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계 1구간 2013. 1. 31 (목) 산길 : 정곡~음나무재 사람 : 학봉 객꾼 동기 조은산 거리 : 13.7km 구간거리 정곡~4.0~울빛재~1.5~와우산(△190.8)~3.9~탁골산(△279.3)~0.7~고성터널임도~2.0~적석산(×497)~1.6~음나무재 / 13.7km Cartographic Length = 16.9km Total Time: 07:15 대동여지도 창원은 지방 군현급이나, 마산은 포구에 불과했다. (마산포, 합포) 진해가 현재의 진동만에 있었다. (진해를 중심으로 현재의 진동, 진북, 진전) 진주시계에 이은 창원시계(市界)다. 진주시계에는 나와 학봉이 진주까지 갔었지만, 창원시계이다 보니 나는 부산에서, 객꾼은 진주서 넘어와야 된다. 학봉이 홈그라운드가 된다. 마산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시각이 06:40. 터미널 뒷편에 있는 개성돼지국밥에서 아침을 먹었는데 멀건 국물에 조미료 냄새만 듬뿍나는 돼지국밥이라, 두 번 다시는 안갈 집이다. 그 옆 어디서 객꾼이 점심이라고 김밥을 샀는데 이거는 한 번도 온전히 먹지 못할 김밥이더라. 이 터미널에서 여러번 더 만나야 될 판인데 한번 더 옆집에 가보고 그래도 마찬가지이면 집에서 밥을 싸 오든지, 라면을 준비 하든지 해야겠다. 창원 사는 객꾸이 친구 하나가 합류했다. 언젠가 한번쯤 산에 같이 가본 기억이 있는 친구라 스스럼 없이 어울리게 되는데 평소 산행을 꾸준히 하지 않던 친구라 오늘 고생 좀 했을꺼다. 발산재로 가 학봉차를 대놓고, 내차로 넘어간다. 내비가 가자는대로 따라 갔더니 울빛재 넘어 고성 회화면으로 돌아간다. 4차선 새 길로 갔으면 동진교가 있는 77번 국도가 더 나을뻔 했다. 진주시계 할 때 보다 한 시간 늦게 산행이 시작되었고, 시계에서 벗어나 있는 호암산엘 다녀오고, 어문짓 하느라 지체한 시간이 보태지고 하다보니 목표한 발산재까지 못갔다. 결과적으로 음나무재에서 끊어놓고 보니, 예정한 다음 구간이 발산재에서 한티까지 24km로 무리가 아니겠나 싶었던 것이 음나무재에서 오곡재로 끊으면 더 나을것 같아 오히려 잘된지도 모르겠다. 08:16 정곡고개 09:14 시락임도 09:36 산불초소봉 09:45 호암산 10:13 울빛재 10:56 와우산 11:35 탑동마을 12:25 탁골산 12:40 고성터널 14:17 국수봉 14:28 적석산 15:04 일암저수지 안부 15:12 음나무재 15:30 대방마을
정곡고개 터널 위
정곡고개 (55m)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 정곡마을. 고성군 회화면 어신리와 경계다. 시락(時洛)은 바닷가가 되어 조수가 때를 맞춰 드나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생태통로 같은 터널이 설치되어 있고 터널 위로 길이 나있어 터널 위에 차를 올려놓고, 남쪽 ×69봉 쪽으로 들어가는 임도가 있어 들어가 봤더니 해안까지는 연결이 안 되고 묘터에서 끝난다. 숲 사이로 당항만 바닷물만 언뜻 보고 돌아 나왔다.
시락리
당항만. 당항포 하면 또, 이순신장군이다. 당항포 해전(唐項浦海戰) : 1592년 6월 5일 이순신장군이 지휘하는 삼도수군 연합함대가 당항포에서 왜군 적선21척을 격파
임란이 발발하기 전, 고성 당항에 '월이'라는 기생이 일본 첩자에게 술을 먹이고 잠이 든 첩자가 소지한 지도를 몰래 빼내, 서쪽으로 물길이 열려 있는 것처럼 바닷물 표시를 해 넣었다. 후에 일본해군이 이 지도를 보고 서쪽으로 나가다가 꼼짝없이 잡혀 이순신 장군에게 전멸 당했다는 전설이 있다.
당항만을 지도에서 보면 북동쪽 시락리(창포리)에 고성 동해면으로 건너가는 동진교 다리가 있다. 동진교 양쪽의 마산 창포리와 고성 내산리가 직선으로 300m가 채 안되는 거리다. 그 위로 동진교가 바다 건너에 있던 두 마을을 지척의 이웃마을로 바꿔놓았는데,(2001.1월 개통. 총연장 390m)
동진교 아래, 즉 마산과 고성 두 마을 사이의 물길이 당항만의 입구이자 출구다. 즉, 당항만은 여기를 둑으로 막아버리면 온전히 호수가 된다는 얘기라. 따로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조선시대 월이도 알았던 사실을 나는 이제사 알았다니.
비로소 창원시경계 출발이다. 자켓을 미리 벗어 담고 출발할 만큼 춥지 않은 날씨인데 해 뜰 시각이 지났음에도 하늘은 먹먹하다. 황사인지 스모그인지 연기처럼 자욱해 멀리 보이지 않는다. 북으로 올라가는 능선에 임도같은 넓은 길이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좌 고성, 우 창원이라. 제목이 창원시계라 창원부터 살펴보자. 시락리는 진전면이고 진동, 진북. 진字 항렬의 面이 많다.
(창원시 지명유래) 조선시대 러시아가 마산을 租借(조차)해서 해군 극동함대 기지로 사용할 시점에 일본은 러시아 함대의 길목을 잡기 위해 군항지를 진동(당시 : 진해만)에서 웅천(現 진해)으로 옮긴 후, 당시 鎭海縣(진해현) 관할의 동면, 북면, 서면 중 동면을 鎭東, 서면을 진전(鎭田), 북면은 진북(鎭北)이라 했다.
그러니까 '진해'는 원래 진동만에 있다가 현재의 위치(웅천)으로 옮겨졌고, 당시의 진해현을 중심으로 鎭海의 鎭에다 동, 서, 북을 붙인 것인데, ‘진전’은 처음에는 ‘진서면’이었다가 양전면이 보태져 진전면으로 되었다는 설명이다.
바닷물 보고자 잠깐 들어갔던 새, 셋은 벌써 올라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들머리 신고식 겸해 내 리본 하나 걸고 ?아 올라가니 첫 고개에서 벌써 막걸리병을 따르고 앉았다. 출발 10분만에 두 병이 비워진다. 바로 아래 근사하게 꾸며진 묘소는 ‘통정대부 창원황공’이다.
산꾼 동무가 아니라 술꾼 하나 더 데불고 왔다.
통정대부 창원황공. (당포만 건너 고성 구절산이다)
임도는 정곡마을로 내려갈거 같아 왼쪽 비탈로 올라간다. [털보와 수리산꾼] 리본이 팔랑이는데, 털보는 알아도 수리산꾼은 모르겠다. 털보님 역시 GPS마니아로 오지산행 전문가이긴 한데 창원시계를 한거 같지는 않고... 능선에도 묘가 줄을 이어 진행하기는 수월하다. 십자가 새겨진 비석, 단독주택 만한 납골묘에 가시철조망을 두른 묘까지. 그물을 친 울타리를 넘어 임도는 계속 간다.
×230봉에서 객꾸이 학교동기 동기는(이름이 ‘동기’다) 아래위로 옷을 다 벗어 낸다. 얼어 죽을까 걱정을 했나 도대체 몇 겹을 입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전봇대 보다 더 높은 울창한 소나무밭을 내려가니 임도가 넘어가는 고개다.
시락임도 고개(125m) 시락마을에서 울빛고개로 이어지는 듯한 임도다. 터를 닦는 공사가 진행중이고 중장비도 한 대 있다. 왼쪽으로 가는 임도로 들어가는 듯하다가 우측 비탈로 기어올랐다. [통정대부 중추부사] 묘까지는 쉽게 올라갔으나 이후 길이 없는 급비탈이다. 아래 임도에서 산불초소봉까지 200 가까이 올라가는 까꼬막이다.
시락고개
통정대부 경주최공
산불초소봉(300m) 길 흔적없는 비탈을 용을 쓰며 오르고, 산불초소 지붕이 보일 때 쯤에야 우측에서 올라 온 길이 보인다. 시락마을에서 바로 올라 오는 길이 있나. 조망은 막힘이 없다만 대기가 흐리다. 초소는 문이 잠겼다. 여기서 시계는 왼쪽(북서)으로 내려가고, 우측(북동)에 호암산이 있다. 이름도 그럴듯하고 큰 기복이 없어 보여 갔다 오기로 한다. 갔다오는 동안 기다리라 했으니, 저그는 조오타 카겠지~. 기분 조오타고 또, 막걸리 묵겠지~.
호암산
호암산(虎岩山 △308.7m)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에서 평탄하게 조은길로 이어지며 ×308, 호암산, ×303봉이 나란히 삼봉산을 만들었다. 호암산에는 정상석도 없고 둘러볼 조망도 없다. 잡목이 듬성듬성 자라 쉴만한 터도 없다. 혹시나 끝봉인 ×303봉에는 뭐라도 있을까 싶어 내친김에 달려가 봤으나 역시나 아무 수확도 없다. 호암산에는 너무 오래되어 번호 식별이 안되는 납딱 삼각점이 있을 뿐이다.
다시 산불초소 호암산 세 봉우리 갔다 오는데 1.7km에 25분(왕복) 걸렸다. 그 새 산불감시요원이 출근을 했고, 객꾼 일행은 인적사항을 장부에 적어야 했다네. 산불 아저씨한테 물어본 즉, 우리가 갈 능선으로는 길이 없으므로 울빛재 내려가서 도로를 따라 산북저수지로 올라가야 된다며, 뺀질뺀질한 소리를 해댄다.
나중에 고성터널에서도 그랬지만, 물어 볼 사람을 잘 골라야 되는거라. 대답하는 상대의 수준을 잘 가늠하고 알아들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마루금의 개념을 모르는 사람에게 산길을 물어보면, 그 사람이 우리의 기준이나 원칙을 고려해서 대답을 하겠는가? 거기 길 없소, 거기 못 들어가요. 라는 말을 따를 것인가 말이다.
산불감시원에게 한 수 지도하는 객꾼
호암산에서 와우산 객꾼은 울빛재에서 산북소류지로 도로행
울빛재 내려가는 길은 아주 좋다. 아마도 울빛재에서 산불초소봉 오르고는 다들 호암산쪽으로 산행을 하는가 보다. 언 땅이 녹기 시작하는지 물렁물렁한 비탈길을 풀이 깔린 부분을 골라 밟으며 신나게 떨어지니 우측 아래 골짜기는 돌공장이 있는지 우당탕퉁탕 요란한 파쇄음이 들린다. 객꾸이 왈, 돌공장에 딸내미 하나 시집보내면 말년이 편?는데...
울빛재
울빛재(130m) 마산 진전에서 고성 회화면으로 넘어가는 아스팔트 고개지만, 멀지않게 14번 국도가 확장되어 여기로 다니는 차는 거의 없다. 1916년 발행 조선지형도에는 ‘牛色峙’로 표기된 울빛재에는 가슴아픔 사연이 전해진다.
옛날 진전면에 살던 어떤 처녀가 고개 넘어 고성 땅으로 시집을 갔다. 신혼의 젊은 부부는 금실이 좋아서 신혼생활 몇 해가 꿈같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는 친정어머니가 몹시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녀는 시부모와 남편의 허락을 받고 친정어머니의 병간호를 하기 위해 고개 넘어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저 며칠이면 되겠거니 생각했던 친정어머니의 병환은 여러 날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그러자니 젊은 아내는 시집으로 돌아갈 날이 하루하루 더디어져 몹시 애가 타게 되었다.
한편, 남편은 친정에 간 아내가 예정보다 훨씬 늦게까지 돌아오지를 않으니 몹시도 기다려졌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기다리던 남편은 마침내 고개까지 와서 아내를 기다리게 되었다. 거의 매일같이 남편은 고갯마루에 앉아서 아내를 기다리다가 해가 저물면 지쳐서 돌아가곤 하였다. 이런 안타까운 나날이 벌써 몇 달째로 접어들었다.
그 동안 정성스런 딸의 간호를 받아서인지 친정어머니의 병환이 거의 완쾌되었다. 어느 날 아내는 시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서 친정을 나섰다. 꽤 오랫동안 시집을 비운 죄책감 같은 것이 자꾸만 마음속에 일었다. 남편과 시부모에 대해 미안하고 죄스러운 생각만으로 젊은 아내는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아내가 막 고갯마루에 올라섰을 때, 난데없이 큰 호랑이 한마리가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아서는 것이였다. 시집으로 돌아가던 젊은 아내는 그 자리에서 그만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고 말았다.
한편 그날도 아내를 기다리기 위해 고개까지 올라왔던 남편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아내의 시체를 확인하고는 너무나도 애통한 나머지 그만 그 자리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그 후 인근 마을에서는 신혼부부의 초행길은 이 고개를 피해서 다니는 풍습이 남아 있다는 울빛재의 전설따라 삼천리다.
호랑이에게 잡혀먹었다는 내용은 울빛재보다는 호암산에 범(虎)이 있었다는 반증인가.
시경계에 있는 마을탐방 한다면서...
객꾼과 동기는 산불아저씨하고 무슨 약조라도 하였는지, 고성 어신마을을 둘러보고, 산북저수지 넘어 마산 오서리로 가겠단다. 진정한 의미의 시경계는 언저리 마을을 둘러보는 것이라는 개똥철학을 設하면서...
와우산이 없다면 나도 개똥철학 동조자가 되고 싶다만, 학봉과 나는 와우산 만나러 올라간다. 계단 올라가면 광산김공이고 뒤로는 길이 없다. 산불아저씨 말이 맞았네. 그나마 여름철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위안을 해대며 다시 낑낑 땀을 짜낸다. 도중에 10분간 휴식 한번하고 울빛재에서 30분 걸려 오른 첫봉이 250봉이다.
이어지는 봉우리는 이보다 더 낮은데 맨 뒷봉이 와우산이다. 능선에 올라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고 잡목으로 눈에 보이는 것도 없다.
와우산
와우산(臥牛山 190.8m △함안432) 울빛재도 소牛자가 들어갔고, 여기도 牛가 들어갔으니 필경 소와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측량을 했던지 철제 앵글로 삼각대를 만들어 삼각점 위에 세워놨다. 여기도 호암산과 같이 납짝하게 문드러진 삼각점이나, 안내문이 있어 번호를 알 수 있고 표고는 192.0m이다. 조망은 이하동문, 없다.
×211 와우산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우측 회동마을로 가는 묵은 고갯길이 있는 안부이고, 없던 길이 살아나면서 다시 오른 봉이 211봉이다. 묘가 있는데 뚜렷한 길은 우측(북서)으로 가나, 시계는 길 없는 왼쪽(남서)이다.
211봉에서 10분 내려가면 왼쪽 산북저수지에서 올라 온 묵은 길이 있는 안부인데 온통 가시덤불이 뒤덮었다. 왼편 사면길을 골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보다 더 선명한 길이 올라온다. 객꾼이 여기로 넘어 갔음직하다.
여기서는 객꾼의 지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U자로 휘어지는 능선을 곧장 질러가기로 이미 직정을 한지라, 우측 오서리 탑동마을로 내려간다. 자동으로 정면의 ×311봉, 금봉산이 갈라지는 ×239봉은 생략이 된다. 금봉산(金鳳山 306.6m)도 호암산 만큼 시계능선에서 벗어나 있다.
골짜기로 내려가니 ‘대웅전’ 편액이 걸린 절집하나 보이고 마을로 내려가는 시멘트 길이 있다. 객꾼은 여기서 개가 짖어대니 중인지 뭔지가 나와서 한판 입씨름을 하고 내려갔다는데 우리가 내려오니 개도 사람도 없다. 객꾼 전화를 받은 학봉이 제대로 한번 갈바주리라 작정을 했더랬는데 아무도 없는게 다행이다. 너그 오늘 재수 조은줄 알아라...
탑동제
탑동마을 마을 상단부에 정자가 있고 넓은 묘터는 소공원 규모다. 객꾼은 지론대로 탁골산보다는 마을탐방을 하고 고성터널 고개에서 만나잔다. 어쨌거나 밥은 묵어야재, 잔디밭에 둘러앉아 점심상을 폈다. 아침밥도 마산터미널 뒤 국밥이 형편없었는데, 그 주변에서 사온 김밥 역시 그보다 나을거 하나 없는 모래알 같은 밥이다. 필경 안량미로 싼 김밥이라. 게다가 짜기는 어찌나 짠지. 한 두입 물었다가 다 던져버렸다. (~12:00 점심)
런취타임
질러가는 길이라 우리보다는 훨씬 빠르겠다 여기고, 지도 한장 던져주고 학봉과 둘이서 탁골산을 행해 올라간다. 탁골산을 정면으로 보고 올라가다가 너무 급한 비탈에 덤불만 수북해 왼쪽으로 휘돌아 시계능선을 접하니 묵은 길이나마 있다. 금봉산 갈림봉에서 내려 온 ×222봉 안부 위쪽이다. 100여m 고도를 올리며 땀을 한바탕 짜 내고서야 정상에 올라섰다.
탁골산
탁골산 (△279.3m) 잡목만 무성한 가운데 오래 묵은 삼각점이 박혀있는 정상부다. 고도를 적은 리본 하나 걸어놓고 내려간다. 5만 지형도에는 탑곡산, 塔谷山으로 표기되었는데, 아래 오서리에 탑동마을로 봐서 탑곡이 맞겠다.
질러간 객꾼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내려갔다. 탑곡인지 탁골인지 그나마 이름있는 산인데 어찌 이리도 등산로가 없단 말이냐. 마산이나 고성이나 모두 외면한 산인가 보다.
고성터널 위 옛 14번국도
고성터널 옛 14번국도 빠른 걸음으로 10여분 내려오니 우측에서 멋진 임도가 다가온다. 새로 뚫린 14번 국도 고성터널 위쪽이다. 임도따라 나가니 아스팔트 도로 옛 국도가 나오고, 이리저리 고함을 질러도 객꾼의 대답은 없다. 건너편 비탈로 올라가 배낭을 내렸다.
마산에서 고성 회화면, 고성읍, 통영을 지나 거제까지 연결이 되는 14번국도로 불과 수년전만 하더라도 부산에서 고성, 통영 갔다 오려면 14번국도의 정체가 겁이 날 정도로 극심했는데, 고성-마산 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 되면서 말끔해졌다. 동시에 거가대교도 개통이 되었지만 부산에서 거제나 통영가는 길이 엄청 단축이 된셈이다. ‘방말재’라는 이름도 어디서 본 듯한데 지도에는 없는 이름이다.
그나저나 야들이 어디로 갔는지 소식이 없네. 커피 한잔 타 마시고 밀감도 깎아먹고 한참을 앉았으니 전화벨이 울린다. “행님, 임도를 만났는데 왼쪽인교, 오른쪽인교?”
니가 어디서 어떤 임도를 만났는지 내가 우에 알고 왼쪽 오른쪽을 말한단 말이고, 흔히 산중에서 이런 전화를 주고 받는 경우가 생기는데, 참으로 난감한 것이 양쪽 모두 처음 가본 길에서 보이는 것도 없으면 대화가 될 리가 없다.
그나마 지금은 하늘에 해가 있어, “해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4시방향으로 진행을 해라.” 했더니 해를 보고 왼쪽으로 가고 있단다. 짐작컨대 직선거리 1km 이내에 있으면서 방향을 못잡고 있는 것이다. 결국 13:22에 상봉을 했으니 40분을 기다렸네. 편히 질러 간다던 놈들이 뺑뺑이 돌리다 더 늦게 나타났다.
둘이서 해대는 꼴이 가관이다. “내가 가자는대로 갔으면 맞았는데 니가 아니라 해서 이래된거 아이가...” “그 할배한테 물어보고 할배가 가라카는대로 간거 아이가?”
산불초소 아저씨도 그랬지만 대답하는 사람의 수준(!)을 잘 파악해서 알아 듣는게 중요하다. 우리는 곧바로 쳐 올릴 수 있는 비탈이지만, 시골 할배의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비탈이므로 당신이 가능한 길(방향)을 알려 준기라. 죄없는 할배만 나무라고 있구만...
헛바쿠 돌면서 진이 빠진 동기가 고만하고 내려 가겠다는걸 억지로 달래고 꼬아서, 적석산이 바로 위에 있다며 공갈도 치고, 넷이서 다시 출발을 한다.
40여분 만에 나타난 객꾼동기
와우산에서 탁골산 진행 경로 (빨강색) 객꾼 경로 : 점심먹고 탑동마을로 내려갔다가 밤나무단지(원표시)에서 헤맴
고성터널 출발. 여기서는 적석산 등산로가 있으리라는 예상은 어긋나고, 길은 있는둥 마는둥 하다가 5분 후 임도에 올라선다. 이 임도는 고성터널 위 도로에서 고성쪽(서)으로 조금 내려가면 들머리가 있다. 임도는 S코스를 그리며 두 세 번 크게 휘감으며 올라간다.
산길로 임도따라 15분 올랐나. 임도는 북동쪽 △359.7봉 (지형도에 으봉산으로 표기. 오봉산의 오기인가)으로 벌어진다. 시계에서 너무 벗어나는 것으로 판단하고 왼쪽 비탈로 올랐다. (계속 임도를 따라 가면 적석산 일반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산길도 비교적 뚜렷해 올라서니 밀성박공 묘터이고 그 위로는 길이 없다. 다시 가시잡목 비탈길을 오른다.
일반등산로 비탈 끝에 오른 봉우리. 420봉에서 우측에서 올라 온 확실한 등산로를 만났다. 아래에서 우측으로 휘도는 임도따라 갔더라면 이 길로 올라올 것이다. 어쨌거나 5분만에 길을 만났으니 그리 손해본거는 아니다. 이제 이 길은 적석산 지나 발산재 까지 계속될 것이다. 평탄한 능선길로 ×433봉 직전에 왼쪽으로 [옥수골]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지나고 국수봉에 이른다.
×433에서 일암리
×433 편편한 조망바위가 있는 봉우리다. 발산재 아래 2번국도와 양촌리가 보이고, 저 건너편에 인성산이 희미하다. 하늘이 깨끗하면 여항산, 서북산도 충분히 보일 자린데. 날씨가 추울수록 조망은 조은 법이라...
×433봉 에서
국수봉(×475) 다리 아픈 둘이는 옆길로 바이패스하고 덜 아픈 둘이는 올라섰다. 여기서는 ×433봉과는 반대로 서쪽으로 열렸다. 남쪽으로 옥산골과 건너편 깃대봉(△435.2)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불룩 솟구친 적석산이 지척이다.
국수봉에서 옥산골
적석산 위용
안부로 50m 정도 떨어졌다가 적석산 암벽을 오른다. 굵은 로프가 걸려있다. 한 차례 암벽을 기어오르니 좌우 방향으로 [옥수저수지2km, 일암저수지1km] 이정표가 있고 정상으로는 계단길이다.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일암리 일암저수지 (적석산 등산로 입구)
국수봉
적석산 (積石山 497m) 산세가 마치 돌을 쌓아 올린 듯해서 적석이라고 하며, 적산이라고도 부른다. 진전면의 진산으로서 진해만으로 흘러드는 진전천의 발원지이다. 주능선은 창원와 고성군 회화면의 경계를 이루고 벼락바위·양산바위·마당바위·벽바위·문바위·알봉 등 바위 봉우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정상은 크게 3개의 봉우리로 나뉘며 각기 특이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세 봉우리 중 양촌리에서 보아 왼쪽 봉우리를 적삼봉, 오른쪽 봉우리를 칼봉이라고 부르는데...(두산백과)
두산백과에 나오는 적석산 내용인데 백과사전이라고 다 믿을거는 안된다. 진전면의 진산인지는 모르겠고, 진전천의 발원은 적석산이 아니라 여항산 남쪽기슭이다.
2007년 '부산山사람들' 신년산행으로 가족동반해서 올랐던 적석산이다 (맨 아래 사진). 6년전이니 그 때 객꾼 딸내미 희라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벌써 백두대간을 완주해냈으니 세월 참 무섭다.
대동여지도에도 積石山이고, 어떤 사전에는 '一名 積山 '으로 되어 있어 정상석에도 그리 새겨져 있다. 예전 사진을 보면 여항산, 서북산은 물론이고, 진동 앞바다까지 나오는 그림인데 오늘은 양촌온천 뒷산 인성산만 겨우 알아보겠다.
길이 52m, 너비 1.2m의 철골 와이어 공법으로 가설된 현수교 (2005.12.20) 이 다리가 없다면 40m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되는 다음 봉우리다. 한 가운데를 지나면 다리가 출렁거린다.
카메라 삼각대 설치해놓고 단체사진도 찍고, 오랜만에 거풍도 해본다. 어제 전립선 검사받은 이야기를 꺼냈더니 오만 소리가 다 나온다. 전립선비대증에서 성기능 강화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쏟아내더니 기왕지사 말 나온김에 단체 거풍이나 한번 하자며 아랫도리 다 까내리고 바람을 씌웠다. 이걸 스마트폰에 찍어서 곧바로 카페에 올린다. 숫놈들끼리의 산행에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없으니 별짓을 다해보네 .
단체로 거풍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린다.
자연훼손인가 예술인가.
음나무재, 대방마을
15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목적지인 발산재까지는 5km 넘게 남았고, 음나무재로 뚝 떨어졌다가 다시 깃대봉(522m)을 올라야 하는 수월키만 한 구간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학봉이 저녁 근무도 들어가야 한단다. 고성터널에서 한 시간 가량 허비한 것도 있지만 거리대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구간이다. 음나무재에서 대방마을로 내려가기로 한다. 발산재는 다음에 보자.
적석 글자 그대로 암릉이라 까탈맞은 길이지만 내려가는 거는 일도 아니다. 예전에는 저 넓은 바위 위로 로프가 걸려있어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만, 바위 아래로 뚫린, 흔히 해산굴이라 부르는 구멍을 통해 빠져 나오고, 다음봉인 ×475봉은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지나가는 길도 있다. 혼자서 올라가봤더니 괜히 올랐다 싶은 봉이다. 납짝하게 선 선바위가 특이하다.
×475봉의 선바위
×475봉에서는 순식간에 고도 200이 떨어진다. 내려오니 넓은 안부에 평상이 놓여있고 우측으로 [일암저수지 1.2km]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 따라 앞서 내려가는 셋을 불러 올렸다. 음나무재는 아직 멀었고, 여기서 내려가면 다음에 올라 오기가 음나무재보다 쉽지않으므로, 음나무재까지는 가야겠다.
우틀 할려다가 빠꾸~,
고성터널에서 음나무재 까지
옥수곡 갈림
고속도로 같은 활짝 열린길로 2분 가니 왼쪽 옥수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고, 계속해 2분 더 가면 음나무재다.
음나무재
음나무가 많아 음나무재인가.
질퍽한 비탈 내려가다가 미끄덩 하며 엉덩방아 한번 찍었다. 등산바지 엉덩이에 누런 황토 도장 하나 찍고, 우측 임도따라 내려가니 시멘트길을 만나고, 아래쪽에 철문이 잠겨있다.
선동치로 올라가는 임도
객꾼의 시범에 따라 ... 윗쪽은 사유지인가?
대방마을. (210m) 진전면 일암리 대방마을. 이 골짜기에도 전원주택이 여러채 들어섰다. 바로 앞에 적석산 구름다리가 쳐다보이는 풍광은 조은 동네다. 택시를 부른줄 알았는데, 학봉이 아는 형님이 차를 몰고 대방마을 위에 까지 올라왔다. 발산재까지 택배되고, 학봉 차를 타고 출발지 시락리 정곡마을로 넘어가 내차를 회수했다.
(2007.1.26. 발산재)
(2007.1.26. 적석산)
2007.1. 적석산 단체산행 (OK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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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은산 원문보기 글쓴이: 조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