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 ; 벌재-죽령(소백산 아래)
거리 ; 26.2km
동행 ; 나 홀로
교통 ; 열차로
걸어간 시간 ; 10시간20분
나 홀로 가는 대간길이 북상 할수록 승용차를 갖고 가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 당분간 산행은 승용차를 가져가지 않고 기차로 다니기로 했다. 물론 내가 약간의 시간만 더 낭비하면 되니까. 야간열차로 접근하여 벌재 밑 민박에서 몇 시간 휴식을 취한 후 산행을 시작해서 죽령에서 마친 후 다시 열차로 되돌아오면 된다.
원래는 9일 오후에 출발 하여 1박2일로 두 구간을 가려고 했는데 비가 오는 관계로 하루 늦게 출발해서 한 구간만 가기로 했다.
10일 오후 저녁을 일찍 먹고 익산에서 19시05분 기차로 출발하여 조치원에서 충북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제천에서 중앙선을 갈아타고 단양역에 23시49분에 도착하니 미리 예약해 놓은 개인택시가 기다리기에 그 차를 타고 향장 산 민박 집 앞에 내려 전화를 하니 문을 열어준다. 그 집에서 잠시 쉬기로 하고 05시에 알람을 맞추어 놓았다.
5시에 기상해서 준비하고 주인을 깨우니 늦게 주무신 분이 자기들 보다 일찍 일어났다며 차에 시동을 걸고 벌재로 향한다.
벌재에 도착해서 어두운 산길로 접어들려 하니 걱정스러웠던지 민박집 주인이 라이트를 숲속으로 비추어주며 돌아 갈 줄을 모른 다 그래서 내가 전등을 꺼내어 신호를 보내주니 그때서야 안심 인 듯 되돌아 가는 것을 보고 걸음을 재촉한다.
전등을 비추며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낙엽 때문에 미끄럽다. 조금 지나자 산불 감시 초소가 어둠 속에 불쑥 나타난다. 어둠 속의 높다란 망루가 유령처럼 보여 기분이 좋지 않다.
숲속 길을 따라 가는데 새벽의 별들이 얼굴을 내밀어 나무속을 드나들면서 나랑 숨바꼭질을 한다. 어둠이 이제 걷히려나?
작은 봉우리를 오르자 날이 밝아 온다. 한참을 지나서 문복 대 정상에 닿는다. 작은 바위 위에 문경 산들 모임 산악회가 세운 '白頭 大 幹 門 福 臺 1,074m' 라고 적힌 표지석이 서 있다. 바람은 스산하게 불고 있고, 아침 잠 깬 새들의 지저귐만이 산속의 정적을 깬다.
옥녀봉을 지나 저수 령이 가까워 오자 어디서 소 울음소리 들이 들려온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몰라 겁을 잔뜩 먹었다. 멧돼지 소리인가 하고 오인한 것이다. 목장으로 이어 지는 임도를 지나 저수령에 다다른다. 큰 저수 령 표지석이 우뚝 서 있다. 그 옆에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는데 문은 굳게 잠겨있다.
저수 령 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 리 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산리를 경계로 한 해발 850m의 고개이다. 이 고개는 옛날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여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데서 불리어 졌단다. 현재는 927번 지방도로가 깨끗하게 포장 되어 있다.
여기에서 물을 보충 하려고 두 개의 물통중 하나는 빈 통으로 왔는데 할수 없이 저 아래 목장으로 물을 뜨러갔다 오는데 왕복40분을 알바하고 내려갔다 왔다.
죽령을 향해서 가파른 촛대 봉 을 오른다. 촛대봉(1,080.6m)과 고비 밭 싸리 밭을 지나 소백산 투구봉(1,080m)이라는 조그만 암 봉에 닿는다. 쭉쭉 뻗은 잣나무 숲을 지나 에 배재에 이른다. 야목 마을로 통하는 고갯길이지만 이정표가 없으면 그저 억새 우거진 산등성이에 불과한 것 같다. 1,053봉과 싸리 재를 지나 흙 목 정상과 헬기장에 와 닿는다.
모시 골 정상에 서니 묘적 령 이 얼마 남지 않는다. 안개만 없다면 좋은 풍경 감상하면서 힘들지 않은 능선 산행이 되었을 텐데. 비가 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 해탈의 도솔봉
대간 길 은 소백산 자락으로 들어서고 고도는 1000m 정도로 비교적 높게 유지 되고 산골이 깊어지며 더욱더 힘이 들어진다. 나무들은 아직도 잎을 감추고 있고 철쭉의 분홍색 봉오리들이 꽃망울을 터트릴려면 한참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산, 좋은 숲, 좋은 길 따라 혼자 멀리도 올라와 있다.
하늘로 시원하게 뻗은 나무를 벗 삼아 묘적 령 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고항치 와 모래재고 대간은 도솔봉 방향으로 직진해야 한다. 영주시청 백두 회 에서 만든 백두대간 안내도가 걸린 나무 그늘에 앉아 먹을 것을 찾는다. 마누라가 싸준 도시락을 꺼내 게 눈 감추듯 까먹는다. 어느새 일곱 시간을 걸어 아직도 몇 시간을 더 가야 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편안해 진다. 오늘도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들고 죽령이라는 말에 대단히 만족해진다. 대간을 하면서 속으로 마음 금 을 그어 놓았던 곳이 몇 군데 있다. 육십령, 추풍령, 이화령과 바로 오늘의 종착지 죽령이 그 곳이다. 이곳을 넘을 때 마다 대단한 안도감과 커다란 고개를 또 하나 넘었구나 하는 만족감을 느꼈다.
약간의 햇살이 나면서 안개가 조금씩 걷혀 계곡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봉우리는 여전히 가스가 가득하다. 묘적 봉(1,148m)의 넓지 않은 암 봉 에 앉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해본다. 도솔봉을 향하여 묘적 봉 급경사 지역을 내려선다. 도솔봉 오르는 바위 길은 매우 힘이 든다. 지친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밧줄 오름 짓으로 바위를 돌고 돌아 드디어 도솔봉(1,314m)에 오른다. 돌탑이 하나 서 있고 전망이 좋다. 죽령을 관통하는 고속도로가 연무 사이로 시원하게 뻗어 있다. 죽령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에 이름 모를 노란 야생화가 장식되어 있다. 죽령 너머 소백산의 웅자가 안개 속에서 나마 위엄을 갖추고 버티고 있다.
죽령을 향하다가 전망이 좋을 것 같아 올라 선 바위에 삼형제봉(1,286m)이라고 적혀 있다. 시원한 계곡 바람을 맞으며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다. 산죽 군락이 있는 길을 따라 피곤한 다리를 재촉한다. 길가에는 뭐가 그리도 급한지 들꽃들이 벌써 꽃을 피우고 있다. 친구를 백두대간에 묻은 비석하나가 서 있다. 편하게 쉬라는 친구들의 조용한 외침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머리 숙여 명목을 빌어 주고는 샘터에서 목을 축인다.
잘 다듬어진 숲을 따라 산허리를 한참을 돌아가니 죽령이다. 소백산의 잘록한 허리가 중요한 관문이 된 죽령표지석이 웅장하게 서있다. 표지 석 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소백산 허리, 구름도 쉬어 간다는 아흔 아홉 굽이. 죽령은 영남과 기호를 넘나드는 길목 가운데서도 가장 유서 깊고 이름난 중요한 관문이다.
이 고개는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에 신라사람 죽죽( 竹竹 )이 길을 개설하였다 하여 죽령이라 불리어 왔으며 한 때는 고구려와 국경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고려와 조선조 시대에는 청운의 꿈을 안은 선비들의 과거 길이었고 온갖 문물을 나르던 보부상들과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숱한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죽령 주막에 있는 소백산 연하 봉 으로부터 흘러내린다는 옹달샘의 물로 목을 축이며 오늘 하루 길고 힘들었던 17일차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마감한다.
되돌아오는 길은 풍기에서 택시를 불러 풍기에서 기차를 타고 제천을 경유 어제 갔던 그 길을 되돌아와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조금 넘었다. 기차로 다니면 마음은 편하긴 한데 시간이 조금 더 소비가 되지만 교통비는 절약이 되네요. 되돌아오는 기차 속에서의 단잠은 정말 꿀맛이다 조금 피곤했던 모양이지요?
이번 구간은 완전 잡목 숲으로 되어 있어 사진은 별로 없습니다. 오후에는 날씨가 흐려 못 찍었습니다.
다음 구간은 죽령에서 고치령까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