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낭(空囊)을 가득 채운 가을 우정
글-德田 이응철
양평서 친구가 오는 어제는 전형적인 가을날씨었다.
주기적인 건강체크가 지난 주에 있고, 오늘 결과를 읽는 날이기에 자못 궁금하다.
지난주 토요일 부리나케 와서 만수된 소양댐을 보고 느끼고 소리지른 친구, 몇번 다녀갔다는 나도 모른 보리밥집에서 그날도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떠난 친구가 귀뜸한 날이다.
실은 친구 부인이 지난달 미국을 다녀올 때도 노자도 보태주지 못해 내심 미안했다. 그러던 차에 한 달만에 돌아온 아내는 과분하게 딸이 아빠 친구들 몫도 챙겨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양제를 하나씩 선사(膳賜)하는게 아닌가! 우연히 약사에게 물어봐도 좋은 보약이라고 하루 1개씩 복용하란다. 선사 받던 날 나는 집에와서 여러가지 생각에 젖었다. 건강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진정 고마운 사람이 아닌가! 건성으로 건강하세요란 말조차도 이젠 고맙게 받아들이니 건강이야말로 최고로 중한 때임이 틀림없다.
그런 감사의 뜻을 내심 당연하다고 받기만 하는 것은 내겐 용납치 않는다. 포도주처럼 달콤하고 영원한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쌍방이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정은 풀어야 하는 동등한 관계이다. 누군가 우정은 음악과 그것을 만들어 내는 악기와의 관계라고 했다. 육감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 아닌가!
세 명의 친구-. 양평 목사, 춘천 장로 동쪽하늘, 그리고 자칭 예술지상주의자라는 나 셋은 자주 만나 우정을 확인한다. 우정은 거칠어서는 안된다. 견고하고도 침착하며 아주 부드럽고 매끈한 열이라고 몽테뉴는 말했다. 목사 친구는 40년이 지나서 내 앞에 나타났다. 먼데서 친구가 오니 이또한 기쁨이 아니던다라고 공자가 갈파했듯이 노년의 인생 3락이다. 우정은 인생의 술이다. 우정이 인생의 술인 까닭은 지기(知己)와의 만남은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생소한 한옥학교에서
아직 우리의 우정을 두보(杜甫)가 노래한 관중과 포숙아는 어떨까? 깊은 우정인 관포지교(管鮑之交)나 사기에서 말하는 문경지교(刎頸之交)로 생사를 같이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막역지우(莫逆之友)요, 중 고등학교를 다닌 홍안서생(紅顔書生)으로써 우정이 돈독하다.
이 날 나는 이 고장에서 자랑거리인 수와르를 한 상자 사서 그의 차에 실어주었다. 지난번 양평에서 친구 목사내외는 이웃의 존경과 사랑속에서 무엇이든 다 누릴 수 있다는 평소 생각은 기우였다. 그 흔한 옥수수도 몇자루 맛보지 못하고 올들어 수밀도처럼 훌훌 벗겨지며 단물이 한입 가득한 복숭아도 몇 개 맛본 게 전부란다.
노오랗게 봉지속에서 알맞게 착색된 복숭아를 보고 친구는 환호성을 지른다. 때마침 정기검진 역시 모두 양호하다니 얼마나 홀가분할까! 감사의 마음을 친구에게 전해 우정이란 공낭에 채워주었다. 동쪽하늘(東天)임을 자칭하는 친구 차에 모두 네명이 올라 이내 우리는 핸들을 구면인 북쪽 대로를 달렸다. 빛나는 여울인 화천 올미 달팽이 집-. 점심만 하는 집, 마침 점심 때라 인산인해였다. 미국에서 건너온 친구라 토속적인 우리 음식을 선호한다. 부추와 올갱이 그리고 된장으로 구수한 점심이 세포 속까지 겹겹이 저며온다. 오래 입안에서 맴도는 식품은 특히 췌장을 예방하니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분명했다.
가을은 공낭(空囊) 빈주머니를 채워준다. 계절 가을에 편승해 윤기나는 알밤을 줍고 싶고, 노란 마타리 꽃을 꺾어 서로에게 건네주고 싶다. 또 그 지방에 숨어있는 관광지를 찾아 마음을 채우고 싶다. 어제도 우린 동쪽하늘의 제의로 약간은 생경한 한옥학교를 돌아보았다. 고래등 같은 한옥(韓屋)이 한가롭게 누워 가을 햇살을 일광욕한다. 극히 외딴 곳에 숨어있다. 한적했다. 수강생들 수업이 아닌가보다. 인적이 뜸해 홍조를 띈 아기 사과곁에서 사과향을 느끼며 시큼한 맛도 보고 사진도 박는다. 돌아나 오는 산길에서 여기저기 누워 알몸을 자랑하는 알밤을 너나 할 것없이 어린아이처럼 주머니에 채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알밤은 언제 주워도 유년기의 그 맛이다. 아니 꿈에서도 알밤을 간간이 줍는 걸 보라.
어디 그뿐인가? 목사친구가 회억한 학생시절 비싼 사이다가 화제였다. 얼마나 귀한지 소풍 때나 겨우 맛보던 사이다-.모두 동감이었다. 또 나무에 오르다가 떨어진 이야기, 오음리에 부친과 자주 다녀간 이야기, 앞뒤로 나온 버스를 탄 이야기, 그 버스 생김이 앞뒤로 불끈 나와 짱구인 내 닉네임임도 거침없이 나는 폭로했다.
동쪽하늘 친구는 운전을 하면서 계속 오음리를 노래했다. 이곳이 고향이라 태어나 자라 초중학교를 졸업했다. 아니 교직에 있을 무렵 이곳에서 근무까지 해 그야말로 하늘, 땅 집, 나무 산 모두가 그의 오랜 친구요 이웃이다. 아니 주민들까지 -. 한구비 돌면 석류알처럼 쏟아내며 친구들의 집터를 확인하고 안녕을 논한다. 초등 여자계집이 귀향해 사는 집을 지날 때였다. 애마를 멈추고 바라보던 그 눈길-. 모든 회억들이 공유되고 공낭은 채워져갔다.
흔들거리며 귀로에서 나의 제안이 유별났다. 언젠가 두어번 떠다가 우렁이 토장국을 해 먹은 경험을 맛깔스럽게 전해주며 관심을 왕창 끈다. 우렁이 된장국 이야기로 채웠다. 달콤하게 버무려 집에가서 해 먹기위해 열마리의 우렁이를 주인인양 선심까지 써가며 그곳으로 향했다.
꽃중의 왕(花中之王) 연꽃-. 두 논배기에 숲을 이룬 옥골 제자네 집엔 장작더미에 야외 전시한 졸작 50여점이 지난번 연꽃축제 때 이벤트로 출품해 주인을 맞는다. 이른 봄부터 연밭엔 우렁이를 양식한다. 탐스럽고 커서 기하급수적으로 새끼를 낳아 엄청나게 번식한 우렁이, 무엇이든 잘 먹어치우는 우렁이는 얕은 연밭에서 동절기를 나기 어려워 실상은 한해살이로 족해야 한다. 주인 제자는 그의 성품답게 식사도 외면한 우리를 반가히 맞아주었다. 연밭에서 부는 바람이 싱그럽다. 연한 향기가 저며 살갗에서 맴돌고 코끝에서 아미를 한껏 펴준다. 가을 제철에 맞춰 늦게 출발한 대추는 역시 간밤에 누가 주황 물감을 칠해 놓았는지 으스댄다.
때마침 강릉서 찾아온 제자와 함께
주인의 허락을 받고 곰실대는 우렁이를 건져올리는 두 친구들-. 채운다. 어디서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을까? 우렁이 사냥 ㅎ, 호박순을 넉넉히 따 주었다. 호박이야 이제 무서리만 내리면 더 이상의 생을 살 수없으니 우렁이 된장국에 일조함이 그 또한 영광이리라. 우리는 발끈 따가운 한낮 더위를 식히기 위해 마침 한산한 집안에서 시원한 오미자차를 마시며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화기애애한 스승과 제자 그리고 스승의 친구들과의 한마당 이야기가 채워진다. 제자 두명은 이런 자리를 차원높은 눈길로 존경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서양 입맛에 길들여진 친구는 배불리 식사를 하고도 또 한잔의 커피와 부풀어 오른 빵을 먹자고 늘 그렇게 제안하고 채근한다. 빵 들어갈 자리와 밥 들어갈 자리는 따로 있다고 억지 논리를 편다. 하지만 차를 마시는 값은 자장면 한그릇 값을 홋가한다. 값보다도 커피에 길들여지지 않은 나는 그래서 늘 그의 선호에 반기를 드는 편이다. 그 바람에 캔슬이 되고 우리는 지하주차장에서 서로 안녕을 할 수 있었다. 가을 바람이 서편으로 분다. 알밤을 줍고, 학창시절 가난을 노래하며 한껏 공낭은 제법 가득 채워진 날이었다.
우두커니 앉아 세상을 호령하며 전례없는 고감도 안보리의 북한 옥죄기 뉴스를 시시각각 접한다. 아니 계속적인 달걀 파동과 엄청난 핵 수소폭탄 발사에 이어 구구절을 맞아 다시 핵을 발사할까 노심초사하는 세파에 편승하지 않았다. 하루를 마감하는 지금 우리의 우정은 얼마나 값진가! 음악 관련 악기 창단 실버팀의 콩클소식, 문화원 작사 작곡 영상물 듣기, 시화, 삼행시 소식, 유난히 건강식품이 화수분처럼 끝이없는 동천(東天)의 이야기, 방송국장을 겸임한 목사 친구, 노년에 문화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책까지 소화하는 양평 이야기들로 공낭을 채운 하루였다.
햇살마저 영글어가는 과일에 무더기로 내린 가을날-.조금은 무더운 한때, 멋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울퉁불퉁하게 색바랜 봉고차를 몰고 거침없이 봄내를 다녀가는 두 내외의 뒷모습이 아름다워 박수를 보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