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위눌린 것도 아닌데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잠을 설쳤습니다.
숍에 불을 켜고 대문을 열어 놓은 채로 다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일곱 시입니다.
자동으로 운동장을 돌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가진단을 해봤지요. 딱히 컨디션이
좋지 않을 이유가 없고만, 몸 상태가 별로여서 혹시 폐가 문제가 있는 것이
-
아닌가 하고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거 나 늙는 거지요. 죽을 준비를 아직 못했는데
이제라도 서서히 준비해야겠습니다. 반세기를 산 놈이 뭔 걱정이 이리도 많고, 할 것,
먹고 싶은 것이 아직도 태산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운동장을 설렁설렁 돌고 들어와 어제
본방 업데이트가 되었는지 확인해봤는데 다행입니다. 골치 아플 땐 “차이나는 도올”이
박카스입니다.
-
오늘 일일 게스트는 김 예진(여, 판소리)입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를 “벗고
놀자”로 개그 치는 철민 이가 대국민사과를 한 후, 일일게스트가 소리 한 자락을
하는데 언제 들어도 우리가락은 된장국마냥 좋습니다. 요즘 “태양의 후예“가 한류 열
풍의 대세랍니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 균의 누나인 허 난 설 헌 이 최초의 한류였다고
-
합니다. 그 이후 107편의 한국 드라마가 중국을 장악했는데 송 중기는 5만 원 권 지폐
속 신사임당 대신 들어가 있고 혼인 증명서로까지 합성될 만큼 대박을 치고 있다 네 요.
중국에서 특히 한류가 먹히는 이유가 문화나 정서 때문에 그렀다니 도올 샘의 말처럼
정말 중국과 한국은 한 민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들은 한류가 중국에서 인기를
-
치는 이유가 중국에 40-50대의 문화 공백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답니다.
뭐 한 민족이든 아니든 이웃사촌끼리 서로 돕고 살면 좋겠습니다.
화이트 컨 셉 으로 들어온 패션이스트 도올 샘이 19세기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모 택동 도, 장 개석도 아닌 바로 장 학량이라고 합니다. 장 학량은 그는 누구인가?
-
19세기 중국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사건은 아편전쟁이며 20세기 한국역사의 큰 사건은
6.25사변인데 아편전쟁과 6.25는 태평천국운동이 똑같은 영향을 줬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18세기G1이었던 중국이 섬나라 영국에게 아편으로 인해 초초화 된
것은 쿠바가 미국을 점령한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바로 이 무렵 “태평천국” 운동이
-
일어났는데 우리나라는 그때 최 제우의“동학“사상이 있었습니다. “인내천“이란 곧 사람이
하늘이란 뜻입니다.”새로운 천명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 “고 했던 동학사상처럼
”태평천국운동“을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날 “한울님”을 섬기는 천도교의 원조가
동학(1824-1864)인 셈이지요. 동학운동이 철 종 때 시작되었으니 천주교가 이 땅에
-
들어온 시기와 맞물린다고 보면 됩니다. 1대 교주 최 제우, 2대 교주 최 시형 3대 교주가
손 병희 선생님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운동으로 개신교가 가톨릭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처럼
동학운동의 배경가운데는 농민운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3.1운동 당시 기독교가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고 하는 엉터리 목사들의 설교는 뻥이었고 천도교가 만세 운동을 주도한
-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만큼 역대 급 교주가 많은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자랑인지 아닌지는 알아서 판단하시라.
-
재밌는 것은 천도교의 교리나 사상이 초월적 존재를 섬겼고 성령의 내재와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서학(천주교)에 천도교가 흡수된 부분이 생긴 것은 어쩌면 민중이나 민족 같은
한국적 정서를 토착화 했던 가톨릭의 교리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태평운동의 교주는 홍수천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과거에 수차례나 낙방을 했다고 합니다.
-
태평천국의 홍수천은 새로운 국가를 선포하는 태평조서를 만듭니다.
짚고 넘어갈 부분은 성경이 번역될 때 천국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곡해된 부분이
이 무렵 상당부분 오역되지 않았는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가 도올 샘의 강의를 듣다가
깜짝 놀란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프로테스탄트에서 말하는 천국개념입니다.
-
제가 그날 무릎을 치고 적어 놓은 도올 샘의 천국 개념을 소개할까 합니다.
중국배우기에 열 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올 배우기가 돼버렸습니다.
아직까지는 그 양반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배울 만 한 내용이 무궁무진 한 것만을
틀림없습니다. 바꿔서 말하면 도올이 무식한 좌파요 기독교의 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겁니다.
저는 성경을 20년 이상 꼼꼼하게 들여다본 개신교도로서 한국기독교의 가장 시급한
문제가 천국에 대한 개념에 있어서 장소적 개념과 미래적 이해가 가급적 빨리 성경의
의도대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도올은 천국에 대한 정확한
-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 분의 심플한 천국 개념을 소개할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표현은 너무도 자주 사람들에게 오해되어
왔습니다. 나라(kingdom)가 명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곧 반성 없이, 그것은 대상을
지시해야만 한다고 상정해서 하나의 장소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
-
그러나 실상 그것의 제 일차적인 지시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the rule of God)을 지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21세기 신학의 핵심입니다)이러한 문제는 하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구문에 오면 더욱 첨예화됩니다. 이 경우는 "하늘"이 "하나님"의 대 용어(substitute)로
-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이라는 말에 대한 유대인들의 금기 적 습관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대신 “하늘”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늘"은 보통 일종의 장소술어(place term)로
간주되지요. 이 결과 나타나는 경향은 이 구를 "하늘에 있는 나라"(the kingdom which
-
is in heaven)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인데 이것은 명백히 착오적인 것입니다.
이천년의 역사동안 하나님나라가 장소로 오해되어 온 것은 국가의 3요소 중에 하나인
영토(장소)개념 때문인데 하나님나라(the kingdom of God)는 성경 어디에도 하늘 어디에
있다고 지시하지 않았고, 도올이 언급한대로 나라는 “통치”를 의미하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
베드로 사도가 오순절 날 성령 강림의 역사를 “너희들이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사건으로 해석하였습니다(행2:36). “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인류의 주와 그리스도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그의 다스림을 받기
싫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의 다스림이 싫어서 시날에
-
바벨 성을 쌓았던 조상들처럼 또 다시 인류의 대안으로 보낸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므로
다스림을 스톱시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시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십자가가 저주의 상징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선택이 반역이었다는 것이고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
사건이 하나님나라를 새로 시작하는 시점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가 끊어
졌던 바벨 성에서의 언어 단절을 오순절 성령강림을 신호탄으로 새롭게 통치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죽으면 가는 구천도 아니고 천당도 아닙니다.
벌써 시작된, 지금 임한, 하나님의 다스림이 핵심입니다.
-
태평천국의 바이블 "태평조서"는 국가 작동 시스템입니다.
여기서 중국인들의 “객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곳은 또 다른 사회입니다.
미국 사회의 유대인 같은 것인데 4세기 유비와 제갈량이 세운 촉한의 후주인 유선이
지방 순시를 마치고 청두로 되돌아가다가 뤄따이(객가)의 한 우물에 옥대를 떨어뜨려
-
이름이 지어진 이래 17세기. 명말청초의 전란과 수십 년간 중국을 휩쓴 홍수·가뭄의
재난을 피해 화남지역에 살던 객가들이 쓰촨으로 흘러 들어오면서 지금까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답니다. 이들은 “토루“라는 아파트 형식의 흙집을 짓고 살았다니 유대인들의
막카비 가문이라고 해야 할까? 쿰란 공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화교 중에서도
-
오리지널인 객가인 중에 홍수전, 쑨원, 송칭링, 주더, 덩샤오핑, 천이, 예젠잉, 후야오방,
궈모뤄 등 중국 근현대사를 주름잡은 풍운아 및 혁명가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리카싱 홍콩 장강실업 회장, 탁신
치나왓 전 태국 총리 등 동아시아 지도자 및 부자들이 모두 동방의 유태인이라 불리는
-
객가의 후예랍니다. 태평천국의 종교적 지도자는 홍 수천이었는데, 졸 정원 옆 충왕 부에
“이 수성”이 실질적 태평천국의 대 빵이었습니다. 신해혁명으로 무너진 민청이후
군벌시대가 도래했을 때 민병대는 자연스럽게 토벌대의 주체가 됩니다.
아편전쟁(1839-1860)을 진화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군의 지도자 중국번이 이 수성을
-
토벌하기 위해 작전을 펼쳤습니다(1851-1864). 이윽고 이 수성을 체포한 중국 번 왈,
“바로 너냐? “패장 이수성이 잡혀가는데 연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엎드려 경배를 했답니다.
태평천국운동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이수성은 호리호리하고 여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포로가 되어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태평천국운동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위해 하루7000자씩
-
20일 동안 기록을 했답니다. 그리고 이수성휘하의 장군 하나가 손 문의 서당 선생을 했으니
이것이 신해혁명의 불씨가 된 것입니다. 역사란 이런 것입니다.
내가 왜 태평천국을 언급했냐면 장학령을 얘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장학령의 부친은 장작림인데 그는 토비출신입니다. 그가 동북 관장 비적 관료로
-
가장 하부 구조가 단단한 동북 삼성을 관할하였습니다.
장작림은 “교육은 지도자의 의무“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모은 모든 돈을 개인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고 학교나 교육 사업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리고1919년 우리나라에서는 3.1민중 독립 항쟁이 일어날 당시 장학림의 아들 학령이
-
황포군관 학교에 입학하여 심양에서 서구적 교육을 받습니다. 모든 커리큘럼을 올 킬한
장학령은 차세대 리더로 급부상합니다. 하루는 장 백년(중국근대 교육의 아버지)의
수업 중에“중국은 내가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도대체 당신이 누구 길래
뻥을 치냐고 학령이 덤볐답니다. 그때 장 교수는 여기서 “나”란 바로 “너다“고 했답니다.
-
뭔 말인지 모르면 통과. 이 일 후로 학령은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북강무당에 입학 무신 곽송령을 만나지요. 당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차이는
돈이 없었던 모택동의 군대는 아편을 안 했고 부르조아였던 장개석 군대는 아편을 해서
국민당이 망한 것이랍니다. 그럴 듯합니다. 곽송령, 한숙주는 장씨 부자를 개똥으로 보았는데
-
학령이가 삼고초려해서 사제를 청했다고 합니다. 잘 가르치고 잘 배워서 졸업을 했는데
제자는 장군이 되었고 스승은 그 제자의 참모장으로 다시 만납니다. 곽참모는 제자인
상사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마음속엔 항상 동북 군 확대는 잘못된 전쟁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본 놈이랑 싸워야지 왜 우리끼리 싸우는가? “ 그러던 중 일본 시찰을 갔다가
-
장씨가 일본 관동군과 내통한다는 사실을 알고 “도가”를 선언합니다.
1925년에 일어난 정예반란의 모토는 “내전을 중지하라. 장 작림은 하야하라, 장학령을
1빠로 세우라“ 이었답니다. 이대 토벌 대장 학령이가 스승인 곽송령을 설득하기 위해
편지를 썼는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 결국 거류하에서 두 사람이 운명적인
-
대결을 하게 되었는데 학령이 삐라 작전으로 (“장가인은 절대 장가인을 죽이지 않는다.”)
병사들을 설득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제자가 이겼으니 청출어람을 둔 곽송명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스승 사이에서 번민하던 학령 역시 적군 파에 의해 살해
당한스승을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감동입니다. 제가 개척 교회할 때에 집사님
-
중에 곽 종명 집사님이 계셨는데 보고 싶네요.
서안사변으로 장 개석을 감금했을 때 그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가 “아무리 정당한 명분이
있더라도 인간적인 관계를 망치지 않겠다. “는 학령의 의지가 이때도 작용된 것으로 봅니다.
장정(중국 홍군이 강서 성 서금에서 섬서 성 오기 전까지 국민당군의 토벌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12,500km를 걸어서 이동한 행군)때, 충분한 군사력을 가진 장 개석이
모택통의 공산당을 박멸시키지 못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아들 장 경국 때문이었고,
도 하나는 군사작전(위초 작전)때 서북초비총사령관 장 학령은 일본침략을 함께
-
막는 것이 급선무다. 공산당 박멸은 옳지 않다는 여론을 수렴한 후 장 개석을 납치.
구금하여 강제로 국공합작(국민당과 공산당 힘을 합치는)을 성립시켜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역사적 인물들은 함부로 키워지지 않습니다(도올 샘 어록).
-
각본대로 철민이 질문합니다. 대한민국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2030세대의 선거 반란“은 잘못된 대자보입니다. 반란이 아니라 혁명입니다.
이 땅의 주체들의 민의가 반영된 결과로 민주체제를 세우는 계기랍니다.
저도 100% 동의합니다. 그러면서 80년 민주 항쟁을 도울 샘이 해석하기를
-
천안문 사태에서는 민주주의를 얻지 못했고 겨우 개혁개방이라는 사탕을 따냈는데
광주 민주 항쟁에서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획득한 역사적인 사건이라면서 이토록
어렵게 따낸 민주를 개판치는 정치인들에게 선거를 통해 혁명을 보여준 총선이라고
자평했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정치는 젊은이들을 위한 정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네요.
-
처가가 금남 로이었던 도올 샘이 목격한 80년 5월 광주를 저도 목격했습니다.
5.18기념식 주제곡이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다른 주제곡을 선정하기위해
보훈처가 예산 4,800만원을 확보하고 공모에 나선 일로 한동안 여론이 들끓었는데
제 입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5.18기념식장에서 어떤 노래가 불러질지 기대됩니다.
"금남로에 꽃잎처럼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의 노래를 아시나요?
-
이곡이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78년 6 월인데요.
Michel Polnareff의 원곡을 박 인희 씨가 편집해서 음반을 냈는데 그 때는 그다지
주목을 못 받았고 5.18 이 발생한 후로 어느 무명의 편곡 자에 의해 다시 가사가
붙여지면서 5월의 노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난동-사태-의거, 민중항쟁으로 명칭이
-
변천해온 5월의 그 날 무렵, 저는 전남 담양의 D고교에 다녔습니다.
전남 대 80학번의 시위를 돌파구로 해서 시작된 광주시민의 시위는 다음날인
19일,2만여 명 이상의 가두시위로 발전하였고 그 당시의 주요 요구사항은
`계엄령 해제, 전 두환 퇴진, 김 대 중씨 석방`등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이렇게 타오르기 시작한 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난데없이 공수부대가 투입
되었는데 무차별로 주검이 되어 나가는 부모 형제를 빤히 보고서 혈기가 없는
사람이라도 눈이 뒤집어 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무등산 타잔(박 흥숙)을 적어도 이해는 합니다,
-
제가 5월19일경 하복을 찾아 가지고 오다가 시민군이 탄 대형버스(아세아자동차)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 머리띠에 붙어있는 구호가 전 두환 퇴진 이었습니다.
소총으로 무장한 시민군들은 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광주 시민들의 열 열한
지지를 받으며 전남일대(나주, 장성, 담양 등)를 제압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
무기한 휴업에 철없이 기뻐하기도 했지만 광주에서 통학하는 친구들의 생생한
진술은 지금도 내가 이따금씩 미친놈처럼 5월가를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때가 딸기 철이었는데 광주로 출하하지 못 한 극상품 딸기를 한 상자에1,500원에
거저먹었고 광주에서는 배추 한 포기에 3,000원에 거래가 된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
1980년 5월 18일 그 날 휴교령이 내려 모든 대학이 문을 닫았습니다.
전날 밤 학생회 간부들은 대부분 체포됐고, 남은 사람은 잠수를 탔습니다.
서울에서는 간헐적인 시위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러나 잠시뿐
스크럼을 짜기도 전에 흩어졌다고 들었습니다.
-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은 전경들과 달랐습니다.
누가 퍼뜨렸는지 모르는 북한군 개입설은 당시에도 일부 떠돌았답니다.
서울에선 대학생들의 저항이 거의 사라졌고 계엄군에 검열당한 신문은
녹슨 바리캉으로 깎은 머리같이 군데군데 허연 자국을 남긴 채 배포됐었습니다.
-
금남 로에서 충장 로(도청)까지는 약 2km정도가 되는 거리로 주말이면
벌써 차 없는 거리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명동거리 같은 곳입니다.
저는 종종 교복대신 사복을 하고 나가서 삼양백화점 앞 우체국 까지 순찰을 했고
그 무렵의 겨울엔 어머니 삯바느질 감을 Delivery하느라고 곧 잘 다녔었던 곳입니다.
-
"왜 쏘았지(총) 왜 찔렀지(칼)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 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투쟁 없이 어떻게 헤쳐 나가리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
대머리야 쪽 바리야 양키 놈 솟은 콧대야
물러가라 우리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피. 피, 피"
-
오늘의 차돌 상: 헤이니
작품 속에 꽃잎들은 5월의 영영들이 아닐까?
2016.5.2.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