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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 변의 원 혼 (寃 魂 )들....
여기는 노량진에 있는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사육신 (死 六 臣)의 묘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나는 역사의 현장을 좋아해서 이곳을 몇번을 찾아오곤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카페지기를 하면서 또는 역사를 눈으로 답사하다가 내가 하는일을 멈추고 은퇴하면서 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것이다.글을 쓰기시작한것은 공직을 은퇴하고 교사자격이 있어서 학교 교단에 서면서
부터 글을 쓰기시작한것 같다. 물론 직장에서 보고서 또는 학교에서 리포트등등 글을 쓰는일을 해왔다
정확히 이야기해서 2004년 공직에서 은퇴하고 2004년 9월부터 전남곡성에 있는 고달초등학교에서 3개월간
계약제 교사를 시작한것이다.
그 초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이 배려해서 학교 관사에서 생활을 하였고 그것도 교장선생의 관사를 쓰도록
해주었다. 서울에서 그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향농촌학교로 가니 정말로 낭만적이고 앞으로는 섬진강이
유유히흐르고 지리산 자락의 천마산이 옆에서 반기어 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 국어시간에 또는 년말에 학교교지를 만드는데 학생들의 창작글을 지도하면서 학생들의 작품을
교지에 실기 위하여 부득히하게 글쓰기 지도를 하여야 했다 .초등학생들의 글을 보면 아주 순진하게 자기의
마음에 생각한 내용을 글로 표현함을 알수가 있다. 물론 글솜씨가 서툰것은 말할수가 없다.
그해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글을 쓰는 회수가 더많아졌다. 또한 그해 년말에 학교교지(校 誌 )를 발간한다고
해서 교사기고란에 내가먼저 자칭해서 나의 학생들에게 해주고싶은 이야기를 글로써 표현해서 담당선생님에게
제출했더니만 교지에 나오게 되었으며 내가 지도한 학생들의 작품이 교지에 실렸을때는 기분이 흐믓했음을
솔직히 말해서 느꼈다.
나의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나는 본카페 "삶의 이야기방"에 " 영월 청령포의 고혼 (孤 魂 )"이란 주제로 단종임금에 대해서 그리고 왕방연의
서강에서의 작품 그리고 어제시 (御 製 詩)등의 작품을 곁 들여 가면서 글을 2회에 걸쳐서 글을 써나갔다
그 연장선에서 ' 한강변의 원혼들"을 쓰고 싶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역사를 많이 공부를
한것은 아니다. 단종때 수양숙부가 단종을 페위를 안하고 또한 계유정난이 일어나지 않했다고 가정을 할때
그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것인가에 대한 가정이다. 역사에 가정(假 定)이란 있을수가 없다.그러나 나는 가정을
해보면서 나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여기서 잠시 영월의 청령포에서의 어제시(御 製 詩 )와 왕방연의 서강(西江)
앞에서의 애닮은 단종의 그리움를 詩 를 한편 살펴보자
御 製 詩
千 秋 無 限 寃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채
寂 寧 荒 山 裡 적막한 영월의 땅 황량한 산속에서
萬 古 一 孤 魂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蒼 松 繞 舊 園 푸른 소나무는 옛동산에 우거 졌구나
嶺 樹 三 天 老 고개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溪 流 得 石 喧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하다
山 深 多 虎 豹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不 夕 掩 柴 門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왕 방 연
千 里 遠 遠 道 천만리 머너먼 길에
美 人 離 別 袂 고운님 여의웁고
此 心 無 所 着 내마음 둘대 없어
下 馬 臨 川 流 냇가에 앉아으니
川 流 亦 如 我 저물도 내 마음 같아
鳴 咽 去 不 休 울어 밤길 예 놋는다
여기에 사육신은 박팽년,성삼문 ,하위지,이개 등등은 당대의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집현전학사들이다.
내가 책을 보기로는 이 집현전(集 賢 殿)학사들이 조선의 개국초의 국가발전을 이끌고 갈 중요한 인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수양대군이 이 집현전 학사들을 고문을 시키고 죽이고 싶어서 했겠는가?
자기와 뜻을 같이하지 않고 왕과 신하로써 관계가 아닌 일개 왕족으로써 그것도 왕권을 찬탈한 숙부로
보고 단종에 충신을 다하고 갖은 회유와 권유와 형벌을 가해도 단종에 대한 충성스러운 신하로써 충성을 맹세하니
수양대군은 이들에게 당대의 최고의 형벌로 처형을 하게 되는것이다.이왕 여기서 이야기가 나왔으니
박팽년과 성삼문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시조로써 그뜻을 살펴보자
朴 彭 年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 光 明 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줄이 있으랴
成 三 問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낙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 할 제 독야 청청 하리라
兪 應 孚
간밤의 부든 바람 눈서리 치단말가
낙낙장송(落 落 長 松)이 다 기우러 가노매라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말하여 무 엇 하리오
역사가 이러한 소용돌이 치지않고 순리대로 왔다면 여기에 있는 사육신은 학문적으로 훌륭한
당대의 지식인으로써 역사의 한페이지에 한몫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그당대에 변절은 하였지만 신숙주 같은분은 세조와 뜻을 같이해서 훈민정음 창제
악학궤범 또는 영의정으로써 당대의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수많은 일을 해왔지않는가?
내가 고전소설공부를 좀해보니 신숙주의 손자 즉 "신광한 "이란 손자의 작품 "기재기이 (企齋記 異)의
작품과 그분의 사림파로써의 역활을 볼때 사육신들의 후손들을 멸족을 시키고 하였으니 얼마나
역사발전의 저해가 왔겠는가 ? 역사란 되돌릴수도 없으며 가정이란 있을수도 없지만 단종과
수양대군시절의 역사의 비극은 이루 말할수 없는 처참한 지경이며 또다시 있어서는 않될 역사의
교훈이라고 본인은 보고 싶다. 단종의 페위와 결국에가서는 영월땅의 유배지에서 외롭게 어린나이에
죽게되고 한강변의 사육신들의 원혼은 어떻게 달랠것인가!
나는 한강변의 언덕위에 사육신의 묘지를 답사하면서 앞으로는 한강이 역사의 흐름과 함께
유유히 흘러가지만 그 강위의 원한의 넋을 추모하면서 답사의 글을 끝내고져 한다.
2012년 6월 어느날 베드로 용상 씀
한강의 흐르는 물은 역사속의 사육신의 넋을 위로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