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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08
S#1. 선재 집. 밤.
-선재, 계단에 걸터 앉아 손마디 뚝뚝 꺾으며 눈 앞을 쏘아본다.
-자판 치는 선재.
-책상 귀퉁이, 준형이 준 책들과 장학증서.
선재 소리 : 막귀형, 무지 오랜만이야. 혹시나 하고 들어와 봤는데, 없어서 쪽지 남겨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냥 지금 내 심정만 얘기할게. 한마디로 너무 비참해.
S#2. 플래시 백.
-영우의 비아냥. 당혹감 스치는 혜원 표정.
-혜원 차 안. 곤히 잠든 혜원의 이마에 반창고, 손등의 멍자국.
S#3. 혜원 사무실.
-책상 앞 혜원, 기운 없이 머리 빗다가 엎드리는데, 쪽지 도착. 눈물 말라붙은 얼굴.
선재 소리 : 내 여자가 이상한 사람한테 모욕을 당하고, 알 수 없는 일로, 얼굴에, 손에 상처가 막 생겨 있는데도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내가 사랑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혜원, 모로 엎드린 채 한손으로 툭툭 자판.
혜원 소리 : 여신에서 여인으로 추락했구나. 낮은 데로 임해 주셨네.
선재 소리 : 그건 모르겠고, 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땜에 더 화가 났나봐. 이런 상황인데, 지금 만나자고 하면 더 화낼까?
혜원 소리 : 나 너 좀 귀찮다. 니 맘대루 해.
S#4. 선재집.
-선재, 팔짱 끼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핸드폰 집어든다.
S#5. 혜원 사무실. 밤.
-혜원, 가방에 태블릿이며 이것저것 집어넣다가 핸드폰 다시 꺼내 본다.
선재 소리 : 저 선생님 만나야겠어요. 주말에 레슨 갈 거지만, 건데, 지금 이대로는 그때까지 못참겠어요.
-혜원, 새삼 눈물이 돈다. 널 만나 뭐라고 하겠니.
내 심중을 꿰뚫고야 말겠다는 듯, 그 여자 뭐냐고, 왜 그러냐고 묻는 애한테.
-삭제 누르고 핸드폰 다시 가방에 넣으려는데 또 문자.
선재 소리 : 아무 것도 묻지 않을게요. 그냥 옆에 있어 드릴게요.
모텔방도 안 잡을게요. 저희 집으로 오시면 되잖아요. 선생님 저희 집 좋아하시지 않나요?
-혜원, 픽 웃음.
S#6. 선재 집 현관 앞.
-준형, 숨 죽이고 서 있다.
S#7. 선재 집. 밤.
-선재, 핸드폰 집어 보고, 내려놓고, 엎드린다. 발을 달달 떨기도.
S#8. 현관 앞.
-준형, 돌아선다. 조용한 걸 보니 혼자 있는 거 맞아.
S#9. 2층 계단 굽이.
-준형, 나오고, 다미 올라온다.
-둘, 몸을 비껴 스친다.
다미 소리 : 나.
S#10. 선재 집.
-선재, 문을 확 연다.
선재 : 전화 하구 오라 그랬잖아!
다미 : (들어서며) 교수 온대?
선재 : 어어? (어딜 들어와!)
다미 : 오믄 그 때 가지 뭐.
-화장실 들어가는 다미.
선재 : (아, 미쳐. 핸드폰 본다. 답은 오지 않고)
다미 소리 : 라면 있냐?
선재 : 어, (아니지!) 없어!
다미 소리 : 좀 사올래? 너 배 안고파?
선재 : 우리 나가서 먹자!
S#11. 선재 집 앞. 밤.
-혜원의 차, 골목 들어와, 주차장으로. 후진하여 서는데,
-선재가 급히 나오고 그 뒤 다미.
-혜원, 헉, 납작 구겨지며 운전대 아래로 몸을 낮추는.
다미 : 뭘 나가...
선재 : (떨린다) 너 사주구 싶어서.
-계단 내려오는 선재와 다미. 선재는 경황없어 혜원의 차를 못봤다.
다미 : 집에서 해 먹으믄 되지.
선재 : 아, 진짜!
다미 : 깜짝야,
-선재, 다미 어깨 감아 안고 간다.
다미 : 오아 대박, (선재 허리에 팔 두른다)
-혜원, 간신히 고개 든다.
-선재와 다미의 뒷모습. 붙다시피 서로 안고서 가는.
-혜원, 저것들이!!!
S#12. 영우 오피스텔.
-준형이 술을 따라 마시고, 영우 서서 짜증낸다. 야한 외출복 차림.
영우 : 왜 이래 진짜, 나 약속 있다니까?
준형 : (힐끗) 춤추러 가냐?
영우 : 뭐가 됐든!
준형 : 나가. 혼자 마시구 취하게.
-영우, 단축 번호 누른다.
영우 : 얘, 너 뭐니? 왜 니 남편 느닷없이 나한테 찾아오게 만들어?
너나 나나 다 쇼윈도 부부지만, 아무리 그래두 이건 좀 웃기지 않어?
S#13. 선재 집 앞. 밤.
-혜원 차 안.
혜원 : (전화) 25년 우정에 그것두 못 받아 줘?!
-혜원, 전화 끊고 목을 뺀다. 골목 저쪽 기웃.
지금 준형은 안중에 없다. 다미랑 사라진 선재는 나타나지 않고.
S#14. 포장마차. 밤.
-선재와 다미, 국수 먹는다.
마냥 즐거운 다미, 고개 쳐박다시피 하고 정신없이 국수와 단무지 흡입하는 선재.
다미 : 단무지 하나 더 주세요...
-다미, 단무지 받아 선재 앞에 놓아주고 다시 먹는다.
다미 : 내가, 맘을 고쳐 먹었어... 좀 제대로 해볼까 해.
너랑 끕을 맞춰서, 일단 전문대 미용학과 목표루... 좀 천천히 먹어라.
선재 : (먹기만. 땀난다)
다미 : 나만 고졸에, 맨날 너한테 키스나 구걸하구, 그건 영 아니지.
-선재, 국물 마시고 그릇 내려 놓는다. 기둥에 걸린 두루말이 화장지 두 칸 뜯어 입 닦고,
다미 : 우리 원장두 고졸 견습부터 시작했는데, 성공한 담에 전문대 가서 사년 제루 편입했대. 지금 미용과 교수야.
정식은 아니구 무슨, 겸임인가, 그런 거... 업계에서 그 정도는 아니더라두 너랑 끝까지 갈래믄 나두 발전을 해야지.
선재 : (눈 앞을 보며) 어... (손으로는 주머니 속 핸드폰 만지작)
다미 : (웃음) 역시.
선재 : 박다미.
다미 : (단무지 베며 본다) 응?
선재 : 너, (외면하며 후)
다미 : 뭐...
선재 : 아냐.
S#15. 선재 집 앞. 밤.
-혜원,멍하니 앉아 있는데, 창문 톡톡. 화들짝 놀라 창문 조금 내린다. 50대 남자.
주민 : 여기 세우믄 안돼요. 지정 주차제라구 써 있잖아.
혜원 : 아아, 죄송합니다. 저 쪽으루 댈게요.
주민 : 댈 데 없어. 소방도로라.
혜원 : 왜 반말이세요?! (억, 내가 이런 말을!)
주민 : 어이구 미안해요, 얼른 가세요, 아줌마, 응?
혜원 : 네?!
주민 : 아, 가시라고.
혜원 : 비, 비켜줘야 가죠!!
-주민이 물러서서 저 쪽으로 나가라 손짓. 혜원, 거칠게 출발.
-혜원, 운전대 꽉 잡은 손, 파르르 떨리는 입술.
S#16. 혜원집 침실. 주말 아침.
-찻잔을 들고 소파에 오두마니 앉아 있는 혜원. 등 뒤로 커튼 틈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는데, 일부러 내다보지 않는 것 같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현관 벨소리.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내 구질스러운 입지를 다 내보였고, 바람까지 맞았는데, 기다림, 설레임, 다 웃기지’
S#17. 거실.
-선재가 들어서며 꾸벅,
미순 : 어서 와요...
S#18. 침실. 파우더 룸.
혜원 : (내려선다. 담담히) 내려 갈게요...
-잠시 후, 드레스 룸에서 머리 틀어 올리며 나오는 혜원. 옷이나 머리나, 의도적으로 강한 느낌을 주려는 것 같다.
화장까지 할 건 없겠지만,
-흐릿해진 상처에 분첩을 몇 번 눌러 가리고, 매무새 한번 살핀 뒤 나간다.
S#19. 음악실.
-선재, 피아노 앞에 서 있고, 문을 확 열리면서 혜원이 들어온다.
혜원 : 왔니?! (뾰족하다) 불타는 금요일, 재밌게 보냈어?
선재 : (똑바로 본다. 무슨 말씀이신지)
혜원 : 넌 꿈두 없니? 야망 없어? 남들이 갖지 못한 재능을, 그렇게 희희낙락 막 써버려두 되는 거야?
선재 : 제가 어쨌길래요?
혜원 : 어쨌길래?!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니가 더 잘 알지 않어? (선재의 어깨 거칠게 민다)
-선재, 그 서슬에 휘청, 건반에 손 집는다. 굉음.
혜원 : 그럴 거믄 여긴 뭐하러 와?
-선재가 바로서자 혜원, 계속 밀어대며 왈왈.
선재. 소파 쪽으로 멈칫멈칫 밀려서고,
혜원 : 그냥 너 살던대루 살지, 엉? 날씨두 좋은데, 기집애랑 놀러나 다니지? (또 밀려는데)
선재 : (혜원의 팔 잡는다) 오셨네요, 맞죠?!
혜원 : (뿌리치려) 그래, 갔다. 갈래서 간 게 아니라, 지나가다 봤다! 둘이 아주 끌어 안구 나가더라?
선재 : (혜원을 소파에 앉힌다) 그럼 됐어요. 알았어요.
혜원 : 뭐가 돼! 뭘 알어!
선재 : 오셨으니까 됐구, 질투하시는 거 알았구,
혜원 : (내심 흠칫. 나 뭐란 거야?!)
선재 : (스툴에 앉으며, 웃지 않고) 그래서 좋아요. 대박이예요.
혜원 : (내가 정신이 나갔구나)
선재 : 또 그래서, 안심하구 여쭤 볼게요.
혜원 : (이미 속은 다 들켰지만) 뭘!!!
선재 : 그 여자 도대체 뭔데 선생님 모욕하는지.
혜원 : (휙 외면) 그깟게 무슨 모욕이라구.
선재 : (본다)
혜원 : 쳐다보지 마. (챙피해)
선재 : (그러께요. 시선 돌리는)
혜원 : (외면한 채 글썽)
선재 : 저 자신이 완전 등신 같았어요. 영화 같은 데서는 남자가 그럴 때 확 뒤엎잖아요.
혜원 : 후진 영화만 봤나부다. 그러는 게 더 등신이지.
선재 : (본다) 왜요?
혜원 : 말했잖아. 세상 이치 배운다 생각하라구.
선재 : (허) 무슨 이치가 그래요?
혜원 : 퀵 배달루 돈 벌어서 컵라면 사먹구 핸드폰 요금 내구, 전깃세 내구 수돗세 내구, 그러는 대신
피아노 잘 쳐서 장학금 받는 걸루 먹구 사는 게 훨씬 낫잖어.
선재 : (얼결) 그렇죠...
혜원 : (화장지 뽑아 코끝을 닦고는) 신경 쓰지마. 넌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까,
선재 : 선생님은요?
혜원 : 그 사람들 기분 좋게 돈 쓰구, 그걸루 또 벌구, 그런 걸 두루 돕는 게 내 일이야.
선재 : (멍해진다)
혜원 : 먹이사슬, 계급, 그런 말 들어봤어?
선재 : 드, 들어는 봤죠...
혜원 : 책두 좀 읽구 그래라.
선재 : 그러게요(바보처럼 웃는데, 글썽).
혜원 : 나는 그 중간 어디쯤 되겠지. 우아한 노비.
선재 : (또 꿀꺽) 그 여자가, 젤 꼭대기예요?...
혜원 : 꼭대기는, 그 여자가 아니라 돈이다.
선재 : (그렇구나...)
혜원 : (자신에게 말하듯) 아니구나... 진짜 꼭대기는, 돈이면 다 살 수 있다고 끝도 없이 속삭이는, 마귀...
-혜원, 눈 앞을 보며 화장지를 꾹꾹 뭉쳐쥐고,
선재, 막막하고 슬프다. 무장 해제한 듯 한 혜원 모습. 내가 알 수 없는 거대한 배후. 아가리. 어둠. 절망감.
해질 녘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나, 지하철 역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인파를 보면서도 이 비슷한 걸 느끼곤 했는데...
S#20. 혜원 동네. 아침.
-준형 차 온다.
S#21. 혜원 집 음악실.
-선재, 손등으로 코끝의 눈물 닦고, 혜원, 옷자락 말았다 폈다 하다가 힐끗 본다.
혜원 : (짐짓 웃음) 너 울어?
선재 : (웃음) 아,아니요...
혜원 : 몰라두 그만 알아두 그만이야.
선재 : 그르니까요...
-둘, 외면한 채 있는 힘을 다 해 참는다. 여기서 터지면, 안되는데.
S#22. 차고.
-준형 차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는 준형. 들어가려다 혜원 차 돌아본다.
-혜원의 차 문 열어본다. 열어진다.
-준형, 운전석에 엉덩이 걸치고 앉아 대시보드며 콘솔박스 열어본다. 주유소 영수증 클립. 하나씩 살핀다.
혹시 선재를 태우고 장거리 운전 했나 싶은. 하지만 다 한결같이 ‘사직동 주유소’
-차 문 닫고 들어가는 준형.
S#23. 거실.
-현관, 선재의 신발.
-준형, 음악실로.
-문 손잡이 잡고 잠시 생각한다. 문 열고 못 볼 꼴을 볼 것인가, 그냥 올라갈 것인가.
-문 연다.
S#24. 음악실.
-준형, 예상 밖의 정적에 멈칫.
-혜원과 선재, 엉거주춤 일어선다. 둘 다 조금씩 울어서 먹먹한 표정.
준형 : 뭐해, 연습 안하구.
혜원 : 야단 좀 쳤어. 애가 도대체가 야망두 뭐두 없어. 내가 왜 이런 애 땜에 기운을 빼야 하지?
선재 : (혜원을 힐끗)
준형 : (이건 뭔 국면?)
혜원 : 교수님 앞에서 말 좀 해 보시지? 넌 도대체 뭐가 될려 그러니?
준형 : 무턱대구 잡으믄 안되지. 우리가 먼저 구체적인 목표와 스케줄을 제시하구,
혜원 : 글쎄 입이 아프도록 얘길 했는데두 못알아 듣잖아.
선재 : 잘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안이했어요. 열심히 할게요.
-준형, 나간다.
-혜원, 탈진하여 털썩 앉고, 선재, 꿀꺽 삼킨다.
혜원 : 협주곡 준비하자... 디브이디 예심에 낼 거.
선재 : 저기,
혜원 : (본다)
선재 : 모차르트가요, 어느날 갑자기, 인제부턴 귀족들한테 주문 안 받는다, 내가 쓰구 싶은 곡을 쓴다, 그러다 일찍 죽은 거라면서요.
혜원 : (픽 웃음)
선재 : 그게 힘들어서 병 나구, 빚지구,
혜원 : 쓸데 없는 생각하지 마. 그래선지, 원래 성격이 지랄 맞아서 제 풀에 그런 건지, 어떻게 아니?
부자들 돈으루 먹구 살면서두 얼마든지 저 하구 싶은 거 할 수 있어.
선재 : (삼킨다) 아니잖아요.
혜원 : (팩) 넌 그럴 수 있다니까?!
선재 : (본다. 아니잖아요)
혜원 : (부러 선재 눈을 똑바로 보면서) 내년도 부조니 콩쿨 신청 마감이 5월 31일이야. 레퍼토리 정해야겠지?
협주곡 중에서 피아노 파트 악보 외워둔 거 있니?
선재 : (북받쳐서 간신히) 슈만 협주곡,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변주곡.
혜원 : 뭘루 외웠어.
선재 : 들으면서 총보 삼십번 쯤 봤구, 피아노 파트 따루 출력해서, (꿀꺽. 시선 떨군 채 눈물 그렁)
혜원 : 엄살 피울래?
선재 : ...
혜원 : (홱 돌아서서 나간다)
선재 : (눈물 후두둑)
-선재, 삼키려 애쓰는데 잘 안된다. 닦아도 계속 눈물 난다.
S#25. 준형 서재.
-혜원, 거칠게 서가의 악보들 손끝으로 훑다가 두 권 빼내고, 씨디 꺼내고,
S#26. 거실.
-혜원이 준형의 서재에서 나온다. 악보 네 권(연주용 총보와 피아노 악보 각각 두 권씩과 씨디 여러 장 들고 혜원 서재로.
-준형이 이층에서 내려오며 힐끗. 준형 서재로.
S#27. 음악실.
-혜원, 오디오 세트 앞에 앉아 씨디 케이스 열며.
혜원 : 다 까불지 말라 그래. 음악이 갑이야.
선재 : (본다. 눈물 흔적)
-혜원, 소파에, 선재, 스툴에 앉고,
-음악 시작.
-둘, 라흐마니노프야, 파가니니야, 빨리 나를 뺏어줘, 다 부질없어지게... 그런 심정으로 듣지만, 감정이 가라앉지 앉는다.
S#28. 준형 서재.
-준형, 인터넷 검색 중. 유명 역술인들 기사, 운세 고민 상담 등, 광고 등 훑다가 전화.
준형 : 어, 나... 잘 놀았냐... 니 집에서 대충 이거저거 꺼내 먹구, 좀 전에 왔어... 어,뭐(혜원 서재 쪽 힐끗)...
이런 걸루 뭐라지는 않지...너랑 뭔 짓을 하는 것두 아닌데....됐구, 너는 누구한테 다니냐,..역술인...나 소개 좀 해 줄래?
...백선생은 안되지, 학부형인데...
-조금 후, 준형, 서성이며 전화기 귀에 대고 받기를 기다리다가.
준형 : (선다) 아, 네, 유심조 선생 댁인가요?... 네, 저, 다름이 아니라 예약을 좀 하려구 하는데요... 네, 월요일 가능할까요?
서영우 대표 소개루 알게 됐는데... 아이고, 그렇구나. 허허허, 뭐 할 수 없죠. 제가 시간 맞추겠습니다...네...
S#29. 음악실.
-변주곡 9번.
-둘, 물끄러미 눈 앞을 보며 듣는다.
-10번으로 넘어가자, 혜원, 발끝으로 조금씩 박자 맞추고, 피아노 파트 나오자, 선재의 손끝도 작게 움직인다.
-변주곡 18번을 거쳐,
-둘, 그 사이 앉은 자리가 바뀌었다. 혜원은 소파 앞 바닥에, 선재는 벽에 기대 앉아,
-피날레.
-정적.
-한참 말없는 둘. 다시금 현실의 울적함.
혜원 : (냉정을 되찾아야지) 넌 이게 왜 좋아?
선재 : 그냥, 뭔가 끝을 보여 주는 거 같아서요.
혜원 : 그럼 너두 그걸 보여주믄 돼. 부자들 돈은 그렇게 뺏는 거야.
선재 : (손 끝 만지작)
혜원 : (선다) 학교 레슨은 언제야?
선재 : (일어서며) 월수금 한시요.
혜원 : 화 목 토 오전 열 시, 총보랑, 오케스트라 반주 피아노 편곡한 거, 악보 챙겨서 회사 연습실루 와.
선재 : (본다)
혜원 : 뭐.
선재 : 제가 선생님 사랑한다구 하는 거, 다 같잖구 웃기실 거 같아요... 진짜, 너무 무섭게 사시잖아요.
혜원 : 너나 잘 해, 아는 척 하지 말구. (돌아서며) 시간 지켜라.
-혜원, 나간다. 소리나게 문 닫히고,
새삼 선재를 휘감는 혼란, 두려움, 슬픔. 나는 얼마나 작고 가난한가.
S#30. 거실.
-혜원, 입 꾹 다물고 계단 오른다.
S#31. 선재집. 밤.
-헤드폰을 쓴 선재, 원곡 들으며 악보 출력한다.
S#32. 음악실. 밤.
-혜원, 오케스트라 반주 악보 보면서 연습.
S#33. 선재 집 밤.
-선재, 피아노 파트 연주.
-사이 사이, 혜원의 반주.
S#34. 혜원 침실. 파우더 룸. 밤.
-혜원, 화장수 병 열다가 손목 찌르르. 떨어뜨린다.
준형 : 왜 그래.
혜원 : 갱년기가 오나봐.
준형 : (힐끗 나가며) 아직 이르지 않나?
혜원 : 그런가?
-약 바르는 혜원.
S#35. 아트센터 혜원 사무실. 화요일 아침.
-세진, 책상 앞에 서서 문서 몇 개 스태플러로 찍는데, 노크 소리.
세진 : 네...
-선재가 조심스레 들어서고 세진이 손에 든 것들 내려놓으며 맞아준다.
세진 : 어, 왔어요?
선재 : (꾸벅) 안녕하세요.
세진 : (소파 가리키며) 잠깐 앉아서 기다릴래요? 실장님 회의 중이시라,
선재 : 네,
-조금 후, 세진은 통화 중이고,
-소파의 선재. 반쯤 남은 주스 잔을 들고 있다. 곁에 윗도리와 가방.
-행어에 걸린 혜원의 옷과 가방.
-선재, 주스잔 만지작. 혜원을 대할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협주곡이라니, 혜원의 반주라니. 꿈만 같은 일인데.
세진 : 네, 십분 쯤 전에요...네...네...알겠습니다...(끊고 선재에게) 내려오라세요.
선재 : 아, 네, (잔 놓고 일어서서 황황히 가방을 집어든다. 가방만)
세진 : 연습실 알죠?
선재 : 네, 지하 1층.
-급히 나가는 선재.
S#36. 연습실 앞 복도.
-선재, 바삐 왔으나 문 앞으로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어떤 표정으로 혜원을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일 두루 두루 돕는 게 내 일이야’ ‘나는 그 중간 어디 쯤이겠지’ ‘우아한 노비’ ...내가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것 같다.
S#37. 연습실.
-선재가 들어서면, 혜원, 직원과 전화 중. 선재 한번 힐끗 보고는 눈길 주지 않는다.
선재, 소파에 가방을 놓고 악보 꺼낸다. 복사본 각 2부씩 네 권. 총보와 피아노 반주. 단정히 제본도 했다.
-두 대의 피아노에 악보 세워 놓는 선재.
혜원 : 피아노 위치가 이렇게 돼 있음 안되죠... 통상적인 레슨이 아니라 협주곡 연습인데... 마주 놓을 공간이 안되면 2번 방으루...
응?!...김인주 교수 제자들 대관 줬어요?...(쯧) 알았어요. 암말 하지 마...네... 수고. (끊으며 작게) 그지 같애.
선재 : 저 그거 괜찮은데요.
혜원 : (본다) 뭐?
선재 : 나란히 놓여두 괜찮다구요.
혜원 : 니 귀가 무슨 나팔 귀야?
선재 : 어제, 그거 녹음해서 옆에 놓구 들어봤는데요, 나쁘지 않았어요. 총보랑 싱크로가.
혜원 : (그랬다구?)
선재 : (본다. 네...)
혜원 : (칭찬 없이) 준비 운동 해.
선재 : (본다)
혜원 : 뭐.
선재 : 좀 괜찮아 지셨는지.
혜원 : 내가 그랬지. 너나 잘 하라구.
선재 : (좀 보다가 피아노 앞에 앉는다)
-혜원, 지켜보고, 선재, 피아노 앞에 앉아 어깨 젖히며 숨쉬기.
-혜원, 악보(혜원용)를 집어 후르륵 넘겨 보고 표지를 본다. 큼직한 인쇄체 곡명. 손글씨로 작게 ‘혜원’이라 적혀 있다.
혜원, 안 본 척, 다시 펼쳐 세워 놓는다.
혜원 : 됐어. 시작하자. (앉는다) 우선 인트로. (메트로놈 켠다) 오케스트라 있다 치구, 해봐.
선재 : (황당하다)
혜원 : 뭐 해?
선재 : 네.
-선재, 손 올리고 메트로놈 소리 듣는다. 작게 고갯짓. 두 마디 지나고, 타건 시작.
-둘 만 있는 공간에 긴 박자 한번씩 울린다. 이윽고, 선재, 멈추면,
혜원 : 장음이 더 어려워. 지금 그대로 하면 오케스트라보다 32분의 1정도 빨리 나올 거야. 반주 넣을테니까 아까 그대로 해 봐.
선재 : (네. 정자세)
-혜원, 인트로 시작. 선재, 박자 맞추다가, 연주 시작. 8,9초 가량의 긴장이 숨막히게 느껴진다.
-이윽고 둘 다 멈춘다.
혜원 : 어때, 내말 틀려?
선재 : (인정해요)
혜원 : 첫단추를 잘못 꿰면 바로 잡기 힘들어. 다시 한 번.
-둘, 인트로 다시 치고나서,
혜원 : 쫌 낫네. 변주 2번 혼자 해봐.
선재 : 네.
-선재, 자세 바로 하고, 혜원, 앉은 채 지켜본다.
-선재의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파가니니의 멜로디.
S#38. 음대 학장실.
민학장 : (통화) 아유 아니지... 개정 법안 올리기만 하믄 뭐해. 의원들 밥 먹구 하는 일이 그건데...
지난 번 회기 중에 통과 안된 게 수십 건이야. 사학법 관련된 것만...
-준형이 들어온다.
민학장 : (손을 들어보이고 다시 통화) 내 다시 전화 할게...어...(끊고) 부탁 하나 할려구.
준형 : 말씀하세요.
민학장 : 다음 주에 기독 기업인 조찬 기도회가 있어요. 쫌 커.
준형 : 아아, 얘기 들었어요...
민학장 : 찬양대랑 반주 팀 좀 맞춰봐. 학부 애들 말구 원생급으루.
준형 : 애들이 시간이 될래나 모르겠네요.
민학장 : 그래두 어떡해, 해야지.
S#39. 준형 방.
-준형, 부산하게 책상 위 치우고, 앞에 종수.
준형 : 현악 오중주, 성가대, 다음 주 월요일이라니까 이번 주 금요일까지 모아 놔라.
종수 : 이번 주 금요일이믄 너무 촉박한데요.
준형 : 뭐가 촉박이야! 밥 먹구 늘 하는 건데. 오늘 중으루 연락 돌려서 맞춰 놔.
종수 : 저, 연주료는.
준형 : 뭐?!
종수 : 저번에 조청장님 혼사 때는 밥두 안주구 차비두 안줘서요. 악기들구 올 때 갈 때 다 택시 타야 하는데
배려가 너무 없으시믄 곤란하죠. 저희 아버지두 목사님이시지만 신도들 시간 뺏는 거 자제하시거든요.
준형 : 이건 봉사야! 돈받구 하믄 그게 찬양이냐? 영광으루 알구 기꺼이 해야지! 나 지금 나가서 볼일 보구 들어갈 거니까,
어레인지 해놓구 연락해.
-준형, 나가고, 종수, 보다가 잇사이로 나직히,
종수 : 저 띠발 새끼를 내가,
-문 벌컥 열림. 준형이 들여다본다.
준형 : 나 택시 타구 가니까, 차 좀 딲아놔.
종수 : 아, 네,
S#40. 아트센터 연습실.
-함께 치는 둘. 변주 8번에서 9번으로 넘어간다.
-혜원, 갑자기 건반 쾅 치며 일어선다.
혜원 : 너 지금 손가락 운동하니?!
선재 : ...(아직 화가 나 있구나)
혜원 : 사색두 감정두 없는 기교가 무슨 소용이야?
선재 : (서툰 위로) 선생님 지금 멋있었어요.
혜원 : 뭐?
선재 : 손열음, 카푸스틴 치구 그렇게 일어서는 거 좋았는데.
혜원 : 나가서 찬 물에 세수 하구 와!
선재 : (안먹히는구나. 일어선다)
S#41. 화장실.
-선재, 손 씻고, 세수하고...
S#42. 동 일각.
-선재, 구석에 기대 서서 와이파이 접속.
S#43. 연습실.
-소파의 혜원, 태블릿으로 선재 쪽지 본다.
선재 소리 : 막귀형, 나 정말 죽을 거 같아. 계속 화를 내구 있어. 지금 협주곡 연습 하는데, 분명히 자기가 틀렸거든?
혜원 : (픽 웃음. 한 손으로 자판)
혜원 소리 : 복 터졌구나. 협주 반주두 해주구.
선재 소리 : 그건 나도 알아. 꿈만 같은 일이지. 근데 숨이 막혀. 내가 크게 잘못한 거 같애. 내가 너무 많은 얘길 하게 만든 거야.
먹이사슬, 우아한 노비, 나두 그런 말이 콱 박혀서 아파 죽겠는데, 자기 입으루 직접 한 사람은 어떻겠어.
혜원 : (외면. 글썽. 입술 잘근. 무슨 꼴이람... 다시 자판)
혜원 소리 : 화 낼 만 하네.
S#44. 일각.
혜원 소리 : 니 앞에서 아웃팅 당한 거나 마찬가지 아냐. 니가 여신이라고 믿는 내가 실은 노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다 보여 준 거잖아.
-선재, 물끄러미 보다가 한숨... 그렇지... 망설이다 문자 찍는다.
S#45. 연습실.
-자판 치는 혜원,
선재 소리 : 어떡하지?
혜원 소리 : 뭘 어떡해. 니가 진심을 다하면 전해지겠지.
선재 소리 : 아, 진짜, 그런 말 누가 못해. 심장 꺼내서 보여 줘?
S#46. 일각.
-선재, 핸드폰 쥔 채 벽에 이마를 찧는다.
혜원 소리 : 너 혹시, 그런 거 생각해봤어? 연상 여인의 처절한 콤플렉스라던 가.
-돌아서서 문자하는 선재.
S#47. 연습실.
선재 소리 : 확 업구 어디루 튀어버릴까?
-혜원, 쓴웃음.
-세진이 들여다본다.
세진 : 대표님이 찾으세요.
혜원 : (당황) 어어, (일어서며 접속 끊는다) 도시락 하나 시켜 줘. 이선재.
세진 : 아, 네, (핸드폰 꺼내는).
S#48. 일각.
-화면. 막귀님이 퇴장 하셨습니다.
-선재, 터덜터덜 간다.
S#49. 영우 사무실.
-혜원이 생수병 들고 들어온다.
소파의 영우, 서류 파일 덮어 탁자에 던지듯 놓으며 비아냥.
영우 : 이건 무슨 경우냐?
혜원 : 또 뭐...
영우 : 앉어...
혜원 : (앉는다)
영우 : 이선재 레코딩 한다며. 실황 수준으로.
혜원 : (물 한모금 마시고는) 신경 쓰지 마. 회사 일두 바쁘실텐데.
영우 : 머?
혜원 : 재단에서 매년 하는 거야.
S#50. 연습실.
-선재가 들어온다. 도시락 한 개와 생수가 놓여 있다.
선재, 혜원에게 전화.
선재 : 전데요... 네, 여기 도시락,
S#51. 영우 방.
혜원 : 니 점심이야. 먹구, 아까 지적한 대목 연습하구 있어. (끊으면)
영우 : 어이구야,.. 니가 가르쳐?
혜원 : 나두 힘들어.
영우 : 뭐가 힘들어? 풋풋한 사내애랑 밀폐된 공간에서 단 둘이... 오오, 그게 숨막혀서?
혜원 : (허허 웃지만)
영우 : (미세한 당혹감을 놓치지 않는다) 좋겠다 얘, 니 돈 한 푼 안들이구 젊은 애랑.
혜원 : 시끄러. (선다) 갈게.
영우 : (잡아 앉힌다) 어쭈.
혜원 : (다시 앉으며 영우 팔 떼내는) 심심해서 시비 거는 걸, 내가 뭐하러 더 들어주니?
영우 : 넌 지금 날 도와줘야 하잖어, 기집애야. 그런 조건으로 부대표 자리 줬는데 왜 딴짓하냐고.
혜원 : 안되겠다, 진짜 가야지. (간다)
영우 : 한마담이 언제 그렇게 주식을 사 모았니?
혜원 : (멈칫...웃으며 돌아본다) 어머, 그래?
영우 : 허허허,
혜원 : 직접 물어 봐. (돌아선다)
영우 : (서류철 던진다) 저게 증말.
혜원 : (집어서 탁자 위에 놓는다) 아님 자세히 알아보던가. 머리는 뒀다 어디 쓸래?
영우 : 나 머리 쓰는 거 함 보여줘?!
혜원 : 기대할게. (나간다)
영우 : (지그시 본다)
S#52. 역술관.
-준형, 외경심 가득한 태도로 유심조 선생에게 쪽지 내민다.
-준형과 혜원, 선재의 생년월일 적혀 있다.
-선생이 찬찬히 본다.
준형 : 저희 부부랑, 제가 가르치는 학생입니다.
선생 : 학생이믄,
준형 : 네, 저, 남학생.
선생 : 그러니까, 이렇게 셋을 같이 보겠단 말씀이죠?
준형 : 네, 실은, 저희 집사람이 동종업계 종사자라 그 친구랑 이래저래 만날 일이 많거든요.
선생 : 왜, 정분 날까봐서요?
준형 :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재주가 많은데 워낙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놈이라 어떻게든 제가 한번 잘 키워 보구 싶거든요.
저나, 집사람이랑 합이 잘 맞는지, 좀,
-선생이 뭔가 적어나가는 동안, 준형, 책상 아래로 문자 본다.
영우 소리 : 3번 연습실. 이선재랑 혜원이랑 단둘이 있는데, 너 열 안받어?
준형 : (찌푸린다)
S#53. 연습실.
-18번 함께 치는 혜원과 선재.
S#54. 역술관.
-준형, 문자. ‘할 일 없으믄 잠이나 자’ 보낸다.
선생 : 허허 참, 대단하네.
준형 : (얼른 자세를 바로한다) 네,
선생 : 이 청년이, 이게 보통이 아니예요.
준형 : 어, 어떤 쪽으루,
선생 : 교수님께는 귀인두 이런 귀인이 없단 말이지.
준형 : 어떻게요?
선생 : 민둥산에 나무고, 빈 곳간에 쌀이고, 마른 입에 여의주야.
준형 : (무슨 소리야)
선생 : (뭔가를 또 쓴다)
준형 : 저희 집사람은요?
선생 : 당신 와이프는 관이 무려 네 개, 다 벼슬이네. 남자보다는 일과 명예를 우선시 하는 타입이지. 한데 부부간에 정은 그닥,
준형 : 네, 뭐 동지애로 살아갑니다. 유별나게 좋은 건 아니지만 또 그렇다구 이혼이나 뭐 그런 거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선생 : 하면 안돼요.
준형 : 아니 그보다두, 이 친구랑,
선생 : 왜 자꾸 엮으시나.
준형 : 그게 아니라,
선생 : 부인의 성정을 믿으세요. 남편이 좋아서라기보다, 성격상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관이 네 갠데, 다 벼슬 관이예요...
남자보다 일이 늘 우선이죠. 뭣보다 이 친구, 절대 어디 보내지 마세요. 여기 이 넘치는 기운이 모든 걸 다 막아 주구,
교수님께 아주 큰 도약의 발판이 돼요. 몇 계단 껑충 뛰는 거지.
준형 :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S#55. 뷰티샵 라운지. 밤.
-다미가 조그만 파우치 백을 들고 급히 온다.
-백선생과 김인주가 얘기 중.
다미 : (백선생에게) 여기,
백선생 : 아유 고마워요. 내가 너무 자주 흘리구 다닌다 그치?
다미 : 괜찮습니다. (목례하고 돌아서는데)
김인주 : 솔직히 이선재는 강교수 제자라구 할 수두 없죠.
-다미, 멈칫.
백선생 : 맞아요. 그 와이프가 아주 끔찍이 아낀다죠?
-다미, 바닥에 티끌이라도 줍는 양 엎드려 살피며 더 듣는다.
-김인주와 백선생은 어느 새 말도 텄다. 학부형과 교수, 투자분석가와 고객. 가장 끈끈하고도 냉정한 유대.
백선생 : 이번에 아주 큰 기회를 주나봐요. 재단 지원 음악회던가?
김인주 : 그러게요. 올해는 거기 우리 애들 좀 세워 볼려구 했더니, 벌써 다 결정했다는 거야.
아주 보기 좋게 대관 연주회루 밀려났지 뭐.
백선생 : 이선재가 그렇게 잘 해요?
김인주 : 제법 하긴 하는 거 같은데, 뭐 꼭 그거 뿐이겠어?
-다미, 간다.
선재 소리 : 아니, 선생님... 교수랑은 달라... (7부)
S#56. 뷰티샵 일각. 밤.
-다미, 숨듯이 서서 통화. 장호와.
다미 : 너 정유라 언제 만나?...나 오늘 손님들이 하는 얘기 들었는데, 어째 촉이 좀 안좋게 서서... 선재 얘기 하는데
기분이 확 쏠리잖아. 기분 나쁘게... 정유라한테 좀 알아볼래?...그 와이프 어떤 사람인지...
내가 바보냐? 그걸 선재한테 물어보게?! (이미 불길한 예감)
S#57. 연습실. 밤.
-선재와 혜원, 피날레.
-사이. 혜원, 일어서서 악보 덮고, 선재는 그대로.
혜원 :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선재 : (본다)
혜원 : (악보를 선재 앞에 들어보이는) 장난 하니?
-악보 하단 ‘혜원’
선재 : 싫으세요?
혜원 : 뭐?
선재 : 웃으시라구,
혜원 : 너 이러다 까딱하믄 나한테 반말 하겠다?
선재 :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혜원 : (돌아선다) 불끄구 나가.
선재 : (선다)
혜원 : (멈칫)
선재 : 제 맘두 쪼끔만 생각해 주실래요? (담담하지만 답답함, 일말의 분노가 담겨있는)
혜원 : ...
선재 : 제가 가끔 가는 사이트가 있는데요, 거기 어떤 형이 그랬어요. 스펙 따위 필요없구, 그냥 음악 즐기면서 살라구.
혜원 : (픽 웃음. 그게 나란다)
선재 : 저는 그게 사랑이라구 생각해요. 끝까지 즐겨주는 거요. 이 곡두 그렇게 하구 싶어요. 비트 16, 32, 막 쪼개가면서
어깨 빠지게 연습하구, 변주 8번 스타카토 더럽게 맘에 안들다가 어느날 갑자기 뻥 뚫려서 기분 째지구,
그게 최고로 사랑해주는 거죠... 라흐마니노프랑 파가니니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그게 장땡이잖아요.
먹이사슬이구 노비구 뭐구.
혜원 : (먹먹하지만) 목요일에 보자. (나간다)
선재 : (속수무책일까? 물끄러미 볼 뿐)
S#58. 혜원 사무실. 밤.
-혜원이 들어온다. 잠시 서 있다. 힘들다. 이런 감정으로 연습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가방 챙겨 나가려다가 문득 돌아보면, 소파에 선재의 옷.
S#59. 거리. 밤.
-선재, 헤드폰으로 음악 들으며 걷는다. 유일한 위안.
S#60. 선재 집 식당 앞. 밤.
-골목 들어서는 선재, 헤드폰 벗어 목에 걸고,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멈칫. 아차, 옷을 또 깜박.
-선재, 전화기 꺼내들고 잠깐 망설. 이 상황에서 혜원에게 이런 일로 전화 하기 정말 싫은데... 할 수 없지. 단축 번호 누른다.
선재 : (조심스러운) 전데요...제가 또 옷을 두고 왔어요, 열쇠랑...네?!... (올려다 보고는 다시 전화. 믿기지 않는) 지금요?!!!
S#61. 선재 집 층계참.
-선재, 숨가쁘게 뛰어 올라오다가 선다. 믿을 수 없어...
S#62. 선재집 현관 앞.
-선재, 조심스레 다가선다. 낮은 불빛 비치는 문. 벅차게 따뜻하다.
숨을 좀 고르고, 자기 모습 한번 살핀 뒤, 문을 연다.
S#63. 선재 집 안.
-문이 열리고, 선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혜원의 구두. 이거 실제 상황이야. 침착해.
따뜻한 혜원의 음성 들려온다.
혜원 소리 : 내 구두 돌려 놓지 마.
-얼른 신발 벗고 올라서는 선재.
혜원 : 오늘은 좀 놀다 갈 거야.
-침대 끝, 선재의 옷 입은 혜원이 걸터 앉아 있다.
리스트를 함께 듣던 날 선재가 입었던 티셔츠와 빨랫줄에 널어뒀던 헐렁한 바지까지.
맨발에, 아직 덜 마른 듯 한 머리. 투명한 낯. 한 손에 읽던 곳 손가락 끼워 접어 든 책까지. 한없이 편해 보인다.
-행어에 선재의 윗도리(혜원 사무실에 두고 왔던)와 혜원의 외투. 가방.
-선재, 꿈만 같아서 제대로 웃어지지 않는다. 오혜원이 저기 저러고 있다.
혜원 : 들어오면서 나 너희 어머니한테, 감사합니다, 그랬어.
선재 : (잘 하셨어요...)
혜원 : (손끝으로 티셔츠 어깨 찝어 보이는) 어떠니? 여친 코스프레.
선재 : (비로소 조금 웃음) 전에 보니까 걘 저희 엄마 꺼 입던데요.
혜원 : 그럼 여친 아니구 가족이야. 내 말이 맞어. 토 달지 마.
선재 : 걸리믄 선생님이 져요.
혜원 : 도망갈 데 봐 놨어.
선재 : (활짝 웃음) 겁나 섹시해요.
혜원 : 근데 그러구 서 있어?
선재 : 나갔다 오면 양치하구 손부터 씻어야죠.
혜원 : (하하하)
선재 : (함께 웃음. 눈이 부셔요. 당신, 최고예요)
S#64. 혜원 집. 준형 서재. 밤.
준형 : (전화. 잠옷차림) 오실장 이선재, 연습 끝났나요?
S#65. 통제실.
직원 : 아까 나가셨는데요...네...
S#66. 준형 서재.
준형 : 아,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끊고 뭔가 찬찬히 짚어보는 듯)
-준형, 태블릿 집어 이어폰 연결.
-선재의 동영상(혜원 음악실).
-준형이 집중하여 보는 건 간간이 찍힌 혜원의 모습들. 확대해서 보기도 하고...
-미간 좁히며 정지 누르는 준형.
-혜원이 눈물 닦는 장면.
-준형, 한참 보다가 중얼.
준형 : 초장에 빠졌구만..
S#67. 침실. 밤.
-준형, 들어와 파우더 룸으로.
-알약병(수면 유도제) 손바닥에 던다. 두 알.
-선생 말씀 귓가에 쟁쟁.
-침대. 준형, 모로 누워 껌벅인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스르르 눈 감는.
선생 소리 : 부인의 성정을 믿으세요. 남편이 좋아서라기보다, 성격상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관이 네 갠데, 다 벼슬 관이예요...
남자보다 일이 늘 우선이죠. 뭣보다 이 친구, 절대 어디 보내지 마세요. 여기 이 넘치는 기운이 모든 걸 다 막아 주구,
교수님께 아주 큰 도약의 발판이 돼요. 몇 계단 껑충 뛰는 거지.
S#68. 선재집.
-고즈넉한데, 뜨겁다. 어두워서 더더욱.
-벽, 천장, 책상, 악보, 옷가지 등, 방 안의 모든 가난들과, 혜원의 구두, 외투, 가방이 합심하여 이들 남녀를 슬쩍 눈 감아주고 있다.
-아마도, 거친 호흡을 조심하며 성실하게 서로 만지는 중이겠지.
-이하, 오디오만. 비디오는 형용 불가.
선재 : 저, 잘, 못 할 수두 있어요...
혜원 : (나직히 웃음. 놀려먹는) 왜... 최고루 즐겨주신다며...그게 사랑이라며...
선재 : (멋쩍어) 아...진짜...그런 말 괜히 해가지구...
혜원 : 너 진짜 첨이야?
선재 : 생각해보니까, 아닌 거 같아요.
혜원 : 그걸 생각해봐야 알어?
선재 : 저번날, 리스트 듣구 나서, 안아드렸을 때... 죄송해요.
혜원 : 너 그때 눈치 챘지. 나 선수 아닌거.
선재 : 쪼끔이요...
혜원 : 내가 너보다 더 못할지두 몰라...
선재 : 그건 내가 판단해요...
혜원 : (우는 것 같다)
선재 : ...괜찮아요...
-아마도 선재가 눈물에 입맞추는 듯.
-혜원의 낮은 흐느낌.
-그래서 더 격정.
선재 : 불편하면, 말 하세요.
혜원 : 아니,
-숨가쁜 배려 끝에...
-시간 경과.
낮은 불빛. 혜원, 선재, 캔맥주 하나씩 들고 바닥에 마주 앉아 있다. (캔맥주는 방금 선재가 뛰어나가 사왔다)
혜원은 침대에 기대어 무릎을 세운. 선재는 피아노 앞에 책상 다리.
혜원 : 너 술 안먹는다며.
선재 : 누가 그래요.
혜원 : 언제 배웠어?
선재 : 고2 때. 담임이 가르쳤죠. 저희 학교는 거친 애들이 많았어요. 저 같은 애 절대 안 봐줘요.
양쪽에서 한팔 씩 잡고 입에다 소주랑 맥주랑 막 부어요. 간만에 학교 갔다가 그렇게 당하구 쓰러졌더니,
담임이 고량주 사들구 집으로 찾아왔어요. 배워두라구.
혜원 : 화끈하네.
선재 : 선생님은요...
혜원 : 나야 뭐든 여우같이 다 적절히 했지... 태어날 때부터 마흔 살이었나봐.
선재 : (본다)
혜원 : (맥주 한모금 마시고) 너 마흔이믄 나 환갑이다.
선재 : 어, 환갑. 죽이죠.
-선재, 훌쩍 일어서서 악보 한권 빼낸다. 모차르트 소나타집.
혜원이 보이도록 표지 넘긴다. 마리아 호앙 피레스 사진이 붙어 있다.
선재 : 이렇게 되는 거예요.
혜원 : (짐짓 웃음) 와우 마리아 여사... 모짜르트는 저 언니 께 교과서야?
선재 : 주로. (피아노 악보대에 얹는다)
혜원 : (피아노에 얹힌 사진 본다) 60에 표정이 저럴래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니?
선재 : (다시 앉아 맥주 집어든다) 선생님이 더 이쁠 거예요.
혜원 : 뭐, 그럴 수는 있겠지. 있는대루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가꾸믄... 근데, 얼굴은 표정이 반이야... 생각, 감수성, 그런 거.
선재 : 멋있을 거 같은데. 선생님은 머리두 섹시하시잖아요.
혜원 : 넌 그런 말 할 때 아무렇지두 않어? 막 굼실 거리지 않니?
선재 : 이상한가?
혜원 : 그짓말 같지...
선재 : 그럼 뭐가 정말 같은데요?
혜원 : 장땡이잖아요, 노비구 나발이구, 술두 안처먹구, 쌩까시나요, 그런 거.
선재 : 이건 어때요?
혜원 : 뭐.
선재 : 혜원아,
혜원 : 어쭈... (발 뻗어 선재 무릎 툭)
선재 : (피하는) 저 여자 발에 약한 거 아시면서,
혜원 : (또 툭) 여자 발?
선재 : 오혜원 발, (달려든다)
-다시 뜨거워 지는 둘. 아까와는 다르다. 침대 위의 즐거운 유희.
-시간 경과. 혜원은 침대에 누워 바라보고, 선재는 피아노 친다.
-시간 경과. 선재는 자고,
-시간 경과. 이른 아침. 욕실. 옷을 갈아 입은 혜원, 거울 앞에서 옷섶을 여민다.
-잠든 선재 보다가 돌아서는 혜원.
-신발 신는 혜원.
S#69. 선재 집 앞.
-혜원, 나오며 조심스레 통화.
혜원 : 네, 이사장님,
S#70. 선재 방.
-선재, 벌떡 일어나 내려서는데,
혜원 소리 : 네, 지금 출발합니다...
-선재, 슬프고 두려운 각성. 내가 사랑한다고 저 여인의 인생이 바뀔까?...
8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