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양 신부(서울대교구 10지구장 겸 공동사목 오금동본당 주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시지요. 한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서
새들이 쪼아 먹었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다가 말라죽었으며,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사이에 떨어져서
뿌리는 내렸지만 숨이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말씀하시지요. 물론 여기에서 '씨'는 하느님 말씀을,
'밭'은 우리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말씀이 풍요로운 결실을 맺기도 하고 못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의 밭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옥토는 농부의 피와 땀의 결실입니다. 끊임없이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뽑아주고 거름을 주는 등 한여름의 피땀이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어느 고고학 팀이 오래된 무덤을 발굴했는데 관 속에서 약 2000여 년 전의 꽃씨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학자들이 재미삼아
그 꽃씨를 땅에 심어보았는데 한 달이 지나자 놀랍게도 씨에서 싹이 나고 잎이 자라더니 꽃까지도 피어났다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면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다는 자연의 이치를 여실히
증명해 준 사건이었지요. 이는 또 반대로 아무리 좋은 씨라도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의 밭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어떤 본당의 신부님이 주일 저녁 미사가 끝난 후에 무작위로 신자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늘 복음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바르게 대답한 사람은 20%밖에 안 됐다는 군요. 미사가 끝나고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성당을 나가는 순간 다 잊어버리고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이지요. 더구나 미사에 안 나온 사람은 대답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입니다. 어떻습니까? 저도 오늘 저녁에 여러분들께 전화 한 번 해 볼까요?
오늘도 하느님의 말씀이 1독서와 2독서 그리고 복음과 강론을 통해 풍성하게 뿌려졌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밭이 기름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박토인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사에 참례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밭은 길바닥이요, 돌밭일 수밖에 없지요.
바로 이 자리에서 오늘 비유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끝나고 뭐하지? 왜 이리 덥나? 오늘 저녁에 비가 오려나?'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뿌려지는 말씀의 씨앗은 뿌리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에 비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한 주 동안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열매 맺는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행실이 형편없던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은 후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과거의 삶을 고쳐나가려고
애를 썼지요. 그런데 애를 쓰면 쓸수록 주변 사람들은 '당신이 그래봐야 얼마나 달라지겠는가?'하며 조롱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전에 사귀던 친구들을 만났는데 친구들은 그를 보자마자 대뜸 조롱 섞인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너 세례 받았다며? 야, 놀랍다. 그래 네가 믿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 좀 해봐라."
우물쭈물하며 마땅히 대답을 못하는 그를 친구들은 계속 괴롭혔지요.
"요즘 우리와는 어울리지도 않고 하느님만 찾더니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도 못해? 정말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증거를
대보게. 나도 좀 믿어보게."
한참 후에 남자가 말했습니다.
"나도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네. 나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술주정뱅이에다가 무직자로
거리를 떠돌면서 아내와 아이를 몹시 괴롭히면서 살아왔는데 지금은 술도 끊었고 직업도 구했다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지금은 가족들 모두 나를 좋아하고 있다네."
바로 이것이 말씀이 뿌리를 내려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삶의 모습입니다. 진정 여러분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여러분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