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의 몰래 들으며 독학… 세계적 건축 거장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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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도 다다오는 건축을 독학하여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어요. /블룸버그
여러분, '안도 다다오'라는 일본 건축가를 아나요? 안도 다다오는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해 세계적 거장의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대학에도 가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을까요? 안도 다다오는 1941년 일본 오사카의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헤어져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지요.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고, 어릴 때부터 공부를 게을리한 탓에 안도 다다오는 대학에 갈 수 없었습니다. 잠시 프로 권투 선수가 되려고도 했지만, 그마저도 그만두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보았지요. 그러다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건축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건축가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어요. 안도 다다오는 공사장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끼니를 거르고 잠을 줄여가며 책을 읽었다고 해요. 헌책방에서 산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집에 나오는 도면을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했지요. 대학에서 건축학과 강의를 몰래 듣기도 했어요. 혼자서 어렵게 건축을 공부하던 안도 다다오는 건축 관련 책이나 잡지에서 봤던 공간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본 일주를 떠나지요.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자연이 하나를 이루는 풍경을 본 그는 건축에 더욱 매력을 느꼈습니다. 2년 뒤엔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털어 유럽 여행을 떠나요. 세계의 건축물을 직접 보고야 말겠다는 결심 때문이지요. 책으로 익힌 지식을 직접 보며 몸으로 체험한 7개월간의 유럽 여행은 그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런 공부 덕분에 그만의 개성과 철학도 생겨났지요. 안도 다다오가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열고 처음 맡은 일은 아주 좁은 개인 주택을 개조하는 작업이었어요. 안도 다다오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집을 완성했지요.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차가운 편견을 맛봐야 했습니다. 그의 건축물을 본 사람들이 비난을 쏟아냈기 때문이에요. 집 한가운데에 지붕이 없어서 비가 내리면 집 안에서도 우산을 써야 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놀랐거든요. 사람들은 '건축의 기초도 모른다'며 그를 비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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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오사카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작품‘빛의 교회’예요. 자연의 빛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모습이 인상적이지요.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 제공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주인 부부는 이 집을 무척 좋아했어요. 지붕 없는 뜰을 통해 자연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집주인 부부는 집 안에 앉아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어요. 결국 안도 다다오는 이 건축물을 통해 일본 건축학회상을 받고 차츰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 후에도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쌓아가며 세계적인 건축가로 인정받았지요. 그가 비난과 시련 앞에 굴복했다면 지금의 안도 다다오는 없었을 거예요. 꿈을 포기하지 않은 끈기와 집념이 오늘날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만들었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고향, 항구도시 오사카]안도 다다오는 일본 제일의 상업도시이자 시내 각지로 물이 흐르는 항구도시인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오사카가 상업도시가 된 데에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역할이 컸어요. 당시 교토로 집중되었던 경제력을 자신의 터전인 오사카로 가져오기로 마음먹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의 상인을 모두 오사카로 불러들였습니다. 항구가 발달한 지리적 조건 덕분에 상인들은 오사카에서 일본 전역의 시장을 좌지우지했지요. 에도 시대(1603~ 1867년)에도 일본의 경제 중심지로서 우리나라, 중국과의 무역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안도 다다오는 어린 시절 오사카의 요도 강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는 훗날 그의 건축에도 영향을 미쳐 ‘타임즈’와 ‘물의 교회’ 등 사람들이 물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게 한 건축물을 많이 만들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