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의 이야기
1979년은 5년 동안 근무하던 화전에서 정선의 모교로 전근을 온 해였다. 이곳에 올 무렵 도규 형은 창죽분교장에 계셨다.
문학에 대한 열정은 그 형도 내 못지 않았다. 강원도와 서울에 있던 강원도 감자바위들에게 서신으로 연락을 하여 글쓰는 동인을 만들었다. 이름이 ‘여울’이었다.
도 규 형은 똥종이라 부르는 누런 8절 갱지에 손수 글씨를 써서 회보를 만들었다. 몇 번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 정열은 지금도 뜨거움으로 다가온다.
‘여울’ 제1호는 1979년 6월에 만들었다. 그 회보에는 ‘도리깨;란 제목으로 쓴 글을 실었다. 나는 바쁜 관계로 도규 형에게 글을 써서 보내지는 못했다. 이 회보에는 삼척군 화전에 있던 김진광, 마석규와 삼척남국민 학교에 근무하던 장영철, 창죽분교장의 최도규 동시가 실렸다.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귀중하고 더 없이 값진 회보였다.
도 리 깨
김진광(화전국교)
멍멍 짖던
누렁이도
꼬리 감추며 숨고
휙 휘익
휘파람 소리에
마당가
대추 감도 질렸는데
풍년을 부르며
장단 맞춰
춤추는
신들린 손과 손.
도 리 깨
마석규
매끄럽게 다져진 타작 마당에
나락단이 널리는 바쁜 하루
한 해가 쌓이는 오늘은
곳간 속 잠자던 도리깨도
펄펄 날며 바람을 가르고 싶다
금빛으로 엮어져 누운 땀방울들
톡 톡 톡 알몸이 되면
마당 가득 풍년이 펼쳐지고
신이난 도리깨는 지칠줄 모른다
한 해를 터는 샘솟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모르는 타작날은
도리깨도 한껏 즐거워진다.
이 회보에는 ‘여울’의 상징을 도규 형이 시로 간단히 적어놓기도 하였다.
여울
최도규
어디까지 가기에 어디까지 가기에
이토록 바쁜 걸음일까 이토록 출렁거릴까
지켜보던 산이 일그러지며 바위돌에서 깨어난 물소리가
저만치 따라 가다 저만치 따라가다
되돌아오고 있다. 되돌아오고 있다.
도 리 깨
장영철(삼척남)
투드락
투드락
한마당을
맴돌며 떨어지는
도리깨에
팔짝
팔짝
낱알이 튄다
땀방울이 튄다
겨우내
초록빛 꿈 키워
알알이
영근 이삭이
투드락
투드락
하늘 한 번 맴돌고
떨어지는 도리깨에
낱알이 쌓인다
기쁨이 솟는다
도 리 깨
최도규
긴 겨울잠에서 깬 도리깨의 눈이
언덕빼기 보리밭에서
파도를 탄다
“며칠 안 남았군”
까맣게 탄 농부의 얼굴이
밭두렁을 한바퀴 돌면
온통 노랗게 물드는 마을
서너 집 모인 산마을에도
계절이 고개를 쭈욱 들어 밀고
밭에서 돌아온 도리깨가
벙글벙글 춤을 춘다
신들린 도리깨가
하늘 한 번 감을 때마다
살아서 톡톡 튀는 노란 빛덩이
아,
온 마을이 도리깨에 감겨 돈다
저녁 노을이 바알갛게
감겨서 돈다.
1979년 9월 에는 2호를 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작품을 보내지 못했다. 그랬더니 도규 형이 회보 뒷면에 편지글을 보내었다. 글을 보내라는 독촉장이었던 셈이다.
다음의 동시는 조영주의 ‘도리깨에다.
조영주의 ‘짚세기’는 분량이 많아 다음으로 미루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속히 새 작품을 보내달라고도 하였다. ‘9월 20일까지 미도착은 벌금으로 접수합니다.’ 이런 문구도 있었다.
도 리 깨
조영주
불볕을 가를때마다
베잠방이에 배어나는
땀
나동그라지는 낟알
아낙네 풍구질에
윤나는 곡식더미
물도 없는 공중에서
물레방아가 돈다
햇볕이 돈다
바람소리가 돈다
털석 털석
도리깨 방아
떡냄새가 난다
튀어오르는 낟알
분수인냥 바라보던 아이
벌에 소인 듯
눈비비며 도망가고
털석 털석 도리깨 방아
벌써 떡냄새가 난다.
도 리 깨
최도규
키크고 깡말라도
매끄러운 몸매에
외팔 달린 농부
경운기 타고 깔깔대던 이삭들이
노랗게 질려
뜰 앞 넙죽 엎드린다
지난 겨울 몇 번인가
돌이 눈이 스쳐간 팽이 꼭지
쉴새없이 팔을 돌려
하얀 구름 감을 때마다
흐터지는 빛조각
달아나는 새소리
아,
아낙네 웃음소리
곳간에 채워지고
점심 밥 익힌 연기
벙글벙글 어지러워
휘어지고 있다
맷 돌
조영주
수 천년 담아온 전설
올올이 풀어낸다
짚세기 신든 그 날
모시 적삼 입든 그 날
댕기 드리고 널 뛰던 그날
거슬러 조선시대
고조 증조 이어져 온 얼
한 구비 한 구비 돌아 넘는다
한 웅큼씩 집히는 낟알
파아란 전설이 찍혀나온다
어느 사이
문명이 팽개쳐버린 돌수레에
포름한 냇물이 흐르고
어린 나무가 고목되어 하늘을 찌르고
종종걸음 아가가 어른이 된
초가집이 대궐이 되고
뱅글뱅글 돌 때마다
돌수레의 전설이
하나하나 풀려난다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가루되어 쏟아진다
콩 한모금 먹고
물 한모금 먹고
포대기에 아가를 싸 담고
디딜방아 찧던 날들이
싸르락 싸르락
찍혀 핀다
맷 돌
최도규
아이야! 너는 잘 모르겠지?
오두막 짓고 살던 먼 옛날에
할아버지 할머니 마주 앉아서
호롱불 돋워놓고 돌리던 것을
오른 팔 힘 부치면 왼팔 바꾸어
새벽닭 울음소리 깨우고야 만
조상의 얼 가득가득 담긴
돌바퀴
동그란 몸 가운데 퐁 뚫린 분
콩 한숟갈 받아 먹고
한바퀴 돌고
물 한모금 받아 먹고
두바퀴 돌고
으개진 콩죽 가루 함지에 차면
향긋한 초두부 맛
바람처럼 일고
할아버지 할머니
싱긋 웃던 그 웃음
전설처럼 파랗게
살아나는 것을
아이야!
너는 잘 모르겠지?
짚 세 기
최도규
몇리나 남았는가
개나리 봇짐속엔
두어 커리 여유 있어도
과거 길 선비는 아예
맨 발로 고개를 넘었다
숲속마을에서 컹컹
뛰어오는 개소리에
발바닥 쓱쓱 문지르고
잽싸게 신든 짚세기
숭숭 뚫린 구멍으로
바람은 땀을 데려가고
노을 빛 내려앉든
주막 뜰에
나란히 쉬고 가던
우리의 신 짚세기
험한 길 머나먼 길
밟아내던 조상의 얼
이제
영원히 잠들어 있다.
이때에는 조영주, 장영철, 마석규, 김진광, 남진원, 최도규, 권영상 등이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이 중에 벌써 조영주, 장영철, 최도규 등은 작고 문인이 되었다.
조영주는 춘천교육대학을 나오고 계간 아동문학평론지에서 동시 추천을 받아 등단한 작가이다. 마석규는 기독교아동문학상 공모에서 당선하였고 장영철은 내가 1989년 강릉으로 온 후 솔바람 모임에서 만나 등단을 이야기 하였다. 그래서 김철수가 발행하는 월간 아동문학에 추천을 주선하여 등단하게 되었다.
조영주는 내가 정선의 증산국교에 있을 때 한 번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박유석 선생과 함께 술을 나누며 밤을 보냈는데 그때 조영주는 돈에 대해 초월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술값이며 안주 값을 거리낌 없이 내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그는 이혼을 한 혼자였고 아마 고독감과 외로움에 많이 시달렸던 모양이다. 한동안 소문은 정신이 이상해졌다고도 하였다. 나도 교직을 그만 두고 강릉 옥천동에 살 때였다. 조영주가 호미를 들고 고무신을 신은 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서로 반가워 인사를 나누었는데 조영주의 손에는 빵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아마 밭에 일을 하러 가던 모양이었다. 그런 그가 손에 든 빵 하나를 선뜻 내어주며 먹으라고 하였다. 그가 얼마나 동심으로 사는 어른 소년인지를 알았다. 또 한 번은 용강동 큰길가에서도 만났는데 그때에도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