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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정희 2004-03-15 11:04:49, 조회 : 261, 추천 : 0
제 목 : 대신동과 에덴공원 사이
완성한 원고야. 부담없이 읽어줘. 답글단 친구들의 글을 조금씩 도용했으니 이해해주고^^
대신동과 에덴공원 사이
박정희(28회)
우리 28회는 중학교 무시험 1세대이자 고교비평준화 마지막 세대이다. 1학년 때는 교실이 모자라 6, 7 반은 한쪽 귀퉁이에 연결된 베니어판 교실에서, 8, 9, 10반은 시멘트 건물에서 공부하다가 2학년이 되어 드디어 교사 한가운데 마루바닥 교실로 진출했고, 3학년 때는 골마루가 삐거덕거리는 3층 귀퉁이로 배정이 됐다.
빨간 골덴 체육복 상의로 시작한 꿈 많은 여고시절, 3월 한 달은 자전거 타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험을 보기위한 자전거 타기였기에 아마 계속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친구들은 얼마 없으리라. 환경미화와 합창대회를 거치며 여러 중학교에서 올라온 친구들과 서서히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갔다. 중학교에서는 다들 내노라 하던 친구들이라 처음에는 융화가 좀 어려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산여고라는 하나의 공동체 속에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형성해 갔다.
2학년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시간이다. 고교 평준화 실시로 들어온 1학년 후배들과의 이질감이 약간의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봄의 설악산 수학여행, 교내 합창대회, 여름의 전국체전 마스게임, 가을의 개교기념일 행사 등등 요즘의 고등학생들이 경험하지 못한 많은 추억이 새롭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부산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육대회의 마스게임 행사에 동원된 일이다. 경남여고는 합창으로 결정이 되어 더욱 말이 많았다. 학기 중에, 그리고 여름방학 때도 운동장에 모여 마스게임 연습을 했기 때문에 입시를 눈앞에 둔 3학년의 불평은 더욱 컸고, 날이 갈수록 마이크를 든 무용선생님의 목소리는 높아만 갔다. 더구나 민소매에 핫팬츠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의상이 결정되고, 등 뒤에 스카프를 감추었다가 끄집어내어 꽃을 만들어 내는 깜짝 피날레가 알려지자 며칠동안 모두 술렁거리며 말이 많았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멋지게 해 냈다. 안무도 훌륭했고, 공연도 한치의 실수없이 완벽했다는 평을 들은 것 같았다. 지금도 당시의 마스게임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내가 속한 반은 합창대회에 1등을 하여 헌병부대 위문도 갔고, 가을의 개교기념일 행사 때는 아메리칸 인디언 놀이를 하여 더욱 기억나는 한해였다. 16회 졸업생인 영화배우 고은아가 모녀상을 기증한 것도 그 해였다.
대신동 시절에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3학년이 된 1975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최동원이 투수로 활약한 경남고교가 우승을 한 일이다. 금의환향한 야구팀이 부산역에서 경남고교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바람에 우리도 교실 창문을 통해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이라 그 당시 고교야구 때문에 공부에 많은 지장이 있었던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으리라. 그때 인기절정의 고교 야구선수들이 아직도 감독이나 코치가 되어 활약하고 있지 않은가.
3학년이 되자 곧 교사 이전 계획이 발표되었다. 4월인가 5월인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에덴공원 앞에 있는 새 교사로 이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 대부분이 대신동 근처에서 살던 때라 장거리 통학이 가장 큰 문제였다. 늘어난 통학시간 때문에 대입성적을 걱정하며 이사를 하고 보니 풀장, 가정관 등을 갖춘 최신식 건물이었다. 그러나 소박하고 단아한 목조건물의 운치를 지닌 대신동 학교에 비해 튼튼한 시멘트 건물에 초록색 아스타일 복도의 신교사를 보고 정신병동 같다고 생각한 친구들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수세식 화장실이 생겨 좋았다. 가끔 고장이 나서 화장실 청소에 애를 먹기도 했지만. 그리고 마루바닥이던 대신동 학교에 비해 초록색 아스타일 복도라 청소도 수월했고, 양쪽으로 넓은 창문이 있어 채광도 훨씬 좋았다.
익숙하지 않은 버스 통학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했다. 괴정 어느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밖에서 풍기는 암모니아 냄새 때문에 신촌-희망촌-“똥”촌- 그 다음이 부여고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비스듬히 언덕길을 올라 교문을 통과하여 교실까지 오려면 모두들 아침마다 헉헉댔다. 그래도 승학산 너머 새파랗게 맑은 하늘이 우리 마음을 씻어 주었고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난간으로 몰려나와 낙동강 하구언의 아름다운 노을에 넋을 잃었다. 대한8경의 하나라는 그 유명한 을숙도 낙조를 매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도서관도 넓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했다. 밤늦게 귀가하는 모범학생들을 위해 가끔 숙직선생님께서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는 정겨운 일도 많았다. 여름에는 가끔 몇몇 악동들이 풀장으로 빠져나가 밤수욕을 즐기기도 했고, 그러다가 맥주병 친구가 물에 빠져 허우적댄 사건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
교문에서 교실까지 길 양옆에 가득 피어 있던 철쭉꽃, 뒷산 언덕에 커텐처럼 드리웠던 코스모스와 억새,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던 풀장이 있어 우린 행복했다. 널찍한 가정집의 안방과 각종 요리장비가 완비되어 있던 생활관에서 1박하며 실습을 하기도 했다. 이 역시 당시로서는 최신식 교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육청이나 타학교에서 학교시설을 참관하러 온 일도 많았던 것 같다.
가을이 되어 체력장이 실시되고 대입이 다가오면서 모두들 신경이 날카로워져 갈 때 학교 주변의 숲은 좋은 휴식처가 되었다. 여름방학중 어느 날인가 뒷산쪽에 불이 나서 모두 불 끈다고 물통 같은 걸 들고 뛰었던 일도 있었다. 당시 사진이 취미였던 지리선생님(이정호)께서 늘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셨고, 사진사 아저씨도 덩달아 바빴다. 교무실 앞의 등나무 벤치도 스트레스해소의 좋은 장소였지만 너무 시끄러워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는 일도 많았다.
졸업한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그때를 회상하며 글을 쓰노라니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20주년 홈커밍 때 외국에 있어 학교를 방문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기만 하다. 30주년 때는 반드시 생활관에서 하룻밤 자야지. 그리고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봐야지. 그때 내가 품었던 꿈과 30년이 지난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서, 그리고 앞으로 30년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생각해 봐야지. 우리 인생의 밑거름이 되었던 고교시절, 아직도 가장 허물없이 만나는 동창들이 있기에, 그리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하다.
동백
와하~띵호와...베리 굿...립빠..조타.. 2004-03-15 12:02:08
인숙
정희야! 수고 많았다.
그래도 기억력이 좋은 니 덕분에 오랫만에 여고 시절 3년간을 주~욱 훓게 되었구나.
며칠 전 일도 잘 기억 못하면서 28년 전 일은 어쩌면 이렇게 생생하게 잊어버리지도 않냐?
고마우이, 친구 2004-03-15 12:19:22
들레
오후 나른한 시간 타임머신 탄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은 항상 그립고, 그중 여고시절은 말만 들어도 .....
깜박거리는 기억의 단편이 모인 흔적 조차 기쁨이다.
인숙아, 건망증은 자연스런 것이고, 특히 젊은시절(우리처럼) 머리를 너무 많이 쓰면 그렇다지, 아마. 2004-03-15 14:20:45
인숙
들레야, 나 돈냉이(서울에서 돗나물이라 그러지)
감기 괜찮냐? 2004-03-15 14:52:58
들레
건망증도, 감기도 그러려니 한다.
모든 게 나이 탓 하면 편하지만, 서글프기도.
이제 퇴근인데, 너는 ?
저녁엔 걷고, 달리고, 가끔 가벼운 저녁과 "수다" 로 채운다. 2004-03-15 15:35:49
준
정희야 빠른 수작업이 완성되었네? 수고혔다^^
읽어보니 그때 그 시절이 정말 새록새록하는구만`
아하~!! 우리가 그러케 컸었구나아~~~
들레야 언제 "수다정식" 사줄꺼니?
"수다전골"로 할까? <수다비빔밥>으로 할까ㅎㅎㅎ 2004-03-15 16:11:01
경년
정희야 잘 썼네. 마스게임 한것은 1학년 시절 아니니? 내 기억엔 그렇다. 1,2학년만 한 건 아닐까?
2004-03-15 16:56:10
원희
정희야. 수고했다. 너무 잘 쓴 것 같애. 옛날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네.
우리가 이렇게 추억을 만들며 자랐구나하고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이 가득이다.
엑슬런트 합니다요. 2004-03-15 17:34:15
정희
경년아, 그러고 보니 마스게임이 1학년이었던 것 같구나. 원고는 띄워 보냈으니 그냥 우리들의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하자꾸나. 2004-03-15 17:53:10
임진
정희야 큰일했네. 왕년 실력이 어디 갔을라고. 수고 많았다.
그런데 경년이 말대로 마스게임은 1학년때 했어. 1,2학년이.
특히 2학년 언니들이 불평이 많았지. 운동장에 소집할 때마다
조석연,이학찬 선생님께서 열심히 뛰어 다니시던일 생각나네.
한컷 한컷 슬라이드를 보는것처럼 옛생각이 절로 난다. 2004-03-15 17:53:54
준
아`! 임진이 기억력~!! 성함을 들으니 나두...어슴프레...^^
키작고 안경쓰시고 주임샘이셨나..기억난다 종종거리시던 선생님 모습.
좀머씨 같은 인상이었네..그러고보니.. 2004-03-16 07:16:12
imsun Kang
Smooth writing!! Hungheeya, I didn't know I have another friend who is talented in writing.
Now I know why I didn't remember the remarkable sunset. I rarely stayed late at school for self-teaching, maybe once or twice. When recollecting, U girls, back then, seemed rare animals^^ with your competitiveness. Do U guys still hold that tenacity? Amazing!! 2004-03-16 07:53:10
정희
임순아, 임진이 식구가 너네집 방문할때 아마 우리딸도 깍두기로 끼일꺼야^^
같이 하루밤 재워줘.(우리딸이 하도 미리 얘기해놓으라고 성화라..) 2004-03-16 08:59:45
imsun Kang
Oh my gosh.... what a surprise!! Of course!! No problem!! By the way, What is your daughter's name? Does she and Yungmin attend the same school? Everytime U mention your daughter, I was curious. Somehow I could hold my tongue.( That is very unusual for me because my nickname is Curious Imsun) I didn't look nosy^^.
I can't wait to meet my guests. Bye 2004-03-16 10:48:32
정희
우리딸 이름은 최소진, 엄마들 때문에 영민이랑은 애기때부터 친한 친구.
와세다대학 다니다 지금 교환학생으로 Eugene의 오레곤주립대에 있어. 봄방학이라 영민이 보러, 그리고 친구들이랑 놀러 LA로 유람갈 계획이라네. 참, 요즘 애들 정말 부러워, 그치? 2004-03-16 12:55:09
미숙
우리들 노을과 함께 추억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문제는 흑백 사진이라 인물들
외에는 전부 까맣게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거지. 사진 속 보조가방이 눈에 선하다.
정희야, 너의 산행일지를 받으면서 참 놀라워 했는데..... 너의 치밀한 기억력과
성실한 기록. 너의 번역 실력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겠어. 2004-03-16 15:26:13
imsun Kang
What a lucky generation they are!! How long does she stay in the program? Or I'll ask her directly when she gets here.
Then they must have plan in LA. Junghee, I don't know how U look like. When I meet your daughter, I can put pieces of puzzles together. Tell her to brirng your pictures to LA. Bye. 2004-03-16 21:30:18
준
난 아직 그 보조가방 가지고 있어.검정색 면에 황금색 실로 수놓았던 꽃바구니..
수놓기 싫어서 게으름 피우다가 가사시간 검사 받는 시간에 마추려고 밤늦게
엄마를 괴롭혀 완성했던 아름다운(?)기억~!! 2004-03-16 21:54:22
정희
임순아, 서울동기게시판 20번을 봐. 사진파일 클릭하면 왼쪽에서 두번째가 나야. 임진이 가면 같이 컴 켜서 얘기해보렴. 우리딸은 나와는 외모도, 성격도 정반대!
와~ 준옥아 아직도 그 보조가방을 가지고 있니? 헝겊 책가방은? 책을 잘 정리해서 넣지 않으면 균형이 맞지 않아 애를 먹었지. 2004-03-17 12:39:06
imsunmille
^^^^^^, Jungheeya, I found U. U look graceful. I took U for Kiok^^. Thanks. 2004-03-17 20:55:37
첫댓글 난 이땐 부끄러워 눈팅만 할때였는데 정희가 쓴 글이 바로 나의 소중한 여고시절 이야기라서 옮겨놨었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을 잘 표현한 글을 만나면 너무 반갑고 좋아서 베껴놓는 습관이 있는데 컴이 생기고나선 이렇게 복사를 해 놓고 나니 어느듯 7년전의 글이라도 몇번 클릭만 하면 다시 옮길 수 있어서 참 편한세상이다.
정희야, 너에게도 이 글이 어딘가 있겠지만 친구들의 댓글도 재미있기에 내가 옮겼으니 이해해주렴. ^^
그립구나~언제나 그 때 그 마음 여고시절, 엊그제같은데,어쩌면 기억의 시간은 정지된것 같다~
마스게임했던 단체사진을 좋았던지 좌라락 다 갖고있단다^^
와~ 이런 대작을 정희가 썼다는 말이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은듯하여 부자된 기분이다.
엊그제 일도 기억이 가물거리는 요즘, 자서전 쓰는 사람이 제일 미스테리하고 청문회 불려
나갈 일 없는게 고마울 따름이다. ㅎ 명숙아, 올려줘서 고맙다.^^
정말 기억력 대단타. 그 시절 회상하니 가슴 한 구석이 찌르르 저려온다.
명숙아, 다시 올려줘서 고마워.
여고 시절 이야기들이 더욱 더 사무치게 다가오는 이유는 ???
정말 잊혀진듯한 나의 꿈 많았던 그시절이 어제의 일같이 다시금 피어나며 또 보고픈 얼굴들이 ,,,
해를 거듭할수록 그리움만 깊어지네
정희 명숙 고마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