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삼오 아우의 1주기 추모에 삼가 이 글을 바치나이다!
사고가 메마른 者에게 엽서는 가장 지혜롭다고 하던데 주소도 모르고 번지도 없는 저 하늘나라로 이 글을 보내려니 답답하기도 하고 몹시 가슴이 메어지는군.
오늘은 아우 삼오가 그립고 생각이 나 회답은 없을 것으로 알면서도 내 마음을 전하려니 마치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라도 쳐다보듯 설레기도 하고 눈물이 맺히기도 하네 그려.
나는 지금도 삼오 동생을 잊을 수는 없네.
항상 인정 많고 의리 강한 그대가 떠난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 지금의 심정으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뿐이네.
더욱이 살아생전 늘 곁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던 자네였기에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면“형님!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새벽은 옵니다. 용기 잃지 마시고 돌파해 나갑시다. 그게 사나이 아닙니까” 하며 힘껏 응원해주던 아우를 잃고 보니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할 천군만마가 없어진 것 같아 허공에 이름만 흩날려 보낼 뿐 이 시간 명상의 오솔길을 함께 거닐며 대화를 나누려니 자네 없는 허전함이 절절하게 가슴에 묻어나 내 아픈 심정을 삭힐 길이 없네.
이제 와서 먼 길 잘 갔느냐고 안부를 물으면 뭘 하겠으며 명복을 빈들 이 안타까운 마음을 그 누군들 알겠느냐마는 사람구실 제대로 한번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진 영면속의 아우에게 이 추도의 글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송구한지 모르겠네.
언제나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였지만 이제는 공부를 더하고 싶은 충동에 오늘도 옹서상 머리맡에 앉아 사전을 뒤적이며 번역문을 만드느냐 골머리를 썩고 있는 차에 동생 채근이로부터 삼오형 1주기가 다가온다는 휴대폰 메시지에 눈이 번쩍 띄어 이렇게 뒤늦게나마 필을 들게 되니 펜 끝이 무뎌지고 마음이 더욱 짠해지는 것을 고백치 않을 수가 없네.
지나간 세월을 떠올려보면 자네와 함께 송도 해수욕장으로 광안리로 또 태종대까지 해풍에 더위를 식히며 담소하던 그때가 마냥 그리워지기도 하고 자갈치 시장에서 회 한 접시를 시켜 놓고 막 놀려면 막걸리를 마셔야 한다며“형님! 술 한 잔 받으시오!”
껄껄대던 컨트리 맨(촌놈) 때를 벗지 못하던 우리들 시절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겠지?
이보게 삼오! 왜 대답이 없는가!
을지로 백병원에서도 환자복을 마다하고 죽을병도 아닌데 이건 입어 뭐하냐고 혈기왕성하게 웃어대던 철부지 같던 자네가 이 세상을 하직하다니 도대체 이게 웬말인가!
정녕 그대는 갔지만 아직도 내 뇌리 속엔 자네 모습이 좀처럼 지워지질 않네 그려.
이렇게 일찍 갈 줄 알았다면 고등학교 선생노릇 할 그 시절, 함께 숙직실에 누워 수박 한 통 잘라놓고 밤새워 주고받던 얘기라도 더 했을걸. 지금 세월은 돌릴 수 없지만 더욱 가슴이 막히는 것만 같네.
내가 그간 정치에 입문하여 훈장의 때를 벗고 무슨 서울시의원이라도 한번 해보겠다고 발을 디뎌 놓은 것이 8년의 장시간이었지만 뭐 하나 제대로 혜택도 주지 못했으니 내가 얼마나 바보스럽고 못난 선배였던가!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고 한심스럽기까지 한 천치였네.
그렇지 않은가 아우!
그런데 말일세! 자넨 생각이 날 지 모르겠네만 교육문화위원장 시절 우리 의원들과 회식을 마치고 행주산성 노래방에 들러 신나게 노래부르고 놀 때 자네가 날 찾아와 함께 어울려 여흥을 즐기던 그날 밤‘방랑시인 김삿갓’노래를 3개 국어로 유창하게 불러 박장대소하던 그때 생각 말일세~
그러나 이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할 타계의 몸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추억의 물살만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뿐 공허함만이 마음 한켠에 쌓여 이렇게 그리움에 젖어 못 잊고 있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자네가 떠나던 날 하늘마저 간간히 비를 뿌려 내 가슴은 더욱 찢어지는 것만 같았네.
아마도 하늘에서 뿌린 빗물은 평소 반갑게 지내던 동료들을 뒤로하고 작별인사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 옮기며 홀연히 떠나는 인간 김삼오만의 뜨거운 눈물이었을 지도 모르네.
또한 시류에 젖어 호탕하게만 인생을 보내던 자네가 아내와 사 공주(넷 딸)에게 변변한 사랑 선물 한번 주지도 못한 채 덩그러니 다섯 식구만 남겨놓고 먼 길을 떠나려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몸부림쳐 우는 한 가장의 피눈물이었을 수도 있네.
나또한, 외강내유의 기개 넘치던 평소 당당했던 후배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다 보니 못내 아쉽고 가슴이 파열되는 것만 같네.
언제나 불의와 부정 앞에 자세를 절대 굽히지 않았던 웅변인 김삼오! 부당한 결과 앞에는 승복할 줄 모르던 뚝심 센 인간 김삼오!
그대는 정말 사나이 중의 사나이 김삼오가 아니었던가!
특히 정의의 전도사로 그릇된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그 위풍당당함이 저 세상에서도 재현되어 바른 말 바른 소리 바른 행동으로 식솔들 잘 거느리며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겠지?
삼오 아우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마는 자네가 그렇게 투병중인 줄은 난 정말 몰랐네.
작고 3개월 전만 해도“형! 지금 뭘 하세요? 제가 한번 찾아가서 유세라도 해 드리고 싶은데…”하며 말문을 닫았던 그때 그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좀처럼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지 않고 혼자 스스로 삭혔던 자네였기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더욱 심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네.
자네와 나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자네와 나는 30년지기 선후배 사이가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전국웅변대회 대통령상의 징크스를 깨는 데는 형님이 있어야 한다고 커피잔을 나누며 얘기하던 그날! 워낙 승부근성이 강한 자네의 설득에 못 이겨 곧바로 여관방에 들어가 단둘이 앉아 밤새워 원고를 가다듬던 그 때가 어쩌면 나에겐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 드네.
결국 두 번의 도전 끝에 국무총리상, 대통령상을 연거푸 수상하던 자네의 그 끈질긴 집념은 오늘의 나에게도 인생최대의 큰 자산이 된 듯도 싶네만….
특히 자네로부터 전수받은 그 집념이 있었기에 하마터면 초야에 묻혀 부평초처럼 살아갈 수도 있었을 나를 정치입문의 시발로 만들어 준 그대의 존재감에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네.
지금도 지난 생활을 반추해 보면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가 부산에서 학원을 경영할 때나 광주에서 정당 사무국장으로 근무할 때나 서울에서 사업을 할 때나 자네가 필요한 곳엔 내가 있었고 내가 필요한 곳에는 자네가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자네의 빈곳을 동생 채근이가 넉넉히 채워주며 나를 사랑해 주고는 있네만 어찌 자네에 비할 바가 있겠나!
아직도 우리는 웅변의 연을 잊지 못하고 살아가곤 있네만 자네가 그렇게 좋아했던 웅변도 이제는 한시대의 전유물에 불과할 뿐 우리 세대와는 달리 생동감을 잃고 그 명맥만 유지해 갈 뿐이네.
회상해 보면 웅변과 결혼해 살던 남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대웅변가‘김삼오’라는 인물이 존재했기에 대한민국 웅변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삼형제가 대통령상을 받는 웅변가족의 신화가 창조된 것이 아닌가 생각 하네.
누가 뭐래도 아우 삼오의 트레이드마크(trade mark)는 역시 선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지. 안 그런가 여보게 삼오!
사랑이 많은 사람일수록 우애가 있고 의리가 있고 우정이 깊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네.
흔히들 수학에는 답이 있지만 사랑에는 답이 없다고들 하지 않았던가! 왜? 사랑은 무한대이기 때문에.
이제 자네의 그 사랑 듬뿍 담긴 우정과 의리를 누가 대신해 준단 말인가!
이보게 삼오!
자네도 알겠지만 모나리자상에는 눈썹이 없네.
그렇지만 그 잔잔한 미소는 천하일품이어서 세인들은 모나리자상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 걸세.
자네의 얼굴에는 바른 길이 아니면 직사포로 꾸짖는 그 준엄한 표정도 있지만 잔잔한 미소로 대화를 풀어가는 포근함도 가히 일품이어서 많은 후배들이 따르고 흠모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
요즘도 좌중에서는 간혹 자네 얘기를 꺼내는 선후배들이 제법 많다고 들었네.
어디 이뿐인가, 하면 꼭 하고 마는 끝장을 내는 자네의 올곧은 성격! 누가 감히 흉내를 내고 모방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늘도 쉴 새 없이 작열하는 냉정한 시간과 흥정을 해가며 자네를 떠올리고 있네.
그런데 말일세, 이승에서 못다한 일은 저승에서도 할 수 있다고 들었네만 그래 그곳 생활은 좀 어떤가?
거기에서도 군기는 잘 잡고 있겠지?
뜻한바 소신을 펼치며 천국에서 고흥 군수도 한번 해보고 국회의원도 해보고 대통령도 해보시게나.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이 형도 좀 잘 보살펴 주게!
항상 하늘나라 높은 곳에만 있지 말고 이 땅 아래도 간혹 굽어 살피며 선후배들 잘 챙겨주고 더욱 따뜻하게 사랑해 주게.
이젠 술도 적게 마시고 담배도 덜 피우면서 행복하게 지내게.
오늘도 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며 영면 속에서 아름다운 꿈, 많이 꾸기를 바라면서 삼가 이 글을 영전 앞에 바칠까 하네.
삼오동생! 이제 모든 거 내려놓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고이 잠드소서.
2015. 6.
지상에서 충선 형이 하늘나라 삼오에게 보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