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 이 메시지는 독일 CMI 창립 총회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독일 하겐, 부활절 월요일
2003년 4월 21일
핵심 요절 10절: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모두에게 기쁜 부활절 바랍니다!
이번 부활절 월요일, 우리는 우리 교회의 새로운 시작을 맞아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곳 하겐 유스호텔에 하나님 앞에 모였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1961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를 통해 한국에서 학생 선교를 위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이 선교회는 한국 학생 선교를 위해 일할 선교사 몇 명을 파송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사라 배리 선교사였습니다. 그녀는 광주의 한 집을 센터로 빌려 1961년 4월 22일 고등학생을 위한 첫 예배를, 4월 23일에는 대학생을 위한 첫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이 모임 장소를 '기독교 학생 센터'(Christian Student Center)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첫 번째 이름이었습니다. 1961년 가을, 이창우 선생이 이 모임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남장로교 선교부의 다른 선교사들도 다른 대학 도시에서 학생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전주의 존 폴타, 대전의 멜리센트 후니컷 선교사 등이었습니다. 훗날 이 학생 교회의 이름은 UBF, 즉 “대학생 성경일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학생들을 구원하시고 이 사역을 전 세계로 확장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들이 “CMI, Campus Mission International”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죄 많은 사람이므로 항상 용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새 생명과 부활을 주셨습니다. 부활절 월요일은 우리 교회의 새로운 시작에 딱 맞는 날입니다.
시편 84편 1-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중심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또는 성령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중심은 복음, 즉 기쁜 소식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을 받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세상으로 보내는 곳입니다.
복음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몇몇 사람들이 복음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복음에 대한 믿음을 통해 고린도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바울은 1-2절에서 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선포한 복음의 내용을 굳게 믿으라고 격려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헛되이 믿게 된다고 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믿음은 심장과 혈관이 사람에게 중요한 것처럼 개인이나 교회에게 중요합니다. 심장과 정맥은 피를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과 정화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사람은 더 이상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건강한 심장과 건강한 정맥은 인간에게 필수적입니다. 복음에 대한 생명력 있는 믿음은 사람과 교회에 필수적입니다.
그러면 복음이란 무엇인가요?
그리스어로 “복음”이라는 단어는 “ευαγγελιον”(에우아게엘리온 또는 유로앙겔리온)이며 “좋은 소식” 또는 “기쁜 소식”을 의미합니다. 이 좋은 소식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요한복음 20장 31절에는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좋은 소식에 대한 간략한 요약이 나와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예수님은 그리스도(구세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은 생명, 즉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복음의 또 다른 요약이 나옵니다.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죄를 위해 희생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복음의 짧은 요약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막 1:15) 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밝아오는 해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라고 불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죄와 사망의 권세가 인류를 지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이 어두운 통치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물러갑니다. 이 왕국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영생으로 다스리시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랑과 은혜로 채우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하고 친절한 하나님의 통치를 소개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세상의 모든 '통치'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우리에게 가장 나쁜 재앙에서 구원과 기쁨의 세계로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죽음, 마귀의 권세 아래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해방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용서, 영생, 성령이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메시지를 뜻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로 요약해서 선포했습니다.
이제 3절과 4절을 살펴봅시다: “내가 받은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러분에게 전하였으니 이는 내가 또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과 성경대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입니다.
성경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성경대로” 죽으시고 장사 지낸 후 성경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복음은 구약성경에서 하신 하나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은 이 약속의 성취를 선포합니다. 바울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을 믿었기 때문에 성경의 신빙성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5-16)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요한복음 6:6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령과 영생을 줍니다.
우리의 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으니...”라고 설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즉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절대적으로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죄와 그 결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의 죄나 죄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구원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복음은 그들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입으로도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도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근거로 판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더라도 우리 눈에는 의로워 보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행위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을 따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행위는 위선이나 거짓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종종 위선자이자 거짓말쟁이가 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또한 자기중심성 때문에 쉽게 상처받는다는 사실로 우리의 죄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자기 중심성은 인간의 근본적인 타락입니다. 이러한 자기 중심성은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타락하기 전 아담과 이브는 영생을 누리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매우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이 부부를 하나님처럼유혹했습니다. 그들은 삶에 대한 이기적인 태도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 자신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 중심의 태도를 포기하고 자아 중심의 태도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자아 중심적 태도로 그들은 천국의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죄책감과 저주, 죽음 권세 아래 살게되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은 아담의 삶의 자세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자세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 삶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죄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나쁜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언급하는 것은 불쾌한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기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경험하기 위해 먼저 우리의 상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의 타락과 상실을 깨닫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치유의 고통입니다.
희생양
독일 텔레비전 채널 RTL에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습니까?”라는 퀴즈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2003년 3월 3일, 한 청년이 귄터 자우히 앞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이게까지 모든 질문의 정답을 맞혔습니다. 이제 그의 받을 상금은 약 16,000유로입니다. 이제 그는 성경에서 나온 질문을 답해야 합니다. 이 질문을 맞히면 32.000 유로를 받습니다. 이번엔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과의 화해에 관한 문제입니다: “어느 짐승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사막으로 보내졌습니까?” 답으로 1. 수컷 멧돼지, 2. 당나귀, 3. 염소, 4. 다른 동물 등 네 가지 동물중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응시자는 당황합니다. 그는 다른 것은 잘 알아도 성경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청중 조커를 사용할까요?” 청중들은 그에게 정답을 말해야 합니다. 청중들 각자는 컴퓨터 키보드를 이용해 답했습니다. 청중의 답 중 당나귀가 제일 많이 나왔습니다. 당나귀는 이스라엘에서 인기 있는 동물입니다. 염소는 두번째로 많았습니다. 멧돼지를 답한 사람도 몇 명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당나귀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정답은 염소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꿈꿔왔던 32,000유로는 날라갔습니다. 그는 500유로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유대인의 대속죄일에는 염소가 희생양으로 선택됩니다(출애굽기 16:10). 대제사장은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그 위에 백성들의 모든 죄를 선포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모든 죄를 염소에게 뒤집어씌운 다음 그 염소를 사막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사막에서 염소는 죄인들을 대신해 죽었습니다.
“속죄일"이라는 오늘날도 유대인들이 지키는 명절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속죄일에 하나님의 집에서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들은 희생 제물을 드리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희생양이 되셨습니다. 그는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29). 그분은 나의 죄, 여러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이 자리에 없는 모는 사람들의 죄도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당신의 죄, 나의 죄,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를 믿으면 모든 죄가 영원히 취소되고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덕분에 오늘은 우리의 속죄의 날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정죄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용서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또한 우리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에게 치유된 마음을 줍니다. 우리는 자주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희생적의 죽음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고 온전하고 기쁜 마음을 줍니다.
죽음에서 부활
예수 그리스도는 성 금요일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신 후 다른 모든 죽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묻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활주일에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바울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부활주일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죽음은 사실 죄에 대한 형벌이었습니다. 아담은 죄를 지었고 죽어야 했습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고 죽어야만 했습니다. 죄는 유괴범과 같습니다. 죄는 인간을 낙원에서 납치했습니다. 죄는 죽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납치된 사람들은 죄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죄에 의해 학대당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죽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납치된 사람들을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시편 90편 12절은 “우리가 지혜로워지기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조만간 또는 언제든지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것들을 오랫동안 또는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즉시 부활의 미래를 준비 할 것입니다.
부활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과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용서와 영생을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합니다. 이미 믿음으로 용서와 영생을 받은 사람은 언제든 기쁨으로 죽음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 육체적 죽음은 부활로 연결되는 잠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육체의 죽음은 천국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지막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나를 사랑하셨으니 내게 주신 자들을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사,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엄청난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그분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부활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직접 뵙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을 다시 만나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쁜 소식입니다. 이 소식은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을 줍니다. 이 소식은 우리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깊은 마음의 평안을 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편 23:4). 고통 속에서도 이 메시지는 우리에게 위로와 승리의 확신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고난은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가치가 없음을 확신합니다”(로마서 8:18)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는 듣는 모든 이에게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주는 메시지입니다. 이 소식은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기쁨을 능가하는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이 기쁜 소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열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선사합니다. 이 소식은 사람들에게 성령을 줍니다. 이 메시지는 하나님의 기쁜 능력입니다. 이 메시지를 통해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고 거듭났습니다. 이 메시지를 통해 기독교 공동체가 탄생했습니다.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이 없었다면 우리 중 누구도 거듭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메시지가 없었다면 기독교 교회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메시지가 우리의 마음에 거의 닿지 않는다면, 우리는 슬픔과 유혹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메시지가 더 이상 기독교인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기독교는 소멸할 것입니다. 기독교 교회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메시지를 세상에 기쁨으로 선포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소멸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 기쁜 메시지를 세상에 전한다면 세상은 생명과 기쁨으로 가득 차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큰 기쁨을 주는지 아닌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복음이 우리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지, 그리고 이 메시지를 세상에 기쁨으로 전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별다른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큰 기쁨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는 다시 한 번 부활과 천국이라는 하나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으로 인해 큰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우리의 간구를 기꺼이 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여러분 모두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이 기쁜 소식을 24시간 내내 세상에 전하시기를 기도합시다.
은혜
5-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중요한 증인들을 나열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게바, 열두 제자, 오백 명의 형제들, 야고보,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 자신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은 사실에 근거한 확실한 보고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보장서입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사도 중 지극히 작은 자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부르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사실 엄격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은혜의 개념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는 오직 행위로 인한 의로움만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악행을 모두 용서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그를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복음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복음을 통해 우리는 구원받고 영생과 부활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뒤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습니다. 동전을 가지고 계신가요? 모든 동전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동전의 한 면에는 연방 독수리 또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같은 이미지가 그려있습니다. 다른 면에는 동전의 가치가 쓰여져 있습니다. 복음은 동전과 같습니다: 한 면에는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과 기쁜 소식으로서의 부활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면에는 우리에게 죄용서와 영생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선포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사랑을 선포합니다. 성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말씀에 대해 생각해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저는 그것을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보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들을 희생하셨을까요?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2주 전에 저는 요한복음 17장 23절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기도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즉,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들(신자들)을 사랑하신 것을 알게 하소서”(요 17:23b).
여기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희생하실 수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이며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통해 우리는 용서, 영생, 부활, 천국을 무료로 선물로 받는데,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기독교 신앙이 바리새인들의 초기 신앙과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다른 모든 종교와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바울의 초기 신앙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 충분한 점수를 획득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율법적 태도”라고 합니다.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이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만큼 충분한 점수를 얻을 만큼 선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충분한 점수를 모을 수 없음을 보셨고 따라서 구원받을 수 없음을 잘 아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우리를 구원하고 싶어 하셨죠. 그래서 우리를 도울 방법을 찾으셨죠. 우리에게 하나님의 참 자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충분한 점수를 주고 싶으셨어요. 그래서 아들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자녀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점수를 받습니다. 그들은 영생을 얻고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회심하기 전에 바울은 자신이 경건한 사람이고 유능하고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는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는 원래 교만하고 율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적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원수이자 박해자였던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자를 위해 자신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롬 5:8,10 참조). 바울은 로마서 5장 8절에서 이에 대해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확증하신 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롬 5:8).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바울을 사랑하시고 그에게 그토록 자비를 베푸셨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매우 감격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 사랑과 은혜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그로 하여금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고후 5:14). 그는 조용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은혜의 소식을 전포해야 했습니다. 그가 전한 은혜의 메시지는 성령의 힘을 통해 강력하고 은혜롭게 역사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이자 주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얻었습니다. 바울이 은혜의 메시지를 전파한 곳마다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죄와 죽음과 악마의 권세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직접 만나 마음으로 경배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서 "내가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나에게 베푸신 은혜는 헛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나의 것이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결코 강하거나 죄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약하거나 죄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약하고 죄가 많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약하고 죄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합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약함과 죄악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합니다. 진실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고 높이 평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게 합니다.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 교회를 가득 채우도록 기도합시다. 복음을 통해 은혜의 능력을 풍성히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음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은혜의 성령의 불을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교회, 그리고 다른 교회들을 은혜와 성령으로 채워 주셔서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들을 그분의 영으로 채우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