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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풍경들과 조망을 즐기고 그 조망처를 출발하니 다시 쓰러진 거대한 고사목이 등로를 가로막고 조심해 통과하니 커다란 소나무와 참나무가 등로 양쪽에서 보초를 서듯 서 있는 183.4 무명봉도 통과한다.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에는 다시 파란 잡풀들이 봄이 왔음을 알리고 피곤한 눈의 피로를 풀며 여유롭게 전진하니 등로는 우측의 주마르금을 좌측 사면 등로로 우회하듯 이어진다.
한동안 진행하다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안부로 내려가다 지도와 트랙을 보니 우측으로 146봉인 양미굴이 보여 배낭 내려 놓고 잠시 오르니 지독한 가시잡목만 무성한 아무 표식도 없는 봉우리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뒤돌아 내려 온다.
동외리 양미굴에 있는 가시잡목이 우거졌던 146봉을 다녀 와 배낭 찾아 둘러메고 무명안부를 통과한 후 간벌된 경계지점을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잡목 사이에 보이는 커다란 밤나무에 여영님이 걸어 놓은 188미터봉이란 이정판이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지도를 확인하니 188.4봉이다.
이제 왕무덤재가 가까워졌는지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식수를 보니 달랑거려 고민하며 왕무덤재를 향해 완만하게 진행을 이어간다.
그 188.4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여러개의 묘지들이 줄지어 늘어선 등로를 만나고 곧이어 도로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니 왕온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왕무덤재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GS칼텍스 주유소와 서경노인복지관 건물들이 보이는데 왕고개란 이름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마음의 갈등을 느끼는데 진도지맥을 두구간으로 완주하기 위해서는 붉은재까지 가야하나 식수도 떨어지고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아 이곳 왕무덤재에서 첫구간을 마무리하고 3구간으로 나워 진행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만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어 2시간 동안 더 진행을 해 붉은재까지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왕무덤재 좌측 주유소에 들려 식수를 마시고 물 500미리 한통에 시원한 식수를 얻어 도로 건너 좌측의 하종선 백호화실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보이는 방향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이곳부터 붉은재까지의 등로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리 개고생하며 예상했던 산행 시간보다도 훨씬 더 많이 걸려 어둠이 짙게 내려 앉은 시간에야 어렵게 목표했던 붉은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왕무덤재(2차선 포장도로)는 전라남도 진도군의 동부에 자리한 고개로서 이 고개를 통해 진도읍과 진도군의 의신면 사천리 운림산방이 연결되고 금갑만호진이나 의신면 소재지인 돈지로 갈 수 있으며 회동 신비의 바닷길로 연결된다.
조선지지자료에 왕치(王峙)로 기재되고 부기에 고려 원종 11년(1270)에 왕온의 분묘가 영산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남지도에 용장왕온구기(龍藏王溫舊基)라는 표기에서 그 왕무덤재를 확인할 수 있는데 고려 후기 삼별초의 난 때 영영공이 아들들에게 자신의 친형인 왕온을 구해오도록 했고 영영공은 자신의 친형이 삼별초의 인질로 잡혀가 타의에 의해 왕이 되었다고 보았으나 왕온은 삼별초가 몽골 및 고려 연합군과 항전하면서 이 고갯길을 넘어 퇴각하는 과정에서 홍다구의 칼에 맞아 죽었다.
이 고갯길 동쪽 기슭에 그의 묘가 있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왕무덤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전왕온묘(왕온의묘, 고려 삼별초군이 왕으로 추대한 왕온이 몽고군과 항전하다 죽어 묻힌 곳)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있는 고려시대 왕온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무덤으로 시도기념물이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26호로서 진도읍에서 의신면의 운림산방에 이르는 중간 고갯길을 왕무덤재라 이르는데 이 고개 동쪽 산 기슭에 속칭 왕온묘가 있다.
이 고개는 제주도로 가는 금갑포(의신면)로 통하는 고갯길이기도 한데 고려시대 중기에 진도에 입거한 삼별초군이 용장성에서 쫓겨 이 고개에 이르러 추격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며 이같은 연유로 빗기내(핏기내 또는 피내-血川의 전와)라고 하여 한자로 斜川으로 표기한다.
고려사절요 권19 원종 12년 5월조에 승화후 온(承化候 溫)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진도지방에서 구전되기는 준(綧)이 아들 희(熙)와 함께 옹(雍)을 여몽연합군의 장수로 파견하여 그의 동생 왕온을 구해 오도록 했으나 악질적인 홍다구(洪茶丘)가 다근투골(茶丘鬪谷)에서 죽였음을 알고 눈물을 뿌리며 흙을 덮어 왕온무덤이 되었다고 한다.
김몽규(金夢奎)가 1761년에 지은 읍지인 옥주지(沃州誌)에 왕온에 대한 기사가 나오며 1924년에 만든 진도군지에 왕온의 묘는 군의 빙고등 뒤에 있는데 지금은 왕분치(王墳峙)라 하고 돌들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왕온의 무덤은 직경이 810㎝에 높이가 200㎝ 가량이며 장타원형의 토장분 형태로 호석이 둘러져 있으며 1978년과 1983년에 보수하였다.
왕무덤재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백호화실이란 표지석으로 오르니 등로는 묵은 밭 경작지 지나 우측 능선 방향의 능선으로 이어지고 가파른 오르막 간벌된 등로를 따르니 널부러진 간벌목들과 그 사이로 자라고 있는 잡목들로 인해 등로가 사라지고 진행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한동안 지독한 가시잡목이 우거진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파란 부처손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바위 전망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인 북쪽을 살펴보니 진도읍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철마산과 북산 및 망적산 줄기가 아름다운데 망적산 장상부의 인공구조물이 확실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북쪽으로 진도읍을 살펴보고 동쪽을 확인해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왕무덤재의 주유소와 복지관 건물들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진도지맥 마루금을 따라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수리봉 지나 우측으로 첨찰산 정상과 그 우측으로 인공구조물이 서 있는 진도기상대가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아 너무나 선명하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가슴속에 고운 추억으로 남긴다.
지나온 진도지맥과 진도읍을 살펴보고 다시 오르니 지독한 잡목들이 태클을 걸기 시작하고 커다란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최악의 등로를 만들기 시작한다.
시간이 빨리도 흐르는데 지독한 가시잡목이 발목을 잡으며 속도를 줄이고 있으니 괜시리 올라 왔다는 후회가 들기 시작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기에 무조건 붉은재까지 가야 오늘 산행이 마무리가 될 것이다.
바위암벽을 올라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또 다시 바위암릉 지나 등로 좌측 내리막 등로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남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이곳에서도 잠시 고민하다 배낭 내려놓고 직진인 우측으로 남산과 삼각점봉을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진도읍 남산가는 등로 역시 많은 산님들이 다녀오지 않았는지 등로가 희미하고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힘들게 걸어 전진하니 바위까지 나타나 생각보다 어렵게 243.3미터의 남산에 도착을 하니 준희님의 이정판이 반겨준다.
남산(243.3m, 바위봉)은 전라남도 진도군의 진도읍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243m이고 남산은 북산과 함께 진도읍을 남북으로 감싸고 있다.
진도읍 앞으로 진도천이 서쪽으로 흘러 배산임수형의 형국을 이루고 있어서 진도읍의 안산(案山)이라 할 수 있으며 남산제 옆에 왕온(王溫)의 묘로 알려진 왕무덤과 말무덤이라 불리는 2기의 고분이 있다.
옛날 삼별초 항쟁 때 왕이 몽고군에게 쫓겨서 왕무덤재까지 왔을 때 논실골에서 패배하여 왕온과 아들 왕환(王桓)도 함께 잡혀 죽어서 진도사람들이 묻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호남지도(진도)에 진도군 치소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고 해동지도에 내남산(內南山)의 표기가 보이고 외남산(外南山)이 내남산보다 먼 곳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 부내면(府內面) 두정리(斗井里) 앞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시간도 늦어지고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어 삼각점봉을 다녀와야 하나 이곳 남산에서도 짧은 고민이 있었지만 후회될 듯 싶어 조금 더 진행하여 삼각점봉까지 다녀 오기로 한다.
사라진 등로에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어렵게 그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삼각점봉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가시줄기들과 잡풀들 그리고 키 작은 찔레가시나무들이 우거졌던 공터처럼 보이는 곳이다.
공터 우측 앞으로 진도301이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그 바로 뒤에 준희님과 독도님이 각기 다른 240.7미터봉임을 알리는 이정판이 걸려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남산을 거쳐 갈림삼거리 방향으로 뒤돌아 간다.
남산과 삼각점봉을 다녀 온 후 다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와 벗어 놓은 배낭을 찾아 둘러메고 우측으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니 왕무덤재에서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데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지독한 가시잡목들로 인해 한시간이 걸려 벌써 오후 6시가 넘어가고 있어 마음만 바쁜 시간이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다시 나타나는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이곳 역시 돌담들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성터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집터처럼 보이지도 않아 그 용도를 모르겠다.
돌담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곳 역시 지독한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태클을 걸기 시작하고 힘들게 오르니 잡목이 조금 사라지며 경사도도 완만하게 변하며 편안하게 진행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독한 잡목들과 바위암릉이 연이어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오르니 또 다시 전망바위에 도착을 해 지나 온 방향인 북동에서 동쪽 방향을 살펴보니 사진 좌측 가장자리의 왕무덤재에서 우측 제일 높은 첨찰산과 진도기상대 지나 다시 좌측으로 이어지는 진도지맥 마루금이 비단결처럼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고 산행을 이어간다.
몸은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 피로를 풀어주는 이런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이 있어 또 다시 힘을 내 산행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시간이 흘러 남아 있는 햇살이 비추는 시간이 줄어 들기에 마음은 바쁜데 환상적인 풍경이 발목을 잡고 사진에 담으며 다시 산행을 이어가니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금새 282.2봉에 도착을 하는데 준희님은 이곳을 282미터봉으로 표기를 하였다.
이제 시간은 오후 6시 30여분이 지나고 잠시 후 밝은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갈 시간이기에 마음만 바쁜데 등로를 가로막는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발목을 잡으며 온몸에 생채기를 만들고 있어 이중삼중고를 겪으며 진행을 이어간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282.2봉을 지나 우측으로 휘어져 진행하니 다시 등로 옆으로 잔망바위가 나타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곳으로 올라 살펴보니 이곳 역시 아름다운 풍경들이 피로한 산객의 마음을 힐링시켜 준다.
남동쪽으로 멀게만 보였던 사천1저수지와 그 뒤로 무명봉과 산줄기 넘어 덕신산과 산줄기가 제법 높게 이어지고 그 우측으로 의신면 방향의 좁지만 길게 이어지는 들판에는 이미 파란 봄빛이 가득하고 그 뒤 저 멀리로는 남해바다 건너 해남의 산줄기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 남쪽 방향으로는 잠시 후 만나야 할 높은 안테나가 보이는데 그 안테나까지 이어지는 거리감이 상당해 벌써 힘이 빠지는 기분이다.
조망을 즐기고 다시 바위를 내려 와 빠르게 진행하니 이곳 역시 지독한 잡목이 나타나고 급경사 내리막 등로에 낙엽이 쌓여 있어 결코 쉽지 않는 산행의 연속이다.
힘들게 내려가니 무명안부 지나 다시 둔덕봉으로 오르니 썩어가는 고사목이 누워있는 224.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드디어 높은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228.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228.5 무명봉을 지나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잡목과 잡풀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저 멀리 지력산 넘어 남해바다 위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가 시작되고 잠시 더 기다려 완전한 일몰을 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 두꺼운 구름속에 그 빛을 잃어가는 해넘이를 사진에 담고 아쉬움을 남긴 후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동로만 좋았다면 이미 목적지인 붉은재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데 지독한 가시잡목들로 인해 산행속도가 현저히 줄어들며 온 몸에 깊은 생채기를 만들고 있어 마음과 달리 몸은 피로도만 늘어나고 있다.
일몰을 사진에 담고 이어지는 묵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짧은 편백나무 터널로 들어가는데 산속이라 그런지 금새 짙은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하며 오늘 하루도 어둠속에 마무리가 될 듯 싶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진행하니 임도 좌측 둔덕봉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이 조금씩 더 짙게 다가오고 있다.
그 무명봉 지나 계속 이어지는 묵은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갑자기 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만나는 임도에 도착을 해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천방재란 고개인데 천방재란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천방재 안부를 좌측의 의신면 침계리와 우측의 칠전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생긴지 오래되지 않은 도로이자 임도처럼 보인다.
천방재 임도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잡풀들이 보이는 묵은 비포장임도로 이어지고 묘지들과 커다란 편백나무들을 통과하니 어둠이 짙어지고 진행 방향으로 마지막 산줄기 좌우측으로 민가에서 밝혀 놓은 불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이제 마지막 170.2미터의 영매산에 올라 진행 방향으로 산줄기를 확인하니 붉은재가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데 벌써 시간이 오후 7시 30여분을 지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헤드렌턴을 꺼내 이마에 차고 마지막 산행을 이어간다.
어둠속에 그래도 불빛의 도움없이 마지막 170.2미터의 영매산에서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지독한 잡목들과 관목의 편백나무 숲에 갇혀 한동안 등로 찾아 너무나 힘든 산행을 이어간다.
온 몸에 많은 생채기를 만들며 너무나 힘들게 그 지독한 가시잡목과 편백나무를 빠져 나오니 드디어 우측으로 112.7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어둠속에 보이는 것이 없기에 112.7봉은 포기하고 좌측의 남쪽 방향으로 마지막 산행을 이어간다.
힘들게 그 112.7봉 갈림삼거리를 지나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도로 우측 옆으로 거대한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드디어 목표로 한 붉은재 일명 칠전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죽엽돈지로 2차선 포장도로로서 좌측의 의신면 창포리와 우측의 칠전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지명이름을 따 칠전고개라 부르는 곳이다.
칠전고개(붉은재)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에 있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으로 칠전리는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하천이 흘러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며 부락 앞에 칠전교가 놓여 있다.
자연마을로는 옻밭, 베락바웃골, 서당골, 장터, 신생동마을 등이 있는데 옻밭마을은 칠전리가 시작된 마을로 과거에 옻나무밭이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베락바웃골마을은 벼락을 맞아 갈라진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서당골마을은 서당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장터마을은 이곳에 장이 섰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신생동마을은 장터 앞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짙은 어둠이 내려 앉은 시간에 너무나 힘들게 목표로 한 붉은재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스틱과 배낭을 정리하며 카카오택시를 부르니 10여분 후에 도착 예정이란 글이 뜨고 그렇게 잠시 더 기다리니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택시가 도착을 해 진도대교 앞 진도 휴게소로 이동하며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을이 아닌 고갯마루에서 택시를 호출해 의아하게 생각했다는 전언이다.
진도휴게소로 가 애마를 회수하니 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으로 애마를 회수해 진도읍으로 나가 시설이 좋다는 퍼스트 여관으로 가 샤워 후 환복하고 근처의 김밥집에서 돈까스로 저녁을 해결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하지만 여관으로 돌아 가 사진을 정리하고 E-MAIL을 확인하니 기다리는 일들이 보여 잠시 일 처리하고 잠깐 누워있다가 잠을 청한다는 것이 그대로 깊은 잠에 들어 새벽에 일어나니 새벽 6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어 결국 진도지맥 나머지 구간을 다 마치지 못하고 귀가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오랫만에 온 몸에 많은 생채기를 만들며 너무나 힘든 산행으로 늦잠까지 자며 계획된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올라오는 시간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다시 한번 더 진도로 내려갈 기회가 생겼으니 남아 있는 지도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잠시 동석산을 다녀 오기로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