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엽풍란의 뿌리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석부작을 해놓은 풍란이 올해도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며칠 전까지도 꽃대만 머쓱히 올라와 있더니 달라진 변화이다. 피어난 꽃은 화려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작고 고운 꽃송이가 촘촘히 매달려 예쁘고 여간 귀엽지 않다. 하지만 풍란의 진미는 뭐니 뭐니 해도 다른 곳에 있다. 꽃모양 보다는 다육식물 특유의 널따란 이파리가 매력이다. 그러기에 이름 또한 꽃보다는 이파리에 방점을 두어 대엽풍란이라 했을 터이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석부작을 만들어 놓은 후 잎보다는 뿌리에 더 관심을 두고 지켜본다. 그러한 건 별스런 맛 때문이다. 오늘도 나의 시선은 어김없이 꽃보다는 뿌리에 머물고 있다. 뿌리는 타래실처럼 늘어뜨려서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하게 한다.
풍란은 부르는 이름도 여러 가지이다. 향을 풍긴다는 뜻으로 계란(桂蘭)이라고도 하고, 세속을 초월하여 높은 바위 위나 나무의 깨끗한 곳에서 고고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선초(仙草)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생명력이 영원히 죽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고 하여 불사초(不死草)라 하는가 하면 건란(乾蘭) 혹은 헌란(軒蘭)이라고도 한다.
나는 요즘 뿌리를 구경하는 맛에 빠져있다. 분에 묻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석부작을 해놓고 보니 뿌리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볼수록 기이하기도 한 것이다. 뿌리를 보면 힘닿는 데까지 한정 없이 뻗어 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몸 하나 지탱할 정도면 될 텐데도 어찌 그리도 유난스레 길게 뿌리를 내리고 있을까. 그 길이만도 얼추 한자는 넘을 성싶다.
나는 처음 뿌리를 보면서 좀 의아하게 생각했다. 턱없이 길게 뻗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모양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달 전에 물을 주기 위해 옮기다가 그만 분을 깨뜨린 후였었다. 그때 보니 긴 뿌리가 비좁은 분 속에 잔뜩 엉켜져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보고서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석부작을 만들기로 했다.
재료로 쓸 돌은 전에 수석으로 주어온 돌중에서 골랐다. 관통이 된 석회석인데, 길이가 길쭉해서 뿌리를 늘어뜨리는데 안성맞춤일 것 같아서였다. 처음엔 실을 가지고 몸뚱이를 친친 감아 두었다. 그랬더니 바라는 대로 풍란은 착근을 하여 잘 자라 주었다.
난은 흔히 알려진 대로 물을 자주 주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이 오히려 잘 기른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물을 자주 주게 되는데 석부작을 해놓으니 물이 바로 흘러내려서 좋았다. 모양이 보기에도 그럴듯할 뿐 아니라 뿌리 썩음도 걱정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만들어 놓은 그것을 거실 가까운 베란다에 두고서 노상 바라본다. 그러자니 자연스레 생태를 파악하게 되는데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을 주면 뿌리가 잔뜩 물을 머금었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차로 수분을 증발시키는 모습이 예사 지혜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배불뚝이가 된 것이 나중에는 7~8월 은어 배곯듯이 오그라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뿌리에 저장된 수분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잎으로 보낸다.
이런 뿌리에는 저장기능 말고도 예민한 센서가 작동하는 것 같다. 아무렇게나 자라지 않고 균형을 취하면서 뻗기 때문이다.
한데, 이놈은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하나의 특징을 보이는데 그만 성장을 뚝 멈추고 만다. 골을 따라 줄기차게 뻗어 내려가다가도 튀어나온 장애물을 만나면 그곳이 한계점임을 알고 중단하는 것이다. 뿌리가 제멋대로 뻗거나, 장애물을 만나면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자라지 아니한다. 그리고 자라나는 것도 동면에서 깨어나면 바로 성장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본격적인 자람은 꽃을 피운 후에 시작한다. 그러니 대책 없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성장함을 볼 수 있다.
풍란은 무엇보다도 우선 뿌리부터 튼실하게 갈무리하는 식물인 것 같다. 같은 식물이라도 오이나 호박, 그 밖의 나팔꽃 등은 줄기를 뻗고자 전력을 다하는데 비하여, 이놈은 뿌리부터 튼튼히 가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처럼 난향(蘭香)은 십리(十里)를 간다 하여 그 기품을 으뜸으로 치지만, 눈여겨 볼 부분은 뿌리의 견실함을 도모하는 점도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할 것 같다.
뿌리는 무엇인가. 물이나 영양분을 빨아올리고 줄기를 지탱하는 기관일 뿐 아니라, 근본을 지키는 근간이 아닌가. ‘뿌리 없는 나무에 잎이 필까.’라는 말도 있듯이, 본성을 지켜나가는 근원이며 중심이 아닌가. 깊은 물이 소리가 없고 고요함은 그 근원의 깊음에 있음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깊이가 있어야 진중한 멋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희비에 따라 냄비처럼 끓고 감정 기복이 곧바로 드러나는 사람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된다. 인격의 뿌리가 그만큼 천근(淺根)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행위라 하겠다.
최근에 빚어지는 일들을 보더라도 그걸 알 수 있다. 누가 좀 듣기 싫은 고언(苦言)을 했다고 해서 바로 독설로 맞대응하여 비아냥거리지를 않나, 기업의 총수가 자기 아들이 맞고 왔다고 보복 폭행을 하지 않나…. 이렇듯 보여주는 인정물태(人情物態)는 그만큼 스스로 뿌리가 부실함을 자인하는 꼴이다.
대엽풍란은 본래 해풍이 드센 나무 위에서 자라는 식물이지만, 온갖 악조건에서도 견뎌낸다. 이는 보이지 않은 뿌리의 견실함 때문이다. 그 점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세상을 살면서 중심을 잡고 사는 일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풍란의 긴 뿌리를 보며 보이지 않는 내면을 튼실하게 가꾸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얼마나 긴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2008)
첫댓글 '뿌리 깊은 나무'를 생각하고 돌이나 고사목에 길게 뿌리를 붙이고 사시사철 태연자약한 대엽풍란을 떠올려 봅니다.
대업풍란의 생존전략은 신비하기만 하더군요.
선수필에 실림.
풍란에 영감을 얻어 풀어가신 것도 압권이네요. 사물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탁월하신 거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몇 번 더 읽어 봐야겠습니다.
열심히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니 고맙습니다.
대엽풍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