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키트
정현수(동화작가)
허리가 반으로 접힌 꼬꾸라지듯 한 늙은이 24시 매점에 들어선다. 마치 구식 접는 폴더폰 모양이다. 폴더 노인은 유리문을 밀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스르륵, 자동문이다, 여전히 자동문에 익숙지 않은 폴더 노인은 열린 문으로 매점 안을 본다. 여러 가지 물건으로 진열대가 꽉 찼다. 폴더 노인은 바로 들어서지 못하고 주춤주춤 문에 기대섰다, 자동문은 닫힐 듯 열리고 또 닫힐 듯 열리면서 자꾸 반복 여닫이를 한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알바는 허리 굽은 폴더 노인을 무심히 본다. 그러고는 하던 일은 계속하는데 잠시도 손을 놓지 않고 이것저것 만지고 정리하는 행동은 일종의 습관 같다.
폴더 노인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 허적허적 오른쪽으로 돌아 4번 구석진 코너로 간다. 두 눈을 한번 휘둘러 아래위를 훑어보고 부스 앞에 선다. 폴더 노인은 숫자와 부호가 잔뜩 쓰인 키오크스에 손가락으로 숫자를 찍듯이 누른다.
매대에 정리해 둔 물건과 다르게 키오스크는 오직 ‘Ok’와‘No’가 푸른빛을 발한다. 폴더 노인은 푸르스름 광선 빛의 ‘Ok’ 물건을 끄집어낸다. 기다랗고 하얀 막대가 비닐봉지 안에 들었다. 싼 비닐봉지는 두꺼워 보였고 그 두꺼운 비닐봉지 속에 그려진 그림은 이상한 모양이다. 폴더노인은 그 물건을 성난 듯 본다. 눈알이 벌겋다. 막대 물건을 왼손으로 옮겨 잡고 다시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물건을 쓱 내밀어 계산대에 얹어놓고 알바의 얼굴을 본다.
알바는 폴더 노인이 갖다 놓은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또 폴더 노인의 얼굴을 유심히 째려본다. 폴더 노인은 눈만 껌뻑거릴 뿐 아무 말을 안 한다.
“이거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고 오시죠!”
알바는 괄괄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한다. 폴더 노인은 허리를 굽힌 채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빨리 제자리에 갖다 놓고 오시라니까요!”
폴더노인은 입을 꼼지락거리더니 작은 소리로 한마디 내뱉는다.
“그냥 계산해 주시게!”
“안된다고요, 아직 젊으신 분이 뭔 이런 걸 사겠다니.”
“내가 왜 젊어, 이 양반아, 이제 내 나이가 곧 백 살이 다 됐구먼.”
알바는 허허 기차다는 헛웃음으로 폴더 노인에 눈을 꼬라박는다.
“그만 허리 펴시고 주민증 꺼내봐요! 허리 오래 구부리면 아프기만 하지!”
알바는 폴더 노인의 구부려진 허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강하게 말한다. 그리고 혼잣소리로 뭐라도 중얼거렸지만 들리지는 않는다.
폴더 노인은 낭패라는 표정이지만 얼굴 주름은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고 접힌 허리도 펼 생각을 안 한다.
“내가 모를 줄 알고, 아직 새파랗게 젊었구먼. 감히 누굴 속이려고!”
알바는 그렇게 또박또박 말하니 폴더노인은 키오스크에서 찍어온 막대 물건을 짚더니 그만 홱 던지듯 밀어버리고는 무안한 얼굴로 뭐라고 입술로 말하지만, 얼굴만 벌겋다.
알바는 엔간하면 성을 안 내려 입술을 깨문다. 그런데 자꾸 화가 났다. 폴더 노인에게 인지 자신한테 인지 모르겠다.
“나한테 하나만 팔구려, 난 더 이상 살기 싫어이.”
‘싫어이’에 강한 어조다.
애걸을 넘어 죽을상을 짓고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알바의 손목을 덥석 잡는다. 금세라도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 알바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아무튼 안된다고요, 어서 당신 주민증 꺼내 줘봐요!”
알바와 폴더 노인의 싸움 아닌 싸움, 기 싸움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 이유는 ‘죽음 키트’를 사러 온 폴더노인의 나이 때문이다.
백 살이면 24시 마트에서도 ‘죽음 키트’를 살 수 있다. 굳이 병원에서 진단받지 않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 안 되는 물건이다. 말 그대로 이 키트는 백 살 넘는 어르신에겐 ‘선물’이라 부르는 죽음으로 향하는 물건이다.
지금은 2054년!
아주 풍요로운 생활, 의학이 발달하여 백 살을 훌쩍 넘기는 건 다반사였다. 바야흐로, 정말 인류의 오랜 소망이던 장수 시대였다. 혼자 살기 아무 지장이 없는 나라다. 하지만 혼자 살기는 힘들다. 혼자 오래 산다는 건 되레 지옥 생활임을 알고나 있는지. 노인의 고독과 외로움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만 안다. 그래서 ‘노인 선물’로 지난번 국회에서 법제적으로 통과된 건이다.
‘백 살 어르신에게 ‘죽음의 자유’를 선물로!’
‘어르신 챙기기 병원, 어르신 돌보기 센터’ 이러저러한 정부의 혜택 때문에 큰 병에 걸리지 않은 이상 어쩔 수 없이 혼자서도 살아야 했다.
“난 혼자 너무 오래 살았어, 이젠 할멈 따라가야겠어.”
폴더 노인은 하늘나라 떠난 아내보다 이십 년은 더 살았다. 생필품도 자치위원회에서 때맞춰 챙겨주어 굳이 마트에 올 일이 없지만, 오늘, 폴더 노인은 큰 결심을 하고 24시 마트를 찾았다. ‘죽음 키트’를 사려고 변장한 것인데 아르바이트 청년이 폴더 노인의 나이를 알아챈 듯했다.
“이젠 정말 가고 싶어, 가야 해!”
알바는 폴더 노인을 향해 말했다.
“나도 저 키트를 벌써 몇 번이나 만지작거렸는지 아시오?”
폴더 노인은 눈을 번쩍 떴다. 키트를 만지작거린다는 것은 나이가 제법 되었다는 말인데 얼마나 됐을까, 궁금하여 나이를 물었다.
“그런데 청년은 몇 살이오?”
알바에 사정사정하다가 이젠 포기한 상태로 ‘청년’이란 말을 쓰면서 나이를 물어본다,
“백 살 되려면 아직 멀었소, 92살이오. 그렇다면 댁은 몇 살이오, 설마?”
폴더 노인은 고개를 팍 꺾어버렸다. 87세 자신보다 알바 나이가 많다. 바른 나이를 말하면 고발당할 게 뻔하고 그만 나가 버릴까, 망설이고 있을 때다.
“댁은 말이야 아직 92세도 안 됐지? 허허 참, 이젠 굽힌 그 가짜 허리 그만 펴!”
어느새 알바는 폴더 노인에게 쨍한 목소리로 하대 말투로 바꾸어 성을 낸다.
“알았어요, 알았다고, 에라, 허리 굽혀있었더니 더 아프네, 허리 아프다고 말하면 119 주치의가 쪼르르 달려 올 거니, 되레 귀찮아, 병원 가는 게 더 힘들어.”
92세 알바는 별일 다 본다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87세 폴더 노인을 향해 입술 끝을 삐죽인다.
“집에 가서 그냥 AI 로봇하고 게임이나 하고 놀게나!”
폴더 노인은 굽힌 허리를 툭툭 털면서 허탈한 미소를 띤다. 어느새 똑바르게 허리를 펴고 선 노인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쉰다. 87세가 청년에 속하는 나라가 정말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