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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나라 인도(India) 배낭여행기<1부>
2011년 4월
마하발리푸람의 코끼리 부조<아르쥬나의 고행>
<인도(印度)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
A. 지리적 배경
인도의 지형은 크게 북부의 히말라야 산맥, 서쪽의 아라비아 해, 동쪽의 벵골 해, 남쪽의 인도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파키스탄(북서), 중국, 네팔, 부탄(북), 방글라데시 및 미얀마(북동)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동 쪽 바다에는 스리랑카(Sri Lanka), 남서 쪽 바다에는 몰디브(Maldives) 제도(諸島)가 있다.
인도대륙은 히말라야 고원에서 서남쪽 아라비아 해로 흘러드는 인더스 강과 동남쪽의 벵골 만으로 흘러드는 갠지스 강 유역의 넓고 비옥한 지역인 대평원지대 일명 힌두스탄 평원(Hindustan Plain)이 펼쳐져 있고 이 평원의 남쪽은 동서로 누워있는 빈디아 산맥(Vindhya Range)과 사트푸라 산맥(Satpura Range)을 경계로 드넓은 데칸고원이 펼쳐지는데 이 데칸고원의 동서 양쪽은 서고츠 산맥(西 Ghats)과 동고츠 산맥(東 Ghats)이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고원지대가 끝나는 남부지방은 타밀평원(Tamil Plain)이다.
B. 역사적 배경
예전, 우리에게 천축(天竺)으로 알려진 인도는 세계 4대 문명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모헨조다로<Mohenjo-Daro> 문명)과 함께 불교(佛敎:Buddhism)와 더불어 힌두교(Hinduism), 자이나교(Jainism)의 발상지로 인도의 역사는 실로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힌두교는 인도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바라문교(婆羅門敎)에 복잡한 민간신앙이 결합하여 생긴 종교라고 하며, 자이나교는 불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라고 하는데 인도 중부의 고대도시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인근에 있는 엘로라 석굴(Ellora Cave Temple)에는 총 34개의 석굴이 있는데 그 중 5개가 8~10세기에 건축된 자이나교 석굴유적이다.
인도 펀자브(Punjab) 지역과 라자스탄 지역의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굴된 인도 인종(人種)의 기원을 보면 아리안계인 지중해 인종과 알프스 인종, 아시아계인 몽골 인종, 토착민인 드라비다 인종과 문다 인종 등 매우 다양한 인종의 집합체이며 현재 크게 나누어 인도 아리안 족 72%, 드라비다 족 25%, 몽고 족 및 기타 3% 정도라고 하니 그 문화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짐작케 한다.
종교는 힌두교 80.5%, 이슬람교 13.4%, 그리스도교 2.4% 정도이고, 불교 0.7%, 인도전통의 자이나교도는 0.5%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구는 약 14억(우리나라의 30배)으로 세계 1위, 국토면적 약 328만 ㎢(남한 면적의 33배)로 세계 7위이며, 28개 주(State)와 7개의 연합주(Uinion Territory)로 나누는데 1인당 GDP는 1.270달러 정도로 빈곤국가로 분류된다고 하겠다.
사용하는 언어는 1951년에 총 조사를 실시한 결과 방언까지 포함하여 700여 종이나 되었는데 전 인구의 45%가 사용하는 힌디어, 그 밖에 비교적 많이 사용하는 언어만도 비하르어, 벵골어, 타밀어 등 200여 가지였다고 한다. 현재는 14개의 언어를 공용어로 하고 영어를 상용어로 한다는 신기한 규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인도이다.
정치적으로는 1857년 인도 최후의 제국인 무굴제국의 멸망과 함께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는데 간디 등 독립투사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1947년 8월 15일 영국연방의 자치령으로 독립하였다가 1950년 자치령의 굴레를 벗어나 완전독립을 쟁취하지만 종교문제(힌두교와 이슬람)로 동․서 파키스탄이 떨어져 나가는데 동파키스탄은 다시 방글라데시라는 이름으로 독립한다.
1. 인도 동남부의 대도시 첸나이(Chennai)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10분 만에 첸나이의 안나(Anna)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원래의 계획은 인도대륙 남쪽 맨 끝인 카냐쿠마리(코모린 곶)에서 인도여행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선박을 이용한 입국이 허용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첸나이에서 여행을 시작할 수밖에 없어 계획하였던 스케줄이 엉키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여행 스케줄로 수정하게 된 셈이다.
인도화폐가 없어 공항에서 환전할 수밖에 없었는데 환율이 39.85루피(1달러)여서 우선 20달러만 환전했다. 나중 시내 은행에서 환전해 보니 환율이 1달러에 43.50루피였다. 절대로 공항에서 환전할 일은 아니다.
인도 남동부 벵골 만에 위치한 타밀나두주(Tamil Nadu State)는 면적이 13만 ㎢, 인구도 2008년 기준 6천 5백여 만으로 우리나라 남한보다 크다. 주도(州都)인 첸나이(Chennai:옛날이름 마드라스:Madras)는 1640년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이곳에 세인트 조지 요새를 쌓고 무역을 시작하며 도시의 형태가 갖추어 졌다고 하는데, 초기 영국 식민통치의 거점이 되었던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구 800만 명 정도로 인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라는 첸나이는 거리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낡은 차들이 거리를 메우고 매연을 내 뿜으며 경적 음을 울려대는 등 정신이 하나도 없다. 과연 스리랑카와 다른, 이것이 인도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스케줄이 바뀐 탓으로 관광할 자신이 없어 우선 시내를 둘러볼 요량으로 중심가에 있는 중앙역(Central Station)으로 갔는데 역사(驛舍) 건물이 마치 궁전처럼 멋있고, 근처의 다른 건물들도 유럽풍으로 굉장히 웅장하다. 다운타운을 기웃거리며 걷다보니 마침 길옆에 여행사(Travel Agency)가 있다. 곧장 들어가 일일투어를 알아봤더니 내가 꼭 보고 싶었던 칸치푸람과 마하발리푸람을 포함하여 12시간 투어요금이 8.8달러(380루피-9.000원 정도) 밖에 안된다. 그것도 입장료, 가이드 비용을 포함한 가격이라니 이런 횡재가 있나싶다. 칸치푸람과 마하발리푸람은 첸나이에서 다른 방향으로 각각 60km가 넘는 거리에 떨어져있다.
12명을 태운 벵갈 여행사(Bengal Travel)의 비좁은 미니 승합차는 인도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인 듯 가이드가 안내를 하는데 두 종류의 인도 말과 나를 위해서 영어로 설명을 한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휴양지인 골든 비치 리조트(Golden Beach Resort)였는데 시원한 벵골 해를 낀 멋진 곳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과 놀이시설 및 편의시설, 흰 백사장의 해수욕장, 고대 사원을 본뜬 건축물인 듯 기묘한 조각으로 가득 채워진 거대한 기둥들(列柱)의 건물(나중에 보니 칸치푸람 바이쿤타 사원의 만다파 모방)등 볼만한 것이 많다.
이곳에서 우리 팀 중 아들, 딸과 부인을 동반한 56세의 교사출신 중년남성과 친하여 두 나라의 교육제도 등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다음 들은 곳은 악어농장이었는데 수많은 파충류도 함께 사육하는 굉장히 큰 농장이었고 다음에 들른 간디 기념관(Gandhi Memorial Palace)은 인도 전통 여성의류인 사리(Saree)를 직접 짜는 실크공장과 같이 있었는데 사리는 의외로 상당히 가격이 비싸다. 점원은 나보고 사리를 사라고 졸라서 어디에다 쓰겠냐고 웃었다. 점심을 먹으라고 식당에 데리고 갔는데 인도 음식은 이름도 모르겠고 사진을 봐도 도저히 먹을 자신이 없어 계속 음료수만 먹어댔다.
딸기주스 50루피, 사탕수수즙 20루피, 귤즙 20루피, 콜라 1병 30루피.... 물만 먹고 어떻게 사나 앞일이 걱정이다.
마하발리푸람을 먼저 본 다음 칸치푸람 사원을 관광하고 첸나이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가까웠다. 칸치푸람에서 돌아오는 길은 시원한 고속도로가 뚫려 있었는데 왕복 고속도로 사이의 좁은 완충지대에는 소와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고속도로인데도 차와 오토바이, 아도택시(세발 툭툭이)도 함께 달릴뿐더러 느닷없이 사람이 뛰어 건너기도 해서 깜짝 놀랐다.
제일 걱정은 완충지대의 소와 개는 이 많은 차들을 뚫고 어떻게 들어왔을까, 어찌 나갈까....
2. 대사원 마하발리푸람(Mabalipuram)과 칸치푸람(Kanchipuram)
첸나이에서 두 시간 정도 거리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마하발리푸람은 자그마한 마을이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AD 7세기 초에 조성된 힌두사원 유적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천연 바위산을 파내어 조성한 다섯 개의 라타(Rathas-신이 타는 수레)와 바위산 외부를 다듬어 가로세로 27m×9m 크기의 바위벽에 빈틈없이 빼곡히 들어찬 조각암벽은 힌두의 이상세계를 엿보는 것 같은 상상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특히 거대한 두 마리의 코끼리 조각은 그 사실적이고 세밀한 조각에 감탄을 금할 수 없으며 또 다섯 개의 라타는 석굴인데 바위산을 파내어 석굴을 만들고 내부를 수레모양으로 꾸민 것이다. 아르쥬나의 고행(혹은 강가의 하강)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암벽조각은 힌두 신화를 모티브로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라타와 바위벽 조각을 감상한 후 뒤편 언덕을 오르면 바위산 위에는 곳곳에 사원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는데 거대한 석문(石門)과 초석(礎石) 등은 당시 사원의 위용을 짐작케 한다. 바위언덕 위쪽은 굴곡은 있지만 상당히 넓은데 곳곳마다 바위를 파내어 만든 돌계단과 건물 흔적이 있고 작은 나무그늘도 있어 사람들이 쉴 수 있다.
바위언덕을 내려오면 지금도 사람들이 꽃을 바치고 참배를 하는 작지만 오래된 고푸람(아래 작은 감실이 딸린 힌두 스타일의 탑:樓門)이 있으며 그 주변으로는 넓게 잔디밭을 조성하여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한쪽에는 흡사 설악산의 흔들바위를 닮은 둥근 공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크리슈나(Krisna)의 버터 볼(Butterball)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갖고 있다. 크리슈나는 힌두 최고 신(神)인 쉬바(Siva/Shiva)신의 일곱번 째 분신(Avatar)이라나....
마하발리푸람에서 북서쪽으로 두 시간을 달리면 칸치푸람이 있다. 인구 16여만 명의 작은 도시인 칸치푸람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당나라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紀)에도 언급되어 있는 고대 불교의 성지인데 지금은 불교사원은 남아있지 않고 수많은 고대 힌두교 사원들만 남아 있으며 힌두교 7대 성지(聖地)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8세기 중엽에 건축된 카라사나타 사원(Kalasanatha Temple)과 바이쿤타 페르말 사원(Vaikuntha Peruma Temple), 그 밖에도 무크테슈바라, 마탄게슈바라, 바라다라자와 쿠마라 코탐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힌두사원들이 있다.
특히 에캄부레스와라 사원(Ekambreswara Temple)은 거대하고 높은 성벽이 완벽히 보존되어 있고 거대한 고푸람과 정교한 조각의 만다파(Mandapa:列柱의 방)가 유명한데 만다파는 벽으로 둘러싸인 넓은 홀에 기묘한 조각의 기둥들로 채워진 것을 일컫는다. 한 때는 이 기둥의 수가 경쟁이 되어 백 개 열주의 만다파, 천 개 열주의 만다파 등이 생겼다던가...
3. 퐁디세리(Pondicherry)와 카푸리스와라(Kapleeswara) 사원
퐁디세리의 꽃 가판대 / 퐁디세리 시골 버스정류장
첸나이에서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162km 내려오면 지도에는 퐁디세리((Pondicherry)로 표기되어 있고 이곳의 대부분 사람들은 푸두체리(Puducherry)로 부르는 도시에 이르는데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이 식민지 쟁탈을 벌인 곳으로도 유명하다. 1674년 프랑스가 이 지역 통치자로부터 땅을 구입하여 프랑스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다가 17세기 말 네덜란드와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게 되고 1761년에는 결국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한다.
인도의 지명은 모두 두세 가지로 불리어져서 혼동을 주곤 하는데 퐁디세리는 프랑스식 표기와 발음, 푸두체리는 영국식 표기와 발음이다.(인도지도에는 (Puducherry)
이곳에는 16세기에 건축된 힌두사원 카푸리스와라 사원(Kapleeswara Temple)이 있는데 특히 화려한 색채와 조각으로 뒤덮인 웅장한 고푸람이 유명하다.
이곳 시장에서는 꽃을 무더기로 수북이 쌓아놓고 팔고 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보니 모두 꽃봉오리들이다. 또 한쪽에서는 꽃을 목걸이처럼 길게 엮어서 팔기도 하는데 엮어서 파는 것은 좀 비싸고 꽃을 봉투에 담아 파는 것은 싸다. 이 꽃목걸이는 여자들의 머리장식인데 대부분 땋은 머리(처녀나 부인이나 같음)의 땋은 윗부분을 조금 들고 기다랗게 엮은 꽃을 반쯤 넣어 늘어뜨리면 두 줄의 꽃 줄이 늘어지게 되는데 상당히 예뻐 보인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부인은 꽃봉투를 풀어놓고 실로 꽃봉오리를 엮는데 상당히 재빠르게 엮어 나가는 것이 신기했다. 아카시아도 있고 이름 모를 꽃도 있는데 흰색, 노란색, 황토색 등 다양하다.
한 젊은 청년이 꽃을 사기에 여자 친구 줄 꺼냐고 물었더니 어머니와 여동생 주려고 샀는데 선물하면 좋아한다고 한다. 엮은 것을 사면 야자 잎으로 싸서 봉투에 넣어준다.
4. 탄자부르(Thanjavur)와 브리하디스와라(Brihadiswara) 사원
수많은 링검(Lingam) / 링검(Lingam)과 요니(Yoni)
퐁디세리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180km(버스로 5시간) 내려오면 탄자부르(Thanjavur:일명 탄조르:Thanjore)가 된다. 신시가지인 쿤바코남(Kumbakonam)에서 신성스러운 고대도시 스리랑감(Srirangam)을 관광하려면 서쪽으로 다시 50km를 가야한단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1세기 초에 세워진 브리하디스와라(Brihadiswara) 시바사원인데 높이 63m의 화려한 고푸람과 그 위에 올려 진 아름답게 치장된 무게 80톤의 거대한 화강암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이 거대한 화강암을 올리기 위해 4km에 이르는 경사로를 만들었다고 하니 놀랍다.
이 힌두사원은 넓고 깊은 해자, 장엄한 만다파 등도 유명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수많은 링검(Lingam: 시바신의 男根) 때문이 아닐까...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시바 신의 남근(男根)은 우주의 본질이며 영원불멸을 상징한다는데 모든 생명체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다시 재탄생하는 씨앗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 링검을 바치고 있는 요니(Yoni/시바의 부인 마라데비의 생식기)는 흡사 우리나라의 맷돌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사람들은 링검에 꽃을 걸고, 요니에 기름을 부으며 강복을 비는 모습이 신기하다.
이런 링검이 한 개씩 따로 모셔져 있는 것도 있고 사원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회랑과 수십 개가 모셔져 있는 방 등 모두 수천 개는 되겠다. 새까맣고 뭉툭하고 짧은 링검, 그 밑을 바치고 있는 여성의 생식기를 연상케 하는 묘한 모양의 요니...
상당히 민망스럽기조차 한 이 조각들이 수많은 인도인들(힌두교인)의 숭배의 대상이라니 한편 우습기도 하다.
사원 밖에는 기름을 담은 작은 병과 꽃을 파는데 사람들은 이 기름과 꽃을 사서 링검과 요니에 꽃을 뿌리고 기름을 부으며..... 남녀노소, 심지어 아이들까지 합장을 하고 수없이 절을 해댄다.
다음으로는 궁전 미술관(Sarasvati Mahal)을 관람했는데 왕의 유물들을 전시한 미술관으로 그저 그랬고, 왕궁박물관(Maratta Palace Museum)은 멋진 왕궁건물과 수많은 조각상들의 전시였는데 힌두 조각상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고 여신들은 이상하게도 가슴을 크게 부각시킨 상당히 관능적인 모습이어서 재미있다.
여행을 하면서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버스 차장들은 모두 나이 지긋한 남자들인데 차비를 내면 돈을 긴 쪽으로 반을 접어 손가락 사이사이에 낀다. 또 호루라기로 ‘오라이, 스톱’ 신호를 하는 것도 색다르다.
길게 한 번 불면 오라이, 짧게 두 번 불면 스톱.
탄자부르로 갈 때 자리가 없어 운전석 뒤에 서서 휘청거리니 기사가 안돼 보였는지 본닛(Bonnet:운전석 옆 엔진 덮개) 위에 앉으라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앉았기에 덥석 앉았다가 기절할 뻔 했다. 얼마나 뜨거운지 덜렁이 두 쪽이 익는 줄 알았다. 꽥 소리를 지르고 펄쩍 뛰었더니 사람들이 배꼽을 잡는다. 날씨까지 더운데다 엉덩이가 뜨거우니 정말 견디기 어려워 신발을 벗어 깔고 앉았더니 사람들은 웃었지만 조금 낫다.
중간의 작은 마을 정류소에 이따금 2~3분씩 멈추는데 바글거리는 사람들과 매연, 쓰레기, 소떼와 널린 소똥, 개들, 거지들... 거기에다 연속적으로 사방에서 울려대는 경적소음 때문에 골치가 지끈거린다. 그러나 후다닥 내려 노천가게에서 차와 커피를 시켜 먹었는데 엽차를 끓인 물에 밀크를 듬뿍 넣고 설탕을 넣어주는 차, 커피에다 밀크와 설탕을 타서 주는 커피는 너무 달다는 느낌이었지만 먹을 만 했다. 커피나 차를 섞을 때 잘 섞이고 또 빨리 식으라고 그러는지 양 손을 번갈아 높이 올리며 주루룩 주루룩 흘리지도 않고 따르다가 작은 플라스틱 잔에 채워주는데 멋있게 보인다. 두 가지 모두 5루피(125원)로 빈 잔은 그 앞에 그냥 버리라고 하니 노점상 앞은 그냥 쓰리기통이다.
1박에 200루피(5천원) 짜리 호텔은 물이 안 나와 항의했더니 침대 두 개짜리로 옮겨 주는데 널찍해서 좋기는 했지만 여기도 물이 나오다 말다 한다.
아침에 호텔 창으로 보이는 지극히 인도다운 진풍경 하나. 호텔 바로 길 건너 엄청난 쓰레기 더미가 있는데 길 옆에서 한 노인이 물통을 들고 나와 변을 본다. 다 본 후 엉덩이를 올려 구부정한 자세로 오른손에 물통을 들고 등 뒤로 돌려 물을 흘리며 왼 손으로는 닦는다. 그 앞을 자전거를 탄 젊은 여성이 무심히 지나가고, 서너 마리의 개들이 모여들고... 지극히 인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되었다.
5. 거대한 사원도시 마두라이(Madurai) 그리고 코다이 카날(Kodaikanal)
마두라이 열대 식물원 / 코다이카날에서 만난 가야트리실라 가족
탄자부르의 지리를 잘 몰라 신도시(Kumbakonam)에서 차를 내려 곧바로 50km를 택시로 달려 구도시(Srirangam)에서 관광하고 잤는데 아침에 물어보니 이곳에서는 마두라이 행 버스가 없고 다시 신도시로 가야한다고 한다. 50km를 다시 되짚어 와서 마두라이행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어 황당했다.
탄자부르에서 158km 남서쪽(5시간)으로 내려오면 거대한 사원도시 마두라이가 있다. 오후 2시 반쯤 도착했는데 마두라이가 가까워지면서 도로변에 엄청나게 큰 채석장이 몇 군데 보이고 화강암을 네모로 반듯하게 잘라 수백 개씩 쌓아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워낙 사원들이 많고 필요로 하는 조각들도 많으니 돈벌이가 잘 되는 모양이다. 또 신기한 것은 마두라이 시 외곽에는 마치 큰 누에가 기어가는 형상의 거대한 바위산이 있는데 길이가 1km도 넘을 듯하다.
도착하자마자 우선 큰맘 먹고 에어컨이 있는 호텔에 짐을 내려놓았는데 1박에 800루피(2만 원)로 에어컨이 없는 호텔보다 꼭 두세 배로 비싸기는 했지만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 놓으니 살 것 같다. 날씨가 너무 더운데다 먹지 못하니 힘이 없어 호텔 앞에서 세 바퀴 아도택시를 전세 내어 시내관광을 했는데 한나절 시내투어가 200루피(5천 원)로 무척 싸다.
제일 먼저 간디 기념관을 갔는데 이곳이 간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많은 자료들과 함께 간디의 생활유품들, 마지막 입었던 피 묻은 겉옷, 새까만 돌로 조각한 간디의 흉상 등을 잘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다음은 시내에서 20km 가량 떨어진 산 밑에 웅장한 고푸람과 함께 굉장히 큰 힌두사원(Alagar)이 있어 보러갔는데 내부가 미로와 같이 복잡하고 넓다. 택시 운전사는 그 곳에서 다시 산 속으로 차를 몰고 가더니 수많은 참배객들로 북적이는 힌두사원(Palamodhir Solai) 앞에 내려 놓는다. 부근은 시원한 계곡으로 풍경이 멋있고 도로변으로 수많은 원숭이들이 몰려다니는 것도 볼만했다.
돌아오면서 날이 어두워졌는데 다시 거대한 하누만(Hanuman/원숭이신)상이 있는 비슈누사원(Vishunu Mandir)인데 사원 꼭대기에 엄청나게 큰 하누만 조각상이 올려 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 날 마두라이에서 북쪽으로 82km 떨어진 산속에 있는 유명한 휴양지 코다이카날(Kodaikanal)을 보러갔다. 엄청나게 높은 산언덕에 조성된 코다이카날 관광마을은 오르는 계곡이 너무나 구불거리고 울창한 숲이 계속되어 아슬아슬했는데 중간에는 멋진 폭포도 있는데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산비탈에 형성된 관광마을에 내리면 무척 시원하고 정상 부근에 제법 큰 호수도 있어 유람선이 떠다닌다.
이곳은 주정부(타밀나두)가 지정한 민속마을로 이곳 토산품인 향수(허브), 벌꿀 등을 파는 가게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마을 뒷편 정상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는 전망대인 캐년 뷰(Canyon View)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은 양편으로 기념품 가게가 빼곡한데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곳에서 철망을 통해 내려다보면 아찔한 계곡이 내려다보이는데 아슬아슬한 절벽을 뛰어다니는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사람들이 주는 음식물을 받아먹는다.
이곳에서 벵갈루루에서 홀로 관광을 온 26세의 청년 아니루드(Aniruddh), 또 삼촌가족과 함께 온 명랑한 인도아가씨 가야트리실라(Gayatrisilla)와 친해져서 사진도 찍고 이메일 주소도 주고받았다.
관광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인도의 맨 남쪽 끝인 카냐쿠마리까지는 262km) 북쪽 벵갈루루로 가는 교통편을 물어보았더니 밤 11시에 떠나는 A/C(에어컨) 버스가 있다. 날씨가 더운 탓인가 낮에는 없고 밤에만 있다고 한다. 그 버스를 서둘러 예약하고 내일로 미루었던 인도에서 제일 큰 힌두사원이라는 미낙시순다레 사원(Sri Meenakshi)으로 행했다.
엄청나게 큰 규모(6 헥타르), 거대한 수많은 고푸람, 기묘한 조각들로 채워진 1.000개의 열주(列柱:만다파)를 자랑하는 거대한 홀로 유명한 이 사원은 건물 가운데 조성된 네모난 커다란 연못, 미로 같은 수많은 방들, 휘황찬란한 색채와 다양한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천정과 바닥 등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늦은 저녁인데도 수많은 관광객들과 참배객들로 북적거리는데 마침 신을 모셔가는 엄숙한 의식도 행해진다. 힌두 신도들은 수 백 가지 종류의 신들이 모셔져있는 방들마다 계속 절을 해대며 돌고 또 돈다. 그리고 곳곳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는 반 벌거숭이 털보 사두들(Sadhu:힌두교 성자)로부터 축복을 받으려고 가는 곳마다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밤 11시, 550루피짜리 벵갈루루 행 버스에 올랐는데 의자는 푹신하고 좋은데 에어컨은 나오지 않는다. 밤이라 그다지 덥지도 않고 의자가 편하니 살 것 같다.
6. 인도 남부관광의 거점도시 벵갈루루(Bengalooru)
이제 타밀나두(Tamil Nadu) 관광을 마치고 카르나타카(Karnataka)로 들어서는데 카르나타가주는 면적 19만 ㎢, 인구 5천 6백만으로 타밀나두주보다도 더 크고 우리나라 남한보다 훨씬 크다.
카르나타카의 주도(州都)인 벵갈루루(Bengalooru 일명 방갈로르/Bangalore)는 인도 남부 데칸고원의 끝자락으로 남부관광의 거점도시라고 하는데 인구 500만 여명의 대도시이다. 타밀나두 주인 마두라이에서 북쪽으로 409km 떨어져 있으며 고속버스로 꼬박 9시간 30분 걸리는데 해발 1.000m로 지대가 높아 날씨도 한결 선선하다.
지도를 보고 혼자 찾아다니면서 관광하는 것은 여유 있고 자유스러운 반면 교통편이 불편하고 설명을 들을 수 없으며, 관광회사를 통한 투어인 경우 교통편과 설명을 들을 수 있어 편하긴 하나 수차례 토산품 가게 등을 들어가야 하고 빡빡한 일정 등으로 피곤한 점이 단점이라 하겠다. 날씨가 너무 더워 혼자 다닐 자신이 없어 여행사에 들러 관광 상품을 알아봤더니 의외로 좋은 상품이 있어 이용하기로 했다.
낮 12시에 시작하여 벵갈루루 반나절 시내관광,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 남서쪽 135km 지점(버스로 4시간)에 있는 마이소르(Mysooru, 일명 Mysore) 관광과 그곳에서 1박, 다음날 140km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버스로 5시간) 타밀나두 주로 다시 들어가 타밀나두와 인도 서부 케랄라주(Kerala) 경계의 산 속에 있는 천혜의 휴양지 우티(Ooty)를 관광하고 벵갈루루로 돌아와 호텔에서 1박 하는 총 2박 3일의 투어 경비가 입장료, 가이드 비용을 합쳐서 2.600루피(60달러-6만 5천 원)로 정말 어처구니없이 싸다. 100달러를 줬더니 1.700루피를 거슬러 준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기다리니 곧 택시가 와서 관광일정에 따라 오후 시내투어를 나가자는데 나가보니 달랑 나 혼자이다.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유럽풍의 건물들, 잘 정비된 도로, 아름드리 거목들과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하고 푸른 호수가 인상적인 도심 가운데 열대식물원(Lalbagn Botanical Garden 등)이 눈길을 끈다. 과학관(Science Museum)과 고미술관(Art Gallery)을 들른 후 공원에서 1시간 여를 여유 있게 보냈는데 굉장히 넓어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이 많았고 특히 하늘을 찌르는 열대 수목들이 볼만하다.
고미술관에서 20대의 일본 처녀와 중국 젊은이를 만났는데 이곳에서 1년째 유학하고 있다고 한다. 과학관은 볼게 별로이고, 고미술관은 그럭저럭 볼만하다.
이곳 역시 뒷골목은 여전히 지저분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데 넘치는 고물차들, 세 바퀴 아도택시,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 리어커, 달구지, 소, 돼지, 염소, 온갖 쓰레기들, 계속되는 경적, 먼지, 악취.... 거기에다 뜨거운 열기까지 더하니 숨을 못 쉬겠다. 택시 기사 녀석은 나 혼자 싣고도 토산품 매장을 두 군데나 들른다. 괘씸했지만 투어가 끝난 후 수고비 100루피(2.500원)를 줬더니 코가 땅에 닿게 절을 한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