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국문학관 대구 유치 대구의 저력을 보여줄 기회 중남부권 단체와 연대하고 기존문화산업 요소 연계땐 상호 유기적인 발전 가능
국립한국문학관 대구시대는 열리는 것인가? 대구·경북의 문학계는 물론 문화예술계와 시민단체 등 범시·도민이 힘을 합쳐 대구 유치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남부권 문화예술단체들과도 협력 및 연대를 계속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문학사를 관통해 볼 때 대구문학은 질로 보나 양으로 보나 자존감을 내세울 만한 터에 대구문학관이나 제대로 발전시키지 굳이 옥상옥의 한국문학관 유치 운운하느냐는 혹자들의 의견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한국문학의 발원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대구·경북이 일제 암흑기에는 상화, 육사, 빙허 현진건 등 항일저항문학의 산실이 되었다. 나라가 광복되던 1945년, 10월 죽순시인구락부가 태동하였고, 이듬해 4월 월간 ‘아동’, 5월 ‘죽순’, 6월엔 ‘새싹’이 창간되었다. 1948년 3월엔 달성공원에 최초로 이상화 시비가 세워졌다. 6·25전쟁 때에는 피란문인들과 힘을 합하여 전선문학을 꽃피웠고, 전국 최초 문학예술 전문교육기관인 상고예술학원을 운영하는 등 대구문학은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이는 외지인에 대한 대구인의 후한 인정과 새로움을 받아들여 더욱 새롭게 하는 융화력 덕분이었다. 근현대 한국문학의 한 획을 긋는 굵직한 사건들은 전국의 문인들과 함께하였기에 빛났다.
전국 어느 곳에서 출발하더라도 하루걸음의 접근성과 입지, 한국문학관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문화융성을 이끌 배후 창작복합문화예술공간의 확보와 대구시의 야심찬 지원으로 볼 때 대구가 한국문학관 건립의 최적지임은 분명하다.
대구의 문학, 문화예술이 한국문학관과 만났을 때의 필연적인 변화 몇 가지를 짚어본다. 한국문학관이 가장 크게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는 곳은 두류정수장 후적지이다. 모든 예술의 기초가 되는 문학자원의 집적화는 기존의 대구문화예술회관, 코오롱야외음악당, CT공연플렉스 파크를 중심으로 한 예술활동에도 큰 자극과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이웃한 출판산업지원센터는 도서관, 공적기록관, 박물관의 역할이 통합된 문학관의 라키비움(Larchiveum) 기능과 연계하여 지적산업 및 출판 콘텐츠 산업의 도약 거점이 될 것이며, 인근 대구출판산업단지도 현재의 인쇄가공 중심에서 출판콘텐츠 중심으로 자연스레 영역확대가 불가피하게 된다. 부가가치 창출면에서도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의 바람직한 트렌드 변화에 부합된다.
새로 건립되는 대구예술의전당과 창작예술인촌, 한국문학관, 대구문화예술회관 등을 벨트로 한 공연시설과 대구출판산업단지 일대가 젊은 인재들을 불러 모아 OSMU(One Source Multi Use)의 전형적인 문화산업기지이자 테마관광지로 변모될 것이다. 이는 한국의 문학예술의 생태계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 모든 것이 새로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구의 기존문화산업 요소들이 한국문학관의 출현으로 상호유기적으로 체인화되는 데 탄력을 받는 것이다. 한국문학관 역시 여기에 무임승차함으로써 조기 궤도 진입과 정착을 도모할 수 있다.
대구에는 이러한 인프라와 모여드는 인재로 한국문학제 나아가 세계문학제, 국제도서전, 국제아트페스티벌 등 실속있는 국제행사가 연중 끊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동안 공연문화예술도시를 표방하면서 대구시가 투자해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더욱 빛을 보게 되며, 이 기반 위에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투자대비 효율면에서도 극대화된 대구의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곳 문학과 예술이 국가적 차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는 점은 대구시민을 비롯한 중남부권 1천만 배후 인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수혜라 할 것이다. 이제까지 대구정신이 보여주었듯이 외부로부터의 수혈과 이를 융합하여 더욱 새롭게 변모시킴으로써 대구는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며, 이는 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융성의 전범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