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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하루 3번 이상 샤워를 하는 것 같습니다. 바리캉을 2부로 놓고 눈썹을 밀었는데 왼쪽 눈썹 끝에 검은 버섯이 있는 겁니다. 염병, 깜짝 놀라서 자세히 봤더니 선친 생전에 보았던 그 죽음의 버섯이 틀림없습니다. 유난히 눈썹이 길어서 그동안 감춰진 걸까, 아니면 내가 골반 관리하는 그 새, 둥지를 튼 걸까. 아무튼 기분 엿 같습니다. 물이 불어났을 것을 기대하고 왕숙천으로 서둘러 길머리를 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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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강폭이 커서 그런지 낫 딩입니다. 뭐가 또 톡! 톡! 거린다냐? 확인해 보니 건강보험 공단에서 대장암 위암 대상자라는 내용입니다. 공지 문자를 지워버렸어요. 자리톡에서 소상공인 지원 공지, 카톡 전자 문서가 1년 내내 뜨는데 C-bar, 영양가 1도 없습니다. 어라, 있어야 할 다리가 없습니다. 가만있자, 오! <스윙교>를 아시나요? 유수량 증가 시 자바라처럼 접고 펼치는 다리입니다. <스윙교>나 나나, 개찐도찐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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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가 말한 <감시와 처벌> 맞지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은 감옥을 연구한 책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감시하고 길들이는가'를 분석한 책입니다. 과거의 권력은 공개 처형처럼 <몸을 직접 처벌>했지만, 근대의 권력은 학교·군대·병원·회사·감옥 같은 제도를 통해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규율하는 방식으로 바뀐 걸로 압니다. 사람들은 항상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통제하는 파놉티콘(Panopticon)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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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자본은 인간을 이름, 주민등록, 성적, 병력, 병력기록, 신용 정보, 소비 기록 등으로 분류·측정·통계화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의 고유한 존재라기보다, 계산 가능한 데이터>가 됩니다. 권력은 폭력보다 <분류와 규정>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 같습니다. 푸코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조차 권력의 일부라고 봅니다. 사람을 '정상', '비정상', '환자', '범죄자'처럼 규정하는 순간 그 사람의 가능성은 제한됩니다. 그래서 그는 자아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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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의 자유는 감시를 완전히 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 놓은 정체성과 규정에 갇히지 않고 계속 새롭게 자신을 만들어 가는 데 있다는 것 아닙니까? 푸코에게 '해방'은 변신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권력은 사람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류하며 스스로 순종하게 만들지만 인간은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워질 권리를 가진 존재입니다. 나는 저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쾅!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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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 8회>입니다. 북한 대공분실 같은 곳입니다. "제각기 맡았던 역할 재다 불라우!" 천산 부대의 위치와 침투 경로를 찾기 위해 전기 고문 물고문, 고문이란 고문은 다 하는데 김 부장이 버텼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간나 새끼래 벌써 뻗은 기래!" 나는 고문실 시퀀스가 나오면 고문 기술자 이근안(88세 사망)과 '님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1932년, 88세 사망) 선생이 떠오릅니다. 고문실에서 나와보니 대한민국입니다. 뭐야, 한예종 안기부 길로 갈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완전 연극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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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장 대장)" "나를 살려주는 이유가 뭡니까?(김 부장)" 7회 엔딩에서 김 부장이 북으로 넘겨지는 절망적 상황이었는데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시험대에 올리는 비정한 시스템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번 임무를 완수하면 김 부장과 민지를 완벽한 남한의 자유 시민으로 살게 해주겠다는 제안입니다. 국가가 그를 동료가 아닌 소모품으로 시험했음에도 김 부장은 딸의 안전을 담보로 이 위험한 임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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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의 핵심은 남북 고위급 회담 기간 중 남한으로 망명을 요청한 북한 최고위급 인사를 경호하는 것입니다. 김 부장은 이 위험한 작전을 맡는 조건으로 과거 자신의 동료였던 성한수와 박진철을 석방하라는 파격적인 딜을 걸었습니다. 성한수 박진철 두 놈을 빼돌려 난지도 같은 곳에 떨어뜨려 놓았어요. "여기는 해남이여(슈퍼 주인)" "혼자 가면 어떡해...차비도 없는데(박진철)" "집이다...다빈아! 아빠 왔다 (나갔었어?)아! 이게 아닌데(박진철 패밀리)" 임무가 뭡니까?(김부장)"요구가 받아들여진 뒤 김 부장은 늦은 밤 중국 어선을 타고 들어오는 망명자를 MLL 어디 곳에서 인수인계하는 시퀀스가 제법 신비스럽더이다, 함선 두 대가 캄캄한 바다 한가운데서 랑데뷔하는 장면은 CG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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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망명 인사의 정체는 대남 첩보 총국장 리응령입니다. 그는 과거 남파 작전 정보를 남한에 팔아넘겨 자신의 출세를 꾀하고, 수많은 인민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었습니다. 리응령은 내부 권력 다툼 속에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살기 위해 남한으로 도주한 인물입니다. 망령의 급수는 기밀일 것입니다. 탄도미사일 유효 사거리부터 핵시설 위치 등등의 기밀을 담은 USB를 몸속에 담고 망령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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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강천은 김 부장에게 무릎을 꿇었던 굴욕을 떠올리며 복수의 칼을 갑니다. 남북 고위급 회담 도중, 북측 대표단은 리응령이 남한에 잠입했고, 남한 측이 그를 보호하고 있다면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혼란을 틈타 주 회장이 북측 대표에게 접근합니다. 그는 리응령을 보호하고 있는 김 부장을 직접 제거하게 해달라며 위험한 거래를 제안합니다. 북측 요원들이 리응령이 은신한 안전 가옥을 급습하지만, 김 부장과 특임국은 한발 앞서 그를 빼돌리는 데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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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은 상아 요원에게 내부 첩자가 있는 것 같으니 장 대장에게 보고를 미루라고 말하고 삼총사가 머무는 아지트에 도착합니다. 새로운 은신처는 해병전우회 컨테이너 박스입니다. 상황이 어째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리응령이 김 부장을 따라 들어오자 특임국 요원들은 돌연 김 부장과 리응령에게 총을 겨눕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셔야지(땅강아지)" 본능적으로 반항하는 김 부장에게 태블릿 화면을 들이댑니다."민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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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가 된 건지 어쩐 건지 모르지만 장 대장은 리응령과 김 부장 모두를 북송 못해서 안달이 났어요. 하극상도 아니고 땅강아지 이 새끼는 뭐 하는 놈이야!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비정한 압박 속에서 김 부장의 복수와 투쟁은 다시 한번 극한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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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를 감시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권력의 본질을 보이지 않는 감시에서 찾았습니다. 과거의 권력은 몸을 부수었지만, 현대의 권력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길들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신의 일상이 이미 푸코의 철학으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건강검진 문자, 지원금 알림, CCTV, 신분 확인, 개인정보…. 우리는 편의를 얻는 대신 끊임없이 기록되고 관리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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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푸코가 말한 감시는 단순히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시선>에도 감시당합니다. 눈썹 끝의 작은 검은 점 하나에도 죽음을 떠올리고, 건강검진 문자 하나에도 나이를 의식하며, 몸의 변화를 자신의 존재와 연결합니다. 권력은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자리 잡습니다. 이번 <김부장〉 8회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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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장면은 과거의 권력을, 특임국의 심리전과 내부 통제는 현대의 권력을 보여 줍니다. 과거에는 전기고문과 물고문으로 진실을 얻으려 했다면, 이제는 가족을 인질로 삼고 임무와 충성심을 이용하여 사람을 통제합니다. 육체의 고문에서 심리의 고문으로, 권력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인간을 도구화하는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김부장이 끝내 무너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를 붙드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딸 민지와 동료를 지키겠다는 자기만의 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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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그를 전략 자산으로 계산하지만, 그는 끝까지 사람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푸코가 말한 권력의 계산 가능성에 맞서는 것은 결국 인간의 계산 불가능한 사랑과 책임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국가는 질서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려 하고, 개인은 사랑을 위해 국가의 계산을 거부합니다. 이 충돌 속에서 자유는 "감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시선으로 자신을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능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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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숙천의 스윙교도 묘한 은유처럼 다가옵니다. 평소에는 사람을 이어 주지만 물이 불어나면 스스로 접혀 살아남습니다. 다리는 자신의 형태를 고집하지 않기에 오래 존재합니다. 푸코가 말한 자유 역시 그렇습니다. 고정된 정체성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는 유연성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권력에 대한 가장 깊은 저항입니다. 결국 인간은 감시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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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떤 권력도 인간의 양심과 사랑까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권력은 사람을 분류할 수 있지만, 사랑은 끝내 계산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계산 불가능성이야말로 인간이 마지막까지 자유로운 이유인지도 모릅니다.권력은 언제 정의를 지키는 방패가 되고, 언제 인간을 소모하는 감옥이 되는가?
2026.7.28.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