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일정이 늘 그렇듯 식사 4끼 하고 왔습니다. 첫날 점심과 저녁, 둘째 날 아침과 점심 순으로 올립니다.
갯벌로 유명한 순천만, 그리고 조금 옆으로 가면 벌교, 그래서 생각난 메뉴가 '꼬막정식'.
그런데 결국 꼬막정식은 안 먹고 왔습니다. 바로 1박2일의 딜레마 때문입니다.
'1박 2일의 딜레마'. 제가 이 표현 가끔 쓰는데요, 이런 게 확실히 있기는 있습니다.
KBS 예능 프로 '1박 2일'이 다녀가면 그 곳은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정 명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다.
반 명제: 그 유명세는 묻지마가 된다.
합 명제: 글쎄요? '앞으로 지켜봐야지요!' ^^
맛집의 경우에 특히 그렇습니다. 안동구시장에 가면 찜닭골목이라고 있는데, 이곳에는 안동찜닭을 파는 집 수십 군데가 시장통 양 옆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생긴 지 30년이 넘었다고 하는 이 찜닭골목에 유독 한 집만 학생 손님들이 줄을 섭니다. '1박 2일'이 다녀갔기 때문입니다.
찜닭뿐이겠습니까? 요기가 이승기가 앉았던 자리라고 써붙여 놓은 맛집들 전국에 수도 없이 많습니다.
'1박2일'의 위력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미 수명을 다한 'KBS MBC SBS 맛자랑멋자랑, VJ특공대, 맛대맛 나온 집'보다는 약발이 훨씬 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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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꼬막정식도 바로 이런 1박2일의 딜레마를 치르는 중입니다. 이승기, 이수근, 은지원이 엄지를 치켜들었던 바로 그 집이야 여전히 맛있겠지만 문제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식객들 수요에 맞춰 벼락창업한 꼬막정식집들입니다. 맛을 보장 못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수입꼬막까지 등장했다는 후문입니다. 당분간은 지금의 인기가 계속되겠지만 가짜(?)를 방치하다보면 결국은 진짜까지 피해를 봅니다. 공멸의 시작일 수 있다는 거지요.
순천시청 근방에는 풍미정이라는 꼬막정식집이 있습니다. 본래부터 맛집이었는데 벌교에 불어닥친 '1박2일 바람'의 간접 영향으로 최근 더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이 집을 갈까도 고려했었지만 최근엔 풍미정도 '기업형 맛집'의 초기 증세가 보인다는 지인의 조언에 따라 과감히 꼬막정식은 포기하고 대신 '남도 한정식'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가게 된 곳! 순천 대원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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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뭐랄까? 국적불명의 유치뽕이라고 한 마디로 치부하기엔 마케팅을 감각적으로 아는 듯한 포스! 순천만, 낙안읍성 그림에 돌확으로 만든 화분들까지… 일단 '사람들 눈에 띄어서 나를 알리겠다'는 목적만큼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15~20년 전쯤, 광고 교과서에도 없는 변칙 마케팅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파스퇴르우유의 데자뷰가 스칩니다.
'배도 안 고프냐? 음식점 담벼락에서 별 신소리를 다 하네!'
'아 예, 제가 좀 그래요. 이제 곧 주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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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정식 주세요!"
"추가 메뉴 없고요?"
"없어요! 막걸리나 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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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사진이 없어보이게 나왔지?)
주인장께서 직접 가위 들고 이건 뭐고 저건 뭐고 설명해줬는데 거의 기억이 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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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토하젓이고요, 굴의 알로 만들었다는 귀한 진석화젓 사진은 어디 가고 없네요.
아무튼 반찬 하나하나가 고유의 풍미가 난다고나 할까요? 요란하고 과장된 맛이 아니라 쌩얼 같은 깊은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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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돼지국밥의 진수! 건봉국밥입니다.
돼지국밥하면 어김없이 따라붙는 타이틀이 '부산 명물'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있는 줄도 몰랐던 순천 돼지국밥이 지역을 대표하는 부산 돼지국밥보다 더 맛있다니요!
아니지! 맛은 각자 취향따라 평가가 엇갈릴 테고 확실히 '순천 > 부산'인 것은 바로 국물입니다. 돼지육수 특유의 누린내가 전혀 없습니다.
주인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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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은 뭐 그냥 그렇고요, 돼지간하고 순대가 써비스로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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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섞인 거, 머릿고기만 들어간 거, 내장만 들어간 거 등등 각종 응용 돼지국밥들이 있고 곰탕, 육개장에 콩나물국밥까지 있습니다. 근데 대부분 돼지국밥을 시켜 먹습니다.
오른쪽 모니터는 실시간 주방 CCTV입니다. 위생에 자신있다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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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아랫장의 맛집 건봉국밥이었습니다.
바로 옆집 출입문에 쓴 글씨 보이시죠? '착한가격 6,000원'
유명 맛집과 바로 옆에서 경쟁하는 고육지책입니다. 그런데 저 집도 맛있다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안 먹어봤으니 장담은 못 하겠고 다음에 순천 가면 저 집에서 꼭 한번 먹어 볼랍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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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입구에 있는 전형적인 관광식당 '장원식당'입니다. 이런 집은 조선팔도 어디를 가나 메뉴가 똑같습니다. 산채비빔밥, 산채정식, 된장찌개 백반. 그래서 사실 큰 기대는 안했습니다. 아침 한끼 간단히 때우고 점심 거하게 먹을 생각만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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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걸! 반찬 하나하나가 다 맛깔스럽더군요.
백반과 비빔밥을 함께 주문하세요. 그러면 백반 반찬에 비빔밥까지 먹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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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구례구역 근방 민물매운탕집 고향산천에서 점심 거하게 먹고 귀경길에 올랐습니다.
우리는 참게매운탕과 잡어매운탕 그리고 빙어튀김을 먹었습니다. 역시 매운탕의 깊은 맛은 민물매운탕입니다.
여기서 섬진강을 건너면 구례이지만 구례구역의 행정구역은 순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온전히 순천만 다녀온 것이 맞습니다. 여기서 구례를 가려면 섬진강을 건너야 합니다. 구례구역에 내리면 구례가 없으니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이 연상되네요. 역에서 내려 서울대 정문까지 30분을 걷는다는 서울대입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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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엔 서울대가 없고 구례구역엔 구례가 없고 붕어빵엔 붕어가 없지만, 우리가 먹은 빙어튀김엔 빙어가 있고 참게매운탕엔 참게가 있습니다.
그리고 순천엔 순천만이 있습니다.
또, 제겐 여러분이 있습니다.
순천 여행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복받을겨 ^^
첫댓글 ^^후기 맛깔나게 써주셔서 만화보듯이 키득 키득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네요 . 이러면 내년 여행부터 열씸히 따라다닐수 밖에 없잖아요!
"정말요? 성공이야!"
올해 아직 남았어요. 12월 28일 창덕궁, 북촌 갑니다. ^^
순천에 여러번 가봤는데 다닌곳은 비슷한데
먹는것은 완전 다르게 먹었었네요~^^
서울의 고궁과 북촌은 같이 가고 싶은데...
날짜가 28일 이네요? ^^;
대박 님이 오셨네! (헉! 천기누설?)
그럼 내년 시즌을 기약합세다!!
가는 곳 마다 어찌나 맛있던지... ㅎㅎㅎ
특히 돼지국밥은 처음 먹어 보는데 군내도 안나고 정말 맛있었습니다.
근자에 다욧하며 2kg 감량했었는데 이번여행 덕분에 다시 원점... 흑흑
혼자 여행하게 되면 먹는 것엔 소홀하게 되던데 이번처럼 여행하며 호사를 누리긴 처음입니다... ^^
여행하면서 먹는 거 소홀하면 안 되지요! 자료실에 있는 일정표 참고하시면 여행중 흡입 스케줄에 적으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
@회화나무 예 참고하지요... 감솨~~~ ^^
아 너무 미워요 회화나무님 고문을 하시는 군요
별도 다녀와야 겠네요
제 짐작에 길동아빠님은 건봉국밥에서 밥 3그릇 드셨을 겁니다.
글로.. 사진으로는 전할 수 없는 맛..
그맛을 느끼려면 따라 다녀야 하겠군요..
에혀~ 언제 함 가려나~~
다음 주 창덕궁 가잖아요? 점심은 맛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