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콕의 요정, 날아오르다
글 | 이명아·사진 | 김상현
배드민턴은 축구처럼 스케일이 큰 경기도 아니고, 농구처럼 긴박하고 액티브하지도 않으며, 거대한 돔구장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함성과 응원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16개의 깃털을 단 5g의 셔틀콕을 잡기 위해 네트 위로 소녀가 높이 뛰어 오르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고작 5g의 무게를 가진 공을 치기 위해 가볍게 뛰어 오르는 그 모습에 말이다. 이상하게도 배드민턴 시합은 묘한 친근함과 긴장감,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세계대회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눈시울이 먼저 붉어진다. 웬만한 공원이면 배드민턴 코트가 설치되어 있고,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운동이라는 친근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78년 제1회 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 개인단식 및 개인복식 3위를 시작으로 81년 전영국선수권대회 여자 개인단식 1위, 85년 일본오픈선수권대회에서 남녀복식 1위, 86년 서울 아시아경기 3개 부문 우승, 88년 서울올림픽 3개 부문 우승과 남자복식 2위 등 한국의 배드민턴은 국가 경제가 그리 좋지 않던 시절부터 꾸준히 세계수준을 자랑해 왔고, 가장 오랫동안 우리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스포츠 중의 하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난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서 결실을 맺지 못한 배드민턴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겨주었고, 아쉬움의 기저에는 향후 배드민턴의 미래에 던지는 짙은 안타까움과 고뇌가 자리해 있었다.
더욱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방수현 이후 이렇다 할 선수가 배출되지 않은 배드민턴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듯 했다. 적어도 지난 7월 열린 제50회 전국 여름철종별배드민턴 선수권대회에서 17살의 빛나는 별, 성지현 선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배드민턴)선수 하겠다고 할 때 부모님이 반대했었어요. 힘들다고요. 그래도 배드민턴이 그냥 좋았어요. 경기에서 이길 때의 기분이 정말 좋거든요. 매치포인트의 순간에 제 공격이 먹혀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의 짜릿함 말로 설명이 안 되죠.”
유전이란 역시 무서운 것일까? 성지현 양의 부모는 1980년대 한국의 배드민턴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선수인 성한국 대교 감독과 김연자 한체대 교수. 성감독은 1986년 전영오픈에서 남자 단식 4강에 오른 한국 남자배드민턴의 간판스타였고, 김교수는 전영오픈 여자 단·복식을 석권한 1988년 서울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였다. 특히 운동선수의 힘든 생활을 경험한 엄마 입장에서 딸이 운동을 하겠다는 결정을 무조건 찬성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 엄마의 반대에도 운동선수를 선택한 성지현 선수는 배드민턴스타 부부의 재능만큼이나 큰 열정을 더 많이 물려받은 모양이다.
“제가 고집해서 시작한 건데 중학생이 되어서는 성적이 좋지 않아 부모님한테 죄송했죠. 그냥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 했어요.”
6학년 때 원천배초등학교 배드민턴대회에서 단식 1위를 차지하는 등 초등부에서 줄곧 상위권에 들었지만 중등부에선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마음고생이 크기도 했으련만 성지현 선수는 특유의 낙천성으로 처음으로 찾아온 자신의 슬럼프를 이겨냈다. 승부욕은 엄마인 김연자 교수를 닮았지만 긍정적이고 당찬 성격은 아빠 성한국 감독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중3이 되면서 주니어대표로 발탁되는 등 실력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전국배드민턴 선수권대회를 준비할 때는 부모님의 응원도 성지현 선수의 실력발휘에 큰 보탬이 됐단다.
“뒤에서 하는 공격적인 플레이가 일품이에요. 특히 손목이 유연해서 공격할 때 공이 어디로 튈지 상대편이 예상을 못하거든요. 키가 큰 것도 선수로서 장점이죠.”
이용선 국가대표팀 코치는 성지현 선수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학년차에 따라 실력차가 큰 배드민턴에서 고등학교 1학년이 쟁쟁한 선배들을 물리치고 정상을 차지한 동시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성적은 파격에 가까웠다. 특히 선수들의 세대교체에 고심하고 있던 배드민턴계에 성지현 선수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용선 코치는 당장의 대회 성적에 연연해하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선수의 성장을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인 스스로 열심히 하는 것도 있고 타고난 재능도 있으니 이대로만 커 나간다면 차세대 선수가 될 거라 기대하죠. 일단은 체력 훈련이 많이 필요해요. 아직 어려서 근력이나 체력적인 면에서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평소의 훈련도 웨이트트레이닝과 기술훈련을 각각 50% 비율로 하고 있어요.”
코앞으로 다가온 전국체전 준비로 여념이 없는 성지현 선수는 이용선 코치의 지적에 따라 웨이트 트레이닝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이겼다고 생각한 경기에서 체력부족으로 패한 경험이 쓰라렸기 때문이다. 또한 듬직한 배드민턴 차세대 주자답게 강한 승부욕으로 성적이 오히려 안 나올 때도 있다며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다짐한다.
배드민턴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어른처럼 의젓해지는 성지현선수. 그럼에도 쉬는 날에는 <트랜스포머>와 같은 SF와 스릴러 영화를 즐겨보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친해지면 말이 많아진다며 맑게 웃는 모습은 영락없이 열일곱 살의 소녀 그대로다. 하얀 깃털을 닮은 순수함으로 세계무대를 향해 비상하는 성지현 선수. 새하얀 백지의 무한한 가능성만큼이나 그녀의 미래는 맑고, 눈부셔 보였다.

2007년 삼성전기배 배드민턴 대회 여자단식 2위
2007년 제50회 전국여름철종별배드민턴선수권 여자단식 1위
생년월일 | 1991년 7월 29일
신체조건 | 175cm / 56kg
취 미 | 영화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