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이번 학기부터 본격적으로 배움의 공동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업 자체도 배움의 공동체 형식으로 진행하고, 손우정 교수님 등을 불러 컨설팅도 받는단다.
이 쪽 어딘가에 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동참하고는 있지만 아... 이거 쉽지 않다.
이번 포스팅은 한달간의 어리버리의 결과, 회고... 정도가 되겠다.
수업 초기의 학습지.
이 학습지는 수업 초기에 사용하던 형태이다. 첫째, 개인활동과 그룹활동의 구분을 하지 않았고, 둘째, 교과서를 보며 정리할 부분에 그날 배울 내용을 실질적으로 다 적어놓았다. 가장 핵심적인 셋째, 과제 자체가 불명확하다. 왜 옳은지 설명해보자, 등의 발문은 수학과에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발문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이 학습지를 사용한 수업은 꽤나 힘들었고, 애들도 배우면서 힘들어했다.
조금 발전된 형태의 학습지. 현재는 이런 포맷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부턴 개인 활동은 검은 사각형, 소그룹활동은 흰 사각형으로 구분을 짓기 시작했다. 수업의 흐름을 한 눈에 알아보기 위함이다.
이 수업에서 내가 핵심적으로 생각한 것은 0.9999... = 1을 성립하게 하는 증명을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그 증명에서의 핵심은 적당한 수를 곱하여 순환소수 부분을 맞추어 없애준다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검은 네모는 그런 느낌을 살려주기 위해서 제공되었다. 소수 부분이 같은 애들끼리 빼주면 정수가 나온다는 활동을 시키는 문제다.
두 번째 문제는 논란거리를 좀 만들려고 의도했다. 배우거나 예습한 녀석들은 교과서의 증명을 적고, 학원에서 어설프게 배운 녀석들은 공식으로 1/9라고 적는다. 조금 민감한 녀석들은 이게 왜 말이 되냐고 따지고 든다. 잠시 애들끼리 이야기하도록 둔 후, 교과서대로 증명한 녀석에게 설명하도록 했다. 증명은 대략 다음과 같다.
x = 0.999...
10x = 9.9999...
따라서 9x = 9. 따라서 x = 1.
증명을 적어놓은 후, 질의응답을 받았는데 아이들 상호간의 질문의 질이 떨어져서 물어보았다.
"거기서 왜 10을 곱했니?"
"책에 그렇게 적혀 있던데요"
"그래? 10을 곱하면 뭐가 좋은데?"
"..."
"좀 있다가 다른 문제를 풀면서 대답을 찾아보도록 하자. 일단 넘겨놓자."
뭐 이런 수준의 대화가 오갔다.
이제 방법론은 던져 주었으니 두 번째 흰 네모를 풀 차례다.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유형별 문제를 던져놓았으니, 앞의 문제에서 소숫점 이하 자리를 맞춘다는 핵심을 파악한 녀석들은 어떤 문제건 해결이 가능할 것이고, 학원에서 어설프게 배운 녀석들은 과정을 적는데 애를 먹을 것이다.
역시 대부분은 잘 못하거나, 알고리즘적으로 접근하려고 든다. 그때 내가 나서야 한다.
"그게 왜 말이 되는데? 왜 점이 없는 부분을 빼줘야 하는데?"
학원과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설프게 배워서 얼른 풀고 놀려는 녀석들에게는 조금 거칠게 대할 필요가 있다. 수학교사가 요구하는 것이, 수학에서 요구하는 것이 그 알량한 답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한 마디 대답도 제대로 못할 때 까지 질문을 심화해서 몰아붙인다. 대답을 해낸다면, 칭찬해주는 것이고, 대답을 못한다면, 아직 배울 게 남아 있는 것이니 학습지에 집중하도록 요구한다.
문제 풀이의 시간을 충분히 준 후, 몇 녀석을 발표하도록 한다. 풀이를 통해 10, 100, 1000 등을 곱하는 이유에 대해 자꾸 질문하고, 토론을 시킨다. 전체적인 풀이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알도록 한다.
고맙게도, 어떤 녀석이 이런 풀이를 했다.
x = 1.205205205...
10x=12.052052052...
10000x=12052.052052...
따라서 9990x=12040. 따라서 x = 12040/9990...(이하 약분과정 생략)
물어본다. "맞니?"
의견이 갈라진다. 맞다고 생각하는 녀석과 틀리다고 생각하는 녀석간에 이야기가 오고간다.
이 문제를 통해 결국 10의 거듭제곱을 곱하는 의미에 대해 도출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초기에 한 수업중에선 이 수업은 꽤 성공적인 수업이다.
(마지막의 하얀 네모는 정말 완벽하게 다 풀고 난 녀석들이 심심해할까봐 하나 넣은 문제다. 별 의민 없다)
이 학습지는.. 근삿값의 의미를 좀 알기위해, 현실적인 소재를 도입하려고 했던 수업이다.
개인적으로, 수학 교과서를 보면서 공부하는 법을 익히게 하기 위해 새로운 내용을 배울 때 마다 교과서를 읽고 정리하는 시간을 준다. 모르는 내용을 질문 받을때 마다, 애들이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때마다 질문에 대답을 바로 해주기보다는 교과서를 다시 읽어보도록 일단 유도한다. 이 수업도 마찬가지로, 텍스트를 보고 우선 용어를 익힌 후에, 지진 관련 기사를 보면서 활동을 진행하려고 계획했었다. 신문 기사는 대략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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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로이터 AP 신화/뉴시스】박준형 정의진 기자 = 일본 사상 최악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강타한 지 4일째인 14일 원전이 두 번째로 폭발하고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면서 일본 전역이 혼란에 휩싸였다. 이날 현재 사망자 수는 3800명을 넘어서고 행방불명자 수는 수만 명에 이르면서 희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원전 폭발
이날 오전 11시1분께 후쿠시마(福島) 제1 원자력발전소 3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발생했다. 지난 12일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폭발한데 이어 두 번째 폭발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에다노 유키오(技野幸男) 관방장관은 "오전 11시1분께 후쿠시마 원전 3호기가 폭발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에다노 장관은 "3호기 폭발 원인도 1호기와 같은 수소 폭발로 보인다"며 "격납용기는 안전한 상태"라고 설명했다.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도쿄전력(Tepco)은 이번 폭발로 근로자 11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다행히 방사선 수치는 10.65 마이크로 시버트로 측정돼 법적인 한계 내에서 정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전력은 원전 일대 방사선 수치가 올라갔을 가능성에 대비해 직원들을 실내로 대피시켰다.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보안원은 폭발 이후 반경 약 20㎞ 이내 주민들에게 대피를 촉구했다. 원전 인근 반경 약 20㎞ 내에는 폭발 당시 615명의 주민이 병원 등 시설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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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파트가 새로 나오는 용어가 많다보니 애들이 책을 읽다가 지쳐서 정작 기사를 다룰 때에는 많이 시들해졌다는 거다. 게다가 나도 수업준비할 때 지진과 연관시켜서 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흥분해서(!) 자료만 구하고 정작 수업 구상에 대한 고민을 많이 안했다. 결국 뭘 하는지 모르겠는 수업으로 끝이 나버렸다.
어느정도 교과서 수준의 내용을 다루고, 정상범주에서의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제 감이 잡히는데, 뭔가 사회적인 요소를 도입하거나, 프로젝트를 다루어보거나 하는 수업에서는 대부분 배움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상 자체가 어렵고, 아이디어를 짜내더라도 수업 진행면에 있어서는 실행을 잘 못하겠다. 뭘 배우는 건지, 목표가 무엇인지 불분명한 수업으로 끝나기 일수다. 이건 아직 내가 교사로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일거다. 4월의 목표는 특이한 걸 시도하기 보다는 우선 실패하지 않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해야 할 것 같다.
가장 최근의 포맷이다. 텍스트와의 대화 - 공유하기 - 점프문제의 구성인데, 사실 대부분 아이들에게는 공유하는 수준의 문제가 이미 점프문제가 되는 것 같다.
텍스트와의 대화가 어떻게 보면 참 무책임한 부분인데, 난 저 부분이 가장 즐겁다. 어떤 녀석이든 저걸 해결할 때만은 교과서를 펴고, 내용을 뒤적거리면서 뭐라도 끄적거려본다. 이해가 되건, 되지 않건, 일단 교과서를 보는 방법과 모르는 내용을 교과서를 찾으면 알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부분이 되는 것 같다. 거기서 생겨나는 의문을 해결해주는게 현재는 나의 역할인데, 조금 경험이 쌓이고, 애들이 궁금해할만한 부분이 예측이 되면, 그걸 해결하는 과정을 공유문제로 집어넣을 거다. 궁금한 게 생기면, 그걸 같이 해결하는 과정이 애들에게 제시되어야 하니까.
애들은 답답해 한다. 잘 모르겠는 부분을 교사가 당장 가르쳐주면 참 좋겠고, 또 그것에 익숙한 녀석들인데, 계속 학습지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깨닫기를 요구하고 있으니까. 지적갈증을 느껴주니, 교사로서 매우 고마운 녀석들이지만... 그런 갈증을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을 해보는게 그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앞으로도 애들에게 뭘 곱게 가르쳐줄 생각은 없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하면서 느끼는건, 이놈의 시스템은 교사에게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한다는 거다. 정확하게 맥을 짚어가면서 하지 않으면 결국 뭘 배웠는지 모르겠거든. 칠건 치고, 남길건 남기면서 진행해야 하는 수업인데, 교직경력이 짧은 내가 교과서에서 다룰 것과 다루지 않을 것을 판단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또, 점프문제 등을 구성할 때, 수학적으로 중요한 것과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 아이들이 잘 다루지 못하는 것 등이 일치하지 않는 다는게 나를 상당히 혼란스럽게 한다. 수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애들이 다루기엔 조금 버겁고,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전달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이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나의 예측 범위 밖에 있기 때문에 어렵다(교직 경험 부족이 절실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우리 학교가 참 대단한건 20년이 넘은 수학교사건 15년이 넘은 과학교사건 매일매일 20시 21시까지 남아서
학습지를 만들고 교재연구를 하게 만든다는 거다. 수업에 그만한 역량을 집중시키는 교사들이 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임교사로서 여러가지로 마음이 무겁다. 내가 갈길이 더 멀기 때문에.
한 달 간의 배움의 공동체 시스템 하에서의 수업을 정리해봤는데,
솔직히 이게 지금 배움의 공동체 수업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도 판단하지 못할 수준이니까...
다만 분명한건, 뭔가 펜을 잡고 끄적이는 녀석들이 좀 더 늘었고, 내 스스로 수업을 하는게 좀더 즐거워졌다는 것.
교무실로 질문하러 오는 녀석들이 작년보다 늘었다는 것, 애들에게 화를 내지 않게 됐다는 것... 등이다.
이제, 또 한 달을 가봐야지. 힘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