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하 파티를 위해 웨스턴 카우룽 지역에 설치한 초대형 텐트. 루이 비통 앤티크 트렁크 이미지를 투사해 화려한 느낌을 자아낸다. 2 일본 건축가 이누이 구미코가 디자인한 캔턴 로드 메종 파사드. 3 바다와 홍콩 섬의 야경이 바라다보이는 파티장 내부. 4 캔턴 로드 메종 내 여성용 슈즈 컬렉션 코너. 5 골드 컬러 여성복 디스플레이와 백 바. 6 웅장한 입구 양옆과 안쪽 중앙 아트리움에설치한 파브리지오 플레시의 작품.
지난 3월 14일, 홍콩 카우룽 반도 침사추이 지역 캔턴 로드 5번지에 황금이 흐르기 시작했다. 디지털 황금물결에 휘감긴 이곳은 새롭게 오픈한 루이 비통 캔턴 로드 메종Canton Road Maison이다. 루이 비통은 단순한 패션 하우스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럭셔리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루이 비통 메종(스토어보다 상품 카테고리와 공간 구성이 더 복합적이고 규모가 큰 매장을 메종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루이 비통 스토어만 있을 뿐 메종은 없다)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다.
홍콩은 루이 비통과 가장 먼저 인연을 맺은 아시아 도시다. 루이 비통은 1979년 홍콩 페닌슐라 호텔에 아시아의 첫 번째 스토어를 오픈했다. 그리고 약 30년이 흐른 후 아시아에서 가장 큰 루이 비통 메종이 이곳 캔턴 로드에 오픈한 것. 지난 2005년 리오픈한 파리 샹젤리제 메종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곳에 본래 위치한 루이 비통 스토어가 메종으로 재탄생한 것으로 공사가 진행되던 작년, 현장을 가리기 위해 폭 41m, 높이 16m의 거대한 ‘다미에 아쥬르 캔버스 트렁크’를 세울 때부터 화제가 됐다.
루이 비통은 새 공간을 오픈할 때마다 최고의 건축가.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독특한 예술적 감각과 스타일리시한 건축을 선보였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총 4층 규모의 캔턴 로드 메종은 일본 건축가 이누이 구미코Inui Kumiko가 디자인한 화려한 LED 스크린 파사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누이 구미코는 루이 비통을 상징하는 다미에 패턴을 모티브로 바둑판무늬 석조 릴리프를 구상했고, 그 위에 백라이트 조명을 설치한 정사각형 유리판을 올려 입체감을 극대화했다. 이 파사드는 밤과 낮, 빛의 변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특히 밤에는 LED 조명 프로그램이 더욱 화려하고 역동적인 빛의 패턴을 연출한다.
7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인 마작 참. 8 루이 비통의 전통을 상징하는 여행 가방 코너. 9 캔턴 로드와 랜드마크 메종 사이를 이어준 루이 비통 스타 페리.
미다스의 왕궁 같은 거대한 황금물결 루이 비통 캔턴 로드 메종의 하이라이트는 디지털 영상 예술로 선보인 ‘흐르는 황금’이다. 2층 높이의 입구 양옆 윈도에는 같은 높이의 고해상 LED 스크린을 설치했는데, 화면에는 ‘황금’을 테마로 한 비디오 아트 작품이 펼쳐진다. 그 화려함과 웅장함에 감탄하며 안으로 들어가면 탁 트인 중앙 아트리움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층고가 높은 이 공간 상부에 설치된 높이 3.5m, 길이 6.5m의 대형 LED 스크린에도 황금이 흘러내린다! 숨이 멎을 듯 강렬하게 시선을 압도하는 이 비디오 아트 작품은 이탈리아의 거장 파브리지오 플레시Fabrizio Plessi가 선보인 ‘럭셔리는 느리다Luxury is slow’이다. 작가는 “위대한 패션 하우스와 위대한 아티스트의 만남!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화면 위 황금은 유연하게 녹아 마치 시간을 잊은 폭포처럼 아주 천천히 흘러내린다. 보고 있으면 눈부신 황금에 취할 것만 같은데, 마치 미다스의 왕궁에 온 듯한 느낌도 든다. 루이 비통의 이브 카르셀Yves Carcelle 회장은 “파브리지오 플레시의 작품은 놀랍도록 아름다울 뿐 아니라 깊은 의미도 지녔다. 세상 어느 곳보다 빠르고 바쁜 삶을 살아가는 홍콩인들에게 특히 큰 사랑을 받을 것이다”라고 작품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이 작품은 캔턴 로드 메종에서 6개월간 전시된 후 세계 곳곳의 루이 비통 매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2층 VIP룸에서는 화산석 소재의 검은 큐브 형태에 흐르는 황금 이미지를 보여주는 스크린을 부착한 다른 버전의 작품도 만날 수 있는데, 웅장한 규모의 중앙 아트리움 작품과 달리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게 한다.
황금은 이들 작품의 주제이면서 캔턴 로드 메종 전체의 테마이기도 하다. 오프닝을 기념한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도 황금을 테마로 선보였으며, 매장 곳곳에 골드 컬러의 작은 오브제를 배치해 디스플레이에 통일감을 주었다. 루이 비통은 골드라는 테마를 바다 건너편 홍콩 섬의 센트럴 지역에 위치한 랜드마크 메종에도 적용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곳은 옐로 골드가 아닌 화이트 골드라는 것. 중국 조각가 잔왕Zhan Wang의 은빛 조각 작품 전시를 비롯해 디스플레이도 화이트 골드 테마로 전개했다. 물론 캔턴 로드 메종 오프닝을 기념해 이곳에서 선보이는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도 화이트 골드 컬러다.
1 주윤발의 사진을 전시한 캔턴 로드 메종 내 갤러리 2 처음으로 사진전을 개최한 주윤발
전통과 현대의 가치를 담은 패션 파라다이스 캔턴 로드 메종은 각층이 산책로처럼 이어진다. 총 4층 규모인데 1층부터 4층까지 나뉜 일반적 구조가 아니다. 파리 샹젤리제 메종과 같은 방식으로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중앙 아트리움에서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남성복과 남성 슈즈 컬렉션이 보이고 , 그곳을 지나면 여행 가방과 트렁크 코너를 만난다. 이곳에는 다미에 패턴에서 영감을 받은 앤티크 트렁크를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 설치해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파브리지오 플레시의 작품이 루이 비통의 가치를 첨단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현대 예술로 표현한 것이라면, 그 아래에 디스플레이한 앤티크 트렁크는 루이 비통의 전통, 그들의 뿌리이자 철학인 ‘여행’을 상징한다. 루이 비통은 154년 역사 속에서 전통을 지켜옴과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았다. 상반된 가치를 흔들림 없이 지켜오는 것이 놀랍다고 생각했는데, 전통을 지키면서 누구보다 현대를 앞서 나가는 루이 비통의 정신이 캔턴 로드 메종 곳곳에 드러나 있는 것을 보며 그들의 치밀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복층 구조인 2층에는 패션을 사랑하는 여성을 위한 파라다이스가 펼쳐져 있다. 욕망의 대상인 루이 비통 가방을 즐비하게 진열한 백 바bag bar, 여성복과 여성 슈즈 컬렉션, 아이웨어와 액세서리, 코스튬 주얼리 등 패션을 완성하는 모든 것을 망라했다. 그 위쪽은 캔턴 로드 메종이 예술과 문화의 향기를 그윽하게 풍기는 공간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계.주얼리 존을 비롯해 갤러리와 북 스토어, 두 곳의 VIP룸이 마련돼 있다.
3 주윤발이 난징에서 영화 촬영 중 찍은 사진
포토그래퍼 주윤발, 첫 번째 전시회를 열다 갤러리는 파리 샹젤리제 메종과 이곳에만 마련돼 있어 더욱 특별하다. 첫 번째 전시는 홍콩이 낳은 최고의 영화배우 주윤발의 사진전. 그가 직접 대형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고, 인화하고, 현상한 흑백 사진이다.
주윤발의 사진전이라, 뜻밖이었다. 그는 캔턴 로드 메종 오프닝을 축하하는 자리이자 자신의 사진전이 시작되는 자리에 참석했다. 사진으로 개인전을 열었으니 그 자리에서는 ‘포토그래퍼 주윤발’인 셈이다. 강인하면서도 순수한 이미지의 배우. <영웅본색>, <첩혈쌍웅>, <와호장룡> 등의 영화는 세계의 수많은 관객이 보았지만 사진 작품은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는 매우 오래됐다고 한다. “어떤 이는 차를 좋아하고 어떤 이는 시계나 보석을 좋아한다. 카메라는 내가 애착하는 장난감 같은 것이다. 내겐 카메라가 유일한 장난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암실에 있는 시간이 가장 평화롭고 편안하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사진전을 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며 “우연한 기회에 사진에 대한 열정을 루이 비통 관계자에게 얘기했고. 그것이 이번 전시회를 개최하는 실마리가 됐다”고 동기를 밝혔다.
전시회의 제목은 . 전시장 맨 앞의 작품은 2005년 샹젤리제 메종 오프닝 참석차 파리를 방문했을 때 촬영한 것. 나머지는 그 이후 바하마, 중국 등지의 영화 로케이션 현지에서 촬영했다. 최근작인 <캐리비안의 해적>, <황후화>, <황시의 아이들> 등의 영화다. 그러니 최근 3년간 주윤발의 인생 여정을 보여주는 전시이기도 하다. 장소를 이동하는 실제 여행, 인생이라는 시간의 여정…. 이 전시에도 ‘여행’이라는 루이 비통의 철학이 반영됐다. 대단한 루이 비통이다!
리미티드 에디션 벨레뷰 모노그램 미러 백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무엇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주윤발은 잠시 생각하더니 동료 배우 공리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을 꼽았다. 함께 <황후화>를 촬영할 때 찍은 것이다. 그녀는 사진 찍히는 것을 몰랐고, 주윤발은 그런 자연스러운 표정을 포착하는 것이 즐겁단다. 흑백 사진을 찍는 이유는 흑백의 이미지가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감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예의 그 웃음을 지었다. 1980년대, 주윤발은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싸랑해요, 밀키스!”를 외치며 TV 화면을 천진한 웃음으로 가득 채운 주윤발. 세월은 못 속이지만 웃는 모습은 하나도 안 변했다.
루이 비통 관계자들과 세계 각국의 취재진으로 북적이는 가운데 가능한 한 천천히 그의 작품을 감상했다. 주윤발은 30년 넘게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다. 그런 그가 반대로 카메라에 다른 사람과 세상을 담아낸 작품이라 생각하니 더 흥미로웠다. 주윤발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과 카메라 뒤에 서는 것은 정말 다르다”며 “배우일 때는 좋은 그림을 위해 감독의 말에 귀 기울이고, 사진가일 때는 완벽한 자유를 누린다”고 했는데, 이것이 그가 사진에 애착을 갖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윤발의 사진전 는 6월 15일까지 계속되며, 이곳 캔턴 로드 메종의 갤러리에서는 앞으로도 사진 예술 중심의 전시를 전개해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로 인정받았지만, 현재 그 어떤 장르보다 뜨겁게 각광받고 있는 사진 예술을 전시하는 갤러리야말로 예술과 늘 손을 붙잡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데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는 루이 비통과 정말 잘 어울리는 공간 같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루이 비통 회장 이브 카르셀은 “사람들은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특별한 삶의 방식을 경험하기 위해 루이 비통을 방문한다”고 했다. 루이 비통은 고객의 이런 바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하다. 그들은 번번이 놀라울 만큼 혁신적인 방법으로 이를 구현해왔다. 루이 비통이 출시하는 럭셔리 아이템 전반을 선보이기에 완벽한 공간이자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이곳 캔턴 로드 메종 역시 그 증거다. 이 매력적인 공간은 홍콩을 더욱 세련되고 낭만적인 곳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마 홍콩 캔턴 로드를 세계적 스타일 메카로 승화시킬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특별한 루이 비통 메종이 자리한 곳이 서울 청담동이 아니란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1 파브리지오 플레시 2 중앙 아트리움 위쪽의 대형 스크린에 웅장한 황금 폭포가 흐른다 3 파브리지오 플레시와 함께 탄생시킨 백 4 옐로 골드와 화이트 골드의이브닝 오픈토 슈즈
패션은 빠르고, 럭셔리는 느리다! - 비디오 아티스트 파브리지오 플레시 우리에게 백남준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파브리지오 플레시가 있다. 1970년대 유럽 비디오 아트의 선구적 역할을 한 그는 물과 불 같은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주제를 작품에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루이 비통을 위해 선택한 주제는 황금, ‘녹아내리는 황금melting gold’이다.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라 유연하게 녹아 ‘느린 폭포’처럼, ‘고요한 용암’처럼 흐르는 황금은 어쩌면 불과 물을 결합한 이미지 같다. 캔턴 로드 메종 오프닝을 앞두고 홍콩에서 그를 만났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아티스트면서 물, 불, 돌 등 단순하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이 흥미롭다. 왜 늘 이런 요소를 다루는가? 돌, 나무 등 미술 세계를 이루는 전형적 물질이 비디오와 LED, 새로운 기술 등 전혀 다른 물질과 공존하게 만드는 것이 내 목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연금술사처럼 나는 이질적 물질을 혼합했다. 예술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하며, 동시대의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30년간 텔레비전을 표현의 매개체로 사용해온 것도 텔레비전이 정보 교환을 위한 중요한 도구이며, 미술의 본질이 정보 교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녹아내리는 황금 이미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루이 비통은 누구나 다 아는 럭셔리 브랜드다. 작품 구상 전 스스로에게 ‘럭셔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황금은 부와 럭셔리의 상징이다. 가장 럭셔리한 브랜드, 루이 비통과 가장 럭셔리한 물질 황금. 이를 소재로 지금까지의 내 창작 세계와 직접 연계된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 물론 여기서 황금은 상징적 의미를 띤다. 황금의 유연한 움직임은 자유를 의미한다. 패션과 럭셔리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패션은 트렌디하고 빠르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반면 럭셔리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DNA에 스며들어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천천히 흘러내리는 황금 폭포는 이런 개념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럭셔리는 ‘자유’인가? 가장 럭셔리한 물질은 황금이다. 여유로운 것,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 정신적인 럭셔리를 말한다면 자기 자신에게 여유를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캔턴 메종 오프닝을 축하하기 위해 아시아 중견 작가들이 참석한 파티에 당신도 함께했다. 아시아 미술에 관심이 있나? 특히 좋아하는 아시아 작가나 작품이 있나? 물론!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그는 내 친구였다. 그는 현대 미술의 영상 시인이자 동양과 서양의 가치와 문화유산을 표현하는 거장 아티스트다.
루이 비통 고객이 당신의 작품과 제품을 어떻게 이해하기를 바라는가? 내 작품을 보면서 자신만의 감정을 느끼고, 자기 안에서 평화와 미적 경험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거대한 황금 폭포가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믿으며, 서서히 흘러내리는 폭포의 모습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우리 삶을 상기시키고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가방은 메종에 설치된 작품보다 훨씬 작지만 이것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잠시나마 명상에 잠길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내 바람이다.
‘럭셔리는 느리다’ 앞에 섰다. 웅장하지만 단순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우리 삶은 너무 복잡하고 빨라서 평화를 찾기란 어렵다. 설마 많은 사람이 빠르게 사는 것에 중독된 나머지 이 작품을 보며 삶의 비정상적인 속도감을 느끼기는커녕, 느리게 흐르는 황금을 향해 “빨리, 빨리!”를 외치는 것은 아닐까? 느림과 여유는 오늘날 우리 삶에서는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느림과 여유는 더욱 럭셔리하다.
옐로 골드 vs. 화이트 골드 루이 비통은 홍콩 캔턴 로드 메종 오프닝을 기념해 핸드백, 슈즈 등 6개 카테고리에서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이며, 같은 디자인을 옐로 골드와 화이트 골드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했다. 캔턴 로드 메종과 랜드마크 메종의 테마를 반영한 것. 각각 해당 테마의 메종에서만 만날 수 있다. 이외에 파브리지오 플레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특별 리미티드 에디션 백도 선보인다. 블랙 에피 소재 ‘삭 플라Sac Plat’ 백에 초슬림 TFT-LCD 스크린을 내장해 황금빛 LV 로고가 살아 움직이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백이다. 이 백은 중국인이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88개 한정 수량으로 선보이며 캔턴 로드 메종에서만 판매한다. 캔턴 로드 메종 주소 5 Canton Road, Tsimshatsui, Kowloon, Hong Kong, 전화 (852) 2736 0007 랜드마크 메종 주소 G/F, Shop 7-17, Landmark Atrium, Central, Hong Kong, 전화 (852) 8100 1182
인조 바위, 변하지 않는 초연함 - 아티스트 잔왕
루이 비통의 또 다른 홍콩 거점 랜드마크 메종. 이곳에는 황금 폭포 대신 화이트 골드 바위가 전시됐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리게 되는 빛나는 거대한 바위. 중국 현대 미술가 잔왕의 조각 작품 ‘인조 바위Artificial Rock’다. 중국인들이 초월적 정신세계의 상징으로 여기는 바위를 현대 문명의 전형인 스테인리스 스틸로 표현한 작품으로 지극히 중국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잔왕은 우리나라보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더 잘 알려진 작가다. 캔턴 로드 메종처럼 이곳도 화이트 골드 테마의 오브제를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과 함께 디스플레이했다. 계단에 설치한 독특한 플래티넘 LED 이미지는 잔왕 작품의 무게감과 독특한 조화를 이루며 화이트 골드 무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잔왕의 ‘인조 바위’가 이곳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잔왕의 생각을 물었다.
작년 11월 서울에서 개최한 당신의 개인전을 보았다. 당시 ‘인조 바위’ 시리즈를 전시했다. 이곳에 전시한 작품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인가? 그렇다. ‘인조 바위’ 시리즈 중 하나다. 화이트 골드 이미지의 바위인데, 캔턴 로드 메종에 전시한 아티스트 파브리지오 플레시의 작품과 내 작품에 공통점이 있다면 럭셔리를 상징하는 ‘골드’를 주제로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옐로 골드와 화이트 골드, 비디오 아트와 조각이라는 점, 즉 컬러와 장르 면에서 서로 상반된다. 랜드마크 메종에 설치된 화이트 골드 바위는 마치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 모습 같기도 하며, 엄청나게 큰 화이트 골드 덩어리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그레이트 차이나Great China’를 상징하며 거대함, 웅장함, 진실함, 초연함을 표현한다.
루이 비통은 매장에서의 전시나 제품 등 다방면에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한다. 패션과 예술 사이의 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패션 브랜드와 예술의 만남에 대해 나를 포함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루이 비통은 많은 럭셔리 브랜드 중 미술계와 가장 긴밀하면서도 다양한 교류를 맺어온 것으로 안다. 세월이 갈수록 패션과 예술의 영역 간 경계는 점점 모호해질 것이다. 또 패션과 예술의 협업은 지속될수록 더욱 강화될 것이다. 특별함을 추구하며 또 다른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바로 패션과 예술이 추구하는 동일한 방향이기 때문이다.
1 루이 비통 AP 사장 장 밥티스트 드뱅과 잔왕 2 랜드마크 메종 중앙에 전시한 잔왕의 작품 ‘인조 바위’
루이 비통이 랜드마크 메종의 전시에 당신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루이 비통은 새롭게 오픈한 캔턴 로드 메종에는 인터내셔널 이미지를, 랜드마크 메종에는 로컬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했다. 따라서 랜드마크 메종에는 지극히 중국적인 이미지의 작품을 원한 것 같다. 나의 인공 바위 시리즈는 중국인에게 초월적이며 이상적인 정신계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이번 전시가 이루어졌다.
인조 바위는 매우 단순하고 직설적인 듯하면서 매우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감상자를 위해 한마디 해준다면? 있는 그대로를 봐주길 원하다.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듯 보이지만 결코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바위란 지극히 중국적인 소재가 현대적 조형 언어로 태어난 것이다. 즉, 어떠한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초연함을 상징하는 존재다.
1 루이 비통 파리 샹젤리제 메종 앞 대형 모노그램 멀티 컬러 트렁크(무라카미 다카시)
루이 비통, 예술과 단단히 손을 맞잡다 루이 비통은 캔턴 로드 메종의 오픈을 기념해 아시아 아티스트들을 초대했다. 잔왕의 작품이 설치된 랜드마크 메종에서 열린 이 파티에 작년 7월 루이 비통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스토어 오프닝 당시 윈도 디스플레이를 선보인 상명대학교 김홍석 교수가 초대됐다. 루이 비통과 협업을 경험한 그가 루이 비통과 예술의 손잡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업과 현대 미술의 협업은 그 내용과 개념 면에서 나날이 진보하고 있는 듯하다. 문화권 간에, 문화의 장르 간 소통은 서로 경계를 허물고 특성을 섞는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했다. 이른바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주의localism의 충돌이다. 이런 상황은 문화의 장르 간에도 발생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장르 간 교류와 협업은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으나 그것은 형식에 대한 교류이지 내용에 대한 교류는 아니었다.
진정한 소통, 그 원리는? 패션과 대중음악, 패션과 미술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친절히 손을 잡았다. 양보하고 이해하는 대신 자신의 현재 모습을 당당히 타인에게 보여주고, 수용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거부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가장 진실한 소통 방법이라는 것을 문화 산업계에서는 자생적으로 파악했다. 현재 루이 비통과 미술의 협업은 매우 원활하게 진행 중이다. 거대 자본의 개입이라는 외형 때문에 비판받기도 하지만, 자본의 논리에 앞서 장르 간의 진정한 소통 원리에 따라 완성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현재 루이 비통에서 미술과 협업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미술품을 패션계의 특정 장소로 옮겨와 전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술품 자체를 패션과 혼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전과 뚜렷하게 달라진 점이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장르의 주체인 패션과 미술가의 직접 소통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2008년, MoMA에서 개인전을 열며 자신이 디자인한 색상과 패턴의 루이 비통 가방을 전시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 가능했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루이 비통 스토어에 작품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 개념을 실제 상품에 접목해 제품화했고, 자신의 전시에서 그 제품을 전시함으로써 ‘이것이 미술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생긴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장르 간 협업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루이 비통 가방의 외형 디자인은 분명 루이 비통 자체의 소유고, 루이 비통에 저작권이 있다. 단지 가방 표면의 패턴과 색상을 변형한 무라카미 다카시가 자신의 개인전에 그 가방 자체를 전시한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2 루이 비통 타이베이 메종 엘리베이터(마이클 린) 3 현대백화점 본점 루이 비통 스토어 윈도 디스플레이(김홍석)
단단한 구조 속 즐거운 대화 루이 비통 홍콩 랜드마크 메종의 이번 전시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홍콩이 아시아에 위치하기 때문에 루이 비통에서 아시아 현대 미술에 관심을 갖고 이번 행사에 아시아 미술가를 초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스토어 오프닝에 맞춰 전시된 중국 작가 잔왕의 빛나는 암석은 기묘하게도 지난해 루이 비통의 메탈릭 제품과 조화를 이룬다.
스위스 아티스트 실비 플러리가 루이 비통 가방을 주물로 캐스팅해 은색으로 폴리싱한 작품은 실제 루이 비통의 메탈릭 제품에 직접 영향을 주기도 했다. 루이 비통 타이베이 메종에 작품을 전시한 대만 작가 마이클 린도 이번 파티에 참석했다. 그의 중국적 패턴은 이미 가구와 건물에 적용되었고, 루이 비통 제품의 동양적 패턴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루이 비통이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디자인을 그대로 고수하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의 문화적 아우라가 탄탄하기에 미술가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즉 루이 비통이 자본을 대가로 미술가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루이 비통의 구조화된 훌륭한 미술적 환경과 디자인 덕분에 미술가가 조그마한 제스처만으로 재미난 발상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장르의 전문성과 자본이 튼튼할 때 다른 장르 혹은 다른 문화권과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다. 이것이 현재 장르 간의 소통이자 문화의 단면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협업이 얼마나 흥미롭게 진화할 것인가를 지켜보면 될 것이다. 상품을 사면서 한 번 더 재미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이러한 협업의 일부가 된 것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기대감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협업의 주체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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