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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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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종교학 교실 exoteric? esoteric?
프로메테우스 추천 0 조회 214 08.11.13 00:19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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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11.13 09:15

    첫댓글 현대사회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의 사람들에게는 홀로 명상등을 통해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괜찮을 것 같습니다. 홀로 명상하는 것은 자신이 정신적, 시간적 여건이 될 때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현대인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경전, 타인의 가르침에 의해 깨달음에 도달하거나 궁극적 실재를 만나는 것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한 간접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깨달음과 경험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걸 스스로 하기엔 어려움이 따를테니 기본적인 것은 경전이나 타인의 도움을 통해 얻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08.11.13 10:34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바쁜 현대인에게 명상이 더 적합한 방법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홀로' 명상을 하면 독선적인 생각에 빠져 과오를 범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교리와 경전은 곧 수천년의 역사가 증명해주는 산물입니다. 물론 종교생활을 하며 종교적 스승의 설교를 듣는 것, 경전을 공부하는 것 이외에도 명상과 같은 혼자만의 노력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틀을 깨줄 수 있는 외적인 영향이 없다면 진정한 성스러움에의 추구는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esoteric은 지나친 형식주의에 대한 반작용일뿐 그것에 더 무게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08.11.14 02:11

    저는 이 두분의 상반된 의견을 흔히 유교에서 말하는 '본말'구조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깨달음에 도달하거나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는데 있어서 교리나 경전에 의지하거나 종교적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은 근본적인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행하는데 있어서는 각자의 영역에서 명상이나 직접적인, 자가적인 경험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가 종교적 깨달음을 얻는데에 있어서는 원초적으론 교리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옳지만 스스로 행동해보는데 있어서는 자가적, 명상적인 방법이 더 접근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 08.11.14 02:13

    그러므로 경전 공부나 종교적 스승의 말씀이 밑바탕이 된 후 그것을 스스로 곱씹어보면서 자신의 문제점에 맞추어보면서 자가적인 명상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08.11.13 12:38

    저는 둘다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그 중에서도 더 중요한것은 제도적인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명상을 하는것은 스님이나 목사님들을 통해 배운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데서 의미가 있지, 그렇지 않고 혼자서 명상만 해서는 신을 경험하거나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교리를 제공하고 그들의 삶을 인도했던 기존 종교들을 배제하고 혼자만의 종교를 갖는다면 잘못된 길로 빠질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도종교는 꼭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통해 깨달은 것을 일상생활속에서 시간날때마다 명상을 통해 되새김해보는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08.11.29 02:04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물론 혼자 명상 등을 통해 신과 합일을 이루거나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극소수의 종교적 엘리트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자신이 신을 직접 경험했다, 나는 그게 가능한 존재다 라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교만에 빠진 경우인 것을 우리는 종종 알 수 있습니다. 민규님의 말씀처럼 제도종교나 권위있는 종교지도자의 도움으로 탄력을 받은 상태에, 명상 등 스스로의 노력까지 곁들여 진다면 신앙인이 자신의 믿음을 더욱 고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 08.11.13 18:00

    저는 제도 종교에 반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종교 변질의 문제 해결은 결국 제도 종교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역사적 맥락과 상징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경험이 없는 개인이 개인의 차원에서 종교를 해석해내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비주의가 반사회적인 경향을 띠는 것은 아니지만 오대양 사건과 같이 독단적 해석과 믿음이 사람을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 수 있다고 봅니다.

  • 08.11.13 19:18

    저는 종교 제도나 종교적 인도자(스님, 목사님, 신부님)는 잘 닦인 길 같은 존재라고 생각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차근차근 만들어져온 길이지요. 반면에 신비주의는 울창한 숲과 같은 곳에서 직접 길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닦인 대로를 걷든지 스스로 길을 만들며 나아가든지는 개인이 선택할 일이겠지요. 물론 스스로 길을 만들다 보면 헤매기도 쉽겠지만, 대로라고 해서 그 끝이 진정 우리가 원하던 목적지라고 확신할 수는 없잖습니까? 목적지는 너무나 멀어서 우리 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요.

  • 08.11.13 21:15

    이들 종교적 조언자들 역시도 많은 시행착오와 갈등을 겪은 기경험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종교적 수확물은 공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어느 선에서는 각자의 길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때는 홀로 서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의 도움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홀로 서야 합니다. 이런 방법이 가장 무난하리라 봅니다. 신비주의는 지극히 개인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가능한 한 공인된 종교의 틀에서 종교생활을 시작하는게 안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08.11.13 23:50

    저는 제도적 종교가 형식주의로 나아가고 신비주의가 독단에 빠지는 것은 부정적으로 극대화된 예이지 그 둘 중 한가지 방법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름의 측면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을 취해서는 깨달음을 추구하는데 있어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개인이 종교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둘의 병행을 통한 상호작용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깨달음의 방향을 제시하고 기반을 제공하는 것은 교리와 경전과 같은 역사가 증명하는 가르침이지만 이 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스스로 그 의미를 찾아 궁극적 실재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결국 외부의 개입이라기보다

  • 08.11.13 23:50

    내면적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08.11.14 01:38

    오늘은 논쟁이 꽤 되네요. 그런데 막상 다닐만한 절이나 교회르 찾으려면 쉽지가 않지요? 물론 혼자서 성스러움을 찾아 나서기도 쉽지는 않지만...

  • 08.11.15 12:38

    카톨릭의 경우 대체로 분파가 없기 때문에 해당 교구의 성당을 찾아가면 되지만 여전히 어떤 교리나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가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교리(혹은 종교 자체)를 선택할 때 성찰과 고심이 충분히 이루어져야하고 특히 그 과정에서 이론적, 학문적 검토가 필요합니다. 대학생인 지금 신학이 아닌 종교학 강의를 듣는 것은 그런 점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 작성자 08.11.15 23:40

    가톨릭은 그렇지요. 하지만 역사상 조직이 크고 잘된 종교들이 신비주의 운동이 더 활발했던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지요.

  • 08.11.17 03:39

    저도 제도종교의 가르침과 개인적 성찰이 상호 보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더욱 필요한 것은 개인적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종교와 같이 타자에 의한 깨달음은 일어나기 힘들 뿐더러, 만약 타인에 의해 깨달음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보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깨달음이 더욱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도종교의 가르침은 깨달음의 과정을 조금 더 빠르고 쉽게 만들어 주며, 궁극적 실재와 만나는 데 있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더욱 주가 되어야 할 것은 개인적 성찰입니다.

  • 08.11.16 15:08

    저도 개인적 내면의 성찰과 신앙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제도 종교 내의 경전, 지도자들의 가르침과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이나 교회에 다니고 법문을 듣고 성경을 읽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일상이 구도의 삶이 될 때 비로소 종교가 개개인의 삶에서 실재적 역할을 할 수 있기에 개인적 성찰이 필요할테고요. 반대로 혼자만의 체험과 내면적 탐구는 자칫 정신적 무질서로 빠지거나 '자기 망상의 포로'와 같은 신앙인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있기에 신에 이르는 정신적 길, 과정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exoteric과 esoteric은 서로의 지속을 위해서도 함께 필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 08.11.16 15:13

    종교사적으로 볼때도 이슬람의 수피 사상 등을 돌아볼때 신앙의 세속화에 반대하는 정화운동으로 일어난 신종교들도 언제든 다시 또다른 타락화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접적 지식을 거부하며 금욕의 삶, 신에게 헌신하는 고행자의 길을 통해 궁극적 실재와 직접 합일을 믿있던 이 신비주의 운동도 곧 조직을 형성하고 신플라톤 철학을 끌어들이는 등 대중적 인기와 함께 또다른 기성종교 중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영원한 esoteric 종교가 가능한가를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제도적 종교와 신비주의적, 개인적 종교를 나누고 가르는 것에 대한 회의(?), 의문도 들었습니다.

  • 08.11.28 03:10

    기성 종교의 경전이나 스님, 목사님이 제시하는 길이 옳은 것이라고만은 보기 어렵습니다. 많은 분파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기성 종교를 따른다 하더라도 궁극적 실재와의 교통이 한 가지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신비주의를 잘못된 길, 위험한 것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비주의가 종교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독단적이 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닌 만큼, 기성 종교 또한 그 역사적 맥락으로 인한 한계를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여성 목사 청빙에 대한 문제 같은 것들을 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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