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에는 여사사 드보라와 군 사령관 바락이 가나안족을 물리쳤다는 전승기록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7절을 보겠습니다.
1 에훗이 죽은 뒤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주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
2 그래서 주께서는 하솔을 다스리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내주셨다. 그의 군지휘관은 이방인의 땅 하로셋에 사는 시스라였다.
3 야빈은 철 병거 구백 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하게 억압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주께 울부짖었다.
4 그 때에 이스라엘의 사사는 랍비돗의 아내인 예언자 드보라였다.
5 그가 에브라임 산간지방인 라마와 베델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와 재판을 받곤 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사사 드보라에게 나아와 재판을 받았답니다. 사사들이 전시에는 군사지도자 역할을 했지만 평시에는 백성들 사이의 문제를 중재하고 판결해주는 재판관의 역할을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을 보면, 드보라는 군통수권자로 전쟁을 지휘하고, 바락이 야전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적을 크게 무찌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적의 장수를 죽인 사람은 바락이나 그의 휘하 장수가 아니라 한 여인이었습니다. 바락의 군대에 대패한 가나안족 사령관 시스라가 야엘이라는 여인의 집에 숨어들어 우유를 마시고 잠들었는데 야엘이 잠든 시스라의 머리에 말뚝을 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여사사 드보라와 함께 야일이라는 여성의 활약상까지 담겨 있어서 여성인권적인 측면에서 본문을 주목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야일이라는 여성의 용맹성을 찬양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적군의 장수가 여자의 손에 비참하게 죽었다는 조롱의 의미를 담은 글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5장에는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드보라가 부르는 승전의 노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어느 무명의 시인이 지은 것이고, 성서의 모든 본문 가운데 시기적으로 제일 앞선 기록일 것이라고 진보적인 성서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이때가 서기전 1000년경일 텐데 그때까지는 구전으로 이어오던 설화들이 이때부터 단편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했을 거라고 보는 것입니다.
반면에 보수적인 신학자들 중에는 서기전 15세기경부터 성서가 기록되었다고 아직까지도 주장하는 분들이 일부 있습니다. 모세오경의 저자를 모세로 생각했고, 출애굽도 서기전 15세기에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 과거의 이론이 여전히 옳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신학자들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낡은 이론으로 간주됩니다.
어쨌든 사사 드보라와 그의 사령관 바락이 승리함으로써 이후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태평세월을 누리게 되었다는 기록으로 사사 드보라의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