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다 보니 광복절과 관련된 행사를 하는데 다른 것 보다 8월의 호국인물에 눈에 띄는 인물이 눈에 들어 왔다.
호국인물은 안병하 경무관으로 80년 당시 전남도경국장으로 지금으로 말한다면 전남도경찰청장으로 광주와 전남의 치안을 관리하던 책임자였는데 당시 무력으로 5.18을 진압하지 않아 신군부에 의해 고문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88년 고인이 되었다.
그 후 광주 청문회가 열렸으나 고인의 사망일자가 80년이 아니란 이유로 무시되었다가 2003년 광주시민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한 공로로 광주민주화 유공자 증서가 수여되고 충주에 있던 유해는 2005년 서울현충원으로 안장되었다. 그리고 2006년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었으며 경찰교육원에는 안병하 홀 기념강당이 있다고 한다.
이분이 무력진압을 거부한 건 4.19당시 경찰의 발포로 인한 역사적 과오를 인식한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분의 이력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군인이며 경찰이었으나 말년은 심리적 고통과 병마와의 싸움으로 불우했었다.
1928년 강원도 양양에서 출생했고 육사8기를 졸업후 동란시 그 유명한 춘천전투에서 6사단 16포병대대에서 근무했으며 옥산포에서 격전을 치루며 동락전투와 초산전투에서 활약했다.
동란 이후 중령으로 예편한후 1961년 경찰 총경시험에 응시 합격 주요 경찰서장을 역임했고 1968년 간첩선에서 피신한 무장공비를 소탕했다.
그 후 강원도 경찰국장, 경기도 경찰 국장을 거쳐 1979년 전남경찰국장에 부임해 임무를 수행하던 중 5.18을 겪었다.
군과 경찰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을 후배격인 신군부 군인들이 자신들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끌고가 고문을 한 사건은 고인의 입장에선 참기 어려웠던 모욕이었다.
세월이 바뀌어 호국인물로 선정된 것이 고인이나 가족들에게 명예회복이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자신의 임무를 다한 분에 대한 과거의 태도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