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살을 돋우는 말씀(21)
서비스와 리시버
마태 13:1~9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더니
2 사람들이 또 많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그대로 모두 호숫가에 서 있었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 먹었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싹은 곧 나왔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6 해가 뜨자 타버려 뿌리도 붙이지 못한 채 말랐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혔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
9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부르고 매일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시절, 저는 탁구선수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탁구를 치는데, 저는 탁구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비스와 리시브라고 있지요?
공격권을 가진 사람이 게임이 시작될 때 상대에게 공을 넘기는 것을 ‘서비스’라 하고, ‘리시브’는 어떻게든 공을 살려 받아넘기는 기술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서비스를 한 사람은 곧바로 공격에 들어가거나 어려운 코스로 회전볼을 주어서 상대방이 리시버하기 어렵게 되받아칩니다.
이렇게 공이 몇 번 오가다가 상대방이 공을 못 받거나 실수하면 점수를 얻는 게임이 탁구입니다.
그런데 영어 ‘서비스’에는 봉사라는 뜻이, 그리고 ‘리시브’는 받아들임 곧 수용의 뜻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 대목이 참 역설적이다 싶었습니다.
탁구라는 게 기본적으로 경기에 이기기 위해 공을 치고 받는 것인데도, 이처럼 이기기 위해 하는 동작기술을 ‘봉사’와 ‘수용’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소재는 씨, 주제는 뿌림과 받아들임입니다.
만약 씨가 ‘탁구공’이고, 뿌리는 게 ‘서비스’라면 땅이 열매를 어떻게 수용하느냐는 ‘리시브’에 해당하는 관계가 성립될 것입니다.
성서는 씨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밭이 길바닥이냐, 돌밭이냐, 가시덤불 속이냐 아니면 좋은 땅이냐에 따라 열매가 천차만별로 차이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이 들은 이야기이지만, 하느님 나라(씨앗)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항상 어려운 선택을 요청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당장 처리해야 하는 과제와 먹고 사는 문제가 벅차서,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대학에 보내야 하고, 진행되는 프로젝트 마쳐야 하고, 친구 만나 수다 떨고, 가끔은 TV 드라마도 봐줘야 하는 우리의 일상은 너무 바쁩니다.
씨앗을 받아 잘 ‘수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승리를 위해 몰두해 있는 탁구선수처럼 되받아 치기에 급급하거나, 내버려 두어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자신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불행 중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먼저 기억할 점은 우리는 원래 모두 좋은 밭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마음은 상했고, 열심히 하다가도 유혹에 넘어가고, 애를 썼지만 결과가 시원치 않습니다.
자신에게 도덕적,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어 생각하기도 합니다.
겸손이 아닌 ‘자기비하’(自己卑下)는 내가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라는 사실을 부정하여, 결국 성령의 활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성령은 그 사람을 떠난 적이 없는데, 절망한 영혼은 슬그머니 육체를 따라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원래 하느님이 만드신 좋은 밭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마십시오.
무릇 무엇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적 상태는 왔다 갔다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로마 8:5)
육체적인 것은 먹는 것, 경제적인 차원, 물질적 세계관으로 연결되고, 영적인 것은 먹는 것 이상의 삶의 가치와 문화적 차원, 그리고 정신적 세계관을 지향하게 합니다.
마음 밭은 이렇게 어디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모습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아무리 좋은 밭이라 해도 갈지 않고 물도 주지 않은 채 내버려두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가꾸어주어야 합니다.
마치 탁구선수가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실력이 퇴보하여, 서비스도 리시버도 못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느님은 씨앗을 주시지, 처음부터 열매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어떤 마음 밭으로 가꾸느냐에 따라 열매의 모습과 분량이 달라질 것입니다.
재미와 오락에 시간을 낭비하거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여 열등한 존재로 낮추거나, 하느님이 주시는 씨앗을 받을 자격이 없다며 ‘자기비하’를 일삼든가, 정신적 성숙 없는 육체적 보신만 추구하거나, 오직 돈벌이에만 몰두하거나 나중에 가서는 단순한 연명 이상의 아무 의미가 없는 의술에 집착하는 인생은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려가기”(요한 21:18) 전에 행복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회개하면 열매를 맺는 길도 보이게 됩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자신을 낮추고 성령의 씨앗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탁구도 승패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서비스’는 상대방을 위한 배려이며, ‘리시버’는 그 배려에 대한 응답인 수용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탁구공은 더 이상 승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승리를 떠나 신명나는 탁구 한 판 치고 싶습니다.
서비스와 리시버, 이 말의 의미가 본래대로 살아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한오 신부 (프란시스, 춘천교회)
첫댓글 신부님께서 탁구선수 이셨다니 새롭게 느껴집니다.
(축구나 럭비선수였다면....ㅎ)
게재에 춘천에서 정기적으로 성공회 전국 탁구대회를 개최한다면 좋을것 같군요..
각 교회의 청,소년부 활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저역시 청년, 학생들을 오래 지도했었고, 그때마다 탁구대는 항상 준비하고는 했지요..)
신부님 어떠세요?
"성공회 전국 청년,학생 탁구대회" 청년부, 고등부, 중등부(혹은 장년부도 양념으로...) 단,복식 등등
주관: 춘천교회. 주최: 3개교구 청년부, 학생부. 후원: 000 (비공식 의견입니다...ㅋ)
이 댓글 지금 처음 봅니다. 탁구대회 멋짓 발상이네요... 저도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인데, 이렇게 제안을 받으니 침이 꿀꺽 넘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