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으로부터 배우는 진리
씨앗은 저가 발아 할 곳을 찾아 내려갈 줄 압니다.
영등포 대림동에 위치한 송은교회 김진혁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 그분의 취지였는데, 정원을 만든다고 하더니 어디 잘 진행되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정원을 만드는 데는 크게 보아 두 가지가 필요하겠지요. 첫째는 노동력이며, 둘째는 이것저것을 구입할 재정입니다. 당장 시작을 하는 입장에서 큰 노동력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재정은 절실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받은 전화 한 통화, “부활의 기쁨을 나누자.”는 김목사님의 전화는, 당장 교회 입구를 꾸미려 했던 제 뜻에 합당한 하나님의 응답과도 같았습니다.
첫째 아들 건이가 차에서 내려진 꽃과 나무들을 보고는 그 위에 앉았습니다.
아들 녀석, 이 날 고생 좀 했답니다.
그 전화가 있은 뒤에 김목사님으로부터 헌금이 전해져 왔습니다. 당장 시작할 작은 나무와 선인장, 그리고 씨앗을 구입하기에 충분한 액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 호피 마을의 땅은 진흙이기 때문에 무엇을 심기 전에 땅을 먼저 갈아엎어야 하며, 땅을 갈아엎을 때에는 적어도 50:50의 비율로 비료를 섞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뿌리부터 보듬어 주라는 박노해 시인의 노래와 더불어, 그 뿌리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 토양을 갈아엎어야 하는 보다 근본적인 진리가 적용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 개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울타리 작업도 해야 할 것입니다.
식물들을 둘러 자리를 잡기 전의 모습입니다.
흔히 하는 "Before, After" 놀이라고나 할까요.
After입니다. 호피 정원1호점입니다.
보내 주신 헌금을 은행에 가서 달러로 바꾸고, 곧바로 Flagstaff에 있는 Nursery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다 구입하고 싶었지만, 우선 실험적으로 심어야 했기 때문에 수종을 고르는데 제한을 두었습니다. 비료는 가장 비싸고 좋은 것으로 구입했습니다. 다른 것 구입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돈을 생각해서 아끼다보면 오히려 그러지 낭패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료를 구입하는 데 전체 예산의 반이 들어간 셈이 되었습니다.
Before
그리고 After입니다.
둘째 아들 찬이가 돌을 나르느라 고생이 많았답니다.
억지로 시킨 게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은 그런 표정이네요.
해바라기 씨앗을 심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여느 다른 씨앗도 그러하겠지만, 해바라기 씨앗을 심으면서 작은 것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얘기인즉슨, 해바라기 씨앗을 심을 때에 한 쪽에 있는 것은 좀 더 깊이 심었고요, 다른 한 쪽에는 조금 얕게 심었습니다. 얕게 심은 이유는 뿌리를 내리고 빨리 올라오는 새싹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제 예상이 빗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깊이 심은 씨앗이 먼저 올라왔으며, 얕게 심은 씨앗은 새싹이 올라오는 시간이 훨씬 더 더딘 것입니다. 해바라기도 그랬지만, 팬지도 그러했고, 데이지도 그랬습니다.
빈 깡통을 이용해 씨를 뿌려 보았습니다.
해바라기 새싹입니다. 고운 햇살을 닮아 푸르기만 합니다.
이상한 마음에 흙을 헤쳐 안을 들어다 봤습니다. 이게 웬일인가요? 분명 얕게 심은 씨앗이 처음에 심었던 위치보다 좀 더 아래로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깊이 심은 씨앗들보다 더 아래로 내려 들어가 있던 것입니다. 아뿔싸, 씨앗은 제가 뿌리 내릴 자리를 이미 알고 있었고, 그 만큼의 깊이로 들어가기 전에는 싹을 피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싹을 피우기 전에 해야 할 노력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더 깊이 내려가야 했던 것입니다!
씨앗을 심고 싹이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신앙인으로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더러는 숫자와 크기에 연연하게 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숫자는 많아졌을지 몰라도, 부피는 커졌을지는 몰라도, 더 깊이 내려가 낮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신비와 그 축제적 삶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씨앗이 더 깊이 내려가는 동안 얼마나 제 탓을 했을까요. 섣불리 싹을 보고자 했던 제 마음을 얼마나 비웃으며 그 작은 몸짓으로 흙을 파 들어갔을까요. "시작이 힘들어야 끝이 선할 수 있다."(A hard beginning makes a good ending)는 진리를 이미 알고 있던 그 작은 생명체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작기만 한 존재로 인해 덩치 큰 한 인간이 초라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희망의 글레디올러스"란 제목으로 설교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알뿌리가 점점 자라고 있습니다.
일전에 교인들과 함께 심은 글레디올러스(Gladiolus)가 제법 많이 자랐습니다. 알뿌리로 심은 것이기 때문에 내년에는 뿌리를 나눠 옮겨 심기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김목사님의 도움으로 바로 옆에 마련한 이 작은 공간, 우리 교회 메리(Mary) 할머니가 그것을 보고 한 말씀으로 글을 마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다음 주에는 울타리도 두를 것입니다. 교회 마당 전체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호피 마을 전체를 두고 생각한다면 미미한 시작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울림만큼은, 그 생명의 신비가 주는 울림만큼은 우주를 흔들고도 남음이 있다 믿습니다. 앞으로의 시행착오가 두렵기는커녕 기다려집니다. <뽀비 에누 선교사 씀>
“이 마당에 무언가가 심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딸 아이가 다가와 다정히 손을 얹네요.
아이가 얹은 손의 무게를 무엇으로 헤아려 알까요.
첫째 아이가 찍어 준 사진입니다.
마당 일부에 지나지 않는 사진인데도, 아직 갈 길이 멀어만 보입니다.
시작에 감사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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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마당에 무언가가 심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이 말씀에 눈물이 납니다. 거기도 여기도... 하나님의 영이 온 지면을 새롭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스치듯 들었던 말인데, 저도 그 말이 가슴에 내내 남더랍니다. 다 목사님 덕입니다. 고맙소.. 김목사님... 언제 다 갚아야 할텐데요..^^
씨앗이 참으로 신통하고 기특합니다. 저 보다 훨씬 똑똑한 것 같습니다. 자녀들을 그렇게 중노동 시켜도 괜찮은가요?ㅎㅎㅎ
저도 많이 놀랐답니다. 덩치 큰 인간이란 존재가.. 어찌나 초라해 보이던지요. 아이들요? 자발적으로 한거라니깐요... ^^
우리가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을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봅니다.
이곳에서 사니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가 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요... 고맙습니다. ^^
자연을 가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선교사님 마음속에 가득히 들어 있네요.. 메마른 땅에 생명을 일구어 가시는 모습을 보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로 비추어 짐을 느낍니다 하나님..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어디에 있는가 보다는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화두겠지요. 이곳 척박한 곳이라 하지만, 우리를 지으신 분이 함께 하는 곳이기에 이처럼 작은 생명이 자리를 틀 수 있는 거라 믿습니다.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벗님 계신 곳도 이와같기를 기도합니다.
싹튀우기 전 깊이 숙이는 지혜를 아는 씨앗, 씨앗의 지혜를 배워야겠네요. 감사합니다 ^ ^
그 작은 녹색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네 삶이면 얼마나 좋을까를 두고 늘 되뇌이게 됩니다. 벗님은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시지요? ^^ '밝습니다. 맑습니다.'로 인사하던 고마운 님 또한 지켜봐 주시리라 믿습니다.
ㅎㅎ 건이,찬이도 한몫을 하는군요. 초은이도 아빠의 노고를 아는지 살포시 손을 얹은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네요. 한알의 씨앗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거 같네요. 호피 정원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건이 찬이는 이제 일꾼이 다 되었습니다. 저녁마다 물 줄 때 나와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척척 시키는대로 하고 있지요. 초은이의 손.... 그 사랑의 무게를 가늠하기엔.. 제 가슴이 너무 좁은 것 같네요. ㅎㅎ 바다향기 날려 주시기 고맙습니다. 이곳 분들.. 바다에 한 번 못가본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
기똥차게 멋진 일을 해내셨군요. 사방으로 열린, 시야가 닿는 그 모든 지면에 생명이 꿈틀대는 모습이 환상처럼 지나갑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다귀들이 생명을 얻어 살아나는 것처럼... 목사님, 건이, 찬이, 초은이 표사모님, 수고많으셨어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