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도 떠나려는 가을 끝자락을 잡고 발버둥을 쳐 보지만 매섭게 불어오는 칼바람 소리에 맥없이 두손을 놓고만다. 지난 여름 밤 하늘의 별보다 더 많은 사연과 눈시울 적시도록 애잔한 연서의 가을노래도 다시금 추억이 되어 흐르는 골짜기의 물따라 떠내려가 지금은 어디쯤에서 머물고 있을련지... 헐벗은 나목들은 찬서리와 비수같은 서리발에 맥없이 떨며 서 있고 고산길 찾아온 산객의 등짝과 두 귀로 칼바람은 북풍 문풍지 떨게하듯 온몸에 달려든다. 지금 백운산엔 막 가을을 아름답게 갈무리하고 겨울을 향해 잰 걸음을 옮겨 놓고 있습니다.
백운산은 오늘 필자가 만나는 것 외 원성.포천.함양.문경.영동에도 동명(同名)의 산들이 있다. 광양의 백운산은 백두대간에서 살며시 떨어져 나온 산줄기가 호남정맥을 완성한후 남해안 중앙부에 가장 높게 솟구친 봉우리로 물빛 좋은 섬진강 5백50여리의 물길을 마무리하고 망망대해 다도해를 굽어보며 북으로 대간의 우두 지리의 천왕봉을 굽어보며 서 있는 백운산 은 철강산업의 메카인 광양시 옥룡면에 소재한 산으로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청정계곡을 가진 고산이다. 또한 봉황,돼지,여우의 3가지 신령한 기운을 간직한 산 으로 지역민들이 신성시 하는 명산 중 명산으로 꼽는다.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쓰러질듯 길섶 억새는 그리움 처럼 길게 드러눕다가 다시 고개를 쳐들며 일어선다. 새품 다 져도 아름다운건 역시 억새다. 이렇게 추울줄 예상못한 필자나 가족들과 모처럼 산행을 나온 사람들은 뚝 떨어진 고산 아래의 기온에 주춤거리고 있다. 초입 시멘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가을 고운 단풍잎 떠내려 보낸 병암계곡의 물소리마져 시럽게 느껴지니 여긴 겨울이다. 고로쇠 약수물로 이름이 난 탓에 민박집 간판에는 어김없이 고로쇠 글자가 문패 구실을 한다. 계곡 옆 식당은 지난 여름 북새통을 끝내고 지금은 철시하여 겨울로 가는 산 처럼 마당과 계곡옆 평상엔 회색빛 적막만 자리하고 있다.
호젓한 산길이 시작된다. 바위들이 얼키고 설켜 그것을 피해 오르는 맛이 여느 산과 달라 신바람이 난다. 그기다가 가을 눈부시도록 아름답던 단풍이 가랑잎이 되어 산길에 질펀하게 깔려 있어 이파리 밟는 소리가 구르몽의 그 소리 아닌가? 차겁던 몸은 산길 들어선지 채 30분쯤 지나자 점퍼를 벗게 하지만 여전히 바람은 두 귀를 얼게한다. 지난 가을에 왔더라면... 키 큰 당단풍나무들이 자꾸 아쉬움을 갖게해 산객 발길은 왜 이리도 더딘지...
부드럽게 그리고 여유를 부릴만한 산길은 계곡 삼거리에서 끝이났다. 좌측 신선대 우측 정상을 가르키는 표지석과 안내도를 보며 잠시 휴식한후 우측 정상을 향해 오른다. 가파른길. 귓가를 때리는 바람은 아프다. 푸르고 물든 이파리는 어느 한곳도 없다. 서리발이 지뢰처럼 솟구쳐 오름을 무디게 하고 칼바람에 나목은 휘-익 소리를 내며 굿을한다. 지겨운 계단길은 하얀 입김을 더 쏟아내게 하고 멍하게 언 두 귀를 장갑낀 두손으로 잡고 오르는 폼이 영락없는 설상 산행폼이다.
정상 과 억불봉으로 가는 삼거리. 숨 천천히 고른후 정상을 향해 발길을 떼어놓자 요란한 아낙들의 고함소리가 성가시다. 아직도 산정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다니... 동으로 섬진강 물줄기가 푸르다. 저 긴 강은 지난 봄 매화골로 부터 얼마나 많은 꽃닢들을 강물에 띄웠을까? 은빛 모래밭, 휘나리는 갈대,그리고 겨울로 가는 시퍼런 강물. 백운산은 저 긴 강마져 보듬고 있다.
억불봉으로 가는 산줄기는 평화롭다 못해 여유다. 겨울이 또아리를 털며 산줄기마다 늘어져 있어도 그 기운은 역시 당차고 힘주어 꿈틀거리는 준령은 설한풍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드디어 정상. 호남정맥의 최고봉. 백운 상봉. 백운봉 정상은 거대한 암봉이 거센 바람을 맞고도 의연하고 매서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상석을 보듬고 있다. 신선이 놀다간듯한 신선대로 가는 산줄기는 멀리 한재를 지나 또아리봉으로 이어지겠지 아스라하지만 장중한 지리산줄기는 천왕을 향해 일제히 기운차게 달려 나간다.
정상 아래 작은 돌탑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정성이 하늘과 땅을 향하고 상봉 알바위 아래 고함 지르던 아낙은 산객과 눈이 마주쳐도 쉬지않고 목청을 더 돋우며 일행을 찾는다. 백운산에도 청정계곡이 즐비하다 백운사가 있는 새운암골을 비롯 선동마을의 생명수인 선자동계곡, 답곡십리와 동곡천에 합류되는 하백 운곡, 정상 아래로 흐르는 병암계곡이 여름 내내 사람들을 불러 추억에 놀다 가게하니 백운산도 그리움의 산 이다.
정상에서 바라 본 또아리봉 (1127.1m)
억불봉으로 가는 산릉
백운산 정상
멀리 지리산줄기가 힘차게 달려가고... 신선대 능선 정상을 향해 오르는 거북. 섬진강에서 온듯...아니면 다도해서 ...
하산은 신선대 능선을 따라 한재를 거쳐 또아리봉을 만나고 친감재서 논실옆을 돌아 갈려고 애초 마음을 먹었으나 요즘 들어 비알길 내려서면 무릅이 시큰거려 무리하지 않고 신선대서 병암폭포옆을 돌아 오전에 만났던 삼거리로 하산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신선대 아래 너른 돌상에 늦은 점심을 든다. 아침부터 뒤 따라오던 아이까지 거느린 두어 가족들이 산객 아래 너른 돌터에 마주앉아 즐거운 식사를 하는걸 보니 느닷없이 또 떨어져 있는 식구들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가파른 비알길 조심조심 내려서니 등산 안내도가 서 있는 삼거리.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안고 쉬고 있다. 수석같이 산길에 박힌 돌더미들 요리조리 피하며 산 내려서니 가버린 여름 과 가을 추억들이 병암계곡 끄트머리 작은 소(沼)에 머물며 어디로 떠나지를 못하고 빙빙 맴만 돌며 떠 있다. 어느새 해거름 억새는 은빛으로 산객을 배웅한다.
가는길 : 남해고속도 광양 나들목 - 옥룡-동곡-묵방-진틀 산길 : 백운사-995봉-1110봉-백운산-한재-또아리봉-친감재-논실 선동- 백운사-백운산 진틀 - 백운산 - 신선대- 한재- 또아리봉 - 친감재 - 논실 진틀 - 삼거리 - 1110봉- 995봉- 962봉 - 923봉 - 억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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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길 묻거들랑 원문보기 글쓴이: 기산들
첫댓글 조은산 조은글 보고 갑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산의 사진도 선배님의 설명을 읽어보면 모든 것들에 대한 뜻의 아름다움이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인양 내 눈앞에 펼처 집니다
지리산 능선이 너무나 선명합니다.한재 아래 송어회가 맛있던데, 요새도 있습디까?
저 나무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숨차게 밟고 올라갔을때 두팔을 벌리고 편안하게 드러 누울수 있는 넓은 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야!
화려함의 가을도 좋지만 모든걸 내려놓고 겨울을 기다리는 산의 모습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