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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목: 전통 성악
2.학습목표:
1)우리나라의 전통 음악 중, 전통성악의 다양한 종류와 그 특징을 알아보자.
2)성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자
3)국악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로 하자
4)전통 악기로 직접 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하자
3.학습내용
1)가곡(歌曲)
소규묘의 관현악 반주에 시조시(時調時)를 노래하는 성악곡으로, 5장 형식으로 대여음 - 1장 - 2장 - 3장 - 중여음 - 4장 - 5장 - 대여음 순서로 연주한다. 이 가운데 전주 및 후주격인 대여음(大餘音)과 간주격인 중여음(中餘音)은 노래없이 악기로만 연주한다.
<유래>
가곡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만대엽(慢大葉)이 처음 보이는 악보는 안상(安常)의 『금합자보』(琴合字譜)(1572년)이다. 그리고 1610년에 만들어진 양덕수의 『양금신보』(梁琴新譜)에는 만대엽․중대엽․삭대엽 등이 고려시대의 악곡인 정과정 삼기곡(鄭瓜亭 三機曲)에서 온 것이라는 기록에 따라 고려시대의 음악과 어떤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악보에 따르면 만대엽은 세조(1455~1468)때부터 숙종(1674~1720)때까지 성했하였으나, 그 후『현금신증가령』(玄琴新證假令)(1680년)에는 만대엽이 빠진 대신 중대엽과 삭대엽의 곡들이 변주되어 나타나 있고, 영조 4년(1728년)에 만들어진 김천택(金天澤)의『청구영언』(靑丘永言)에는 조성도 평조와 평조계면조가 없어진 반면 중대엽과 삭대엽이 있는데, 그 형태는 삼수대엽의 음역을 줄이고 속도를 빠르게 한 '소용이'와 흥청거리는 농(弄)과 낙(樂)의 선율을 축소한 편(編) 등이 나타난다. 또한 조선말『가곡원류』(歌曲源流)(1876년)를 보면 중대엽이 또 없어지면서 이수대엽을 변주한 중거(中擧), 평거(平擧), 두거(頭擧)가 생기고 농, 락, 편의 변주격인 언롱(言弄), 언락(言樂), 언편(言編)과 같은 곡이 생겨나면서 오늘날과 같은 우조 11곡, 계면조 13곡, 전조악곡(반우반계) 2곡 모두 26곡으로 구성되는 가곡의 한 바탕을 이루게 되었다. 현재 부르고 있는 가곡은 고금가곡․ 가곡원류라고 부르던 그 가곡에서 온 이름이며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이름은 최근에 붙여진 이름이다.
<연주형태>
연주는 초수대엽에서 태평가까지 한꺼번에 부르는 연창방식이 전통이며, 남자 혼자 부르는 남창, 여자 혼자(또는 2명 이상) 부르는 여창 그리고 남녀가 교대로 부르는 남녀창이 있다.
<반주악기>
대금․세피리․해금․거문고․가야금․장구 등으로 이루어지며, 때로는 양금이나 단소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장단>
10점 16박의 기본장단과 10점 10박의 편장단이 사용된다.
남창가곡에서 우편․언편․편수대엽․편락, 그리고 여창가곡에서 편수대엽 등의 곡에는 10점 10박의 편장단으로 노래하고, 나머지는 모두 10점 16박의 기본장단으로 노래한다.
<조(調)>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가 사용된다.
우조는 황․태․중․임․남의 5음으로 구성되는 5음 음계이고, 계면조는 황․중․임의 3음이 중심이 되는 음계로 구성음은 황․태․중․임․무이다. 한 곡 안에 우조와 계면조가 같이 들어 있는 것을 반우반계(半羽半界)라고 하는데 가곡을 우조와 계면조 및 반우반계로 구분하여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다른 성악곡과는 달리 관현합주로 짜여진 반주음악을 갖고 있으며 가곡의 반주음악에는 전주격인 대여음이 있고 간주격인 중여음이 3장과 4장 사이에 있다.
가곡의 우조와 계면조의 첫번째곡인 초삭대엽은 초장에 앞서 전주형식으로 반드시 '다스름'을 연주한 다음 초장으로 진행한다. 5장까지 연주한 다음에는 대여음(뒷대여음)이 연주되는데 이 대여음은 이어 연주할 이삭대엽의 전주곡이 된다.
계면조의 마지막 곡인 태평가(太平歌)는 남녀가 유일하게 함께 부르는 곡이다.
태평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 이래도 태평성대 저래도 성대로다.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 우리도 태평성대니 놀려 하노라.
<가곡에서 파생된 기악곡들>
1. 자진한잎
가곡의 반주음악을 노래없이 기악으로만 연주하는 음악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사관풍류라고도 하며 음양이 큰 향피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풍류 성격을 가지며 삼현육각의 편성으로 연주한다.우조두거․변조두거․계면두거․평롱․계락․편수대엽 등을 연주하며 우조두거와 변조두거를 경풍년(慶豊年), 계면두거를 염양춘(艶陽春), 평롱․계락․편수대엽을 수룡음(水龍吟)이라고 구별하여 부르기도 한다. 가락은 노래가 있는 가곡에서의 반주음악과 원칙적으로 같은 것이지만, 변조두거는 3장 까지 우조두거와 같다가 중여음 이후에 계면조로 변하고 계면두거는 그 잔가락을 바꾸는 등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2. 청성자진한잎:청성곡(淸聲曲)
가곡의 끝곡이며 유일하게 남녀병창으로 부르는 태평가의 반주음악을 변주하여 대금이나 단소로 연주하는 독주곡을 말한다. 청성(淸聲)이라는 말은 원래 높은 음을 뜻하는 말로서 이 곡이 주로 높은 음역에서 연주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며 자진한잎은 빠르다는 뜻의 '자진'과 악곡을 뜻하는 큰 잎사귀라는 뜻의 '한잎'이 모인 단어이다. 단소곡인 경우에는 황․중․임의 3음을 중심으로 가락이 구성되어 있고 대금곡은 이보다 장2도 높은 태․임․남의 3음을 중심으로 가락이 구성되어 있다.
대금이나 단소 등의 관악기에서 낼 수 있는 길게 뻗는 소리와 관악기 특유의 시김새가 잘 어우려져 맑고 유창한 느낌을 주는 음악이며 장단이나 고정된 선율에 얽매이지 않고 연주자의 감정에 따라 자유롭게 연주한다.
2)시조
:초․중․종장의 3장 형식으로 된 시조시(時調時)에 3음․4음․5음 음계의 가락을 일정한 장단에 얹어서 느리게 노래하는 음악으로 시조창(時調唱) 또는 시절가(時節歌)라고도 부른다.
<유래>
최초의 시조가 실려 있는 문헌은 영조 때의 학자인 신광수(申光洙)의 석북집(石北集) 관서악부(關西樂府)에 이에 관련된 한시(漢詩)가 있고 악보는 서유구(徐有구:1764~1845)의『유예지』(遊藝志)(1776~1800)와 이규경(李圭景:1788~?)의『구라철사금보』(歐邏鐵絲琴譜)(1800~1834)이며 이들 악보에는 황종․중려․임종의 3음 음계로 이루어진 계면조로 현재의 경제(京制)의 평시조가 전한다. 따라서 대략 18세기 중엽부터는 이미 시조가 불려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조의 원형은 평시조인데, 『유예지』시절에는 시조(현행 평시조) 한 곡뿐이었고, 그 뒤에 『삼죽금보』에 이르면 시조(현행 평시조)와 소이시조(騷耳時調:현행 지름시조) 두 곡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현재는 경제의 시조에서는 평시조(平擧時調)․중허리시조(中擧時調)․지름시조(頭擧時調)․사설지름시조(弄時調) 등의 변형이 생기고, 향제(鄕制)에서는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시조는 원래 한 곡조였는데, 이것이 가곡의 영향을 받아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하여 많은 종류의 시조가 파생하게 되었으며 가곡, 가사처럼 조선후기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수용되었다.
<종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서울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경제(京制), 전라도 지방의 완제(完制), 충청도 지방의 내포제(內浦制),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영제(嶺制 )가 있다.
음악적 형태에 따라
*평 시 조 : 노래의 시작을 낮게도 높게도 하지 않고 평이하게 중간음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장 고형(古型)의 시조이다.
중허리시조․향제의 평시조․우조시조가 파생되었다.
*지름시조 :
노래 첫머리를 평시조보다 약 장6도 정도 높이 소리 질러서 낸다고 하여 지름(질음)시조라 하는데 첫음을 높이 낸 다음에 점점 하행적 선율을 이루다가 중장부터 종장 끝까지는 평시조와 똑같이 부른다.
여창지름․사설지름시조․우조지름시조․휘모리시조 등이 파생되었다.
*사설시조 : 사설의 글자수가 평시조 보다 많은 일종의 장형시조를 사용하며 사설이 많아 촘촘히 불러나간다. 사설시조보다 글자수가 적은 반사설시조와 휘모리잡가가 파생되었다.
<반주악기>
장구로만 반주하거나 피리,대금 등의 선율 악기로 즉흥반주(수성가락)를 한다.
<장단>
5박 장단과 8박 장단이 섞여 있다. 다음은 평시조의 장단 구성이다.
초 장 : 5박 8박 8박 5박
중 장 : 초장과 같음
종 장 : 5박 8박 5박 8박
<음계>
3음 또는 4음으로 구성된다.
경제의 평시조와 중허리시조, 완제․영제․내포제의 평시조와 사설시조는 황종․중려․임종의 3음이 중심이 되는 음계로 되어 있으며, 경제의 지름시조․엇엮음시조․여창지름시조 등은 황종․중려․임종․무역(또는 남려)의 4음이 중심이 되는 음계로써 모두 계면조의 선법이고 우조시조가 따로 있다. 하나의 정해진 가락에 다양한 여러 종류의 시조를 얹어 부를 수 있으며 가사의 종장 끝 부분이 삼음절 및 사음절인 '하노라', '하느니' 등은 생략하고 부르지 않는다.
3)민요(民謠)
어떤 민족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과정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 민족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과정이 노래의 형태로 나타나 정착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민요에는 민중이나 생활 공동체의 미적 심성과 정서가 담겨있기 마련이고 자연발생적 성격을 지닌다. 또한 일정한 규범이나 악보가 없이 전승되는 음악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모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민요가 어느 정도 파급되었는가에 따라 통속민요와 토속민요로 나누기도 하고 어느 지역의 특성을 가졌는가에 따라 경기민요․남도민요․동부민요․서도민요․제주민요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민요에 쓰이는 장단은 불균등하거나 균등한 장단이 반복되는 형태와 일정한 장단이 없으면서 박자가 들쭉날쭉한 무패턴 불규칙형, 즉 불규칙 형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통속민요는 거의가 반복형태이고 토속민요에는 불규칙형태가 많아서 장단의 보편성이 노래의 보편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통속민요와 토속민요>
①통속민요
이미 넓은 지역에 퍼져서 음악적으로 많이 세련된 민요를 말한다.
아리랑․밀양아리랑․도라지타령․방아타령․강원도아리랑․농부가․육자배기․수심가․천안삼거리 등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민요들이 이에 속하며음악적인 짜임새나 사설의 구성이 잘되어 있어서 주로 전문 소리꾼들이 부르기를 좋아하였고, 이에 따라서 더욱 널리 전파되게 되었으며 가락이 비교적 세련되어 있다. 토속민요 가운데 전문 음악인들이 자주 불러 통속민요화시킨 것도 많이 있기 때문에 통속민요와 토속민요 사이에 구별이 분명치 않은 것도 있다.
②토속민요
어느 한 지역에 한정되어 불려지고 있는 민요들을 말한다.
통속민요에 비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전문가보다는 비전문가들에 의하여 불려진다.사설이나 가락이 비교적 소박한 대신 향토적인 특성을 깊이 간직하고 있고 그 마을의 삶과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훌륭한 문화적 유산이다. 지역마다 같은 이름을 가졌어도 그 가사나 가락이 서로 차이점을 가지고 있어 각기 해당지역의 음악적 특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 기능 및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
농 요 : 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던 노래로서, 모찌기소리․모심기소리․논매기소리․벼타작소리․방아찧는소리․보리타작소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어 요 :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하면서 부르던 노래로서, 즐꼬기소리․배내리기소리․노젓기소리․그물당기기소리․고기푸는소리․멸치후리는소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기타노동요 : 농업과 어업을 제외한 다른 노동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로서, 꼴베기소리․나무내리는소리․물레소리․베틀소리․망건뜯기소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의 식 요 : 결혼의식이나 장례의식에서 부르던 노래로서, 발인소리․운상소리․자진운상소리․달구소리․지신밟기소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부 녀 요 : 부녀자들이 집 안에서 생활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로서, 시집살이노래․애기어르는소리․신세한탄가․나물뜬기노래․바느질노래․빨래노래․ 방아노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동 요 :
그 주제에 따라 동물요, 식물요, 놀이요, 애무요, 서정요 등이 있다.
지금 어린이들에게는 잘 불려지지 않아 '전래동요'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노인들의 기억속에 조금씩 남아 있을 뿐, 점점 소멸되어 가고 있다.
동물요(동물을 노래) : 개구리․꿩꿩장서방․앞니빠진 중강새․장닭․거미․징거미․두꺼비 등에 관한노래들
식물요(식물을 노래) : 신랑방에 불켜라․외따기노래
놀이요(놀면서 부른 노래) : 수자풀이․아이구 뜨거워․줄넘기․얼굴 그리기․경상도 기와밝기․이거리 저거리 각거리․대문놀이․쥔쥐잡기․두껍아두껍아․소굽놀이
애무요(아이들을 재우거나 달래는 노래) : 아이보개․자장가․둥개둥개둥야․불불 불어라
서정요(서정적인 주제를 다룬것) : 달아달아 밝은 달아․비야 비야․이박 저박
<지역별 민요>
①경기민요
서울․경기 지방의 민요들을 말한다.
노래의 느낌은 대체로 맑고 경쾌하며 말붙임새가 독특하고 선율의 굴곡이 유연하면서도 장식음이 많으며 창부타령이나 노랫가락처럼 솔․라․도․레․미의 5음 음계를 사용하는 민요들이 있고 또한 한강수타령이나 베틀가처럼 라․도․레․미․솔의 5음 음계를 사용하는 민요들도 있다. 이 가운데 창부타령에서와 같이 솔․라․도․레․미의 5음 음계로 구성된 창법적인 특성을 창부타령조라 하는데 이는 경기민요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굿거리장단이나 타령장단 또는 세마치장단 등이 많이 사용되고 말붙임새가 독특하고 선율의 굴곡이 유연하면서도 장식음이 많다. 아리랑․경복궁타령․군밤타령․노들강변․노랫가락․는실타령․닐리리야․도라지타령․방아타령․베틀가․ 사발가․양류가․양산도․오돌독․오봉산타령․자진방아타령․창부타령․한강수타령․천안삼거리 등.
②남도민요
전라도를 중심으로, 충청남도 일부 지역과 경상남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는 지방의 민요들을 말한다.
소리가 구성지고 극적이며 강렬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고 음계는 미․라․시의 3음을 중심으로 하는데 미음은 떠는 음, 라음은 평으로 내는 음, 그리고 시음은 꺾는 음이 된다. 창법은 굵은 목을 쓰고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와 같은 창조(唱調)를 육자배기조(육자배기토리) 또는 남도 계면조라고도 하는데 판소리나 산조 등에서 매우 중요한 조로 사용되고 있다. 장단은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등이 흔히 사용된다. 강강술래․자진강강술래․남원산성․농부가․육자배기․자진육자배기․진도아리랑․흥타령 등이 불려진다.
③동부민요
태백산맥 동쪽의 강원도․함경도․경상도 지방의 민요들을 말한다.
가락에 굴곡이 대체로 심한 편이며, 창법도 씩씩한 느낌을 주는 등, 동부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특색이 음악에도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강원도나 함경도의 민요는 탄식이나 애원조의 노래가 많다. 음계는 미․솔․라․도․레의 5음을 사용하고, 그 중에 특히 미․라․도의 3음을 많이 사용한다. 미 또는 라에서 종지한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 창조를 흔히 메나리조라고 한다. 세마치장단이나 자진모리장단 등 비교적 빠른 장단이 많이 사용된다. 함경도의 신고산타령․애원성․궁초댕기, 강원도의 한오백년․정선아리랑․강원도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울산아가씨․쾌지나칭칭나네․옹헤야 등이 불려진다.
④서도민요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의 민요를 말한다.
서도민요들은 대개 기악반주를 하지 않는다는 점, 콧소리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 요성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 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음계는 레․미․솔․라․도의 5음 음계를 사용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레․라․도의 3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에서 라음으로 흘러내는 가락이 많으며 라음을 많이 떨어주고, 레 또는 라음에서 종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 창조를 흔히 수심가조(수심가토리)라고 한다. 평안도의 수심가․엮음수심가․긴아리․자진아리․안주애원성․배따라기․자진배따라기 등과, 황해도의 산염불․자진염불․긴난봉가․자진난봉가․사리원난봉가․숙천난봉가․몽금포타령 등이 불려진다.
⑤제주도민요
제주도 지방의 민요를 말한다.
음계는 서도 지방의 민요에 나타나는 레음계가 가장 많이 쓰인다. 그러나 선율골격이나 종지형태는 서도민요와 다르다. 음악적 특징으로 보아 제주도에서 순수하게 발생한 민요들과 육지의 영향을 받은 민요들이 공존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제주도의 민요는 경기민요 또는 서도민요와 유사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의 특이한 방언으로 인하여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문 소리꾼들의 교류가 어려웠기 때문에 통속민요보다는 토속민요가 더 많이 발달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오돌또기․이야홍타령․봉지가․산천초목․중타령․서우제소리․개구리타령․계화타령 등이 불려진다.
4)판소리
노래하는 한 사람이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추어 서사적이고 극적 구성으로 된 긴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1인 음악극의 한 형태이다.
노래하는 사람이 북 장단에 맞추어 노래하는 것을 '소리'라고 하고 북 장단이 없이 말로만 대사를 읊어 나가는 것을 '아니리'라고 한다. 그리고 노래를 하면서 이야기의 내용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부채를 들고 갖가지 몸짓을 하는데 이것을 '발림'이라고 한다. 노래를 할 때 고수는 옆에서 북 장단을 치면서 때로는 노래하는 사람의 흥을 돋우기도 하고 때로는 소리꾼의 상대역이 되어주면서 판소리를 더욱 흥미롭게 해준다. 이와 같이 고수가 노래하는 사람의 흥을 돋우기 위하여 하는 짧은 말을 '추임새'라고 한다.
이야기의 내용을 상징적인 소리로 표현하는 행위를 '이면을 그린다'라고 하는데 성음․길․장단의 세 가지 음악요소는 이면(사실성)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예전에는 판소리를 하는 사람은 광대, 소리광대라고 불렀다. 이들은 하층계급에 속하였으며 소리외에도 춤이나 재담․곡예 등을 잘 하였다. 이들은 마을이나 장터, 때로는 양반집 안에서 소리도 하고, 여러 가지 기예도 보여주었다. 대개는 소리뿐만 아니라 춤․재담․곡예 등을 같이 하였으나 뛰어난 소리꾼일 경우에는 판소리만으로도 놀이판을 구성하기도 하였다.
<성음>
발성법에 따른 음색이나 음질을 의미하는데, 같은 음이나 선율일지라도 극적 배경이나 내용에 따라서 달라지는 그 표현법을 말한다. 그 다름은 '무겁고 슬프게', '꿋꿋하고 우렁차게', '즐겁고 경쾌하게' 같은 감각 언어로 설명하는데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다름도 있다.
성음은 명창들의 독공(수련과정)을 통해서 표현되며 새소리․귀신흉내․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사실에 가깝게 또는 사실을 초월해 표현하고자 했다.
현존하는 판소리에서 성음을 씩씩하고 호기있고, 위엄있고 우렁찬 느낌을 준다는 '우조 성음', 평온하고 한가하고, 여유있는 느낌을 준다는 '평조 성음', 애처럽고, 슬픈 느낌을 준다는 '계면 성음', 쾌할하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는 '경드름 성음' 등으로 크게 분류된다. 또는 천구성, 철성, 수리성, 아구성 같은 음질을 설명하는 개념도 있고 되바라져서 못쓴다는 노랑목(긴장감 없는 목소리), 어정성음(무가를 부를 때 사용하는 음색)과 비성(콧소리) 같은 용어도 있다. 이러한 성음은 감각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에 속하므로 언어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논자에 따라서 개념 정리가 다를 수도 있다.
<장단>
장단이란 각기 리듬꼴이 다른 작은 단위가 여러 개 모여서 일정한 길이의 리듬형을 형성한 것으로, 단순한 박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판소리에서 장단은 음악의 흐름을 통제하는 기본 요소로 '일 고수 이 명창'이라는 말을 통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판소리에 사용되는 장단은 반복구조가 있는 균등장단(규칙장단)이 대부분인데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엇중모리 장단이 쓰이며 그밖에 장단의 제약을 받지 않는 도섭도 있다. 장단은 특히 음악의 분위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평화스럽고 여유가 있는 분위기에는 진양조장단, 길게 서술하거나 많은 것을 나열할 때는 자진모리장단, 그리고 매우 긴박하거나 분주한 상황에서는 휘모리장단이 흔히 사용된다.
<길>
판소리에는 선율이 진행되는 '길'이 따로 있는데 음악학의 용어로는 선법이나 음계라고 하고, 우조길(솔음계)․계면길(미음계)․평조길(레음계)로 짜여져 있으며 극적전환이나 상황변화․감정변화를 나타내고자 할 때는 길바꿈기법(전조)을 쓴다. 이와같은 길바꿈기법은 전통음악의 역사에서 판소리에 처음 사용되었고 기악 독주곡 형식인 산조에 차용되었다.
<소리제>
판소리는 크게 동편제․서편제․중고제․강산제 등으로 구별된다. 동편제는 우조가 많으며 소리의 끝이 짧은 편이고, 서편제는 계면조가 많고 소리의 끝이 길며, 중고제는 동편제와 흡사한 점이 많고, 강산제는 박유전에 의해 시작되었다. 동편제의 명창으로는 권삼득․송흥록․박만순․김세종송만갑 등이 유명하였고, 서편제에는 박유전․김채만․이날치․정창업․김창환 등이, 중고제에는 김성옥․황호통․염계달․모홍갑․김정근 등이, 강산제에는 박유전․정재근․정응민․박춘성․성창순․성우향․조상현 등이 유명하다.
<종류>
송만재(宋晩載)의『관우희』(觀優戱)에는 판소리 12마당이 기록되어 있다. 즉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가루지기타령․배비장타령․장끼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타령․ 왈자타령․가짜신선타령 등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가운데 5마당 즉, 춘향가․심청가․흥부가․수궁가․적벽가 등이 전해지고 있다.
①수궁가(水宮歌)
수궁가를 별주부타령 또는 토끼타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병이 든 용왕이 자기 병에 토끼 간이 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를 보내어 토끼를 수중 궁궐로 데려오게 한다. 그러나 토끼는 재치있는 지혜로 용왕과 자라를 속이고 다시 육지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유명한 대목으로는 악성가․토끼황상․고고천변․토끼기변․토끼 업고 세상에 나오는 대목 등이 있다.
②심청가(沈淸歌)
공양미 삼백석을 바치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심청은 삼백석을 받고 뱃사람들에게 자기 몸을 제물로 팔게 된다. 심청은 인당수 깊은 물에 뛰어들지만, 옥황상제가 도와주어 인간 세상에서 황후가 되고, 결국 아버지를 만남으로써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는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지극한 효심을 지닌 심청의 이야기는 단지 이야로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지만, 특히 판소리를 통하여 주는 깊은 감동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
유명한 대목으로는 심봉사통곡․시비 따라가는데․중타령․선인따라․범피중류․임당수 바람부는데․추월만정 등이 있다. 음악의 짜임도 길어서 심청가 한 바탕을 다 연주하는데 대개 네 시간은 걸린다.
③적벽가(赤壁歌)
중국의 소설 삼국지의 내용을 판소리로 음악화시킨 것이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가는 삼고초려(三顧草廬)부터 적벽대전 끝에 관운장이 조조를 놓아주는 내용까지로 되어 있으나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다.
유명한 대목으로는 삼고초려․고당상․군사조련․자룡이 활 쏘는데․적벽강싸움․새타령․장승타령 등이 있다.
④춘향가(春香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다섯 마당의 판소리 가운데,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의 길이도 길어서 한 마당을 연주하는데 적어도 다섯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 정도까지 걸린다. 기생의 딸 춘향과 양반집의 아들 이몽룡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이야기의 전개과정에 변사또의 등장으로 극적 갈등 상황에 빠져들다가 이몽룡에 대한 춘향의 사랑과 절개가 통쾌하게 승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유명한 대목으로는 적성가․천자뒤풀이․긴 사랑가․자진사랑가․이별가․쑥대머리․농부가․옥중상봉․어사출도 등이 있다.
⑤흥보가(興甫歌)
심술보인 놀보와 착한 동생인 흥보의 두 인물이 대조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가난한 흥보는 자기 앞마당에 떨어진 제비 새끼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주었는데 이 제비가 갖다준 박씨를 심어 그 박에서 나온 보물로 부자가 되었으나 심술굿은 놀보는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린뒤 고쳐주어 그 제비가 갖다준 박씨를 심었다가 그 박 속에서 나온 상전․놀이패․장수 등에게 고생을 한다는 내용으로 노래하고 있다. 흥보가를 박타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명한 대목으로는 중타령․집터 잡는데․제비노정기․박타령․비단타령․화초타령․제비후리러 나가는데 등이 있다.
<판소리와 관련된 음악들>
①단가(短歌)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관중들의 흥과 기대감을 돋우고 창자의 목을 풀기 위하여 부르는 짧은 노래를 말한다. 18세기에는 영산(靈山), 19세기에는 허두가(虛頭歌)라고 불리다가 20세기에 단가로 불리게 되었으며 기존의 노래보다 두 배 이상 빠르고 1자1음식으로 노래하는 형태로 노래말이 쉽게 전달되고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조 가운데 평조와 우조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비교적 후대에 만들어진 단가에서는 계면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중모리장단으로 짜여 있으며 길바꿈기법(전조)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기존의 노래인 가곡이나 가사와 구별된다.
송흥록은 만학천봉가를 잘 불렀고, 송만갑은 진국명산을, 정정열은 적벽부를, 그리고 김창룡은 장부한을, 임방울은 호남가를 잘 불렀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인 단가로는 죽장망혜․운담풍경․강상풍월․고고천변․진국명산․편시춘․호남가․만고강산․장부가․백발가 등이 있다.
②가야금병창
단가나 판소리 중에서 몇 대목 또는 민요를 가야금 반주와 함께 노래하는 음악으로 성악과 기악이 잘 어우러져 있다. 19세기 말 판소리를 부를 줄 알았던 가야금의 명인들로터 유래한다. 장구 반주를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하는데 장구 반주가 없는 경우라도 가야금 장단을 맞추어 주는 효과를 낸다. 가야금은 대개 소리의 선율을 따르면서 가야금 특유의 주법을 이용하여 장단의 박을 집어 주거나, 종지 형태의 기능, 소리없는 공간을 메꾸어 장단을 채워주며 선율 흐름에서 소리 사이의 여백을 메워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오태석은 단가 중 녹음방초․호남가,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강태홍은 단가 중 죽장망혜․청석령 지나갈제,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즐겨 불렀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녹음방초․죽장망혜․호남가, 그리고 춘향가 중 사랑가․수궁가 중 고고천변․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등이 있다.
③거문고병창
단가나 판소리 중에서 몇 대목 또는 민요를 거문고 반주와 함께 노래하는 음악으로 신쾌동이 유일했으며, 지금은 그의 제자인 김영재가 그 맥을 잇고 있다.
④창극
창으로 엮어가는 연극이라는 뜻이며 20세기 이후 판소리가 서양 연극의 형태를 빌어서 무대화된 장르이다. 최초의 창극은 1903년 <협률사>에서 공연된 '춘향가'이며 1961년 국립창극단이 창단되어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5)전래 동요
이 전래동요는 뚜렷한 작자나 시창자(始唱者)가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서 구전되는 동안에 어린이들의 마음에 맞도록 다듬어지고 형식적인 틀도 어느 정도 잡히게 된 가요이다.
오랜 세월동안 어린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불려지면서 전해진 노래를 전래동요(傳來童謠)라고 한다. 누가 지었는지 누가 처음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이 신비하고 경이롭게 느껴지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해 저무는 줄 모르고 놀면서 불렀던 동요는 친구들과의 우정을 다져주고 음악적 즉흥력과 리듬, 장단에 대한 감각을 키워주었다.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는 실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것에 대해 탐구하게 하고, 공동체적인 삶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어른으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상상력과 때묻지 않은 순수함, 자연과 생명존중에 대한 생각들을 전래동요는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래동요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장단, 우리 소리, 우리 놀이가 아주 익숙한 아이로 자라게하기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
전래동요의 장단과 가락을 살려 근래에 창작되어지고 있는 것은 국악동요 또는 창작동요라고 한다.
<전래동요의 특징>
① 전통 음악은 리듬을 그 생명으로 한다. 4 ․4조 리듬(4 ․4 내지 3 ․4조의 기본 운율(韻律)을 지니면서도)을 바탕으로 같은 내용의 시행(詩行)을 되풀이하는 반복법으로 많이 이루어져 있다. 반복법은 대부분 1행은 2행으로 2행은 4행으로 발전해간다.
② 어린이들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노래한다. 그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노래의 소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님들이 어떻게 사셨는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계셨는지가 노래 속에 잘 나타난다.
③ 각 지역마다 가사와 가락이 독특하다.
④ 놀이를 하면서 불리기 때문에 놀이노래라고도 부른다. 놀이와 노래는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⑤ 고대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현재까지 전해지는 노래로 작자나 시창자가 없다.
⑥ 반드시 곡조의 제약을 받지 않고, 노래로 불리우거나, 응얼거리는 소리로서 구연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변모․개작되기도 하면서 어린이의 꿈과 의식을 담는다.
⑦ 전래동요에는 계급의식이 없다. 어린이들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노래한다. 그들의 주변에 있는 해나 달이나 별, 풀이나 짐승이나 새, 그리고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무궁한 소재를 아무런 비판이나 어떤 철학도 암시하지 않고 노래부르는 것이다.
⑧ 진(眞) ․선(善) ․미(美)를 이상으로 삼는다. 희로애락은 있되, 증오나 추악이 없는 때묻지 않은 세계이다. 이와 같이 전래동요는 다른 구비적(口碑的)인 가요와 비슷한 형식을 갖춘 반면에 그 내용은 상이한 것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전해지면서 이어 내려왔다.
6)창작곡
조선말기 개화의 물결을 타고 서양음악이 유입되면서 작곡도 시작했다.
홍난파의 가곡을 비롯하여 안익태와 같은 순수기악곡이 쓰여지긴 하였으나 이 당시의 작품들은 모두가 서양음악 어법에 의한 서양악기를 위한 것으로써 진정한 한국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쨌든 이와 같은 창작의 풍토 위에서 다양한 작품과 작곡자들이 배출되어 오던 중 음악에 있어서의 주체의식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시작 될 무렵 전통음악 분야에서 김기수를 필두로 하여 국악 창작곡이 쓰여졌는데 이때가 국악창작의 태동기인 해방직후이다. '황화만년지곡( 皇化萬年之曲)'의 악보를 들 수 있다. 한국 국악계의 대부로 꼽히는 김기수가 작곡하고, 일제시기 대표적 친일 학자인 이능화가 가사를 써 일본 천황에 바친 이 '천황 찬미가'는 국내 최초 국악 창작곡이다.
<태동기>
오늘날의 우리에게 서양악기와 서양음악어법으로 된 서양식 음악이 아닌 우리 민족 고유의 음악 전통을 계승한 창작 음악은 현재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아악부의 악사들이 없이는 상상을 할 수 없다.
국립국악원은 약1400년의 전통을 지닌 악단으로 그 역사의 유래는 신라시대의 음성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시대의(7C)음악기관이었던 음성서는 고려시대의 대악서. 전악서를 거쳐서 조선전기(15C)에는 전악서, 아악서로 불리다가 조선말기(광무6년:1902년)에는
장악원이라 했다가 훗날 교방사라고 개칭하고 1907년(융희원년)에는 장악과로 불리우다가 1910한일합방 이왕직아악부로 개칭하여 근근히 그 명맥을 이어오다 해방후 구황국아악부로 부르다가 1951년 국립국악원으로 재출범하게 되었다.
* 이왕직 아악부와 이습회
일본 식민 지배하에서 전통음악의 단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1932년) 이왕직 악부의 젊은 악사 50명이 노악사들의 음악을 온전히 전수하고, 개개인의 연주 기량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서 모임을 열고 이를 이습회라 칭하였다. 이습회에서는 매월 1회씩 발표회를 갖기도 하였는데 궁중 뜰에서 연주하던 전통 관현악 연주가 이습회를 통해서 최초로 무대에 올려지게 된 것이다.
<60년대>
1962 - '신국악 작품공연'
등단 작곡가 - 이강덕(이왕직 아악원 출신)
전반 - 이성천, 김용진, 이상규, 조재선
후반 - 박일훈, 김용만, 이해식, 김달성
*한계
① 국악기를 사용하기는 하였으나 악곡의 형식은 서양의 고전음악 양식을 그대로 차용
하므로써 국악기로 된 소나타와 같은 정도에 머문 곡이 많았다.
② 전통음악의 선율을 답습하거나 변주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창작이라고 하기에는 미
흡한 상태
*활약한 작곡가들
김기수 - 국립국악원을 무대로 하여 문하생을 길러냄
정회갑 - 서울대학에서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의 작곡가를 두루 양성함
작품 : "가야고와 관현악을 위한 주제와 변주곡"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만난 협주곡에서 수작으로 꼽힘.
외국작곡가 : 외국인으로써 한국 전통음악에 심취하여 전통악기를 위한 곡을 쓰기도 하였다.
알란 호바네스, 루해리슨
윤이상 - 독일에서 한국음악적 idiom을 통한 작품 "예악"의 성공적인 발표
1966년 10. 23. 도나우싱겐 음악제에서 Ernest Bour의 지휘로 초연됨.
(참고 : 『국악창작곡 분석』 윤소희 著. 도서출판 어울림. 참고)
황병기의 가야금 음악 : 숲(63), 가을(63), 석류집(65), 봄(67), 가라도(67)등 발표
<70년대>
70년대의 국악창작의 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국립국악원에서 마련한 "한국음
악창작발표회"였다. 이를 통해서 국악창작의 양적인 확산과 더불어 질적인 성숙이 이
루어졌는데, 이는 무대를 향해서 신진 작곡가를 비롯하여 서양작곡가들도 대거 등단하
였고, 이때 등단 작곡가들은 등단 이후 활발한 창작 활동을 벌였는데 이들은 현재 각
대학에 재직하고 중견 혹은 노장의 작곡가들이 되었다.
[등단 작곡가]
이건용. 장덕산, 김혜자, 황의종, 최길락, 박일훈
김달성, 유신, 이성재, 이상근.
<80년대>
70년대가 새로운 작곡가의 등단과 연이은 활동으로 양적인 확대가 이루어졌다면 80년대는 진정한 의미의 국악창작곡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창작의 질적인 성숙을 가져온 시기이다.
그 결과 바람직한 국악창작의 준거틀이 될 만한 의식들이 수렴되면서 다음과 같은 작품 경향을 띄게 되었다. 전통음악의 계승을 위한 밑거름 뿌리기 작업인 국악 동요제가 국립국악원 주최로 87년부터 개최되어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다.
- 전통음악에 충실한 작품이 많이 만들어짐.
- 전통음악의 양식적 흐름을 그대로 계승하고 이것을 현대에 맞는 악곡형태로 만든
작품들
-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성악
- 국악동요제(87년부터 개최)
- 외국 곡을 국악기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
ex) 베토벤의 월광곡, 찬송가
<90년대>
* 국악 창작곡의 장르와 응용분야 확대
80년대의 국악 창작곡의 내적인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들을 거치면서 일종의 내적인 정비가 되므로써 질적인 성숙이 채 다져진 연후인 90년도의 국악 창작계는 다양한 장르의 국악 창작곡들이 생겨났는데 이제 국악창작은 몇몇 전문 작곡가들의 작품으로서만이 아닌 실생활의 다방면에서 국악창작의 응용이 확산된 시기이다. 90년대는 대중화와 상업 음반들이 대거 출판되었다.
①순수 국악계
협주곡의 시대
웅대한 관현악의 사운드와 독주악기의 현란하고 섬세한 기량을 동시에 표출할 수 있는 음악으로 쓰였던 작품들을 협주곡으로 개작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짐
②재즈와 국악의 만남
한국음악 뿐이 아니라 서구의 현대음악에서도 새로운 음악 소스로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재즈의 선풍과 더불어 민족음악의 만남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젊은 작곡가들일 즐겨 재즈의 악풍과 국악의 장단을 결합하였고, 특히 타악주자(김덕수를 비롯한 여러 그룹의 타악연주팀)의 역할도 컸다.
③타민족 음악과 국악의 만남
아시아 지역의 인접 국가들의 전통악기와 음악이 활발하게 교류되면서 작품과 연주회가 자주 시도되었다.
④대중음악과 상업음악화
⑤각 종교 단체의 국악종교음악
⑥창작 국악동요와 전래동요
87년부터 시작된 국악동요제의 꾸준한 개최는 창작국악의 보급과 전통음악 교육에 큰 몫을 했다. 컴퓨터음악과 창작국악의 만남
7)범패(梵唄)
절에서 재(齋)를 올리 때 부르는 장단․화성이 없는 단선율의 노래이며, 이 음악을 반주로 추는 춤은 작법(作法)이라고 한다. 범패는 일명 범음(梵音)․어산(魚山)․인도(印度) 소리 등으로 불려지는데, 불교음악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삼국유사』권5 월명사 도솔가조의 기록이나 신라 현덕왕 때 진감선사(眞鑑 禪師)의 대공탑비문 등을 통해서 이미 8-9세기경 범패가 불러졌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당풍․향풍(신라풍)․고풍(당 이전의 범패) 등 음악의 형태가 다른 세 종류의 범패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조선을 거쳐 오늘에 전승되고 있으며, 1973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보호 육성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그 의식을 간소화하는 경향으로 그 음악도 점점 축소되고 있다.
<음악의 종류>
① 안채비소리(흔히 염불)
② 바깥채비소리(겉채비소리)
1) 홋소리
2) 짓소리
③ 화청(和請)․회심곡(回心曲)
<재(齋)의 종류>
① 상주권공재(尙住勸供齋)
② 십왕각배재(十王各拜齋)
③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④ 수륙재(水陸齋)
⑤ 영산재(靈山齋)
<특징>
대부분 레음계나 미음계의 선율을 1자다음식으로 노래하며 일정한 장단이나 정해진 리듬이 없다. 일정한 종지형 선율, 전주나 간주 역할을 하는 '허덜품', 소리를 길게 늘이고자 할 때 삽입되는 반복악구(四勾聲), 짧은 선율 단위인 성(聲)의 짜임으로 선율적 형식감을 준다. 노래하기 전이나 후에 또는 노래하면서 태징이나 요령 등의 반주 악기가 쓰인다. 짓소리는 길이가 길고 장식음이 많다.
<음악의 멋>
범패는 종교적 의미에서 생성된 곡이지만 세속적으로는 소리를 통한 자기 구원, 참된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소리를 통하여 천상의 세계로 향하려는 묵상의 시간이요 수양의 시간이 바로 범패를 듣는 시간이다.
8)가사(歌詞)
가사체(歌辭體)의 긴 노랫말을 일정한 선율과 장단에 얻어 노래하는 성악곡으로서, 그 감정적인 표현이 자유로운 음악이다.
<유래>
가사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단지 농암 이현보(李賢輔:1467~1555)가 지었다는 어부사가『악장가사』(樂章歌詞)에 전하고 있다. 현재 전하는 12가사는 금세기 초의 뛰어난 가객인 하규일(河圭一:1867~1937)에 의해 8곡(백구사, 황계사, 죽지사, 춘면곡, 어부사, 길군악, 상사별곡, 권주가), 임기준(林基俊:1868~1940)에 의해 4곡(수양산가, 처사가, 양양가 ,매화가)이 전승되었다.
<종류>
① 백구사(白鷗詞) : 속세를 잊고 강호(江湖)의 우한(優閑)한 자연을 노래.
② 황계사(黃鷄詞) : 이별의 아픔을 노래.
③ 죽지사(竹枝詞) : 경치, 인정, 풍속 등을 노래. 일명 건곤가(乾坤歌)라고도 함.
④ 춘면곡(春眠曲) : 넉넉하고 넓은 마음으로 희망과 푸르름, 그리고 봄의 아름다운 정경을 노래.
⑤ 어부사(漁夫詞) : 벼슬을 버리고 한가하게 강호에 묻혀 사는 선비의 멋을 어부에 빗대 어 노래.
⑥ 길군악(길軍樂) : 놀이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노래로 다소 상스러운 노래말로 이 루어짐.
⑦ 상사별곡(相思別曲) : 남녀의 이별을 애닯게 노래.
⑧ 권주가(勸酒歌) : 서로에게 술을 권하면서 부르는 노래.
⑨ 수양산가(首陽山歌) : 수양산에 얽힌 백이(伯夷)․숙제(叔齊)의 고사(故事), 이태백의 달 에 얽힌 고사를 노래.
⑩ 처사가(處士歌) : 세상의 공명을 버리고 강산을 벗삼아 조용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생활 을 노래.
⑪ 양양가(襄陽歌) : 이태백이 중국의 양양에 머물 때 지은 시를 노랫말로 사용한, 술을 찬 양하는 내용의 노래.
⑫ 매화가(梅花歌) : 늙은 기생 매화의 슬픈 사랑을 노래.
<반주악기>
장구, 대금, 피리, 해금으로 연주한다. 가사는 노래의 가락을 따라가는 형태의 반주를 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반주를 '수성가락'이라고 한다. 이는 노래의 전부를 알아야 반주도 가능한 것이다.
<특징>
통절형식이 많고 장절형식도 있어서 일정한 형식이 없으며 남․여창의 구별도 없다. 대부분의 가사들은 한 곡 안에 선법․창법면에서 여러 특징을 같이 포함하고 있어서 그 음악적 특징을 분류하기 어렵다. 가곡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서도소리나 남도소리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는 잡가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가사에는 가곡과 같은 화평정대한 가락도 있고, 향토잡가(鄕土雜歌)에서 보이는 향토적인 토리도 끼어 있고, 멋스런 거드렁성이 있는 것도 있고, 속목을 쓰기도 하여 가곡에 비하여 향토적인 맛이 있다.
9)잡가
전통사회에서 전승되어 조선말기에서 20세기초에 특히 성행하였던 노래의 하나로서 전문예능인들의 노래, 곧 기생사당패소리꾼과 같은 전문가들이 김 사설을 기교적 음악어법으로 부르는 노래를 잡가라고 하며 이보다 단순한 비전문가들의 노래인 민요와 부별 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따라서 민요는 별도의 전승 과정이 없이도 구전되지만 잡가는 반드시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과정을 거쳐서 이어져 오고 있다.
<유래>
19세기 이전에는 잡가란 말은 정가(正歌)가 아닌 모든 종류의 노래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따라서 애초에는 선소리(立唱)도, 민요도 판소리도 모두 잡가에 속했다. 때문에 잡가라는 말은 특정한 음악의 장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잡가로 취급 외었던 것 중에서 서서 부르는 노래는 서서 부른다 하여 선소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극적(劇的)인 내용을 소리로 엮어 나가는 노래를 판소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민중들의 생활현장 속에서 불려지던 노래들이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연 행적 특성에 따라 선소리, 판소리, 민요 등의 이름으로 불려짐에 따라 이러한 것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노래가 잡가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잡가가 토속민요와 선소리, 그리고 판소리와 구별되는 음악적, 연행적 특징을 가진 장르의 노래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잡가는 흔히 앉아서 부른다하여 좌창(坐唱)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잡가라는 이름보다 구체적으로 장르에 특성을 설명해 주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판소리를 잡가라고 지칭한 기록도 보이고 (윤달선의 - 광한루악부)춘면곡, 황계사와 같은 가사를 잡가라 부른 기록도 있으며 (유만 공의 - 세시풍요), 20세기초에는 민요와 잡가의 구별 없이 민 묘도 잡가라 하고, 잡가를 민요에 표합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음악적 구조와 연주양태가 민요와 다름을 부별하기 위하여 별도의 장르로 나눈다. 대개 민요는 후렴이 붙는 짧은 사설을 정해진 선율에 반복하는 유절형태가 많은데 비하여 잡가는 긴사설을 통절형태로 노래하는 것이 보통이고 앉아서 노래할 때 에 격식을 달리한다.
<종류>
현존하는 잡가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경기잡가서도잡가남도잡가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각 잡가의 특징 및 세분화는 밑에서 밝힌다.
경기잡가(京畿雜歌)
연주형태에 따라 서서 부르는 입창과 앉아서 부르는 좌창으로 나누며 입창은 선소리라는 별칭이 있으나 좌창을 앉은소리라고 하지는 않는다.
①산타령(선소리)
흔히 선소리 산타령이라고 하듯이 서서 신나게 부르는 노래이다. 장고를 맨 '모갑이'와 소고를 든 여러 소리꾼이 메기고 받는 형태로 노래한다. 놀양 - 앞산타령 - 뒷산타령 - 자진산타령(도라지타령)의 순서로 부르면 선소리 패라 불리는 뚝섬패, 왕십리패, 성북동패, 과천패, 등이 특히 유명하였다. 사설내용은 산, 강, 절 등 자연을 읊은 노래이며 이 경기입창이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서도 입창과 남도입창이 발전하게 되었다.
②12잡가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지역에서 부려졌던 잡가로 앉아서 부르며, 좌창또는 긴 잡가라고도 한다. <경기민요>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 57호로 지정되어 있다. <21잡가>에는 <유산가>, <소춘향가>, <형장가>, <집장가>, <십장가>, <평양가>, <달거리>, <방물가>, <출인가>, <제비가>, 적벽가>, <선유가>등의 12곡이 있다.
이중에 <달거리>, <십장가>, <방물가>, <출인가>를 따로 떼어서 잡잡가와 8잡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대체로 잡잡가는 8잡가 보다 시기적으로 나중에 생긴 것이며, 음악적으로도 비교적 민요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잡가는 12곡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12잡가'를 선정한 이유는 아마도 '12가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12잡가'는 '12가사'와 비슷한 면이 많은데, 이 중에서 <집장가>와 <수양신가>, <매화타령>은 음악적으로 구별이 곤란할 정도로 비슷하다. 가사의 음계는 서도민요의 선법을 위한 것이 많은데 12잡가도 <선유가>, <평양가>, <달거리>, <출인가>등 만이 경기민요의 선법을 가지고있고, 나머지는 서도민요의 선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심 음의 5도 위음을 떠는 접도 서도민요와 같다. 그러나 잡가와 가사를 구별짓는 차이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 두 가지는 창법(唱法)이 다르다. 가사는 가성(假聲)을 많이 쓰고, 목소리를 떨 때도 가늘게 떠는 반면 잡가는 <집장가>외에는 대부분 육성(肉聲)을 쓰고 떨 때에도 굵고, 힘차게 떤다. 또한 사설의 내용도 가사는 지식층의 기호에 맞는 유식한 한시(漢詩)를 많이 채용하는 반면 잡가는 이보다 더 직접적인 표현법을 사용한다. 가사내용은 판소리처럼 서사적 이야기이고, 장단은 대개 6박자의 도드리 장단으로 되어 있으나 집장가만은 세마치 장단으로 부른다. 도드리장단을 사용하는 접에서 18세기 말엽이후에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고 선율은 서도소리에 보이는 수심가 토리에 가까우나 시기 새가 서도소리보다 짙지 않고, 경기민요에 보이는 경토리(京調)가 섞여서 특이한 음조(音調)를 같는다. 자세한 곡의 설명 및 음악적 특성은 아래와 같다.
②-1. 유산가
"화란춘성하고 만화방 창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를 구경을 가세. 죽장망혜 단표자로 천리강산을 들어를 가니 만산홍록들은 일년일도 다시 피어 춘색을 자랑 노라 색색이 붉었는데 창송취죽은 창창울울하데 기화요초 난망 중에 꽃속에 잠든 나비 자취 없이 날아난다."
가사에 한문 투가 많긴 하지만 그 뜻은 다 봄날과 관련해서 멋진 내용들을 나타내고 있다. 철따라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자연경개를 즐기며 풍류스럽게 살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노래이다. 곡조는 밋밋한 듯 하지만 6박자의 도드리장단에 맞추어 평온하게 부르는 창법이 아무리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노래이다. 이런 노래도 원래는 남자 소리꾼들이 잘 부르던 노래인데 20세기 들어오면서 이런 노래가 요정이나 일반 놀이판에서 자주 불리어 지게되고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니까 기생들이 많이 배우게 되어 지금은 여자들이 많이 부르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②-2. 적벽가(赤壁歌)
노래의 처음이 "삼강은 수전이요 적벽은 오병이라. 난데없는 화광이 충천하니 조조(曹操)가 대패하여 화룡도로 행할 즈음에. 응포일성에 일원대장이 엄심갑옷에 봉투구 저켜쓰고 적토마 비껴 타고 삼각수를 거스릅시고 봉안을 크게 뜹시고 팔십근 청룡도 눈 위에 선뜻 들어 엡다 이놈 조조야 ... " 하고 계속되는데 내용인즉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 후의 상황이다. 조조가 크게 패해서 화룡도로 도망을 가는데 관운장이 청룡도를 들고 앞에 나타나 "이 놈 조조야 " 한다는 것이 아닌가?
한때는 관운장이 조조의 포로가 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조조가 관운장에게 붙들리어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 삼국지의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이 노래만 들어도 적벽대전의 전황이 저절로 짐작될 정도이기 때문에 이 노래가 인기가 있었을 것 같다. 과거의 애호가들은 이런 노래를 통하여 이야기도 감상하고 부담 없는 노래도 감상하는 이중의 재미를 즐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②-3. 제비가
요즘 가장 자주 불리는 잡가는 제비가 이다. 곡조와 리듬이 변화가 있어서인 것 같은데 중간에 장단이 세마치장단으로 바뀌면서 노래가 한결 경쾌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처음은 "만첩산중 늙은 범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에어르고 노닌다." 하면서 도드리장단으로 천천히 부른다. 그렇게 한 4프레이즈쯤 하고는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하면서 장단을 세마치 장단으로 치고 노래도 고음으로 높이 질러 아주 시원시원한 느낌이 나도록 부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점 때문인지 이 노래가 자주 불리어 지고 또 인기도 대단하다. 경기창을 배우는 어린이들도 이 제비가 만은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배우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대부분의 잡가는 느리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제비가 만은 그런 지루한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②-4. 소춘향가
12잡가에는 판소리 춘향가에서 따온 듯한 곡명이 네 가지나 있다. <소춘향가>, <집장가>, <십장가>, <형장가>가 그것인데 내용상으로 보면 출인가 역시 춘향가의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5곡이 판소리 춘향가와 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판소리가 먼저 발달하고 그 세력이 서울까지 미치게 되니까 서울지역의 소리꾼들이 그 내용을 빌려서 경기 스타일의 잡가를 만들어 부르게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소춘향가는 노래의 처음이 "춘향의 거동봐라"로 시작한다. 그러나 전체가 춘향의 일을 내용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후반에 가면 "너는 어연 계집아히관대 나를 종종 속이느냐" 라든지 "장부 간장을 다 녹이느냐"와 같은 가사가 나와서 온통 여자를 생각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②-5. 집장가
잡장가는 춘향가에서 춘향을 매질할 때 집장사령이 하는 거동을 묘사한 내용이다. "집장군노 거동을 봐라 춘향을 동틀 에다 쫑그라니 올려 매고 형장을 한아름을 디립다 덤석 안어다가 춘향의 앞에다가 좌르르 펼뜨리고 좌우 나졸들이 집장배립하여 분부 듣주어라 여쭈어라 바로 아뢸 말씀 없소 사또 안전에 죽여만 주오." 이 한 부분만 봐도 준향이가 어떻게 매를 맞게 되는지 집작할 수 있을 만큼 극적인 내용이 잘 묘사 되어있다.
②-6. 형장가
형장가는 춘향이가 매맞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을 노래로 부르는 것이어서 가사만 봐도 내용을 집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형장 태장 삼모진 도리매로 하나를 치고 집작할까 둘을 치고 그만둘까 삼십도에 맹장 하니 일촌 간장 다녹는다. 걸렸구나 걸렸구나 일등춘향이 걸렸구나 사또 분부 지엄하니 인정을랑 두지마라. 국곡투식 하였느냐 엄형중치는 무삼일고. 살인도모 하였느냐 향쇄족쇄는 무삼일고. 관정발악 하였느냐 옥골최심은 무삼일고. 불쌍하고 가련하다 춘향어미가 불쌍하다."
②-7. 평양가
평양가는 평양에 있는 월선이 집에 놀러가자는 내용으로 가사의 앞부분은 이렇다. "갈까보다 갈까보다 님을 따라 님과 둘이 갈까보다. 잦은 밥을 다못먹고 님을 따라 님과 둘이 갈까보다. 불붙는다 불이 불붙는다 평양성내 불이 불붙는다. 평양성내 불이 불붙으면 월선이 집에 행여 불갈세라. 월선이 집에 불이 불붙으면 육방관속이 제가 제알리라. 가세 가세 노리 놀러 가세 월선이 집에 노리 놀러를 가세. 월선이 나와 소매를 잡고 가세 가세 어서 들어를 가세. 놓소 놓소 누리 놓소 그려 직령 소매 노리 놓소 그려." 평양가의 가사는 이와 같이 평양에 사는 월선이가 주 대상이 되어 그려지고 있는 노래이다.
②-8. 선유가
유산가가 산으로 놀러가자는 노래라면 선유가는 물이 있는데로 뱃놀이 가자는 내용이다. 그래서 노래의 처음도 "가세 가세 노러가세 배를 타고 놀러를 가세. 지두덩기여라 둥게 둥덩 덩실로 놀러가세" 하며 뱃놀이를 권유하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 부분이 후렴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먼저 후렴을 하고 한 마루하고 또 후렴을 하고 한 마루 하고하는식으로 세마루를 하고 후렴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후렴은 처음에도 하고 맨 나중에도 하는 셈이다.
②-9. 출인가
출인가도 춘향전과 관계가 있다고 한 적이 있다. 노래의 처음이 "풋고추 절이김치 문어전복 곁들여 황소주 꿀타 향단이 들려 오리정으로 나간다." 로 시작한다. 향단이에게 술상차려 오리정으로 나가자고 하는 것은 춘향이 이고 그것은 이몽룡이 남원을 떠나 서울로 갈 때 이 별차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다음의 가사는 "어느년 어느 때 어느 시절에 다시 만나 그리던 사랑을 품안에 품고 사랑사랑 내 사랑아 에-어화둥게 내건곤. 인제가면 언제 오리요 오만한을 일러주오." 하고 노래하는데 이별과 관계 있는 대목이 분명하다. 춘향가가 서울의 잡가로 수용될 때에는 이와 같이 한 부분이 원본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적당히 인용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사랑타령을 하면서 여미게 된다. 그래서 출인가도 뒷부분은 "놀고가세 놀고가세 너고 나고 나고너고만 놀고가세. 오날놀고 내일노니 주야장천에 놀아볼가." 라는 가사로 노래하게 된다.
②-10. 십장가
십장가는 판소리 춘향가에서 춘향이가 집장사령에게 매를 맞을 때에 한 대 맞고 하는 말이 "일편단심 춘향이가 일종지심 먹은 마음 일부종사 하쟀더니 일시일각 낙미지액에 일일칠형 무삼일고." 하는 식으로 일자를 넣어 가사를 짓고, 두 대를 맞고 하는 말은 "이부불경 이내몸이 이군불사 본을 받아 이수중분 백로주같소 이부지자 아니어든 일구이언은 못하겠소."와 같이 이자를 넣어서 노래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열대를 맞기까지 수자를 넣어 가사를 지어 부르게 되어있는데 고급 코미디 글짓기 같은 것이어서 재미있다.
②-11. 방물가
방물이란 방안생환에 쓰이는 여러 가지 물건을 말하는 것으로 화장대, 거울, 연지, 분, 노리개 같은 것에서부터 장롱, 원앙금침, 각종 의복등 거의 모든 세간들까지도 포함된다. 옜날에는 그러한 물건들을 파는 방물장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방물장수가 파는 물건은 주로 부녀자들이 방안생활에서 사용하는 각종 화장품이나 노리개, 옷감 등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방물가의 가사에도 "연지분주랴 면경석경주랴 옥지환 금봉차 화관주 딴머리 칠보족두리 하여나주랴" 라는 구절도 있고 "세간치례를 하여나주랴 용장봉장 귓도리 책상이며 자개함롱 반다지 삼층각게수리 이층들미장에 원앙금침 잣베개 샛별 같은 쌍요강을 발치발치 던져나주랴 내 무엇을 달라고 하느냐 네 소원을 다일러라."와 같은 구절도 있다.
②-12. 달거리
달거리란 월령가를 뜻한다. 정월 이월 삼월하며 각 달에 관계되는 내용들을 엮어 노래하는 것이다. 이 달거리는 처음에는 "정월이라 십오일에 망월하는 소년들아 망월도 하려니와 부모봉양 생각 새라" 하면서 노래하고 그렇게 삼월까지 하고는 "인간이별 만사중에 독수공방이 상사 난이란다 좋구나 매화로다" 하면서 우리가 민요에서 매화타령이라고 하는 그 노래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달거리는 월령가 스타일로된 전반부와 매화타령으로 된 후반부로 되어있는 노래이다.
12잡가는 느리고 밋밋해 보이는 노래여서 현대에 와서는 별로 공연장에서조차 자주 들을 수 없는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유행가가 레코드로 널리 퍼지기 전에는 오늘날의 유행가처럼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었던 민속적인 예술노래였다.
③ 휘모리잡가
휘몰이 잡가는 12잡가와 같이 서울의 소리꾼들에게서 발생한 노래이다. 휘몰이 잡가는 빠른 속도로 몰아간다는 뜻의 잡가이고, 서서 부르는 입창에 속한다. 소리꾼들이 부를 때 흔히 처음에는 긴 잡가를 부르고 다음에 입창을 부르고나서 마지막에 휘모리잡가를 불렀다.
장형시조의 사설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는 상황설명, ㈏는 주인공의 물음, ㈐는 답변으로 되어있다. 긴 잡가에 비해 속도가 빠르고 사설이 많으며 내용이 해학적인 것이 특징이다.
현재 남아있는 휘몰이 잡가에는 <곰보타령>, <생매잡아>, <육칠월>, <만학천봉>, <한 잔 부어라>, <병정타령>, <순검타령>, <기생타령>, <바위타령>, <비단타령>, <맹꽁이 타령>등이 있다. 이중 <병정타령>, <순검타령>, <기생타령>, <바위타령>, <비단타령>, <맹꽁이 타령>은 서울의 풀무골의 소리꾼인 이현악이 지어서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휘몰이 잡가는 소리꾼들이 모인 자리에서 놀이판이 끝나갈 무렵에 불리워 졌다. 음악적으로는 엮음 시조와 비슷하나 발성법은 시조(時調)와 다른 점이 많다. 또한 선법은 경토리로 되어있으며, 끝부분은 시조와 같은 형태로 끝나는 것이 많다. 따라서 휘몰이 잡가를 시조의 변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바위타령>같은 것은 <경기민요>의 변형으로 보기도 한다.
④ 잡잡가
산타령․12잡가․휘모리잡가 외의 전문예능인들의 노래를 모두 잡잡가라고 부르는데 장대장타령․범벅타령․국문뒤풀이․금강산타령 등이 전해온다.
▶ 경기 12잡가의 명인들...
12잡가는 조선 말기에 생긴 노래로서 추교신, 조기준, 박춘경에 의해 발달되었다. 이중에서 추교신이 가장 선배이며, 조기준은 애오개에서 살던 대장장이로 추교신으 수제자였다. 그는 시조, 수잡가, 긴 잡가, 휘몰이잡가를 잘 불렸는데, 잡가는 그로 인하여 많은 발전을 보게되었다. 이 세사람 이후에도 최경식, 주수봉, 한인호, 이현익 등이 나왔는데 특히 이현익은 풀무골의 소리꾼으로 <병정타령>, <맹꽁이 타령> 등의 휘몰이잡가를 지어서 부른 것으로 알려져있다. 박춘경의 제자인 박춘재, 주수봉, 조거준의 제자인 한인호, 이경준, 장게춘 등이 한말(韓末)에 협률사, 원각사 등에 출연해서 잡가를 불렀으며, 일제시대에는 권번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서도잡가(潟雜歌)
황해도와 평안도의 직업예능인에게 전승되어오는 전문가들의 노래를 가리키며, 서도민요 선법으로 되어있다. 사설이 특히 길고, 장단 없이 노래한다는 점등을 특징으로 한다. 서도잡가에는 <공명가>, <초한가>, <관산융마>, <추풍감별곡>, <관동팔경>, <제전>, <사설공명가> 등이 있다. 이것들을 대체로 판소리의 한 대목이나 단가(短歌)와 같이 긴사설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긴사설을 간단한 가락에 얹어 촘촘히 엮어 나간다. 선율은 수심가 토리로 된 것이 많고, 경기잡가가 일정한 장단을가지고있는 것에 비해 서도잡가는 일정한 장단이 없이 사설의 자수(字數)에 따라 3박, 4박, 5박, 6박, 등의 불규칙 적인 장단으로 되어 있다는 점과 노래가 끝날 때는 반드시 수심가와 같은 가락으로 끝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적벽부와 관산융마는 글을 읽는 듯한 소리로 노래하기 때문에 시창(詩唱) 또는 송서(頌書)라 하기도 한다. 산타령․서도잡가․시창과 송서로 세분된다.
① 산타령(선소리)
경기 산타령의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놀양-앞산타령-뒷산타령-자진 산타령(경발림)의 네곡을 순서대로 부른다. 음계나 선율형태 등의 음악구조는 경기 산타령과는 다르다.
② 잡가
경기 12잡가처럼 뚜렷한 양식적 특징을 드러내지 않고 서사적인 사설내용을 불규칙 장단으로 부르다가 수심가 선율로 끝맺는다. 초한가․공명가․사설공명가․제전․전장가․초로인생․장한몽가․봉황곡․향산록 등의 노해가 전한다.
③ 시창과 송서
격조높은 한문가사를 고동박이 분명치 않을 정도로 느리게 부르는 형태의 노래가 시창이고, 글읽는 형태로 노래하는 것은 송서 이다. 두 노래모두 조선조 중엽까지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대부들 노래 형태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집작된다. 관상융마와 적벽부 등이 전한다.
▶ 서도잡가의 명인들...
이조 말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는 다른 지방에 비해 소리꾼들이 많았다. 이중에 고종시대에 활약한 허득선과 김관준이 특히 유명했다. 허득선은 서도잡가의 사설을 다듬어서 이에 적합한 가락을 지어 부른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관준은 허득선의 후배인데 서도잡가는 허득선, 김관준 두 사람에 의해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의 제자에는 김종조, 최선경, 이인수, 김칠성, 김주호 등이 있었다. 이들은 1920~1930년에 잡가와 선소리의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이시기는 가히 경서도(京潟)소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도소리의 명창은 해주와 개성에서도 나왔는데, 이 지역의 명창으로는 서원준, 민형식, 최풍천, 김옥신 등이 유명했다.
서도소리는 잡가, 입창, 민요가 모두 포함되지만 입창은 선소리 타령으로 무형문화재 제 19호로 지정되었는데 나머지 잡가와 민요를 묶어 따로 서도소리로 지정하였다. 처음에는 창학선이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나 이듬해 작고하여 그후로 김정연(작고), 옥복녀(작고), 김광숙이 명맥을 잊고 있다.
남도잡가(南道雜歌)
남도 지방의 노래에는 서도나 경기도와 같이 잡가라고 구분 지어 부를 만한 것이 별로 없다. 남도지방은 특히, 판소리가 성행하였기 때문에 잡가가 뿌리내릴 자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남도지방의 잡가는 남사당패들이 많이 불렀는데 그 후 서울의 연흥사, 장안사, 광무대, 협률사등의 공연에서도 경기도와 서도, 그리고 남도의 잡가가 많이 불리워졌다.
남도 지방에서는 소리광대와 잡가광대를 구별지어 갑가광대를 비교적 업신여겼으나 소리광대들도 사석에서는 잡가를 많이 불렀다고 한다. 현재 전하고 있는 노래 가운데 굳이 경서도 잡가와 비슷한 것을 꼽는다면 <새타령>을 들을 수 있다. 이 노래는 새들이 지저귀는 모습을 노래한 것으로 다른 잡가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내용으로 이어지는 통절(痛切)형식으로 되어 있다. 선율은 육자배기 토리이며, 장단은 앞부분은 잦은 중모리로 되어있고, 뒷부분은 느린 중중모리로 무르도록 되어있다.
① 보렴
보시염불(普施念佛)의 줄인 말로 불경과 무속의 기원문을 바탕으로 한 축원 노래이며 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도습(자유장단)의 순서로, 만․중․삭․자유리듬의 장단들을 갖고있으나 선율은 계면길(미음계)을 벗어나지 않는다.
② 화초사거리
남도 음악어법으로 짜여진 산타령이라는 뜻을 담고있으며, 경기 놀양의 영향을 보여준다.
③ 육자배기
여섯 박자로 짜여진 노래라는 뜻인데 여섯 박자란 진양조를 가리킨다. 노래사설은 임을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원래는 보렴․화초사 거리에 연이어 불렀으나 일제때는 이 노래가 민요처럼 유행했기 때문에 '남도에 육자배기요, 서도에 수심가'라는 말이었을 정도였다. 노래의 구조는 시조와 같이 초장․중장․종장으로 나뉘어 중장과 종장은 선율이 고정되어있고, 초장부분은 자주 바뀌는 환두형태이다. 육자배기 뒤에는 자진육자배기가 이어지는데, 이 노래는 삼장개비(8/9) 장단으로 되어있어서 육자배기와 짝을 이룬다. 이 육자배기 위에 개고기타령을 이러 부르기도 하는데 욱자배기부터는 모두다 계면기(미음계)로 되어있다.
<잡가의 전승>
잡가는 오늘날 12잡가로 알려진 긴 잡가와 빠른 휘모리 잡가가 주류를 이룬다. 12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평양가>, <달걸리>, <십장가>, <방물가>, <형장가>, <집장가>, <출인가> 등이며 휘모리 잡가는 <만학천봉>, <곰보타령>, <별정타령>, <맹꽁이타령>, <한잔 부어라>, <순검타령> 등이 있다. 이 밖에 서울 지역에는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 산타령>으로 이루어진 산타령이 널리 불렸다.
오늘날 추정되기로는 조선말엽 서울의 소리꾼들에 의해 성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에는 잡가를 잘 부르는 '사계(四契)축 소리꾼'과 선소리를 잘 부르는 '오강(五江)의 소리꾼'들이 있어 오늘날까지 전에 이르는 일대를 가리키는 지역이름으로 사계축소리꾼이란 이 지역출신의 이름난 소리명창을 일컬었다. 이 지역에는 상공인(商工人)들이 많이 살고있었는데 여기에서 '추조박(秋曹朴)'이라 지창되는 우명한 소리꾼들이 배춘 되었다. '추조박'은 각각 추교신(秋敎信), 조기준(曺基俊), 박춘경(朴春景)으로서 근대 잡가 전승의 기틀을 이룬 장본인들이다.
이들은 잡가분만 아니라 가곡, 가사, 시조에도 모두 능하여 제자들에게 소리전반을 전수할 수 있었으며 이들에게 소리를 배운 박춘개, 주수봉, 최경식 등은 1920, 1930년대의 공개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었다.
오강의 소리꾼은 서우르이 한강, 용산, 마포, 지호, 서호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선소리명창을 가리킨다. 이들이 언제부터 선소리를 전승시켜 왔는지는 상세하지 않지만 고종 무렵 선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의택, 종대의 존재가 그 윤곽을 어렴풋이 전해줄 뿐이다. 이후 선소리는 널리 애호되어 서울주변의 여러 곳에 선소리패가 생겼다. 가장 유명한 선소리 패로 뚝섬패, 한강패, 쇠봉구패, 용산 삼개패, 동막패, 호조다리패, 과천 방아다리패 등이 있었다. 이중에서 1860년대에는 뚝섬패의 이태문(李泰文), 동막패의 권경춘(權景春)이 유명했고, 1920, 1930년대에는 활약했던 잡가꾼 박춘재(朴春載)와 최경식(崔慶植)도 선소리에 능했었다. 그후 박춘재의 문하에서 이명길, 엄태영, 김태운, 최정식 등이 나와 잡가의 전승맥을 이었으며 이들은 잡가와 선소리를 경하여 공연하게 되었다. 이 밖에 방아다리패의 소완준, 왕십리 패의 이명길 문하에서는 잋앙배, 정득만이 나와 오늘날에 선소리 산타령을 전수하게 되었다. 한편 여성 소리꾼에 의한 잡가의 전승도 매우 활발하였는데 이들은 주로 예기학원 출신이었다. 한일합방 이전에 광교조합이라 불리웠던 예기조합은 이후 권번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일제시대에는 한성권번, 조선권번, 종로권번이 대표적이었다. 본래 예기들은 가곡, 가사 등만 학습했을 뿐 잡가는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하였으나 차츰 잡가를 선호하는 시세에 따라 잡가까지 겸하여 부르게 되었다. 당시 한성권번에는 가곡․가사 선생으로 장계춘(張桂春)이 잡가 선생으로는 유개동(柳開東)이 있었으며 조선권번에는 가곡․가사 담당에 하규일(河圭一), 잡가담당에 최정식(崔貞植)이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홍도(紅桃)와 보패(寶貝) 이외에도 권빈 출신의 예기 이유색, 유운선, 김연연, 김일순, 조국향, 한부용, 장국심, 장채선, 이비봉, 주학선 등이 잡가명창으로 활약이 켰다. 이들은 공연장에서의 활동은 물론 1920, 1930년대의 유성기 음반에 잡가를 취입하였으며 방송활동을 통해서도 잡가를 널리 퍼뜨렸다.
<민요와 잡가의 차이>
잡가는 우리가 흔히 애기하는 민요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잡가를 향유했던 계층을 살펴보면, 민요가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리워졌던 것에 반해 잡가는 소리를 좋아하는 도시의 소시민층에 으해서 불리워졌다. 물론 그들은 소리는 업(業)으로 삼아 그것으로 샐계를 유지하는 직업적인 소리꾼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 기본적인 생계문제는 이것으로 해결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노래를 좋아하는 비직업적인 입장에서 잡가를 가르치고 불렀다. 이들이 제자에게 소리를 가르칠 때 소리채(일종의 강습료)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예술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적 개량이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직업인의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비록 생업은 따로 가지고 있지만 소리를 즐기고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는 전문적인 소리꾼이나 다름이없었다. 이들을 전문적인 소리꾼과 구별하는 근거는 소리를 업(業)으로 삼아 생계를 꾸려 나가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잡가는 흔히 마을의 공청(公廳)에서 함께 부르고, 즐기는 민요와는 달리 보다 공연예술쪽에 가까운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적 내용으로 볼 때에 잡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가지고있는 내용의 가사를 절(節)이 바뀔 때마다 음악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4.지도시 유의사항
1)익숙하지 않은 용어의 사용은 학생들의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적절한 단어를 이용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해야한다.
2)전통곡을 위주로 하되, 창작곡이나 퓨전음악을 이용하여 관심을 고취시킨다.
3)전통 성악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그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심어준다.
4)전통 악기를 이용하여 곡을 직접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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