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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2. 2. 18.(금) - 음력(1. 18.), 일출 07:10~일몰 18:09
●산행지: 영축지맥(영축산-배태고개)
●산행코스: 지내마을-취서산장-영축산-함박등-죽바우등-한피지고개-시살등-오룡산-도라지고개-828m봉-송전탑-765m봉-임도네거리(돌탑봉)-염수봉-임도-내석고개-에덴삼거리-뒷삐알산-밸리삼거리-에덴밸리CC-습지보호지역-마당(너럭)바위-습지삼거리-능걸산(왕복)-습지삼거리-습지보호초소-풍력발전기임도-에덴밸리버스정류장-에덴밸리스키장상단-1051지방도-도로갈림길-1051지방도갈림길-통신탑-709.5m봉-안부-555.5m봉-초소-배태고개
●먹거리: 조식 만남의광장(누룽지곰탕), 내석고개(아점) & 원동휴양림 캠핑장 식사 비실이대선배님 지원
●준비물: 바람막이, 스틱, 헤드랜턴, 장갑, 충전기,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말방울, 세라컵, 띠지35
●거리: 약 29.3Km(어프로치 3.4km, 능걸산 왕복)
●소요시간: 13.10h
●누구랑: 홀대모 운영진 외 산행가이드 노란세이버총대장님
●경비: 갹출 10만원, 운영진 잔고: 410,800원, 운영진 보관함에 별도 회계 결산 정리
●날씨: -8~9, 대체로 맑음
●산행경과:
- 03:15 : 만남의광장
- 04:23 : 취서산장
- 04:58 : 영축산(靈鷲山, 1081.1m)/ 3읍면봉(울산시 울주군 삼남읍, 양산시 원동면, 하북면)
- 05:22 : 1,059.9m봉/ 추모비
- 06:16 : 함박등(1,051.9m)
- 06:36 : 채이등
- 06:05 : 죽바우등(1,064.4m)/ 투구봉
- 07:46 : 시살등(981m)/ 2등삼각점
- 09:05 : 오룡산(五龍山, 951m)/ 삼면봉(양산시 원동면, 하북면 → 상북면)
- 09:48 : 도라지고개
- 09:57 : 828m/ 삼리봉(상북면 내석리, 원동면 선리 → 대리)
- 10:30 : 내석임도삼거리
- 11:01 : 염수봉(鹽水峰, 816.1m)/ 무인산불감시카메라
- 11:35~12:02 : 내석고개(545m)
- 12:30 : 리조트갈림길
- 12:37 : 뒷삐알산(827.7m)
- 13:15 : 766m봉/ 삼면봉(양산시 원동면, 상북면 → 강서동)
- 13:17~45 : 능걸산삼거리
- 13:29~34 : 능걸산(783m)/ 왕복 31분
- 14:20 : 삼리동봉(746m)(원동면 대리, 양산시 어곡동 → 원동면 영포리)
- 15:24 : 안정산(709.5m)
- 16:18 : 배태고개(69번도로)/ 배내골표지석/ 육각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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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간별 세부거리
영축지맥 분기점(영축산)-(3.9km)-시살등-(3.7km)-도라지고개-(3.1km)-염수봉-(2.7km)-뒷삐알산-(2.6)-에덴밸리리조트-(3.7km)-안정산(709.5m)-(2km)-배태고개
* 구간별 거리
- 영축산~배태고개 21.7km (지산리~영축산 3.4km)
-. 영축산~내석고개 12km
-. 내석고개~배태고개 9.7km
* 식수 보충 및 참고사항
- 만남의광장(지내마을): 아침 지원
- 축서산장 위 샘터
- 내석임도내거리 중식 지원, 식수보충
- 에덴밸리리조트: 지원
- 통도콜택시: 055-383-8282
- 배태고개 원동자연휴양림 1박
* 영축지맥 분기점 영축산 가는 교통편
- 통도사(신평터미널)~지산마을버스종점: 08:20~19:30(매시 20분 출발)
- 내석고개 교통편: 왼쪽 내석리(4.32km, 1시간)~양산행 버스: 17:10, 19:00, 오른쪽 태봉~양산행 1000번 버스 이용 가능.
- 배태고개 버스정류소: 원동면 영포리에서 대리쪽으로 마을버스 2번(하루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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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거주하시는 대한민국 산줄기 등대이신 준희선생님이 해마다 연중행사로 홀대모운영진을 초대해 주셨는데, 올해는 홀대모 산줄기종주영웅이신 대구 비실이부부대선배님께서 스타렉스호텔을 이끌고 합류하여 밀착지원에 수육찜 요리까지 시전해 주셔서, 말 그대로 황제지원을 받으며 영축지맥을 성공리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첫날, 세쨋날은 환상적인 날씨였지만 둘쨋날 비가온다는 예보에 잔뜩 쫄았으나 금오산과 만어산에 잠깐 흩날린 눈이 이 지역에선 올겨울 첫눈이 되었다는군요.
20일, 부산에서의 이기대공원 갈맷길 3시간 관광과 민락동수산시장 활어회까지 황송한 대접을 받고 무사히 상경하여 부산건건산악회 김창호대장님과 노란세이버님의 산행가이드 등 치부책에 기록 자세히 남겨두었습니다.^^
아울러 장거리 연일산행을 이뤄내신 에이원방장님과 운영진선배님들도 수고 많으셨구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치부책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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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축지맥이란?
낙동정맥 영축산(1,081m)에서 분기하여, 시살등(980.9m)→오룡산→염수봉(鹽水峰, 816.1m)→배태고개→금오산(金烏山, 765m)→구천산(九天山, 630m, -0.5km)→만어산(萬魚山, 669.6m)→청용산(354.2m)→매봉산(妹峰山, 283.7m, -1.0km)을 거쳐 밀양강(우)까지 이어지는 45.8km의 산줄기로, 동으로는 양산천, 서로는 단장천과 밀양강을 구분하며 크게는 밀양강 남쪽 울타리가 되어, 밀양강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삼랑진읍 삼랑리 상부마을에서 그 脈을 다하는 45.8km의 산줄기이다. 서쪽과 북쪽에는 백운천, 단양천, 배내천, 국정천, 동천 등이 밀양강으로 흐르고, 동쪽과 남쪽에는 양산천, 선장천, 영포천, 원동천 등이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 영축지맥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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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축지맥을 지나는 동네
* 울산광역시 울주군
울산광역시 서남부에 위치한 자치군으로 군의 이름은 울산과의 동질성을 나타내기 위해 '울' 자를 따고 지명에 흔히 쓰이는 글자 중 하나인 '주'를 붙여서 만들어졌다. 동쪽으로 동해와 면해 있으며, 서쪽은 밀양시와 경상북도 청도군, 남쪽은 부산광역시 기장군과 경상남도 양산시, 북쪽은 경주시와 접하고 있다. 울주군청은 1979년까지는 중구 북정동, 2017년 12월 25일까지 남구 옥동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2017년 12월 26일에 서부권과 남부권의 그나마 중간에 가까운 위치인 청량읍 율리로 이전했다. 그러나 그나마 중간쯤이란 거지, 어느 쪽에도 가깝지 않은 애매한 위치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낙동정맥의 산지로 구성되어 있고, 동남쪽의 일부지역이 동해에 면하고 있다. 산지의 지세는 영남동부 태백산지의 단층지괴와 관련되며, 대체로 남북방향으로 발달하고 있다. 양산시 물금읍에서 양산천 하곡을 따라 발달한 양산구조선과 수영강·회야강·동천강의 골짜기를 따라 달리는 동래∼경주간 구조선에 의해 크게 3개의 지괴로 나누어진다. 양산구조선 서쪽 지괴는 인접한 밀양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가지산(加智山, 1,240m)·천황산(天皇山, 1,189m)·재약산(載藥山, 1,108m)·간월산(肝月山, 1,083m)·신불산(神佛山, 1,209m)·취서산(鷲棲山, 1,059m)·고헌산(高獻山, 1,033m) 등 고도 1,000m 이상의 고산지로 이어진다. 『고려사』 지리지에 의하면, “고려 태조 때 고을사람 박윤웅의 큰 공으로 하곡현(河曲縣)에다 강동면(江東面) 일대인 동진현(東津縣), 웅촌면과 양산군 웅상면(熊上面) 지방인 우풍현(虞風縣)을 합해 흥례부(興禮府)를 두었다.”고 하였다. 성종 때에는 공화현(恭化縣)으로 낮추는 한편, 별호(別號)를 학성(鶴城)이라 하였다. 1397년(태조 6) 울주에 처음으로 진(鎭)을 두고 병마사(兵馬使)로 하여금 지주사(知州事)를 겸하게 하다가, 1413년(태종 13)에 진을 없애고 울산이라 칭호를 고쳐 지군사(知郡事)를 두었다. 그리고 동년 1월에 울산군을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로 승격시켰다가, 8월에 다시 군(郡)으로 낮추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울산의병(蔚山義兵)들이 왜적을 무찌른 공이 매우 컸기에 1598년(선조 31) 울산을 군(郡)에서 도호부(都護府)로 격을 올리고, 좌병사(左兵使)로 하여금 도호부사를 겸직하게 하였다. 1914년과 1915년에 걸쳐 시행된 지방관제 개편 때 언양군(彦陽郡)이 울산군에 병합되었다. 1931년 종래의 면제(面制)를 개편해 새로이 읍면제를 시행하게 됨에 따라 울산면을 울산읍으로 승격시켰다. 1934년에는 동면(東面)의 전역을 방어진읍(方魚津邑)이라 개칭하였다. 정부는 공업도시 건설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962년 6월 1일 공업지구의 전역인 울산읍·방어진읍·대현면·하상면과 청량면(현 청량읍) 두왕리, 범서면(현 범서읍) 무거리·다운리, 농소면 송정리·화봉리를 합해 울산시를 신설하고 울산군의 나머지 지역을 울주군으로 개편하였다. 또, 공업지구 건설의 효율적인 지원을 위해서 건설부 직속기관으로서 울산특별건설국을 설치해 울산공업지구 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1991년 울주군이 울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울산시와 울산군이 통합해 광역시 승격의 기틀을 마련했고, 1996년 온산면과 언양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7년 7월 15일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됨에 따라 울주구에서 울주군(자치군)으로 개칭되고, 농소읍·강동면이 북구로 편입되어 울주군은 2읍 10면의 체제로 유지하게 되었다. 2001년 온양면·범서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4읍 8면이 되었다. 광역시 산하 군 중에서 가장 넓지만 면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는 적어 시내에 비해선 인구밀도가 낮다. 다만 대한민국의 모든 군을 통틀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군다. 조선시대의 (현 언양읍 중심의) 언양군과 (현 중구 중심의) 울산군이 일제시대에 합쳐져 탄생한 울산군에서, 1962년 도시지역(현재 중구, 남구, 동구, 북구 일부 지역)이 울산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읍면 지역 전체를 울주군으로 남겨두었고, 광역시 승격 당시 농소읍과 강동면을 신설되는 북구로 편입하면서 현재의 울주군 구역이 확정되었다. 1994년까지의 지방자치법에서는 도시지역인 시, 구에 읍, 면을 둘 수 없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1962년 시 승격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경기도 시흥시나 남양주시처럼 울산 외곽 지역의 여러 읍면들만을 모아서 하나로 합쳐 놓은 행정구역이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한 입 베어먹은 도넛과 같은 형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언양읍 중심의 서부권과 온양읍·온산읍 중심의 남부권은 그 역사와 생활권이 서로 전혀 다르고, 서로 거리가 너무 먼 데다 교통편 또한 부족하다. 그래서 행정기관이 특정 구역에 위치하면 다른지역의 불편함이 매우 크므로, 서부·남부 모두 적당히 가까운 시내구역에 위치하기도 한다.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적리 각석, 가지산 도립공원, 언양 자수정동굴, 석남사, 서생포 왜성, 진하해수욕장, 간절곶 등의 관광지가 있다. [통합포털 발췌정리]
* 양산시(梁山市)
양산시는 경남 동부에 있는 시이다. 신라 초기 눌지 마립간 때 삽량주(歃良州/揷梁州)라 불렀다. 그 외에 삼국유사에서 삽라군(歃羅郡), 일본서기에서는 초라(草羅), 잡라(匝羅)라고도 나오는데 모두 같은 지명을 다른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남아있는 지명인 황산(黃山)도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지명인데 낙동강의 입구로 신라, 가야, 왜구간의 전투가 자주 벌어졌다. 참고로 신라와 왜국간의 교전이 금성에서 생겼을때, 왜구가 금성에 출몰 했을때 양산을 거쳐서 올라왔다. 일단 대마도에서 부산 김해까지 배를 타고 상륙해 육지로 침략 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낙동강을 경계로 신라와 금관국의 최전선이었고 삼국사기에서 황산(물금읍) 등의 지명이 종종 등장한다. 물금(勿禁)이란 지명도 두 나라의 국경지역인 이곳에서 관리들의 검색(탐문)이 심해 강을 건너는 두 나라 사람들이 매우 불편했기에 이 지역만은 서로 '금하지 말자' 는 뜻으로 勿(말다 물)에 禁(금하다 금)로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신라 경덕왕이 양주(梁州)로 고쳤고 통일신라의 9주 5소경 중 지금의 도청(행정)에 해당하는 치소를 양주에 설치해, 양주 12군 34현을 관할하는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신라의 수도 서라벌 인근 지역으로 많은 불교 사원이 세워졌다. 양주의 직속 영현으로 헌양현(巘陽縣, 울산 언양읍)이 있었다. 현대 행정동 양주동(梁州洞)이라는 명칭은 이 것에서 나왔다. 고려시대까지 쭉 양주라 하였고 조선에 들어와서는 1413년 양산군(梁山郡)으로 명명되었다. 울산군으로부터 외남면(현 서생면)과 웅상면을 병합하였다. 1910년 외남면을 울산군에 다시 넘겨 주었다. 1973년 동래군이 폐지되면서 기장면, 일광면, 장안면, 서생면, 정관면, 철마면을 양산군에 편입하였다. 1979년 양산면이 양산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기장면이 기장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서생면을 울주군에 넘겨주었다. 1985년 장안면이 장안읍으로 승격되었다. 1991년 웅상면이 웅상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동부출장소 관할의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 등 5개 읍·면이 부산광역시에 이속되면서 기장군으로 떨어져 나갔다. 당시 웅상읍 지역도 부산 편입이 거론되었으나 부산 편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6년 시(市)로 승격되면서 양산읍이 중앙동, 삼성동, 강서동으로 분할되었으며, 물금면이 물금읍으로 승격되었다. 2007년 웅상읍이 평산동, 덕계동, 소주동, 서창동으로 분동되고 이를 관할하는 웅상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참고로 경남 8개 관할 시 중 유일하게 도농분리를 겪지 않은 채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동쪽은 수영강을 경계로 부산광역시, 기장군과 북쪽은 천성산과 영축산의 산악 지형으로 통도사가 있고, 서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김해시와 접하며, 남쪽은 금정산을 경계로 부산광역시 금정구 그리고 북구와 접하고, 북쪽은 울산광역시와 밀양시에 접하고 있다. 지세상 특징은 백두대간의 여맥이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시의 북쪽인 밀양시·울산광역시의 산지부분을 형성함은 물론, 그 영향이 시의 남쪽인 부산의 북부까지 지속되는 관계상, 고봉준령이 상당한 범위에 걸쳐 있다. 이들 산지부의 곡저부에는 곳곳에 분지형 저평지및 하천유역의 침식평야 지구가 전개되고 있다. 북서부에서 남쪽으로 낙동강이 남류하며 이들 산지부에서 흘러 내리는 당곡천·염포천·원동천·상림천·양산천 등을 이루면서 모두 낙동강에 합류되고 있다. 북부의 하북·웅상에는 취서산(聚西山, 1059m)·시살등(981m)·정족산(鼎足山, 700m)·천성산(天聖山, 812m)·원효산(元曉山, 922m)·대운산(大雲山, 742m), 서부의 원동·물금에는 염수봉(鹽水峰, 816m)·천태산(天台山, 631m)·토곡산(土谷山, 855m)·오봉산(五峰山, 450m)이, 그리고 부산의 접경지구인 남부의 동면에는 장군봉(將軍峰, 750m)·금정산(金井山, 801m) 등이 솟아 있다. 한편 동부쪽에는 북동부에는 회야강이 대운 및 원효산지에서 발원해 북류해 울산만쪽으로 흘러가며, 또한 원효산지 및 철마산지간을 수영강이 발원해 남류하다가 부산의 수영만으로 흘러든다. 부산, 울산과의 기능분담으로 인해 연담도시권을 형성하고 있으나 현재 조성 중인 물금택지개발지구를 중심으로 교통, 교육, 문화 등 도시기반시설 및 편의 시설을 확충하면서 독립된 도시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다. 경남에서 창원, 김해에 이어 3번째로 인구가 많다. [통합포탈 발췌정리]
* 밀양시
경남 동북부에 있는 시로 경부선 철도의 주요 연선 지역 중 하나로 부산과 대구 중간에 있고, 경북 청도군과 마주보고 있다. 그리고 울산과 창원도 인접해 있어서 경상도의 주요 대도시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이다. 대도시들은 모두 밀양시에서 차로 1~2시간 만에 갈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여러 대도시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고 있는 도시다. 시청을 기준으로 밀양에서 창원까지는 31km, 부산까지는 47km, 대구까지는 43km, 울산까지는 51km다. 읍, 면 단위로 주변 대도시의 영향력이 있는데, 상동, 청도면 지역은 대구, 산외 지역은 울산, 삼랑진 지역은 부산, 하남읍 지역은 창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대구로의 유동인구는 의외로 적어서 2017년 통계에 따르면 대구로의 유동인구는 부산, 창원, 김해, 울산으로의 유동인구보다 적었다. 삼국시대 초기 변한의 땅으로 미리미동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기원전부터 6세기까지 가야에 속하였으나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 미리벌)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전국 지명을 한화할 때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하였다. 밀성군 휘하의 다섯 영현으로 밀진현(密津縣, 삼랑진읍), 상약현(尙藥縣, 창녕군 영산면), 오구산현(烏丘山縣, 청도군 청도읍), 형산현(荊山縣, 청도군, 화양읍), 소산현(蘇山縣)을 거느린 지역 중심지였다. 고려시대 995년(성종 14)에 밀주군이 되었다. 조선 1401년(태종 1) 밀성군으로 칭하다가 1415년에 밀양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대구부 밀양군, 1896년에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4년 양산군, 김해군, 영산군의 일부를 병합하고 청도면을 신설하여 12면을 관할하였다. 1923년 밀양면을 指定面으로 하고 1928년 하동면이 삼랑진면으로 개칭되었다. 1931년에 밀양지정면, 1963년에 삼랑진면, 1973년에 하남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였다. 1946년 밀양읍 대성정을 상동면 안인리로 하였다. (구 대성역소재지) 1989년에 밀양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시·군이 분리되었다. 이미 15세기 경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얼음골 사과를 한양에 있는 임금님께 진상하던 조용했던 동네가 1905년 개통한 경부선 덕분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같은 밀양 땅의 삼랑진이 더 중요한 역이어서 삼랑진이 필수 정차역이었다. 밀양시내는 상대적으로 삼랑진보다 인구수도 적고 듣보잡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사실 삼랑진이 밀양보다도 먼저 발전했다. 광복 이후부터 발전을 거듭하였고, 1980년대 드디어 새마을호가 밀양역에 정차하게 되면서 밀양의 위상이 달라졌다. 이때 이미 삼랑진은 끝도 없이 몰락해 갔다. 지금은 무궁화마저도 일정 배차량 말고는 안서고 통과하는 역이 삼랑진이다. 1995년 1월에는 밀양시와 밀양군이 통합해 도농복합도시가 되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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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사령관님께서 영축산까지 전날 미리 답사하신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주도면밀하고 치밀하신 대구 비실이부부산줄기종주영웅선배님이 162지맥을 다니실 때 습관대로 전날에 미리 운영진이 묵을 휴양림과 진행할 전 코스를 답사하시고, 특히 야간에 진행할 영축산까지의 어프로치에 헷갈리지 않도록 미리 시그널을 촘촘히 달아 놓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통도사, 상원사, 봉정암, 정암사, 법흥사) 중에 제 1호에 해당하는 통도사에 우연찮게도 운영진 영축지맥 종주일에 맞춰 자장매가 봄을 알리는 시기랍니다. 그 통도사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김유신장군 조부 김무력장군 묘가 통도사 안에 자리잡고 있었답니다. 양산시 통도사 입구 하산면 지산리 만남의 광장 인근 평산마을에 새로운 명물이 생깁니다. 문대통령이 퇴임 후 머물 사저가 들어서게 되죠.
♤ 영축산(靈鷲山, 1081.1m)/ 3읍면봉(울산시 울주군 삼남읍, 양산시 원동면, 하북면)
2001년 취서산, 축서산, 영축산, 영취산 등으로 부르던 산을 영축산(靈鷲山1,081m)으로 정식 고시하였다. 통도사 일주문에는 '영축산통도사'라고 기록되어 있어 일찍부터 영축산이라고도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영축산과 시살등 일대가 가지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산 지명은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인도의 영축산과 닮아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양산천이 발원해 남류하며 남사면에 통도사, 백련암 등 많은 사찰이 위치한다.
- 깨져서 시멘트로 때운 4등삼각점(언양 452/ 1988 재설)이 있다.
♤ 단조산성(端照山城)
이천리 단조산성(梨川里丹鳥山城)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일원에 위치한다. 영축산의 정상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단조산성은 통도사 뒤편 영축산 정상 부위에 있다. 영축산 정상부 위의 대부분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축조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신라 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며 양산시 하북면에서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로 연결되는 요해처(要害處)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에 단조산성에 주둔하였던 조선군이 양산 지역을 침입한 왜군과 가천들에서 싸웠다고 한 점으로 보아 신라시대 이후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단조산성은 통도사 8경 중의 하나로 ‘단성낙조(丹城落照)’로 유명하며, 영축산 정상에 산성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 통도사(通度寺)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佛寶·法寶·僧寶로 일컬이지는 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佛寶)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2018년 1월에 양산시 기념물 제289호로 지정되었으며, 같은 해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한 것은 산의 모양이 인도의 영축산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 옛 이름은 축서산(鷲棲山)이다. 절 이름을 통도사라 한 까닭은 ① 전국의 승려는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득도(得度)한다는 뜻, ② 만법을 통달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③ 산의 형세가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 등이 있다.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와 가사(袈裟), 그리고 대장경 400여 함(函)을 봉안하고 창건함으로써 초창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되었다. 특히 불사리와 가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역사 기록은 통도사의 사격(寺格)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임에 틀림 없다. 그리고 이 절을 창건한 자장율사는 계단(戒壇)을 쌓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맞아 득도시켰다. 이에 통도사는 신라 불교의 계율 근본도량(根本道場)이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찰이 아니고 후에 금강계단이라고 불려진 계단을 중심으로 몇몇 법당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 뒤 고려 초에는 사세가 더욱 확장되어 절을 중심으로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둘 만큼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특히 현존하는 중요 석조물이 고려 초기 선종대에 조성되었으므로, 가람의 정비는 이때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통도사는 신라의 승단을 질서 있게 체계화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통도사의 중심인 금강 계단은 부처의 사리를 모신 이후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통도사 안에는 대웅전과 고려 말에 지은 대광명전을 비롯하여 영산전·극락보전 등 12개의 법당이 있다. 또 보광전·감로당 외에 6개의 방, 비각·천왕문·불이문·일주문·범종각 등이 있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1601년과 1641년에 두 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다. 대광명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뒤에 지은 건물들이다. 통도사는 부처의 사리를 모셨으므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는 대웅전이 보물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 보물 제471호인 봉발탑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 통도사 경내 김유신 조부 김무력장군 묘
통도사 경내에는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521∼532)의 왕자이자 김유신장군의 할아버지인 김무력공의 묘소가 있다. 김무력장군과 그의 부친 가락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 그리고 아들 김서현장군, 손자 김유신장군 이 큰 계보에 대해서는 대부분 이의가 별로 없으나 그들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오래전 일이라 이런저런 주장들이 많아서 다른 자료들이 많이 나타난다. 구형왕은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음을 알고 백성들이 고통 받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진흥왕에게 금관가야를 내놓고 산청으로 들어간 몇 년 후 죽었다. 그래서 산청에 구형왕릉이 있는 것이다. 진골 신분을 신라에서 받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진골이면 같은 진골이냐는 식으로 또 전입 귀족이 힘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해 변방으로 발령을 내었다. 그래서 김무력은 백제, 고구려와 접경지역인 한강주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의 결혼 모두 신라 왕실 여성과 하였는데, 그가 진골로 편입된 이유이기도 하다. 첫 부인 박씨는 신라 법흥왕의 처제로 보도부인 박씨의 여동생이다. 두 번째 부인 아양궁주는 진흥왕과 사도왕후의 딸이었다. 묘소로 가는 길은 만남의 광장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이다. '만남의 광장'에서 일반인 차량 출입을 안 시켜준다. 통도사 본찰로 들어가서 한들못으로 가면 된다. 이 분(墳)의 축조연대를 측정하면 지금부터 약 1500年 전 무덤이며, 통도사 창건이전의 분(墳) 이라고 믿어지며, 통도사 창건 후는 어떠한 민묘(民墓, 민간의 묘)도 축조할 수도 없고, 그 후에 축조된 것이 없으니 충분히 고증 할 수 있다.
♤ 천정삼거리
왼쪽 아래 비로암 방향으로 약 50m 내려서면 샘터가 있다. 지금은 임시 폐쇄되어 있지만 통도사 19암자 중 비로암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영축산 정상 0.2km 이정표가 서있다. 지맥은 오룡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부뜰이성님 오늘 첫번째로 산패작업을 하는 곳입니다. 저도 조금 도왔습니다.^^
♤ 1059.9m봉/ 추모비
추모비와 함께 오래된 철제 지주의 하단부가 남아있는 곳이다.
♤ 청수좌골삼거리(1,010m)
영축산 정상 1.3km 이정표가 서있다. 사유지에 많은 팬션이 들어서 주차공간과 환경오염을 우려해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 함박등(1,051.9m)
함박등에 정상석이 두개 있다. 등은 경상도 사투리로 봉우리나 높은 산능선이라는 뜻이다. 함박등 유래는 통도사 방향에서 보면 그 모양이 함지박 형상으로 생겼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이다.
♤ 함박재
백운암(0.7km)으로 내려서는 안부이다. 백운암은 통도사 부속 19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신라 진성여왕 때 조일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맥의 왼쪽은 모두 통도사 방면으로 연결된다.
2018년도엔 노란세이버님이 채이등에 준희선생님 산패를 확인했다는데 그 이후로 없어졌다고 하네요.
♤ 채이등(1,030m)
함박재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면 갈림길에서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야 암릉 구간을 통과하여 정상석이 있는 채이등에 오른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통도사 쪽에서 보면 알곡을 까부르는 채이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오른쪽으로 청수골 중앙능선이다.
죽바우등 오름에 신불산 뒤로 가려져 있던 간월산(1,069.2m)이 조망됩니다.
♤ 죽바우등(1,064.4m)/ 투구봉
양산시 원동면과 상북면의 경계에 있는 암봉으로 주위에 산죽이 많아서 죽바우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남쪽에서 올랐다가 되돌아 나가야 한다. 암봉 위 평평한 정상에 정상석이 있다. 죽바우등 왼쪽으로 청수골 중앙능선과 능선 너머로 영남알프스 재약산, 천황산, 운문산 마루금이 조망된다. 오른쪽으로는 정족산에서 천성산을 향하는 낙동정맥 마루금이 조망된다. 동쪽에서 오름은 까칠한 반면 서쪽으로 내림은 완만한 특징이 있다.
♤ 한피기고개/ 한피지고개/ 금수암 통도사 갈림길
양산시 원동면 한피골에서 하북면 초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한피기의 한은 크다는 뜻이고 피는 비탈이란 뜻으로 한피기는 시살등에서 영축산까지 능선이 멀고도 긴 큰 비탈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한피지고개 왼쪽은 통도사 서축암, 금수암으로 내려서고, 오른쪽은 청수우골 삼거리다. 오른쪽에 청수골로 내려서고 올라서는 통행제한 안내판이 있다.
♤ 배내골(梨川洞)
배내골은 경남 양산시 원동면 대리, 선리, 장선리 일대에서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까지 이어지는 골짜기로 지명 유래는 몇 가지가 전해지는데 그 중 '맑은 개울가에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하여 이천동, 즉 우리말로 배내골이 되었다는 유래와 옛날 밀양부사가 이곳을 유람하다 마신 물이 달고 시원한 배맛과 같다 하여 이천/ 배내(梨川)가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배내골은 영남알프스에서 밀양 쇠점골과 최고의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배내골 상류에는 백련계곡과 주암마을이 있는 철구소로 나뉘어진다. 백련계곡은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시살등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천혜의 심산유곡을 빚고 있다. 이를두고 청수골과 백련골로 불리는 청석골, 그리고 간월재로 이어지는 왕봉골로 영남알프스 계곡을 대표한다. 또다른 설은 배내골의 배내는 갓난아기의 저고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으로 움푹 둘러쌓인 배니골이 어머니의 자궁(뱃속)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땅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양산시 원동면 선리에 태봉(胎峰)이란 마을이 이 유래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배내골로 흐르는 배내천은 원동면 배내에서 발원하여 밀양시를 거쳐 흐르다가 다시 원동면소재지 앞을 역류하는 냇물로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드문 역류하는 시내라고 한다. 배내는 배태고개에서 내려다보면 강물에 떠내려 오는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시살등(981m)/ 2등삼각점
시살등은 경남 양산시의 하북면과 원동면의 경계에 위치한 영축산의 능선상 한 봉우리다. 활등 처럼 휘어져 있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시살등은 그 의미에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 신불산 억새밭 너머 단조성에서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던 의병들이 왜군의 기습으로 끝내 단조성을 내줬는데, 의병들은 이곳 시살등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면서 왜군을 향해 화살을 많이 쏘았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도 전해진다. 주변의 초원능선이 시원스럽고, 929m봉 서쪽 사면에는 빨치산 지휘본부로 사용되었다는 심종지굴(신동대굴)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장선마을 직전에 통도골이 있다. 통도골은 영화 '달마야 놀자' 촬영장소 였고, 양산시 원동면에서 통도사로 넘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 아래에서 통도골과 합쳐지는 도태정골은 깨우침을 받은 골짜기라는 의미의 도터진골의 변형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이 통도골은 빨치산이 바글거리던 아지트였다고 한다. 지나온 죽바우등이 보이고 서북방향 천황산~가지산 풍광이 아름답다. 정상석과 영축능선10 이정표(오룡산 2.4Km/한피기고개0.4km/영축산 3.8Km/배내골.청수골) 서있다. 영축산과 시살등 일대가 가지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 파손된 2등삼각점(양산 21/ )과 양산시 원동면 장선마을 방향 갈림길이 있다.
♤ 오룡산(五龍山, 951m)/ 삼면봉(양산시 원동면, 하북면 → 상북면)
오룡산은 경남 양산시 하북면과 원동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지맥의 오른쪽은 계속 원동면이고 왼쪽이 하북면에서 상북면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오룡산은 정상부의 구불구불한 5개 암봉이 다섯 마리의 용을 지칭한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지만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옛날 통도사 구룡지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는데 그 중에서 다섯 마리가 뛰쳐나와 남쪽 고개를 넘어 흘러든 골짜기가 바로 오룡골이고 그 계곡 뒷산을 오룡산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열려 있다. 바위 위에 울산 한우리산악회에서 세운 오석으로 된 정상석이 서있다. 오룡산 정상은 오룡 중 3봉에 해당하는 것이다. 북쪽으로 보면 '오룡(五龍)'에 속하는 5봉, 4봉, 1봉, 2봉이 연이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 중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봉은 1봉(968m)으로 상봉이라는 별도의 이름도 갖고 있다. 그 너머로 지나온 시살등 한피기고개 죽바우등 영축산이 보이고 그보다 더 멀리는 신불산과 가지산 운문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염수봉 능걸산 천마산 등이, 동쪽으로는 천성산과 정족산, 서쪽으로는 향로산과 향로봉 재약산 등도 한번에 펼쳐진다. 영남알프스의 막내둥이라고 하지만 가히 조망만큼은 가지산 정상 못지않은 영남알프스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 영축산 정상에서 6.3km 지점이다. 내림길에 왼쪽은 외석/내석마을 가는 길이고 지맥은 오른쪽 길로 내려선다.
♤ 도라지고개
상북면 내석리와 원동면 선리를 잇는 고개로 자동차로 다닐 정도로 꽤 넓은 임도이다. 임도 건너 맞은편에 있는 이정표로 진행하여 숲속으로 올라간다.
- 표지목과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 828m/ 삼리봉(상북면 내석리, 원동면 선리 → 대리)
갈림봉으로, 지맥의 왼쪽은 그대로 상북면 내석리이고, 오른쪽이 선리에서 대리로 바뀌는 삼리봉이다.
- 지맥은 좌틀한다.
♤ 양산시 원동면 선리(善里)
선리는 원동면의 북쪽 끝에 있는 마을로 언양 배내와 접경을 이룬다. 향로산 자락에 위치하여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마을 앞으로 배내천이 흘러 나간다. 오룡산, 시살등 등이 대표적인 산지이며, 선리는 장선(長善)마을과 중선(中善)마을을 통합할 때 두 마을의 선자를 따서 선리라 하였다. 이곳 지형이 배(舟)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런 곳에서 걸출한 인물이 난다 하여,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 사람들이 '물맛이 배(梨)처럼 좋다는 뜻으로 '이천삼리(梨川三里)'라고 개칭했다 한다. 지형이 형상과 관련하여 풍수지리에서 지형이 배 모양인 곳에 우물을 파는 것은 배 밑바닥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아 배가 가라앉으므로(재난이 생김) 금지해 왔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지금도 우물이 없다. 임진왜란 당시 전국 각지 피난민들이 이주하여 선리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양산군 읍지』(1786)에 배내골 전체 지역을 서면(西面) 이천리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하서면 소속이 되었다가 1914년 대리와 선리로 분할 되었고, 장선동과 중선동을 합하여 선리로 재개편 되었다. 1936년 이후 현재까지 원동면 소속의 법정리로서 관할 행정리로는 선리마을 장선마을이 있다. 대리(大里) 또한 임진왜란으로 모여든 피난민들로 큰 마을이 되었다고 하여 대리라고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 내석임도네거리/ 임도표지석,
임도를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염수봉을 오르기 전 임도삼거리이다.
- 2010년 대리 소형임도 표지석이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정상석 뒷면을 먼저 만납니다.
♤ 염수봉(鹽水峰, 816.1m)/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內石里)와 원동면 대리(大里) 마을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평퍼짐한 정상에 양산웰빙산악회에서 세운 대리석 네모난 정상석이 있다. 뒷면의 글귀가 명언이다. 염수라는 지명의 유래는 과거에 산불이 자주 발생해 마을 주민들이 소금단지 두개를 정상에 묻었기 때문에 유래되었다는 설과 옛날 천지개벽 시 바닷물이 여기까지 올라와 잠겼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는 설 등이 전해진다. 산 서쪽으로 밀양강으로 흘러드는 단장천이, 동쪽사면에서는 양산천으로 유입하는 내석천이 발원해 동류한다. 염수봉은 영남알프스의 막내라고 애칭하기도 한다. 염수봉을 기점으로 오룡산, 시살등을 거쳐 영축(취서)산-신불산-배내골-가지산군, 재약산군으로 이을 수 있는 시작점으로 잡을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영남의 산꾼이라면 양산 염수봉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그러면서도 염수봉을 따로 내세워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종주길에 거쳐 지나는 산이기 때문이다. 염수봉이 이런 홀대 아닌 홀대를 받는 것은, 우선 지리적 위치 탓이다.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줄기는 시살등 오룡산을 거쳐 토곡산으로 마무리 되는데, 염수봉은 그 중간에 자리해 있다. 지나가는 봉우리에 머물러 있는 것. 전형적인 육산인 염수봉은 산세가 헌걸차다거나 비경이 숨어 있지도 않다. 하지만 알고보면 골이 깊고 경관이 매우 수려하며, 특히 기암과 폭포가 많아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유람하던 산으로 암석이 풍화작용으로 인해 파괴되어 생긴 바위 부스러기인 암설이 집단적으로 모여있는 너덜 지역이 나타난다. 주능선을 따라 나있는 임도 역시 염수봉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에 한몫 거든다. 조망은 양호하다. 등로 상태도 매우 좋은 편이며 3봉에서 바라보는 밀양댐의 풍경이라든가 2봉으로 오르는 아기자기한 암릉 구간은 그 재미를 더해가는 산이며, 특히 정상에 오르면 최근에 개장한 애덴밸리의 겨울스포츠인 스키 타는 광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멀리는 천황산, 재약산, 향로산, 백마산, 향로봉, 뒷삐알산, 오룡산, 영축산 등 수많은 산들이 시야에 들어와 한동안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산이다.
- 3등삼각점(밀양 309/ 1998재설)이 있다. 정상에서 왼쪽 맥길로 이어간다.
♤ 내석고개(內石峴, 545m)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와 원동면 대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임도안내문과 반바지님 코팅지 산패가 소나무에 묶여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진행한다. 내리막길에 염수봉에서 이어지는 임도를 두번 통과 후 세번째 임도에 접속한다. 근처에 조립식 민가가 한채 있고 토목공사장이 보인다. 내석고개는 원동면 대리와 상북면 내석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내석리 방면은 비포장으로 버스가 오를 수 없으나 대리쪽은 아스팔트 포장으로 버스가 오르도록 임도가 확포장 되어 있다.
- 왼쪽 내석리~양산행 버스(4.32km, 1시간): 17:10, 19:00, 오른쪽 태봉~양산행 1000번 버스를 이용 가능하다.
이정표가 있는 805m봉 에덴밸리리조트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납니다.
♤ 에덴밸리리조트
양산시 어곡동 원동면 구간으로 예전에 삼원축산이라는 목장이었는데 스키장, 골프장, 콘도가 들어서 있다. 등로는 골프장 배수로를 따르다 골프장을 지나고 6번코스 상부 쉼터 뒷쪽으로 오른다. 습지보호지역 금줄도 따른다.
♤ 뒷삐알산(827.7m)
경남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와 원동면 대리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삐알이란 비탈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정상에 벤치가 있고 데크목으로 만든 전망대도 있다. 울산 어울림산악회에서 세워놓은 정상석과 삼감점이 있다. 정상에 서면 에덴밸리의 스키와 보드 타는 광경, 스키장 위로 토곡산, 향로산, 백마산, 향로봉, 오룡산, 염수봉의 조망이 눈 아래에 병풍처럼 펼쳐진다. 정상에서 띠지가 많이 보이는 직진은 상북면 외석마을로 가는 길이고 지맥은 90도 우틀로 꺽어져 내려선다. 양산 상북 외석리는 내석리의 바깥쪽이 되므로 외석이라 하였다. 또한 서쪽에 내석천이 흘러 옛날에는 석장(石庄)이라고도 하였다.
- 4등삼각점(밀양 424/ 1998 재설)이 있다. 에덴CC와 좌측 습지지대 뒤 능걸산을 바라보며 내려선다.
2구간을 가이드해주신 부산 건건산악회 김창호대장님께서 토곡산을 토나오고 곡소리 나는 산이라고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 토곡산(855m)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줄기는 시살등 오룡산, 염수봉을 거쳐 토곡산에서 마무리 되는데, 토곡산은 기장 달음산(587.5m) 그리고 이웃해 있는 천태산(630.9m)과 더불어 부산 근교의 3대 악산으로 불리는 산의 기세가 첫걸음부터 발목을 붙잡는 산이다. 악산(惡山)이란 '산행이 힘들다'는 뜻이다. 3대 악산 중에서도 원동의 진산인 토곡산이 가장 높다. 산줄기는 여러 갈래로 옹골차게 뻗어 내린다. 산줄기에는 설악산 용아릉 같은 암릉이 길게 걸쳐 있다. 바위분지로 이루어진 정상은 그 특징대로 툭 터진 조망(眺望)을 자랑한다.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김해, 양산, 밀양의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영남 알프스의 남쪽 줄기들이 확연하게 조망된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천태산, 금오산이 또한 남쪽의 낙동강 건너편에는 낙남정맥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거기다 삼랑진읍내와 양산시내까지 한눈에 들어오니 가히 환상적인 조망이다. ‘조금 올라가면 걷기가 수월해지겠지’ 하는 기대는 처음부터 접는 것이 옳다. 용골산이나 토곡산은 웬만큼 이력이 붙었다는 산님들 조차도 익숙하지 않은 산이다. 부산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어쩌면 가지산이나 신불산, 영축산 등 영남알프스의 유명세에 가린 탓이 아닐까 싶다. 용골산(591m)과 토곡산(855m)의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이루어진 산의 기세(氣勢)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산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 770m봉/ 삼면봉(양산시 원동면, 상북면 → 강서동)
골프장 도로 상당 석축 절개지로 올라서 조망바위가 있는 뒷삐알산이 조망되는 765m봉에서 짧게 진행한 봉분이 낮은 흙묘 1기가 있는 무명봉이다. 동남쪽으로 능걸산이 보인다. "삐알산 정상 C코스" 라는 이정표가 왼쪽 능걸산 방향에 쓰러져 있다.
♤ 능걸산삼거리/ 습지삼거리
마당바위에서 조금 진행하여 만나는 습지삼거리에서 왼쪽은 능걸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임도이며, 우틀이 영축지맥 양산풍력발전단지로 이어지는 지맥길이다.
♤ 능걸산(783m)/ 왕복 31분
양산시 어곡동과 상북면 경계에 있는 능걸산은 정상에서 남쪽 방향을 바라보면 햇살에 부처골의 계류가 반짝거리고 그 오른쪽 신불산(어곡동 신불산으로 영남알프스 신불산과는 동명이산이다.) 공원묘지 사이 능걸 비덩에 큰 묘가 있는데, 아직 고증되지 않은 신라 진성여왕의 무덤이 있다. 그래서 이 산이 능걸산이라 불리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가 있다.
♤ 삼리동봉(746m)(원동면 대리, 양산시 어곡동 → 원동면 영포리)/ 스키장리프트탑승장 전망데크
임도에 도착하여 습지보호구역감시초소를 만나고 습지를 벗어난다. 철수한지 오래된 미군방송국(AFKN) 막사 입구도 지나고 풍력발전기 쪽을 바라보며 맥길을 잇는다. 풍력발전단지 관리건물을 지나고 도로를 만나 1000번 버스정류장을 건너 내리막 오른쪽 임도로 진입하여 스키장리프트탑승장 전망데크가 있는 746m봉에 이른다. 지맥은 원동면과 강서동(시내동지구)의 면계를 버리고 온전하게 원동면으로 진입하여 영포리와 대리의 리계를 따라 북상한다.
- 곤도라 뒷쪽이 마루금인데 철조망이 있어 왼쪽으로 우회한다. 마루금을 이해하지 못하면 왼쪽 양회임도로 내려갈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스키장 우라누스코스 왼쪽에서 도로를 바라보며 내려간다. 풍력발전기 왼쪽 위로 가야할 736m봉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등로 좌측 아래로 어곡동이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 범어사를 품고있는 낙동정맥 능선의 금정산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 양산시 어곡동(魚谷洞)
양산시 강서동의 중북부에 위치한 법정동이다. 양산의 도시화 및 산업화와 더불어 성장한 어곡지방산업단지가 소재한 공단 지역이고 경제 개발에 일익을 담당하는 근거지이다. 마을의 형성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여러 유적과 유물의 흔적으로 보아 신라 초기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 초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마고성과 무등산의 절터골 그리고 승려의 화장터가 있었다는 승산곡(僧山谷) 등은 이 지역의 초기 거주 역사를 증명해 주는 자료이다. 명칭 유래는 어곡 또는 어실이라 하였는데 어곡은 물고기가 많은 골짜기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속칭으로 임금이 거처한 곳이라는 뜻에서 어실(御室)이라 하였는데, 이 지명은 능걸산의 신라 진성여왕릉과 연관지을 수 있다. 『삼국사기』 권11, 신라본기에 899년(진성왕 11)에 "왕이 북궁(北宮)에서 돌아가심에 진성이라 시호하고 황산(黃山)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황산(물금을 비롯한 양산 서쪽의 산 일대를 총칭한 것으로 고증됨) 중 해당 지역이 바로 어곡동이라는 설이다. 지금도 용선마을에는 능곡과 능묘라는 지명이 구전되고 있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어실이 어곡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 안정산(709.5m)
스키장 왼쪽으로 내려서서 전방의 1051번지방도로와 만나고 전방에 736m봉이 보인다. 736m봉은 오르지 않고 도로를 따라 편하게 우회한다. 도로를 따르다 바리케이드를 넘어 왼쪽 소나무 사이 등로로 진입하여 1051번도로를 다시 만나 좌측 공터로 들어선다. 전방의 통신탑을 보며 진행한다. 된비알로 이동통신탑 기지국에 올라서서 왼쪽으로 오름길을 진행하여 너덜지대 연봉을 넘는다. "SK원동면5" 이동통신탑 기지국에서 무명봉 하나를 넘은 후 두번째 봉우리이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걸려있는 넓은 공터에 키작은 소나무가 있는 555.5m봉을 넘고, 가파른 내림길에 오른쪽 대리와 왼쪽 영포리 방향이 조망되는 산불감시탑과 초소를 통과하면 배태고개에 도착한다.
♤ 배태고개(69번도로)/ 배내골표지석/ 육각정자
경남 양산시 원동면 대리와 영포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고개 북쪽에 밀양시와 경계하고 서사면에서 영포천이 발원해 남류한다. 영포리에서 대리쪽으로 69번지방도가 배태고개를 통과하며 동북쪽으로 울주군으로 연결된다. 좌측 아래에 영포리 배태마을이 있고 배태는 배내천 큰 물이 흘렀을 때 양쪽으로 배를 대었다고 하여 '배태'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 (양산)의 하서면 어포동(현, 원동면 영포리)에 있는 고개로 이현(梨峴)을 기재하고 한글로 '뵛퇴'라고 병기하였다. 또한 조선지형도 (밀양)에 현재 영포리 배태마을이 이현 마을로 표기되어 배태고개가 이현이라고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내포천과 배내천이 큰 강일 때 고개 양쪽에 배를 대었다."고 그 유래에 대해 기록하였다. 『여지도』 (양산)와 『해동지도』 등에 이천산 남쪽, 신흥사 서쪽의 고개로 이현 혹은 이치로 표기되어 있다. 공적비에 옛날에는 고개가 아주 험했는데 1970년대 3공시절 이 지역 출신으로 육참총장, 국방부장관까지 지낸 서종철장군이 당시 군수사령관이어던 고광도장군에게 요청하여 험난했던 고개는 사람들이 쉽게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정비되어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고개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 "청정 배내골"이라는 입석이 정상부에 있다.
- 원동역에서 운행하는 2번버스 정류장이 설치되어 있고, "청정 배내골" 표지석 앞으로 도로를 건너 등로에 진입한다. 들머리에 준희선생님 "여기가 배태고개입니다" 산패가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院洞面)
양산시 북서부에 있는 면으로 강서동, 상북면, 하북면, 물금읍과 접해 있다. 대부분 100~800m의 험준산 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곡산(855m)·염수봉(816m)·향로봉(727m) 등이 솟아 있다. 낙동강이 남서면계를 흐르며, 내포천을 비롯한 지류들이 이에 합류한다. 원동면에 있는 기차역은 원동역이 유일하며 원동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천태산, 함포, 내포, 어영, 영포, 배내골, 물금으로 갈 수 있다. 영포리에는 신흥사라는 절이 있다. 낙동강은 가야와 신라의 국경이었다. 당연히 수로를 감시하는 관원문이 있었는데 그 관원문의 원(院) 자를 따서 원동이란 지명이 생겨났다. 지명은 국경과 관련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낙동강은 가야와 신라 사이를 흐르며 강 이쪽의 안부를 건너편으로 전해주고 건너편 안부를 강 이쪽으로 전해주었을 것이다. 국경이라기보다 양쪽 모두를 안은 따뜻한 경계이지 않았을까 싶다.
운영진 영축지맥 단합산행은 준희선생님과 비실이대선배님의 밀착 지원으로 과분하게 황제 의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날은 이어지는 2탄과 3탄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대길형님은 내석고개에서 잠깐 나타나셨다가 곧바로 사라지셨네요. 바쁘신데도 불구, 내석고개에 선생님을 모시고 와서 염수봉까지 마중을 나오신 거였군요. 그렇게 1구간은 별 무리없이 즐겁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첫댓글 홀대모 운영자님들 영축지맥 1구간 정말 멋진구간을 같이 하셨네요 모두들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세르파대장님!
작년 여름에 하셨나요?
글찮아도 세르파대장님 띠지 꾸준히 확인하며 걸었습니다.^^
좌우로 영남알프스와 낙동정맥을 감상하기 좋도록 1구간 내내 날씨가 도와주었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해서 즐거웠던 영축지맥과 갈멧길 이었습니다.
뭣 보다도 둘쨋날 온다던 비가 안와서 두배로 즐거웠던 영축지맥 이었습니다.
고생 하셨어요.
부뜰이성님!
부뜰이성님과 처음 함산인데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 정도 속력과 페이스라면 어디간들 무난하리라 보였구요.
형수님과 같이 다니실 땐 형수님이 속도를 리드하고 부뜰성님은 꼼꼼하게 사진을 챙기고 역할 분담이 있는것 같습니다.
저도 비가 오면 구질구질하고 속도도 죽고...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니 하늘이 감읍하였나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녀온지 며칠 안되었어도 그날의 황홀했던 순간들이 되새겨집니다.
사진이며 상세한 여정담은 독보적입니다.
어둠에 영축산~함박등 암릉지를 지났지만 날이 밝으니 멋스런 산세에 감탄사를 연발하던 기억이 남네요.
혼자만 능걸산의 조망을 독차지하셨으니 보람도 더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시간내어 자세히 탐독해 볼께요.~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능걸산은 사전에 얼마나 소요되는지 정보가 부족해서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30분 이내에 다녀올 거리였다면 부뜰성님도 출발하셨을 건데 말이죠...
산행후기는 미리 운영진산행기란에 올려두었고 이번에 사진만 첨부하고 약간 다듬었습니다.
사전에 준비를 하는 식이라 빨리 올릴 수 있구요.
고생이 되셨는데도 벌써 그리워지시다니....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 맞는것 같습니다.
다음엔 영축보다 조금 짧은 거로 준비했음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들 모두 시간 맞춰 아름다운 영알의 일부 구간을 이루고 있는 영축에 드셨군요
대구와 부산의 비실이님과 준희 선생님 그리고 대길님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즐겁게 첫구간을 잘 마무리를 하였구요
풍경도 아름답고 산행 후 뒷풀이 모습도 좋네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네 칠갑산선배님!
배가 꺼질만 하면 또 보급이 이루어지고...
하루 종일 그칠줄 모르는 음식 고문을 받아 배가 빵빵하였습니다.^^
산행도 즐거웠고, 산행 후 뒤풀이도 모두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