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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21장
21장의 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20장의 말씀을 복습하고 21장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겔20장은 49절 까지 있는 긴 장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두 단원으로 말씀을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
첫째 단원은 1-26절까지...둘째 단원은 27-49절까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단원의 제목은 [인간의 반역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라 했습니다.
첫째 단원을 두 단락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먼저는 9절까지 애굽에서의 반역과 하나님의 오래참으심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이라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우상숭배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 애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그 다음 내용이 10-6절까지로...광야에서의 반역과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을 말씀합니다.
그들의 반역이 애굽에서만의 일이 아니라 광야에서도 계속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7절 이하 49절까지는 두 번째 단원인데...
두 번째 단원의 제목이 [참으시며 계획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27-32절까지는 [가나안에서 오늘까지의 반역]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들의 반역이 광야에서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계속되었고
초기만 그렇게 반역의 길을 간게 아니라...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33-39절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이 심판하심입니다.
어떻게 심판하신다는 것이냐...
38절에 반역하는 자와 내게 범죄하는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리신다는 겁니다.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하듯이...심판을 통하여 옥석을 가리신다는 겁니다.
진짜와 가짜를 가리시고, 참과 거짓을 가리시고, 양과 염소를 가리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40-49절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이루심]입니다.
44절에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것이 무엇이냐 남쪽 숲에 불을 보내사 모든 푸른나무와 마른 나무를 태우시겠다는 겁니다.
그 불은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했습니다.
그 꺼지지 않는 불에서 자기의 믿음이 나타날 것인데...
그때 참 믿음의 사람을 그 꺼지지 않는 불에서 꺼내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별칭이 있는데...거슬린 자...라는 별칭이 있다고 했습니다
21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경고입니다.
21장의 제목을 뽑는다면...[칼을 집에서 빼낸 여호와]..입니다.
성경속에서 칼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기록된 장이 제가 아는 지식으로는 에스겔서 21장입니다.
겔21장은 32절까지 있는데요.... 칼이라는 단어가 24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일단은 그 칼이라는 단어를 찾아봅시다.
그런데 성경에서 칼을 뺀다는 뜻은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20장에서 심판을 47절에 보시면...내가 너의 가운데 불을 일으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0장의 불이 21장에서는 칼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핵심 구절이 5절입니다.
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줄을 그어 봅시다...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이 말씀이 핵심 주제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전체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1) 2절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2) 9절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3) 12절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4) 19절 바벨론 왕의 칼이 올 두 길을
5) 22절 예루살렘으로 갈
6) 28절 암몬족속과 그의 능욕에 대하여...
칼집에서 빼낸 칼이 향하는 곳이 어디냐...
2절에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하여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하여 가는 칼이 어떤 칼이냐?
9절에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 나도다...날카롭고 빛이 번쩍 번쩍 나는 칼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12절에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라는 겁니다.
이 칼이 무슨 칼이냐...19절에 바벨론 왕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시는 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왕이 하나님이 칼집에서 빼낸 칼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빼 드신 칼이 예루살렘부터 성소부터 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성소, 교회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치시니까...예루살렘이 무너집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니...이것을 보고 기뻐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누구냐 암몬족속입니다...그래서 마지막에 암몬족속도 치라는 겁니다.
이를 두 단락으로 나누어 말씀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단락(1-17)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한 칼
둘째 단락(18-32) 바벨론을 들어 예루살렘과 암몬을 심판하심
첫째 단락(1-17)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한 칼 이 중심 내용입니다.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에게 예언하라
심판하기 위하여 “빼신 여호와의 칼”이 우선적으로 예루살렘과 성소를 겨냥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호와의 칼이 예루살렘, 예루살렘중에서 성소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윤리적인 죄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윤리적인 죄가 아니면 무슨 죄냐? 신학적인 죄요...영적인 죄라는 겁니다.
신학적인 죄, 영적인 죄가 무엇입니까?
메시야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김에 있다는 겁니다.
3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3절의 핵심은...내가 너를 대적하여...이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대적자로 서시겠다는 겁니다.
예레미야 21:13절을 좀 봅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골짜기와 평원 바위의 주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칠 자가 없다는 겁니다.
자기들의 사는 거처를 무너 뜨릴 자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나는 네 대적이라....대적이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대적하신다는 말보다...
더 슬프고 비극적인 말은 없을 겁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지경까지 오게 되었느냐...
렘22:9절을 봅시다.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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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겔21:1-17절 말씀의 핵심은
여호와의 칼이 칼집에서 나와 성소를 향하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칼이 성소를 심판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성소를 심판하신다면 이스라엘 나라는 문제가 없을까요?
문제가 없는게 아니라 성소가 칼을 받아야 할 정도라면
이스라엘 나라도 칼을 받고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3절에 말씀합니다.
3절 시작을 내가 악인과 의인을 네게서 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20:47절에서 이미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불을 보내어 푸른나무와 마른나무를 멸하시겠다고 하신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푸른나무는 언약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라고 한다면
마른나무는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높이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악인이라는 겁니다.
왜 이렇게 의인과 악인을 함께 심판하신다는 겁니까?
그렇게 함으로 진실한 믿음의 사람과 형식적인 믿음의 사람이 스스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7장에 어느 집이 반석위에 지은 집인지...모래 위에 지은 집인지...평상시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다 같은 집인줄 알지만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면
그때 반석위에 지은 집과 모래위에 지은 집은 스스로 드러낸다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칼이 칼집에서 나와 이스라엘을 치시는 것은
3절 중반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대적자가 되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예레미야 21:13절에도 나는 네 대적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대적하신다는 말보다...
더 슬프고 비극적인 말은 없을 겁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지경까지 오게 되었느냐...
렘22:9절을 봅시다.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적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다?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 까닭이라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하나님이 성소를 어떻게 하셨는가를 애2:7절에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2: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제단을 버리셨다, 자기 성소를 미워하셨다는 겁니다.
그 결과 원수의 손에 여호와께서 넘기셨다는 겁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장로들과 제사장들이...성소를 더렵혔기 때문입니다.
겔5: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이렇게 성소를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심판하신다면
성소가 완전히 폐하여 진 것이냐....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합니다....겔11:16절을 봅니다.
겔11:16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그들이 도달한 나라에서 내가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이는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성소가 보이는 성소에서 보이지 않는 성소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는 예배, 가견적 예배에서 보이지 않는 예배 불가견적 예배로 나아가야 함이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성소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소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신 자리입니다....대하7:2절을 보시겠습니다.
대하7:2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여호와의 영광이 이렇게 성전에 가득함으로 성소가 되셨는데...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성소에만 영광이 가득함이 아닙니다.
온 땅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심을 깨달아야 진짜 불가견적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함을 선포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는 천사들이 부른 노래입니다.
즉 인간의 눈으로 보니 보지 못하지만
천사들이 보니...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더라는 겁니다.
시편 119: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란 사랑과 자비하심입니다.
사랑과 자비가 땅에 충만하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 땅에 충만하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충만하신 땅...그 땅에 살고...그 영광이 충만하신 땅에 산다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앞에 사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견적 예배만 드리는 자가 된다면
사1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임을 잊어서 안됩니다.
우리는 불가견적 예배를 드림에 성공자가 되어야 가견적 예배의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보이는 예배보다 삶으로 드리는 보이지 않는 예배가 더 중요함을 잊어서 안됩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보지 아니하고 알지 못하지만...
이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보시고 들으시고 아심을 믿으시고
불가견적 예배,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예배의 성공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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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우리가 성경을 찾아보면서
왜 하나님이 칼을 빼서 성소를 향하시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그렇다면 성소가 무너지게 되면 성소가 없어지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진 그곳에 따라가셔서 성소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성전, 교회에만 갖힌 하나님이 아니시라...
이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6장에서 하나님을 본 천사들이 선포하기를...
사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라고 한 겁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세상 모든 곳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소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드리는 회중예배보다 영적예배,
우리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참된 예배는 예배시간만 예배가 아니라 삶이 에배가 되어야 합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강조하면...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회중예배, 정한 시간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이 예배는 필요 없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귀중히 여기면 회중예배를 무시할까요?
아닙니다. 진짜 영적 예배를 드리면 보이는 예배, 회중예배,
가견적예배도 더 귀중히 여기고 더 준비하고, 더 드리기를 기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6절을 봅시다.
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탄식이 뭡니까?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탄식한다는 것은 죄로 인하여 슬퍼하며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탄식하되...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진짜 슬픈 일을 당하면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을 하는데...
왜 허리가 끊어지듯이 탄식하라고 할까요?
성경적으로 보면 허리는 힘의 좌소입니다.
욥40:16. 시66:11, 사21:3 등을 보시면 사람의 힘은 허리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허리가 끊어지듯.....이 말씀의 뜻은 힘을 잃게 된다는 겁니다.
누가 이스라엘 나라가 힘을 잃게된다는 겁니다.
누구에게 바벨론 나라에게 망함으로 힘을 잃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에스겔의 행위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델로 보여주게 하신 겁니다.
7절을 봅시다.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에스겔이 그렇게 허리가 끊어지듯이 탄식하여 힘을 잃게 되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탄식하고 아파하느냐고 묻는 자들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때 뭐라고 대답하라는 겁니까?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라고 하라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냐하면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하기 5년 전에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할 것이라는 이 소문이 떠돌았다는 겁니다.
이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하게 되면...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각 마음이 녹는다, 손이 약하여 진다, 영이 쇠한다, 모든 무릎이 약해진다.
이는 나라가 망한 후에 나타나는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나라가 힘을 잃고 파산됨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7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재앙이 올 것이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주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라가 망하기 전의 소문이 사람들의 지혜로 떠돈 소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바벨론을 들어서 치실 것을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왜 나라를 치기 전에 먼저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는 다름이 아니라...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시간을 귀하게 생각하고 잘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혹여라도 죄가운데 있다면...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주신 시간이요
내가 지은 죄가 없다면...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고 주신 시간이라는 겁니다.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겁니다.
하늘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합니다. 땅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렇게 충만하게 하는 비결이 뭡니까?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혹 죄가운데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시간을 주시고 건강을 주십니까?
돌아서십시오. 회개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시라고 주신 시간인줄 깨달으셔야 합니다
지은 죄가 없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십시오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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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절을 봅시다.
8.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인자야...에스겔아..이 말이지요?
에스겔아 너는 예언하라...여호와의 말씀이 이같이 임하였다고 예언하라...
무슨 말씀이 임하였다는 것이냐...9절 하반절에...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칼이여 칼이여...반복합니다....성경에 반복해서 말씀하는 말씀들이 때때로 등장합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말씀들은 다...강조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칼을 강조하는 데 어떤 칼이냐...날카롭고도 빛나도다...
날카롭고 번쩍번쩍하게 빛나는 칼이 준비되었다는 겁니다.
이는 무엇을 말씀합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하게 준비되었다는 겁니다.
이게 무엇을 말씀합니까? 때가 찼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참으시고 참으시고 또 참으십니다.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시고 또 또 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참으시고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때가 차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휘둘러진다는 겁니다.
성경속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되 기회를 주시지 아니하시고 심판하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기회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가인에게 기회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노아시대에 기회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기회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충분한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면
결국 준비된 날카롭고도 빛난 칼, 심판의 칼을 휘두르실 수 밖에 없는 겁니다.
10절을 봅시다.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0절은 9절에 날카롭고도 빛난 칼이라고 했던 말씀을 해석하는 말씀인데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칼이 휘둘리는 것은 죽음이지요?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없습니다.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다..라고 합니다.
번개가 어떤 것인지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여름철에는 번개를 자주 봅니다. 하늘에서 빛이 번쩍 하고는 소리가 우루루 꽝...하고 납니다.
예를 들어서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경산시청에 번개가 친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경산시청에 번개가 때리면....아주 밝은 빛줄기 같은 것이 번쩍하면서 쫘악 쏠 것입니다.
그때 경산시청에 있는 사람만 그 빛은 볼까요? 아니면 그 주위에 동네 사람만 볼까요?
아니면 경산시 전체의 사람들이 볼까요? 경산시 전체의 사람들이 다 보게되고
경산만 아니라...대구시의 사람들도 다 보게 될 것입니다.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니...이는 두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심판의 때에나...재림 때에나...재림이 심판의 때이지요?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모든 사람이 다 보시도록 임하신다는 겁니다.
2) 번개 같이 된다는 것은...심판의 신속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개보다 번개의 빛보다 더 빠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참고 또 참으시고 또 또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심판의 때가 차면 신속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까지나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송강 정 철 선생님의 시중에.....
어버이 살았을제 섬길일랑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닮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일 이뿐인가하노라...시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는 정철 선생님이 부모님이 떠나가신 후에 쓰신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돌아가시고 나니 고쳐 못함을 깨달은 정철 선생님의 시가 애잖하게 우리의 가슴을 때리는 시입니다.
그런데 효도할 시간이 없었을까요?
부모님을 더 잘 섬길 시간이 없었을까요? 분명히 있었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신속하게 임하시지만
그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는 많은 시간과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잊어서 안됩니다.
마25장에 유명한 세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열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비유
---열처녀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로 나누어집니다.
누가 지혜롭고 누가 미련합니까?
기회가 있을 때 등과 기름을 준비한 처녀가 지혜로운 처녀이고
기회가 있을 때는 빈둥빈둥 놀고 딴짓을 하다가
신랑이 올 때에야 기름 사러가는 처녀들이 미련한 처녀들입니다.
달란트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5, 2, 1 달란트...
양과 염소비유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주님이 이땅에 재림하시고 심판의 나팔이 불리게 되면
번개같이 신속하게 심판의 사자가 지나갈 테인데...역시 그때는 고쳐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 하나님이 주신 기회에...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준비합시다. 충성합시다. 사랑합시다.
이런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새벽에 핵심말씀이 10절이었습니다.
빛남은 번개같이 되기 위함이니...라고 하는데 이는 두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2) 번개 같이 된다는 것은...심판의 신속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고 또 참으시고 또 또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심판의 때가 차면 신속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까지나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가인, 노아의 때,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셨고
마25장의 말씀을 보아도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되...
준비할 기회를 주셨고, 충성할 기회를 주셨고, 사랑할 기회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11절을 봅시다.
그 칼을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빛나게 하되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빛나게 하였도다 하셨다 하라
그 칼을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빛나게 하되...라고 시작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그 칼을 손에 잡으신 분이 누구시며...쓸만하도록 빛나게 하였다는 뜻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먼저 그 칼을 손에 잡으신 분이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왜 칼을 손에 잡으셨다는 겁니까? 칼을 갈기 위하여 잡으신 겁니다.
칼을 갈으심의 결과가 쓸만하도록 빛나게 하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칼을 갈으시고 갈으신 결과가 쓸만하도록 빛이 난다는 것인데
문제는 왜 하나님께서 칼을 가셨느냐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심판을 위하여 칼을 갈으신 겁니다. 그래서 시편7:12절에
시편 7: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회개하시기를 기다리고 기다리시지만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 시간이 하나님이 칼을 가시는 시간임을 잊어서 안됩니다.
칼이 쓸만하도록 가신 후에...11절 중반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날카롭고도 빛나게 갈린 칼을...어떻게 하시느냐를 말씀합니다..성경을 봅시다.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빛나게 하였도다 하셨다 하라
칼을 갈아서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신다는 겁니다.
이는 심판의 칼이 완전히 준비되어 죽이는 자의 손에 넘겨 쓰시기만 하면 된다는 겁니다.
이 죽이는 자가 누구냐? 바벨론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에스겔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12절입니다.
12절 봅시다.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이 12절을 세 부분으로 먼저 나누어 보겠습니다.
1) 인자야~~슬피 울지어다.
2) 이것이~~~넘긴 바 되었으니..
3)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3 번째 문장인...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라는 말씀입니다.
넓적다리는 무엇을 말씀하느냐...무릎위 허리 아래 우리로 말하면 허벅지를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넓적다리를 친다는 것이 무슨 행위이냐...비통과 애통함을 나타내는 행위라고 합니다.
무슨 비통과 고통 때문에 에스겔 자신의 넓적다리를 쳐야 했느냐
2번째 문장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비통하고 예통하라는 겁니다.
그것을 1번째 부분에서 인자야...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넓적다리를 치라고 하시고...부르짖어 슬피 울어라고 하실까요?
이는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나라를 바라보며 슬피 울어야 합니다. 선지자는 넓적다리를 쳐야합니다.
이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해야할 신분이 성도라는 겁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14-17절은 심판의 확실성과 함께 참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우리가 좀 눈여겨 볼 말씀이..
14절에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이는 무슨 말인가하면 에스겔에게 심판을 예언하게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지를 아니하니까...손뼉을 쳐서 예언을 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모임에서 내가 말을 해야 하는데 집중하지 않을 때는...보세요...저 좀 보세요..
그러한 행위중 하나가 손뼉을 탁탁 치기도 하쟎아요...그렇게 예언을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17절에...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지금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게 하나님께서 칼을 갈았습니다.
그리고 그 칼을 죽이는 자에게 주었습니다.
그 칼을 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바벨론입니다.
14절 중반절에...이 칼은 죽이는 칼입니다. 사람들을 둘러 싸고 죽이는 큰 칼입니다.
15절 하반절에도 오호라 그 칼이 번개같고 죽이기 위한 날카로운 칼이라고 합니다.
이 칼을 향해서 여호와께서 손뼉을 치시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손뼉을 치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좋아서 손뼉을 치신다는 겁니까? 내용상 그것은 아닙니다.
손뼉을 쳐서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라고 하니까...이는 좋아서 손뼉을 치는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느냐...
16절 칼아 모이라 오른쪽을 치라 대열을 맞추라 왼쪽을 치라 향한 대로 가라
14절에 에스겔의 손뼉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 말 좀 들어봐라...라는 주목하라는 뜻이 있다면
17절에 하나님의 손뼉도 그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심판을 행하는 바벨론 군대를 향해서 치시는 손뼉인데...좋아서 칭찬으로 치시는게 아니라
심판을 행하는 군사들에게 손뼉을 쳐서 오른 쪽이야... 오른 쪽....
또 쳐서 왼쪽이야...왼쪽을 쳐라...그런 뜻이라는 겁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시작하시고 진행하시고 마치신다는 겁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시작하십니다. 진행하십니다. 마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심을 말씀합니다.
참 믿음의 자리에 우리가 들어가면 하나님께 내 인생의 주권을 맡겨드린다는 겁니다.
믿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로다...아멘입니까?
여호와는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십니다.
이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진짜 깊은 믿음에 이르게 되고...마음에 말할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이런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1-17절의 첫 번째 단락의
핵심적인 말씀은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한 칼..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18-32절에 관한 두 번째 단락의 핵심은
바벨론을 들어 예루살렘과 암몬을 심판하심
에 있음을 먼저 기억하고 말씀을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내용이 아...바벨론을 들어서 예루살렘도 암몬도 심판하시는 내용이
전체의 흐름이구나...생각하면 내용파악이 훨씬 쉬울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방법도...어떤 분들은 책을 사오자 말자...
본문부터 시작하여 열심히 읽습니다.
그런데 얼마 읽지 아니해서 앞에 내용을 까맣득히 잊어버립니다.
책 한권을 다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읽을 때는 알았는데
책 전체의 흐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파악되지 아니하여...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책 산다는 것이 부담 스럽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더 부담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읽을 때 어떻게 읽는게 잘 읽는 것일까요?..
제목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파악해야 합니다...제목을 먼저 읽고...
그리고 책을 딱 펼치면...제일 먼저 쓰여진 프롤로그부터 읽어야 합니다.
프롤로그는 글이나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말하면서 이런 동기로 글을 쓰니까
본편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먼저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입니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책들을 보면 프롤로그에 핵심이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
또 하나는 에필로그입니다...에필로그는 작가가 책을 쓰면서
깨달은 것들을 후기 형식으로 정리하여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책을 읽기 전에...먼저 읽어야 하는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이구요...
다음으로 읽어야 하는게 차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은 읽는데 차례를 읽지 않습니다.
사실은 차례만 제대로 읽어도 반은 읽은 겁니다.
왜냐하면 차례만 제대로 알아도 책의 흐름을 알게 되니까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책을 사오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와 차례를 건너뛰고...
내용부터 읽으니까 사실은 책을 읽는 것이 어렵고 읽다가 지치는 겁니다.
제가 계속해서 새로운 장에 들어가면...제목을 계속 이야기합니다.
20장의 제목은 칼을 칼집에서 빼낸 여호와다...
또한 첫째 단락의 제목이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한 칼이다.
두 번째 단락의 제목이 바벨론을 들어 예루살렘과 암몬을 심판하심이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이유가...제목을 알아야 내용파악이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18-19절을 봅시다.
18.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9.인자야 너는 바벨론 왕의 칼이 올 두 길을 한 땅에서 나오도록 그리되
곧 성으로 들어가는 길 어귀에다가 길이 나뉘는 지시표를 하여
20.칼이 암몬 족속의 랍바에 이르는 길과 유다의 견고한 성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을 그리라
앞에서 날카롭고도 빛난 칼이 누구의 칼임을 이제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 칼의 누구의 칼입니까? 바벨론 왕의 칼이라는 겁니다.
바벨론 왕의 칼이 한 땅에서 나와서 두 길을 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 두 길이 어디를 말하느냐...하나는 암몬 족속의 땅 랍바로 가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땅 예루살렘으로 가게 될 것인데...
그렇게 가는 두 길을 그리고...길이 나누어지는 곳에는 지시표를 그리라는 겁니다.
21-22절을 봅시다.
21.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어귀에 서서 점을 치되
화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제물의 간을 살펴서
22.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으므로 공성퇴를 설치하며
입을 벌리고 죽이며 소리를 높여 외치며
성문을 향하여 공성퇴를 설치하고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게 되었나니
바벨론 왕이 암몬과 이스라엘을 치러 나왔는데
어디를 먼저 가야할지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두 갈림길에서 이방인들이 흔히 행하는 점을 치게 된다는 겁니다.
화살을 뽑아서 두 화살 끝에다 화살 촉이지요?
그 촉에다 하나는 예루살렘, 또 하나는 랍바라고 쓰고
전통...화살을 담는 통에다 넣고 흔들어서 보지 아니하고 하나를 뽑습니다.
그렇게 뽑힌 화살의 끝에 쓰인 지명에 따라 가는 점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에...갈림길이 나오면...두가지 방식으로 점을 쳤습니다.
하나는 점아점아 콩점아 어디로 갈까 딱딱 딱 들어붙거라...
또 하나는 손바닥에 침을 뱉어서 손가락으로 탁 쳐서 많이 가는 쪽이 맞다고 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이나 그들이 화살로 점을 치는 것이나 별반 다를바가 없을 겁니다.
아무튼 그들은 그런 미신을 믿었으니...그렇게 점을 쳤다는 것이고...
그 점괘에 따라 먼저 온 치게 되는 곳이 예루살렘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먼저 인도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22절에 예루살렘에 와서 그들에 행한 것이 뭡니까?
22절 하반절에 성문을 향하여 공성퇴를 설치하고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도 누구의 뜻에 따른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그것이 겔4장에 있습니다.
4:1-3절을 읽고 간단히 설명드리고 마치겠습니다.
1.너 인자야 토판을 가져다가 그것을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2.그 성읍을 에워싸되 그것을 향하여 사다리를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흙으로 언덕을 쌓고 그것을 향하여 진을 치고 그것을 향하여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
3.또 철판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
이미 하나님께서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 오면 이렇게 할 것이라는 것을 4장에 예언하셨습니다
결국 그 예언대로 되었다는 것을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하신대로 이루어 가심을 말씀합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결국 우리 인생의 모든 주권이 주님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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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난 주에 18절 이하 두 번째 단락으로 넘어와서
두 번째 단락의 제목이 바벨론을 들어 예루살렘과 암몬을 심판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앞 단락에서 반복된 날카롭고도 빛난 칼이 누구의 칼인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 칼의 누구의 칼입니까? 바벨론 왕의 칼이라는 겁니다.
바벨론 왕의 칼이 한 땅에서 나와서 두 길을 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 두 길이 어디를 말하느냐...하나는 암몬 족속의 땅 랍바로 가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땅 예루살렘으로 가게 될 것인데...
그렇게 가는 두 길을 그리고...길이 나누어지는 곳에서
바벨론 왕은 자기들의 방식대로 점을 쳤는데 그 점으로 판단을 받은 곳이 예루살렘이라했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을 먼저 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 주위에 토성을 쌓고 공성퇴와 사다리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이미 에스겔서 4장에 예언된 대로 바벨론 왕이 행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이루어 가심을 말씀합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저는 이 말씀이 정말 저를 위하여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고 싶고 저렇게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난 이러한 일들 사건들 문제들을 안당하고 싶었지만 그 과정을 지나게 하심을 볼 때에
결국은 다 하나님이 내 걸음을 인도하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모든 주권이 주께 있음을 믿고
억지로 끌려 다니지 말고 먼저 순종함으로 순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4-27절까지는 그렇게 예루살렘을 포위한 바벨론 군사의 칼에 의하여 결국 성이 함락되는데
그때에 왕이 당할 수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4절은 왕이 얼마나 죄악이 가득한 사람이었는가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의 악이 기억을 되살리며 너희의 허물이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 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
여기 너희 너희 너희 너희는 다 시드기야 왕을 말씀한다고 이해하시면 틀리지 않습니다.
너희의 악이 기억을 되살렸다...
누구의 기억을 되살렸다는 겁니까? 하나님의 기억을 되살렸다는 겁니다.
너희 허물이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즉 너희 모든 행위에 죄가 만연해 있다는 겁니다.
이러하니..2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 극악하여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아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죄악의 마지막 때이니라
죄가 가득찬 시드기야 왕을 하나님이 치시니...그는 두 눈이 뽑히고 거기다 육신적으로 중상을 당하여 바벨론에 끌려간 것이
그에게 죄악의 마지막 때라는 겁니다.
성도의 삶의 중심은 때를 알아야 합니다.
내 때가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알고 살 때에 올바로 사는 겁니다.
때를 알고 살자는 겁니다...때를 알아야 지금 내가 심어야 할 때인지...
아니면 내가 가꾸어야 할 때인지...아니면 추수할 때인지를 아는 겁니다.
때에 맞게 사는게 정말 멋진 삶이 되는 겁니다.
때에 안 맞게 사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이전에 제가 신학교에 갔을 때...60이 된 분이 신학을 왔습니다.
어떻게 이 연세에 신학을 오셨습니까? 그리니까
그분 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강제로 신학을 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신학을 하게 하셨습니까?
하는 일 마다 안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분에게 기도를 받으니까
하나님께서 일찍이 목회자로 선택을 했는데 안하니까 하는 일마다 안되게 하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여야 하느내고 하니까...지금이라도 신학을 하라고 하더랍니다.
60이 된 나이에 어쩌자는 겁니까? 무엇을 하겠다는 겁니까?
특히 우리는 그 때 중에 마지막 때를 바라보며 사는게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날을 기대하며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날에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만 있다면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것보다 더 귀한게 세상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세상속에 살지만 그날을 기대하며 사는 성도가 진짜 성도로 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시드기야는 때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그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심지어 성이 포위되었을 때 성벽을 뚫고 도망을 가다가 잡혀서...
결국 두 눈이 뽑힌채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이 결과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는 대 혼란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8-32절까지는 암몬족속에 대한 심판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한절한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왜 암몬족속이 심판을 받게 되었느냐는 겁니다.
그것을 25: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찾아보고 마칩니다.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