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클라인> 감상문
사회학과 2024130565 최우영
미스터 클라인은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 허구적인 민족적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주인공 로버트 클라인은 나치 점령 하의 파리에서 유대인의 예술품을 헐값에 사들이며 안온한 삶을 즐기지만, 이름이 같은 유대인 남성과 혼동되면서 일상이 무너진다. 급기야 클라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유대인 클라인의 삶을 쫓고, 마침내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기차에 자발적으로 몸을 싣는다.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기차에 올라타는 그의 선택은 일반적인 사람이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 영화는 정체성의 유동성과 그 형성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룬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주로 내집단과 외집단의 비교 속에서 형성된다. 내가 여성과 비교해서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연대생과 비교해서 고대생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주류와 다른 특별한 취향이 있다는 정체성을 갖는 것 모두 이러한 비교에서 비롯된다. 로버트 클라인도 파리에서 예술품 상인으로 사는 삶에 대한 확고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환경이 변하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결국 외집단으로 규정되는 순간 그가 정의하던 자아는 사라진다. 클라인은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으로 분류되고, 스스로 이를 거부하려다 점점 더 강한 외부 규정에 휘말린다. 이는 유대인과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이 단단한 실체가 아닌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허구적 개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정체성이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분에서 비롯되듯, ‘악’ 역시 이러한 경계 속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 개념을 통해, 악이 특별한 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무감각과 무사안일 속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클라인은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겪는 고통에 무관심하게 자신의 이득을 취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악을 묵인하고 가담한 행위였다. 악이 만들어지는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이러한 무사안일주의다. 아돌프 아이히만 역시 관료적 언어와 규칙 속에서 학살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것처럼, 클라인도 상업적 이익에 집중하며 주변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무시했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의 발생 원인도 이러한 요인을 배제할 수 없다.
두 번째 조건으로는 두려움에 기반을 둔 외집단의 타자화를 꼽을 수 있다. 이는 외집단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유발하며, 클라인이 유대인 신문을 받으면서 느낀 정부로부터의 두려움 역시 이러한 외집단의 타자화 과정과 연관 지을 수 있다. 대구 이슬람 사원 설립 과정에서 갈등이 벌어진 현대의 사례처럼, 막연한(혹은 근거가 있는) 두려움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 집단의 일탈과 폭력은 돌고 도는 악순환을 형성한다.
세 번째로 내집단 사이에서 인정받기 위한 동기도 악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비하하는 연극을 보며 일부러 웃고 즐기는 장면이나, 남성들끼리 있을 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농담을 주고받는 상황(호모소셜) 모두 내집단 안에서 외집단을 깎아내리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 안에서 내쳐지지 않고,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외집단을 희생시키는 행위이다.
마르틴 니묄러의 시 '그들이 처음 그들을 덮쳤을 때'가 시사하듯, 평범한 악은 구분과 혐오가 만연한 현실에서 쉽게 자라난다. 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의 경계를 넘어 타인을 존중하고 바라볼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나치 또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상은의 노래 '비밀의 화원' 가사처럼 “완벽한 사람은 없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라는 관점이야말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자세다. 로버트 클라인이 마지막에 스스로 기차에 탑승한 선택은 어쩌면 이 정체성과 타자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