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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의 추억
최근에 코스모스가 7월에 벌써 만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적지 않는 충격을 받았다. 대구 신천강가에 조깅하러 갔다가 목격한 사실이다. 희숙이네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인데 내가 주로 밤에 조깅을 나가서 그런지 아직 한 번도 그녀와 마주친 적은 없다. 다행인지 운이 없는 건지? 하여간 8월 중순도 안 됐는데 신천 강가에는 코스모스가 하직하고 있었다.
기후 변화 때문인지 씨가 다른 건 지 아직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한여름의 코스모스가 왜 그리 낯설고 어색하던지.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만개한 코스모스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 않는가. 최소한 난 코스모스를 땀 흘리며 운동하는 길에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호젓한 가을 들길이나 산사의 뜨락에 핀 그런 코스모스를 보고 싶었다. 예전의 어느 시인은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라며 코스모스의 고적함을 애처로워했다. 그러니 8월에 지는 코스모스를 보고 나는 거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 시린 가을 하늘은 결코 아니었다.
코스모스, 내게 코스모스란 거의 가을과 동의어였다. 그것은 무엇보다 유년시절의 추억에 기인한다. 유년시절이란 물론 소보의 시절을 말한다. 책 보따리 등에 짊어지고 걸어 다니던 국민학교 시절 (봉의), 2학기의 시작은 늘 코스모스와 함께였다. 학교로 이어지는 신작로 양 쪽에는 들풀 위로 무심히 코스모스가 자라나고 있었다. 하늘이 파랗게 높아가고 햇살의 날이 무디어져 가는 9월이면 코스모스는 연분홍색으로 단장했다. 그게 그리 화려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가냘프고 긴 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시인은 사슴을 보고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고 했지만 잎도 없이 가늘고 긴 코스모스 목 줄기를 보면 늘 애처롭다.
서양 전설에 의하면 코스모스는 하나님이 만든 최초의 꽃이다. cosmos가 '우주'를 뜻하고 '조화'를 의미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러나 이 최초의 꽃은 외로운 나머지 하늘로 하늘로 목을 빼고 주인을 그리다가 목이 저리도 길어져버렸다. 자고로 목이 긴 여인들이 슬퍼 보이는 것은 그리움과 관련이 있다. 그리 권장할 여인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자연 속에 묻혀 사는 시골아이들에게 들꽃 하나가 무슨 대수이겠는가. 우리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는 시월이면 가장 큰 꽃을 골라 손가락으로 팅겨 꽃잎을 떼 내는 장난을 했다. 8이라는 숫자는 하나의 벽이었다.
또 다리 (봉황교)를 지날 때면 코스모스를 다리 아래로 떨어뜨려 누구의 것이 더 오래 공중에 떠 있는지 내기를 하곤 했다. 여덟 꽃잎으로 몸을 가누며 물 위로 떨어진 코스모스는 강물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갔다. 그게 지겨워진 어떤 아이는 대담하게도 다리 나간으로 올라가 걷기도 했다 (달천의 어떤 애였는데). 아직도 그 다리는 남아 있지만 더 큰 다리로 대체되어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새 다리든 헌 다리든 이제 그 다리 건너 학교에 가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 가을에 코스모스 따 다리 아래로 날리는 아이는 더욱 없다. 봉의국민학교는 오래 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파리의 미라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시 하나를 떠올리곤 하는 데 나는 봉황교를 지날 때면 그 시를 떠 올린다.
봉황교 아래 강물이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홀로 남는다.
손에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한 강물이 지친 눈빛으로 흘러간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홀로 남는다.
사랑은 흘러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간다 인생은 얼마나 지루하고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홀로 남는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봉황교 아래 강물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홀로 남는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좀 개작했음)
그렇게 가을을 따라 왔던 코스모스는 가을보다 조금 먼저 하늘로 갔다. 그의 생명력은 그의 그리움보다 강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우리 중에 누가 코스모스의 낙화를 의식하거나 슬퍼했겠나. 씨 뿌리고 가꾸지 않아도 가을이면 으레 찾아오는 들 꽃 하나에 마음 둘 시골 아이는 없다. 아니, 그래도 언젠가부터 내게는 코스모스가 보통 꽃보다는 조금 특별한 꽃이 되어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해 왔다. 김청홍(?)이라 했던 것 같은데 정확한지 모르겠다. 그 여선생님의 집이 알령이었다. 대체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지만 한동안 걸어 다닌 적도 있었다. 코가 좀 컸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선생님과 손잡고 같이 하교를 한 적도 몇 번 있다. 그 감격이 오랫동안 남아 꿈속에서 재현되기도 했다.
그때 그 선생님이 길가의 코스모스를 꺾어 모으던 모습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는, 하찮은 들꽃을 뭐 때문에 꺾어 갈까 속으로 의아해 했다. 그러나 어느 날 홀로 귀가하던 선생님에게 연곡 (우리마을)의 어떤 청년이 작업을 거는 바람에 걸어 다니는 일은 없어졌다. 그 후 나는 코스모스를 보면 그 선생님 생각이 났다. 내가 쳐다 본 그 선생님의 목도 좀 길었던 것 같다.
9월 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여전히 어딘가에는 쪽빛 가을 하늘 아래 피는 코스모스가 있겠지. 이번 가을엔 코스모스 꽃잎 따며 소주잔 헤아리는 번개모임 한 번 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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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청수 맑은 물에 잔 씻어 부어놓고 코스모스 가지 꺾어 수 놓고 마시리라 > 대구 번개 한번 하시지요. 하늘이 열리는 달 9월에...
모두들 벌써 가을로 가 있구먼. 소초카페지기도 대문을 가을 단장했고....여기 잔잔한 글로 가을 준비를 하고 있는 멋진 친구도 있고... 가을하면 코스모스...운동회...이런 말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네. 코스모스에 대한 흔들리는 기억들이 누구나 있겠지만 고3때 느즈막히 하교하는길 옆에 코스모스가 터널을 이룬곳이 있었지. 달빛이 흰색 코스모스 꽃잎에 떨어지면 그 모습이 서늘했던 기억이 난다.
"코스모스에 대한 흔들리는 기억"이란 어떤 여인을 두고 한 비유같은데 그녀가 그녀인가?
후학을 가르치는 입이 참!!! 지금 맨정신으로 하는말인가?
후학이랄 것도 없지만 그 놈이나 그 년이나 그리 나쁜 말은 아닌 걸로 아는데. 대체로 편견은 말에 대한 편견이 가장 심각하다고 하두만.
편견은 아니고 이왕이면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봐라 훨씬 매끄럽잖아
코스모스 꽃에 향수를 달래는 갱구님의 문학적 접근에 심심한 존경과 감동을 함께 함니다 우리네들의 유년 시절에는 비 포장 신작로 양길엔 가을을 상징하는 코스모스가 만발하여 가느다라게 높이 가을 바람에 아름다운 율동으로 감미로운 감상을 만들어 가든 코스모스 꽃의 향수가 아닐까요? 예전에는 가을에 피는 것으로 알고있었으나,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 듯 초 여름부터 코스모스가 피어나는 것을 볼 수있던데요....... 그래도 코스모스는 가을에 피는 것이 운치가 있고 정답이라고 해야겠지요......
역시 식물과 함께하는 사람이라 코스모스에 대한 감성도 사실적이고. 그런데 요즘도 소보 신작로에 코스모스가 있는가?
배반하는게 어디 코스모스뿐이랴!!!! 어릴적 시골에 살때는 계절따라 변하는 자연에 고마운 느낌 보다는 당연하다 생각했을테고 이제는 꽃한송이 피고 지는데도 의미를 부여하는 나이가 되었다 생각하니 새삼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래도 저 위에 모딜리아니 그림 속 여인 처럼 목이 좀 길~어 봤으면 하는게 여자들의 바램 아닐까? 슬퍼 보여도 좋으니까.....
글쎄, 난 왜 긴 목을 선호하는 지 모르겠어. 힘도 없어 보이고, 늙으면 주름도 더 많아 보이고, 겨울엔 덮는데 천도 많이 들고. 여자들은 왜 그리 긴 걸 좋아하는지?
태국 치앙마이 카렌족을 보면 인간 관광상품으로 어릴때 부터 목이 길어 지라고 쇠사슬 같은걸 끼워 놓는것을 볼수 있는데 여자들 자의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순전히 남자를 위해서 인거 같어 목이 길어야 미인 이라는 편견 같은것도 작용을 하는것 같고
혹시 경규의 문학적인 감각이 위에 언급한 김청홍선생님이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물론 감각이야 어느정도 타고 나지만...내 담임은 아니었지만 서경에서도 근무를 하셨거든 그 당시 시골에서는 읽어 볼수 없었던 많은 동화나 동시에 관해서 굉장히 세심하게 설명해 주시고 그분도 아마 문학을 참 사랑 하셨던 분인걸로 기억이 되어서
문학적 감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잖아. 특히 시골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고. 그렇지만 내가 글이란 걸 좀 써 본 것은 뒤 늦게 (20대 중반)간 군대에서의 일인 바, 군 생활의 고난과 외로움에 편지를 많이 쓰게 되면서이지. 물론 그런 걸 문학이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문학을 공부로 해 본 것은 20대 말의 일로 어떤 문학자를 만나면서 객기를 좀 부려 본 것 뿐. 글쓰기에 취미를 들인 것 오히려 직장에서 (독일) 보고서를 쓰면서 생긴 것. 하여 내 글은 정통성도 없고 제대로 트레이닝한 것도 아닌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시작된 것. 그러니까 김청홍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문학적 감성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 않나 판단 됨.
지구가 늙어가는 탓일까...모든게 제 자리리에 있지않은것 투성이다. 비단 그것이 기후든 자연이든 사람에게 까지도... 푸른 하늘과 코스모스는 가을의 대명사이다. 하나 를 더 보탠다면 이슬을 들 수 있겠지만..때 이른 출현에 놀란것은 우리보다 그 들이 아닐까 싶네. 성급히 나온 걸음 들볶는 뙤약빛에 짓이겨 지는 코스모스의 한들거리는 실루엣은 차라리 몸부림으로 여겨져 안타깝기 그지없다. 꽃이나 과일이나 이젠 계절의 한계를 벗어나 향 이나 맛 마져 제 값을 내지못하는 변종의 시대의 산물들이다. 사람도 예같지않고 세상의 모든 이치도 그에 상응하는 대치로 엇박자로 흐르고있어 코스모스
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 것을 감상하기보다 측은지심이 앞선다..................신천로 산책길에서 코스모스를 만나거든 한마디 해주지..."그래..니들이 수고가 많다"라고.....^^
"그래 니들이 수고가 많다" 라는 말을 해주러 오늘 저녁에는 신천으로 발길을 돌려야겠네..우리집은 희망교가까우니 한참내려가야돼긴하지만 아마 칠성시장에서 경대교 사이 팔달교방향 이라고 여겨지는데 코스모스가 만발한 신천의위치가..
휘자, 정확히 봤네. 칠성시장에서 신천교 까지 약 1.5km 사이에 코스모스가 가장 많아. 강아지풀도 많고. 그 사이에 운동 시설도 잘 해 놓았는데 요즘 아줌마들이 거의 점령하고 있두만. 내 조깅 코스가 대체로 상동교까지 올라가니까 희망교도 낯선 다리는 아니네.
사랑중의 으뜸은 측은지심이라 했던지? 호요이님 따스한 마음 아름다워요!
이 사진엔 갱구같네...하나도 안 빈했네...ㅋㅋ
소중카페 조회수 올리는데는 갱구만한 인물이 없다
늙은 모습 안 보이게 트릭 쓴 거 안 보이나? 그럼에도 억수로 변한 것이,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 변하려면 호용이 처럼 멋있게 (안성기처럼) 변해야 하는데, 그 반대이니 인생 무상이지.
최민수 삘~이 나네 ㅋㅋ 이러다 우리 동기 모두가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되는건 아닌가 몰라 ㅎㅎㅎ
내가 조회수 올리는데 기여를 했다면 고마운 일이네. 그건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사실 그때 그때 느끼고 생각나는 바가 있어 경험을 써보지만 나 자신은 잘 몰라. 그게 다른 사람에겐 어떤 느낌과 생각을 주는지. 사실 모르기 때문에 호기심이 일어나고 객기가 발동하지만 좀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상대는 생각하지 않고 혼자 지껄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블스야! 넘 잘 써서...아니 넘 잼있어서 쫘증놔거등...^^ 울 블스...쵝오에욤.........!!!
호용이야 언어적 수용폭이 워낙 넓으니까 걱정이 안 되지만 두루두루 다 생각해야 하잖아. 사실 회원이 한 백명은 되야 카페의 칼라가 좀 다채로워질 텐데.
하-,코스모스핀 계절 가기전에 그리운 얼굴들 보고싶다는 얘기를 이렇게 쓰는구나!!! 한걸음에 만나서 코스모스의 추억들을 줄줄이 풀어놓고싶어진다. 오랜만에 연애편지 받아본기분. 안 읽은 친구들 억울하겠다. 연애편지 못 읽어서.ㅎㅎ
조숙한 1차 코스모스는 어차피 다 낙화했고 가을이 되면 제대로 된 원조 코스모스가 피는 곳이 있겠지. 그 때 어디서 번개 회동 한 번 하면 좋겠네. 코스모스 추억도 좀 들어보고. 그런데 수신자가 다수인 연애편지는 누가 답장을 쓸꼬?
천둥소리가 자꾸 나네...인간들 이카다가 진짜루 번개함 치겄는디 .... 곧...ㅋㅋㅋ
그러게 어차피 읽는 친구가 한정이 되어 있으니 아쉽지.............근데 용기있게 총대 맬 잉간이 없는듯 ... 번개는 원래 소리 소문을 짧게 그야말로 번개치듯이 해야 하는데 날마다 쌩으로 용들만 써대니 언제 할거나 올해 안에는 못할것 같으..
번개친다고 꼭 비가 오는 건 아니잖아. 긴장감 조성만으로도 번개의 의미는 있지 않겠나. 어차피 번개의 묘미는 뜻밖이라는 데 있을터
첫째 셋째 일요일만 피해서 벙개함 때리주소...학교는 가야하자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