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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1;12
매임에도 기뻐한다는 바울의 고백은 단순히 욕구를 만족시키는 말초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온전한 기쁨에 거했던 태초의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 됨을 누렸습니다.
왕궁이든 가옥이든, 초장이든 골짜기든 주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기쁨이 바울이 말하는 기쁨입니다.
Paul's confession that he is happy despite being tied up is not simply a peripheral
joy that satisfies his needs. The early man, who lived in full joy, enjoyed being
united with God. The joy that Paul says comes from the fact that he is connected
to the Lord, whether it is a palace, a house, a candle, or a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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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경험 만한 선생도 없습디다. 그런데 그 경험은 오픈 하기 좋은 것만 있지
않고 말하기조차 껄끄러운 것들이 더 많기 때문에 글 감으로 종종 고민 될 때가
있지요. 바울은 자신의 감옥 경험을 가지고 권면의 기초를 삼아 어떻게 어려운
상황에서 바르게 살았는 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I have no experienced teacher in my life. However, I often worry about writing
because there are not only good things to open up and there are many more
things that are difficult to say Sometimes he can. Paul uses his prison experience
as the foundation of his immunity to explain how he lived properly in difficult situ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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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처지가 복음 전파에 오히려 진전을 가져온 측면이 있고,
바울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결국은 풀려나 빌립보교회를 도울 것
이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안타깝게 여긴 일이 있다면 자신이 지금 갇혀있다는 사실보다 그
갇힘 때문에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Paul says that his imprisonment has made progress in spreading the gospel, and
Paul himself is not afraid of death, but he will eventually be released and help the
Church of Bilibbo. As we know, Paul was imprisoned for preaching the gospel.
If he felt sorry for something in prison, he could not preach the gospel because
of the imprisonment rather than the fact that he is now tra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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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4수를 했는데 첫 수시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긴급 구속이 되는 바람에
의정부 감옥에 갇혀 발만 동동 구르며 편지를 쓰던 생각이 납니다. 고대의 노예
마냥 한 손에 수갑을 차고 보호 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고도 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자신은 갇혀 있으나 복음 만은 갇히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I remember my daughter taking the 4th class and being put into emergency
custody on her way back from her first occasional session and being locked up
in a Uijeongbu jail and stomping on her feet to write a letter. Like an ancient slave,
the time spent in a protective room with handcuffs on one hand is long and long
But not now, because he heard that he was locked up, but not the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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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자신이 갇힌 것 때문에 복음은 더욱 진전되었고, 형제 중 다수가 바울의
매임 때문에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담대 하게 주 안에서 신뢰하는 마음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대인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자신을 고소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오히려 복음을 변증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Above all, the gospel was further advanced because of his confinement, and
many of the brothers were said to be delivering God's words without fear,
rather than being discouraged by Paul's appointment. Of course, the Jews
sued themselves for speculation and conflict, but they were rather grateful
that they had the opportunity to transform the gospel during the t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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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결과에 따라 육신의 목숨이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영혼의 구원만은 확신했습니다. 복음 중심의 바른 삶, 성도의 기도,
성령의 도우심이 어우러져 자신이 결국엔 구원에 이를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Depending on the outcome of the trial, the body's life might be over.
At that time, Paul was convinced that only the salvation of the soul was possible.
He was convinced that he would eventually reach salvation by combining the
gospel-centered good life, the prayers of the saints, and the help of the Hol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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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입니다. 저는 이런 대목에서 항상 희비가 엇갈리는 경험을 하는데, 간증을
하는 사람이 죽기 전에 자신의 영접기도를 받고 구원을 받았다고 그것도 구원파
처럼 몇 날, 몇 시까지 들먹거리면 듣고 있기가 죽을 맛입니다. 부디 제 간증이
읽는 사람들에게 졸리고 읽기 지겨운 나눔이 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I'm touched. I always have mixed feelings in these areas, and it's like listening
to someone who makes a testimony that he or she received his or her reception
prayer and was saved before he or she died. I just pray that my proof will not
be a sleepy and boring sharing for r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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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고난이 자업자득이면 흉이지만 명분 있는 나의 고난은 비록 감옥
이라도 지체들에게 힘을 주고 결국 복음에 진전이 있지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호강하며 오래 사는 것보다, 바울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살 때 말입니다. 내게도
자나 깨나 내 삶을 통해 그리스도만 존귀 하게 되는 것이 소원일 때가 있었습니다.
That's right. My justifiable hardship, even if it's a prison, empowers the people
and eventually makes progress in the gospel. Rather than living in this world
for a long time, I wish that only Christ would be respected throughout my life,
whether I was sleeping or waking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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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살아도 그리스도께 유익하고 죽어도 그리스도께 유익하니 상관이 없다면서도
굳이 삶과 죽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인간으로서 죽어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더 원하지만, 살고 싶은 마음도 간절
한데 그것은 전적으로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He says it doesn't matter because it is beneficial to Christ even if he lives and
is beneficial to Christ even if he dies, but he doesn't know what to do if he
chooses between life and death. I want to die as a human being and live with
the Lord more, but I also want to live, and it is called "For the Church," which
I love entir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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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정부 교도소 3상 9방에서 6개월 정도 지낸 적이 있는데 2층인 우리 사동
옆에 재범 방이 있었기 때문에 1심에서 십 년 이상 형을 받은 수감자나 간혹
사형수들을 만날 때면 척 보면 그가 장기수인지 아닌 지를 압니다. 영어의 몸이
되면 얼마나 자유가 그리운지 모릅니다.
I once spent about six months in a three-phase, nine-room prison in Uijeongbu,
and since there was a recidivism room next to our building on the second floor,
I can tell by sight whether he is a long-term prisoner or not when I meet
inmates who have been sentenced for more than a decade in the first trial or
sometimes on death row. When you become an Englishman, you can't tell
how much you miss your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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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은 빌립보서 주제인데 생활하라"를 직역하면
"시민답게 살라"입니다. 제2의 로마로 불린 빌립보의 시민들이 가진 자긍심은
대단했습니다.복음을 가진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나라의 시민입니다. 그렇다면
이 권면은 그 하나님나라의 권면에 따라, 새로운 주, "퀴리오스"이신 예수님을
주권자로 모시고 ,그 나라의 시민권을 가장 큰 자부심과 자랑으로 여기며
그분의 통치에 복종하는 성도가 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Live a decent life of the Gospel" is the theme of the Book of Bibbio, but it is
called "Live like a citizen." The pride of the citizens of Bilibbo, who was called
the second Rome, was great. The saints with the Gospel are now citizens of
the kingdom of God. If so, this page will mean that according to the mandate
of the kingdom of God, Jesus, the new state, "Curios," should be a sovereign,
and be a saint who obeys his rule, taking the citizenship of that country with
the greatest pride and 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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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향한 핍박을 이겨내는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우리가 경험한대로 주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나라의 특권을 향유할 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과 순종을 본받아 나를 낮추고 형제를 귀하게 여길 때 가능하니 복음이
열쇠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로마사회로부터, 그리고 유대인으로부터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회로부터 그리고 교회로부터 당면한 상황과 같습니다.
Where does the power to overcome persecution toward the church come from?
It is possible when we believe in the love of the Lord and enjoy the privilege
of the kingdom of God, as we have experienced. The gospel is the key because
it is possible to imitate Christ's love, humility, and obedience and to lower me
and to value my brothers. The Church of Bilipo suffered from Roman society
and from the Jews. It is the same situation that we are facing from society
and from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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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을 몰라서 멸망하는 자들의 눈에는 성도의 고난이 멸망의
증거로 보이겠지만 신자들에게는 복음의 증거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때문에,
예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이라면, 반대 세력들에게 자신의 소속이 어딘 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는 뜻입니다.
At this time, it is said that "they are not afraid because of those who confront
anything." Why is that? To those who perish because they do not know the
gospel, the suffering of the saints appears to be evidence of the destruction,
but to believers, it appears to be evidence of the gospel. If it is a suffering that
is suffered to preserve loyalty to Jesus or to pursue the way of life in the
kingdom of God, it means that it is evidence of where one belongs to the
opposing fo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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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은혜로 믿게된 이들에게 고난은 필연입니다. 고난은 은혜의 열매인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공동체의 내부
적인 갈등일 것입니다. 모든 갈등과 분열의 배후에는 교만(사이즈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어떤 허물과 부족함이 있더라도 그것이 배도의 죄가 아닐진대
그 영혼 자체보다 결코 크지 않기에, 누군가를 사랑과 용서의 대상, 연합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일엔 신중을 기해야합니다.
Therefore, hardship is inevitable for those who have been believed by grace.
Suffering is the fruit of grace. It is not possible to know exactly what the problems
of the Bilibbo Church were, but it may be an internal conflict in the community.
I learned that arrogance lies behind all conflicts and divisions. Whatever faults
and deficiencies may be, it is never greater than the soul itself, so we must be
careful to exclude someone from the object of love and forgiveness, from the
object of 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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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를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겸손함이 있다면, 자기를 돌보듯 지체를 돌보고,
자기에게 관대하듯 지체에게 관대하다면, 한마음 한 뜻을 이루는 것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 안에서 듣고 싶은 소식은 복음으로 인한 공동체의 일치였습니다.
그 소식이면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복음에 합당하게, 고난 앞에서 담대 하게,
지체 앞에서 겸손하게 살고 있는가?
It will be easier to achieve one mind if you have a sense of humility that considers
your body more than you do, if you care for your body as if you care for yourself,
and if you are as tolerant of your body as you are of yourself. Paul's desire to hear
in prison was the unity of the community through the gospel. The news seemed
sufficient. Am I living modestly in the face of the gospel, bravely in the face of
hardship, and humble in the face of physic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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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고민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내 소망도 살든지 죽든지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게 되는 것인가?
나는 혈기에 왜 매번 무너지는가?
그리스도에게 매인 삶이 기쁜 이유는 무엇인가?
How do I improve the quality of my worries?
Will my wish be elevated through me, whether I live or die?
Why do I break down every time in my blood?
Why is life tied to Christ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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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생각과 태도, 어려운 상황에서 바른 모습(12-18)
a.도입, 나의 판단에 대해 알기 원함:12
b.설명, 복음의 진보로 판단한 점을 설명:13-17
c.정리, 바울의 판단과 기쁨:18
판단의 기초, 참된 구원(19-26)
a.참 구원에 소망을 둠:19-21
b.첨언,내가 사는 것이 빌립보 교회에 유익이 됨:22-26
권면의 요지;복음에 합당한 생활(27-30)
a.권 면 내용, 바른 연합과 바른 싸움:27-28a
b.권면 근거, 고난과 싸움 중에 있는 교회의 구원:28b-30
내적 측면:연합의 원리 제시(2:1-4)
a.전제;권면, 위로, 교제, 긍휼과 자비가 있음:1
b.권면, 연합의 마땅한 모습과 방법: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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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12a)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12b)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2c)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1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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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13b)
온 시위대 안과(13c)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3d)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1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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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신뢰하므로(14b)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14c)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14d)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1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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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15b)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15c)
이들은(16a)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1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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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16c)
사랑으로 하나(16c)
저들은(17a)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1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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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17c)
그러면 무엇이뇨(18a)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18b)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1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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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d)
이것이(19a)
너희 간구와(19b)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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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19d)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20a)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20b)
오직 전과 같이(2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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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도(20d)
온전히 담대하여(20e)
살든지 죽든지(20f)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 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2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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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21a)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21b)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21c)
그러나 만일(2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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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22b)
내 일의 열매일 찐대(22c)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22d)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2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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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23b)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23c)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24a)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2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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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 것과(25a)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25b)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25c)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2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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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26b)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26c)
오직 너희는(27a)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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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27b)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27c)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27d)
아무 일에든지(2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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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28b)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28c)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28d)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2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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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28f)
그리스도를 위하여(29a)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29b)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2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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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29d)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30a)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30b)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3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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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1a)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1b)
무슨 위로나(1c)
성령의 무슨 교제나(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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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1e)
마음을 같이 하여(2a)
같은 사랑을 가지고(2b)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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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3a)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3b)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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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4a)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4b)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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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매임과 복음의 진전_
the apostle's maim and the progress of the gospel
변치 않는 삶과 존재의 목표_
The unchanging goal of life and existence_
복음에 합당한 공동체의 삶_
the life of a community worthy of the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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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내게 매이기를 원하셨을 때 용기가 없어서, 그리고 준비되지 못해서
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주께서 이 때문에 죽으시고 나를 살리셨는데
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그리하여 내게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 기쁨이 되게 하소서. 이 때문에 믿음의 선진들이 옥에 갇히고 참수
되기도 하며 비방과 속상함을 지금도 여전히 당하고 있지만 그래도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이 말하게 되는 그 지경까지 나아가도록 내게도
산 소망을 주소서. 주님, 내가 하늘을 우러러 아무 일에나 부끄러움 없이
살게 하소서. 돈,돈,돈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유익 보다는 교회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착한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예수의 낮아지심을 본받아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셔서 다른 사람들을 낫게 여기게 하소서 또한 생활 속에서
고난과 용감하게 맞서므로 동일한 싸움을 싸우는 지체들에게 힘이 되게 하소서.
When the LORD wanted me to tie him, I fell again because I lacked courage
and was not ready. He died and saved me because of this. Oh, the LORD,
you pity me. So let it be a joy to spread Christ to me. Because of this, the
advancements of faith are still imprisoned and beheaded, and slander and
upsetting are still being criticized, but still, please give me a living wish to
advance to the point where I can speak God's words more fearlessly. Lord,
let me live up to heaven without shame in anything. I wish that living in
me would be Christ, not living with money, money, or money. Thus, I want
to become a good saint who seeks the good of the church first rather than
my good. I emulate Jesus' lowness and make him humble in a different way
Let people be treated, and let them be supportive of those who fight the
same fight because they face hardship bravely in life
2023.12.22.fri.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