릉 도호부사 등을 지내셨으며 말년에는 왕이 불러도 벼슬길에 나가지를 않고 1637년 농월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쉬던 곳으로 몇 차례 중수를 거쳤습니다. 189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되었으며 정자 앞 오른쪽 암반에 선생께서 지팡이를 짚고 노닐던 곳이라는 뜻의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라는 글자를 후손들이 힘있게 새겨 놓았습니다. 달 밝은 고요한 밤에 암반 위의 냇물에 비친 달빛은 한잔의 술로 달을 희롱한다는 선비들의 풍류와 멋을 함축하고 있으며 계곡의 위쪽으로 황석산 등산로가 시작됩니다.(출처 : 안내간판)
1620 농월정 출발
1625 안의 광풍루 도착
- 광풍루 전면 하천 가장자리 왕버들 방풍림
- 안의 광풍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이 누각은 1412년(태종 12)에 당시 이안(利安, 안의의 옛 이름) 현감이던 전우가 건립하였는데, 당시의 이름은 선화루였다. 그 후 1425년(세종 7)에 김홍의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으며, 1494년(성종 25)에 안의현감이던 일두 정여창 선생이 중건하면서 이름을 광풍루로 바꾸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불타는 등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풍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기둥의 주춧돌은 둥글게 깎아 만들었다. 지붕의 경사면에 처마를 하나 덧댄 팔작지붕을 연출하였으나 처마 돌출이 작기 때문에 호방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소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함양 읍내의 학사루와 유사한 건축양식이다. 광풍루는 금호강을 앞으로 하고 안의 읍내를 뒤로하면서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지었다. 그러나 오늘날 강은 하천개발로 그 모습을 잃어버렸고, 후면에 상가와 민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겼을 풍류를 찾을 길이 없다. 다만 누각 위에 걸린 옛 시인의 글귀만이 옛 금호강변의 아름다운‘빛과 바람(光風)’의 느낌을 전해줄 뿐이다.(출처 : 안내간판)
1640 광풍루 출발
1655 일두고택(정여창 고택) 도착
- 함양 일두고택(중요민속자료 제186호)
조선 오현 중의 한 분인 문헌공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의 고택으로 현재의 집은 그가 죽은 후 선조 무렵(1570년대)에 건축된 것이다. 10,000㎡ 정도의 넓은 집터에는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아래채, 광채, 사당 등의 여러 채의 건물 등이 서 있어 양반대가로서의 면모를 고루 갖춘 경남 지방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솟을대문에는 5개의 충신, 효자의 정려패가 걸려 있어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 이 집은 구조적인 특성을 보일 뿐만 아니라 세간, 살림살이들이 비교적 예스러운대로 제자리에 보존되고 있어서 당시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출처 : 안내간판)
- 개평문화마을, 국가지정문화재 정병옥 가옥
- 한과 구입
1830 산내면 유정식당 도착
- 식당 찾아 삼만리...
- 돼지고기 소금구이, 수육
2030 식당 출발
2045 지리산 자연휴양림 도착
- 해외답사 검토 : 히말라야, 코타키나발루, 뉴질랜드, 요세미티, 캐나다, 백두산, 홋가이도, 바이칼 등
- 젊어서의 해외여행은 오지, 특이한 곳
- 다랑쉬의 지향점은 대자연 : 백두산 히말라야 등
- 2008년 답사주제 : 옛길로 결정
2008. 1. 20. 일요일(날씨 : 눈발 조금)
0855 지리산 자연휴양림 출발
0905 월산 식육식당 도착
- 돼지국밥(그동안 먹었던 것과 다름, 김치넣고 시원하게), 소고기국밥
0950 식당 출발
1000 벽송사, 서암정사 도착
- 벽송사(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
벽송사는 조선 중종시대인 1520년 벽송지엄(碧松智嚴)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다. 조선시대 불교의 선맥에 보면 벽계정심, 벽송지엄, 부용영관, 경성일선, 서산휴정, 부휴선수, 사명유정, 청매인오, 환성지안, 호암체정, 희암정혜, 경암응윤, 서룡상민 등 기라성 같은 정통 조사들이 벽송사에서 수행 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아울러 선교를 검수한 대 종장들을 108분이나 배출하여 일명‘백팔조사 행화도량(百八祖師 行化道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출처 : 안내간판)
- 벽송사 지역은 예전 지리산 공비 토벌 루트였고, 벽송사는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다.
- 벽송사 목장승(경상남도 민속자료 제2호)
장승에는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다. 장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 성기(性器) 숭배에서 나왔다거나 사찰 토지의 표시로 이용되었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또 목장승은 솟대에서, 석장승은 선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장승이 지방에 따라 벅수, 벅시, 법수, 수살목, 당산할배 등으로도 불렸다. 장승은 소속과 위치에 따라 마을을 지키는 마을장승, 사찰의 입구나 사방 경계에 세워진 사찰장승, 지역 간의 경계, 성문, 병영, 해창, 관로 등에 서 있는 공공장승 등이 있다. 벽송사 입구에 세워진 이 장승은 사찰에 들어오는 악귀의 퇴치, 사찰 경내에서 행해지는 불법 어로와 사냥의 금지, 풍수지리상의 비보 역할 등 다양한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제작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대략 일제시대 초기의 것으로 전한다. 목장승은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이곳의 왼쪽에 서 있는‘금호장군(禁護將軍)’은 역시 커다란 왕방울 눈 하나만을 빼고는 원래의 모습을 상당부분 잃어버렸다. 그러나‘호법대신(護法大神)인 오른쪽 장승은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서 있다. 머리와 큰 눈, 큰 코, 일자형 입과 수염 등이 매우 인상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무서운 것 같으면서도 순박하고, 위풍당당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이라서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검게 한다. 이 두 장승은 불교와 민간신앙이 어우러져 나타난 걸작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출처 : 안내간판)
- 벽송사 삼층석탑(보물 제474호)
이 탑의 위치는 원래 벽송사 대웅전 동편에 세워 놓은 것인데 사찰이 아래로 옮겨져 탑만 남게 되었다. 2중 기단 위에 방형의 3층 탑신부를 이룬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그대로 계승한 탑이지만, 사찰이 세워진 때가 조선시대(1520년)이므로 그 때 탑도 세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탑의 위치가 법당 앞이 아닌 뒤편이라는 점이 특이하며, 신라시대 삼층 석탑의 모습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예로서 주목되는 탑이다. 현재 탑의 상륜부에는 복발과 노반이 남아 있으며, 탑의 높이는 3.5m이다.(출처 : 안내간판)
- 도인송과 미인송
- 서암정사
벽송사의 암자였는데 절로 승격, 지금까지의 사찰과는 사뭇 다르게 중국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사찰, 암벽을 이용하여 불상을 조각하기도 하고, 돌로 쌓아 놓은 아래에 꾸며놓은 법당 등
1155 벽송사 출발
1225 함양 도착
1250 상림 도착
- 위천과 상림 사이의 자동차 도로 폐쇄
- 상림 후면은 논은 군에서 매입하여 연 식재, 주차장 및 공원 조성
- 함양 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
이 숲은 지금으로부터 약 1,100년 전인 신라 진성여왕(887-897 재위) 때 당시 함양태수를 지내던 최치원 선생이 호안림으로 조성한 인공림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고 있어서 해마다 홍수로 인한 피해가 컸으므로 그것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이곳에 뚝을 쌓아 강물을 돌리고 뚝 위에 나무를 심어 가꾸게 된 것이라 한다. 처음에는 이 숲을 대관림이라 이름 짓고 잘 보호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중간이 파괴되어 지금과 같이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졌으며 하림은 개발로 인해 사라졌으며 상림만 현재 면적 약 188,358㎡에 100여종의 20,000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출처 : 안내간판)
1420 상림 출발
1435 함양 수동매운탕 도착
- 참게매기매운탕(45,000원/大)
- 장생도라지진주 : 이익금의 3% 농업장학사업
- 굳샷(횡성 술) : 비아그라 12배의 성분이라는 설
- 죽은 사람도 살리는 음식 : 토하젓, 참게탕
1610 수동매운탕 출발
1940 영동고속도로 동수원인터체인지 도착
1950 회장님 댁 도착
- 김치말이 국수
2040 회장님 댁 출발
2100 한국도로공사 수원지사 도착(답사 종료)
첫댓글 오..
훌륭한 아우...잘했어요.
그 장생도라지 주를 구해야 하는데..
- 온형근 -
회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째 지난 1년 동안 방황하다 돌아온 기분입니다. 왠지 허전합니다.
- 전익요 -
허전한 게 아니라,
다랑쉬가 전익요씨를 등돌리고 말 법 했으니까.
이제는 반가워하겠지요.
- 온형근 -
19일 20시 30분 박수미 합류, 이영 귀가는 07년 3회 경주내용인디...
- 박수미 -
수미야 수정했다. 경주 여정에 덮어씌운 티가 나는군.
- 전익요 -
회장님 장생도라지진주를 찾았습니다.
답사 때 편히 드실 수 있도록 조치해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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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익요 -
제 마음의 샘인 다랑쉬 님들이 슬슬 부활하니 제 마음도 맑고 생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호나우잉요 멋져부러~!
- 박수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