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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저 눈밭에 사슴이
정순이 누나가 언제부터 우리집에 드나들기 시작했는지 그 날짜를 나는 정확히 기억은 하지 못한다. 다만 어렴풋이 아마 그때가 몹시 추웠던 겨울이었던것은 확실하다. 유년시절 나를 유난히 귀여워 해주었던 사람이 정순이 누나였기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집을 가르켜 '구포댁'이라고 불렀는데 구포는 말하자면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나는 구포가 경상도 어떤 지리적 변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막연한 얘기만 들었지 더이상은 직접 가보지 않아 자세한 건 모른다. 한번은 지도 도감을 펴놓고 그곳을 찾아보겠다고 시도를 해보기도 하였는데 그 비슷한 지명은 있어도 실제의 구포는 찾을 수가 없는 걸로 봐 어쩌면 상상속에서나 살아 있는 지명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내가 그토록 오매불망 꿈꾸고 가고 싶어 하던 초등학교 입학식에 보호자겸 나를 데리고 간 사람은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정순이 누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정순이 누나의 기억은 내 생애 전반부에 걸쳐 각별한 추억으로 앨범 한귀통이에 끼워져 있는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아련한 정서로 각인 되어 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건 추억 이전에 한 성장사의 통과의례이자 아픔이었다. 그 시절은 대개가 그랫듯이 내가 살든 시골에는 오늘날의 유치원 같은 일련의 잘 만들어진 교육제도가 사실상 전무하였다. 때문에 가족중에 누군가의 보호속에 의존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이도 어렸지만 나는 무엇보다 앞으로 펼쳐질 무한한 세상에 대해 누구보다 호기심이 많았다. 하루하루 생계가 걱정스러워 독 안에 내일분의 양식만 있어도 그저 감지덕지 하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는 천형처럼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앞동산에 올라 아래로 내려다 보면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있는 풍경이 정겹기 까지 하였다. 간혹 굴뚝에서는 저녁 밥을 짓는 지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 올랐다. 산야에 봄의 입김이 서릴때면 진달래가 지천으로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우리 마을에서도 그나마 잘 산다는 '남옥이네'가 최초로 흑백 티브이를 들여 놓았고 그래서 저녁이면 남옥이네 집 안방에 이웃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드라마를 보는게 유행이었다. 그때 유행 하던 드라마가 '아씨'라는 드라마 였다. 나의 기억으로는 도련님과 아씨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사랑을 하게 되는데 가부장적이고 완고한 한쪽 부모의 반대로 두 사람의 관계가 급기야는 비극적인 치달아가는 그런 슬픈 정조의 이야기였지 않나 생각 한다. 드라마 주제가도 '이미자'라는 당대 최고 가수가 불러 심금을 울렸고, 드라마 외적으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 되었다. 어머니는 불행하게도 무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집은 늘 여느집과 달리 수선수러웠고 어떻게 보면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교회 집사였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돌연한 신내림으로 객지에서 터전을 그대로 두고 야밤도주하듯이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자리를 잡은 곳이 파도소리가 늘 귓전에 들리고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해안부락이었다. 그 무렵 어머니는 신내림 굿을 받고 평범한 농촌의 촌부에서 무녀로서 새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정말 그런 어머니가 싫었다. 어느날 갑작스런 그런 일련의 변화에 우리집은 늘 혼란의 연속이었다. 뭔가 안정되지 못하고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은 문짝처럼 삐꺽그리고 덜컹댔다. 특히 농부였던 아버지의 시름은 한층 깊어 보였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어머니의 완고한 무속의 길이란 운명을 받아 들인다는게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안은 듯 하였다. 아버지는 늘 한숨과 담배연기로 시름을 달래는 모습이 역력 하였으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을 농사일에 몸을 혹사 시킴으로 뭔가 잊으려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조실부모로 성장한 아버지는 남달리 고생도 많이 하신분이었다. 평소 과묵하였고 술이나 취하면 한 두마디 말을 건넬 뿐 말이 없었다. 얼굴에는 구렛나루가 덥수록하게 덮혀 있었고 그 눈동자는 늘 수심에 차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나가면 하루종일 들판에서 농사 일을 하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셨다. 맥고 모자에 지게를 벗는 아버지의 등짝은 늘 옷이 흥건히 땀에 절어 있었다.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던 정순이 누나가 내 초등학교 입학식에 함께 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가정사적인 문제와 연관지어서 생각 해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던 날은 따뜻한 봄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던 어느 3월이었다. 골목에는 어린 누나뻘 되는 동네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린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 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그러나 몇 몇 동네 악동들이 그 고무줄을 끊고 달아났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나는 한눈을 팔기도 하였다. 들판에는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 올랐고 전깃줄에는 종달새가 '지지배배 지지배배' 울부짖었다. 훈풍이 느껴졌다. 가끔 미풍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고 산 아래 응달 후미진 곳에는 채 녹지 않은 봄눈이 쌓여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양지쪽의 햇볕은 맑고 청량 하였다. 간혹 제비들이 성급하게 허공을 날아다니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정순이 누나와 동네를 벗어나 개울 다리를 건널 때 삽상한 바람이 정순이 누나의 시원한 이마를 가리고 있던 한줌의 머리칼을 마구 흩뜨려뜨렸고 그럴때마다 누나는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그리고 봄을 예감 하던 그 포근하고 달착지근한 공기속에 정순이 누나는 물방울 무뉘의 땡땡이치마에 위에는 하얀 공단 불라우스 차림이었다. 큰 홍수가 질 때마다 떠내려 가 번번이 동리 사람들이 임시로 놓았던 가교는 틈이 듬성듬성 뚫려 있는 엉성한 나무다리여서 나는 정순이 누나의 손을 잡고 장님처럼 더듬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넜다. 벌어진 틈새로 시퍼런 강물이 들여다 보였고 나는 고소공포증에 가급적이면 아랫쪽을 보지 않으려고 질끈 눈을 감기도 하였다. 그럴때면 이상하게 현기증이 몰려오고 어지러웠다. 다리를 건널 때 정순이 누나의 치마 밑으로 드러난 매끈한 종아리의 선이 바람이 매번 나부낄때마다 살랑거리며 발목에 척척 감겨들었다. 늘 나무를 자르는 날카로운 톱날 소리와 모타소리가 합성으로 들려오는 재재소가 있는 방죽길을 지나 장터로 접어들었다. 술지게미 냄새가 풍기는 양조장 골목길을 빠져 나오자 건너편에 측백나무 울타리의 학교 정문이 드러났다. 저 만큼 학교 뒷동산이 뒤로 성큼 물러나 앉아 있었다. 전날 나는 이제 곧 학교에 다니게 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고 새 친구와 새 책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 마냥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새롭게 펼쳐질 앞날을 그렇게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기역자형의 학교 건물은 낡은 기와 지붕에 목재 건물이었다. 벽에는 썪지말라고 검은 콜타르가 잔뜩 칠해져 있었다. 오래 되긴 했지만 많은 연륜을 거친 탓인지 외관상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어딘가 고답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현관 바로 옆이 교무실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고 창문 턱에 쇠로된 종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교실 앞 화단에는 제법 많은 꽃과 함게 큰 키의 모과 나무가 우뚝 키자랑이나 하듯이 서 있었다. 교실 뒷쪽 언덕 위에는 움집이 있어 돌이 할멈과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혹부리영감이 살고 있었다. 돌이 할멈은 귀머리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놀다가 무료하면 언덕위로 올라가 움집 앞에서 동내의를 벗어 이를 잡고 있는 돌이 할멈을 발견하고 공연이 돌맹이를 집어 던지고 달아 나곤 하였다. 돌이 할멈은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 늘 중얼 거렸고 가끔 혹부리영감이 학교 운동장 대나무 밭 옆 후미진곳을 가로 질러 시내쪽으로 나가곤 하였다. 한때 그들은 면에서 더러운 갑부였고 지금은 아주 몰락 하였다고 했다.. 혹부리 영감은 원래 환쟁이 였는데 어느 날 정신이 헤까닥 돌아버렸다고 하였다. 화구를 모두 분질러버렸고 움집을 벗어나 늘 시장거리나 아니면 콘크리트 다리가 있는 염천교 난간에 서 있거나 개천가 자갈밭 갈대숲에서 헤메었다. 입학실 첫 날 학교 운동장은 또래 아이들과 함께 따라온 보호자 들로 가득차 있었다. 갓 입학한 아이들의 오른쪽 앞 가슴에는 몇 반이란 걸 표식으로 나타내는 노랑색, 빨간색, 하얀색 리번이 핀에 꽂혀 손수건과 함께 달려 있었다. 물론 이름표도 함께 였다. 집에서 내내 말썽과 응석을 부리던 아이들은 학교라는 넓은 공간으로 나온것에 신기해 하면서도 여전이 낯을 가리고 낯설어 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생소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적응을 하기 위해 늘 신경의 끈을 항시 바짝 조여야만 하였다. 자칫 한눈을 팔거나 딴 생각을 하면 엉뚱한 곳에 자신이 와 있게마련이었다. 한낮이 되자 아이들은 교단에 올라선 선생님의 마이크 소리에 넓은 운동장 한켠으로 집결하였고 주의 사항과 앞으로 진행될 일련의 계획을 전해 받았다. 그리고 곧 반 배정이 있었다. 나는 왼쪽 가슴에 매달고 있는 손수건 옆에 빨간 리본을 매단 3반이었다. 시골 학교 치고는 적지않게 3반까지 편성 되어 있었다. 내가 대열에 서서 교단에 선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고 있을때 한켠에 물러서 있던 정순이 누나 살금살금 다가와 귀엣말로 말했다.
" 원구야, 누나가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치고 올테니까 끝나면 학교 정문 앞에 있어 알았지?"
"으응, 근데 빨리 와야 돼."
"알았어. 근데 절대 혼자 휙 가버리면 안된다?"
"명심할께 누나. "
정순이 누나는 그 말을 남기고 어딘론가 총총히 사라져버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대열을 지어 앞으로 1년동안 함께 할 교실로 이동하였다. 이제 막 집에서 응석 받이로 있다가 학교라는 울타리에 처음 온 아이들은 대열속에서도 소란스러웠다. 우는 아이, 싸우는 아이, 혼자 말없이 대열을 이탈하는 아이 등 가관이었다. 난생 처음 들어와보는 교실이란 공간은 늘 방안의 좁은 공간만 보던 것 하고는 달리 어색하면서도 무지하게 크고 드넓었다. 선생님은 순서대로 아이들을 남녀 짝을 지어 자리에 앉혔다. 키 크기 순서 대로였다. 작은 키의 아이는 맨 앞쪽이었고 큰 아이는 뒷쪽으로 물러나게 마련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멀뚱거리거나 주변 풍경에 낯설어 하였다. 나는 키가 유난히 작았으므로 앞쪽에서 두번째 줄이었다. 옆의 짝꿍들은 하나같이 복숭아빛 붉은 볼의 수줍은 여자 아이들이었다. 눈빛이 선하고 초롱초롱 하였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흑판에다가 백묵으로 써 보였다. 1학년 3반 담임 김복녀. 선생님의 이름을 반드시 외우라고 당부 하였다. 선생님은 나이는 좀 드셨지만 목소리가 또렷하고 힘이 있었다. 아이들을 보는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정순이 누나한데 배워 한글을 깨쳤기 때문에 그런 정도의 글은 이미 더듬더듬 읽고 있었다. 나는 키가가 작고 나이만 어린애였지 이미 훌쩍 정신적으로 성장해 있었다. 내일 부터 학교에 오면 눈여겨 보아 두었다가 잃어버리지 말고 이 교실을 찾아오라고 누누이 당부 하였다. 그럴때마다 우리들은 교실이 떠나가도록 입을 모아 꿀꿀이 돼지 형제가 합창 하듯이 네, 하고 여러번 반복 하였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이 끝나자 우르르 교실을 먼저 빠져 나가려고 우당탕거리며 서로 밀치고 야단법석이었다. 여전히 햇살이 충만한 학교 운동장으로 나오자 나는 정순이 누나의 말이 떠올라 정문 한쪽 귀퉁이에 담벼락 밑에 서 있었다. 혼자 서 있자니 조금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연신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보기에 바빴다. 운동장은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 정문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바깥에서 내내 기다리던 보호자들이 저마다 이름을 부르며 찿았다. 운동장 한 복판에는 누군가 잃어버린 건지 신발 한짝이 꺼꾸로 뒤집어 진체 나뒹굴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도 고무신이 아닌 끈이 너풀거리는 운동화 였다. 나는 기다리던 정순이 누나가 나타나지 앉자 그냥 가버릴까 어쩔까, 하다가 조금씩 정문 바깥으로 걸어나갔는데 그때 헐레벌떡 정순이 누나가 나타났다. 정순이 누나는 가쁜 호흡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지 원구야. 난 네가 가버렸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막 쫓아 오는 길이야. 그래 여태 기다렸고나. 어이구 착하기도 하여라. "
"어어, 누나 머리 했네. 빠마 했네."
"그래, 어떻니 원구야 괜찮은 것 같니 ?"
"몰라.뭐가 뭔지 모르겠어."
"너 배고프지 내 맛나는 것 사줄깨. 어서 가자"
정순이 누나는 내 손을 잡고 교문밖을 빠져 나갔다. 그날은 마침 오일장날 이어서 장터는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바글대고 있었다. 멀리 산골에서 온 초라한 차림의 노인에서 부터 아낙네들 그리고 머리에 기계충이 있는 촌 무지렁이들도 보였다. 그들은 장판의 흥성한 풍경에 신기한듯 기웃거렸다. 어물전에는 비릿내가나는 생선을, 싸전에는 종류가 다양한 곡물을, 시장 공터 노점에는 벌써 봄 옷을 진열해놓고 있었다. 주인과 손님이 물건을 흥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노점 포장 안쪽에는 알록달록한 아이들의 옷이 주렁주렁 내걸려 있었다. 정숙이 누나가 나를 데리고 간곳은 수령 몇 백년이 된다는 우람한 느티나무가 있는 근처의 빵집이었다. 마당 화덕 위에 장작불을 지펴 큰 가마솥에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돗수 높은 안경을 낀 할아버지가 솥뚜껑을 열자 왈칵 뜨거운 김이 솟구쳤다. 그런데 제미있는것은 주인 할아버지 였다. 할아버지는 대머리였는데 알이 땡그란 돋수 놓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마치 수수깡으로 만든 듯 날렵한 모양이었다. 정순이 누나는 안면이 있는지 인사를 건넸고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눈썹이 유난이 짙었다. 그 눈썹이 위로 치켜 올려지며 꿈틀거렸다. 할어버지는 나에게 가만히 말했다.
"이제 어리광만 부리다가 학교에 입학하였고나. 이제부터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이 해야 하느니라. " 그리고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주머니에서 쌈지돈을 꺼내 나의 손에 쥐어 주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정순이 누나를 홀낏 바라보자 누나는 한쪽 눈을 찡긋 떴다 감으며 눈짓으로 '바아보야 받아' 하였다. 나는 얼결에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할아버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한 접시 가득 담아 탁자위에 가져다 놓았다.
"원구야, 어서 먹어렴? 배 고프겠구나."
"누나도 같이..."
"그래 내 걱정 말고 어서 많이 먹어라. 뜨끈뜨끈 할때 먹어야 맛있어." 누나는 빵이 담긴 접시를 내 코 앞으로 밀어주었다. 냄새가 코 끝으로 풍겼다. 나는 설탕이 듬뿍 쳐진 빵을 두 손으로 움켜 쥐고 덥석 베어 물었다. 아, 그러자 팥과 버무려진 속의 새콤 달콤한 그 단맛은 금방 나를 사로잡았다. 달콤한 과즙과 같은 그맛은 꿀맛이었다. 나는 단숨에 먹어치웠다. 빵집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서 내려오다가 장터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어물전에서 정순이 누나는 이번엔 '고래고기'를 사주었다. 고래고기는 별미 였다. 바다에 고래가 가끔 잡히면 어물전에 드물게 생선 장수들이 노점에 진열 해 놓고 팔았다. 이웃집에 살던 '우식'이라는 아이가 고래 고기 먹어봤냐고 약을 올리던 생각이 났는 데 이제 그 궁금증이 풀린셈이었다. 시장을 벗어나자 마을로 내려가는 길 어귀에 깊은 소가 있었고 굵은 버드나무가 두 그루 기우뚱 서서 연한 잎새를 달고 축 늘어져 있었다. 그 가닥 가닥 나눠진 가지들은 바람에 가볍게 일렁거렸다. 정순이 누나가 걷다가 어딘가를 두런거리다가 말했다.
"원구야 저쪽 밭가에 고목나무 옆에 지어져 있는 것이 뭔지 아니?"
"글쎄..."
"도살장이란 곳이야. 지금 저기 밭가에 아저씨가 고삐를 잡고 소를 끌고 가고 있잖아. 지금 저 소는 죽으러 가는 길이란다."
"그럼 저 통나무 집 안에서 곧 죽는거네."
"그래. 소는 영물이라서 자기가 죽으러 가는 걸 이미 알고 있대. 그래서 그 큰 눈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고 가끔 걸음을 멈추고 허공에 대고 저렇게 크게 울부짓는거야."
그때 험상궂게 생긴 인부가 소의 고삐를 앞에 잡아 당기고 있었다. 뻗대던 소가 다시 크게 걸음을 주춤거렸다. 그리고 크게 주변이 떠나라가고 울부짖었다. 소가 있는 밭길이 끝나자 외나무 다리가 나타났고 그 다리를 건너자 신작로였다. 질펀한 들판에 새들이 연신 지저귀고 하늘엔 흰구름이 어딘가 흘러가고 있었고 밭 가로 일정한 간격으로 전봇대가 서 있고 전깃줄에는 재비들이 노닐고 있었다. 밭둑에 쑥을 캐는 아낙네 두 명이 허리를 굽혀 부지런히 호미질을 하고 있는게 보였다. 나는 뭔가 포만감에 젖어 있었다. 슬슬 졸음기가 몰려 왔다. 나는 정순이 누나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정순이 누나가 그때 생뚱맞게 말을 건넸다.
"원구야? 이제부터 학교 다니면 일찍 일어나야 돼. 그리고 과제물도 스스로 챙겨야 된단다. 이젠 네 스스로가 알아서 해야만 하는거야.알았지?"
그러자 나는 투덜거렸다.
"그래도 나는 잠이 유난히 많단 말이야."
"그렇다고 내가 일일이 깨워 줄수는 없잖아. 처음엔 좀 어렵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하면 차차 적응이 될꺼야."
"아, 알았어."
내가 대답을 하자 정순이 누나는 뭔가 골똘히 생각 하는 눈치더니 이번에는 뜬금없이 물었다. 그럴때의 표정이 좀 장난스럽기도 하고 바보스럽기도 하였다.
"원구야? 넌 엄마가 좋아 누나가 좋아? 바른데로 말 해봐."
"누우나."
"정말이야?"
"그럼."
"왜 누나가 좋은데 맛있는것 사줘서?"
나는 너무 솔직하게 속에 있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누나는 마음씨가 착하잖아. 엄마는 팥쥐 엄마처럼 자꾸 꾸짖기만 하고 야단만 친단 말이야. 그리고 엄마는 늘 집을 나가 있잖아. 난 그런 엄마가 정말 싫단 말이야!"
"그게 정말이야?"
"으응."
"그래도 너 오늘 당장 엄마가 와 봐라 좋아서 어쩔줄 몰라 할 거다. 내가 다 네 마음을 알고 있는걸."
"그래도 난 정순이 누나가 좋은걸."
"피이, 내가 왜 좋은데 이유를 말해봐. 어서?"
"그, 그냥."
"무슨 대답이 그렇게 싱겁니."
"헷헤헤, 누나가 예쁘니까. 그리고 착하고 선녀 같잖아."
"우와, 그것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후후."
정순이 누나는 나의 속이 보이는 아부성 발언에도 좋은지 입이 헤벌쭉 벌어져 있었다. 아마 듣고 싶어 했던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나이치고는 눈치도 있었고 이미 여느 아이들보다 조숙해 있었다. 나는 몸만 아이였지 이미 성인이었다. 때로 그런면이 나는 징글맞게 느껴 질때도 있었다. 노처녀 였던 정순이 누나가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고 때론 청소도 하고 이것 저것 허드렛일을 해주는 건 그만큼 시간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우리 엄마가 늘 나가 있는탓에 그 빈자리가 비어 있어 뭔가 채워 보려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서로간에 그 부분에 대해 묵계랄까, 그런게 암묵적으로 있었는지 엄마는 가타부타 그런 누나의 왕래에 대해서 애초부터 말이 없었다. 그저 상황만 있을 따름이었다. 아버지는 늘 말이 없었고 소처럼 그 큰 눈을 끔뻑이며 담배만 뻑뻑 피우셨다. 때론 수심에 가득 차 보였고 어느 땐 그 표정이 종잇장처럼 쓸쓸하기도 하였고 심란해 보이기도 하였다. 엄마는 운명적으로 타고난 무녀여서 그런지 내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늘 언저리에 존재 해 있었다. 그건 아무나 범접을 허용 하지 않겠다는 완강함이었다. 말하자면 귀기스러움 같은 것이었다. 뭔가 난해 하고 까다로움 같은 것이랄까. 그래서 나는 엄마 곁으로 쉬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포근하고 자애스러움보다 그런 차갑고 섬찟한 면이 있었다.
마을에는 매년 한 번씩 동네 성황당에서 굿을 벌였다. 굿은 마을 주민들의 평안과 건강을 도모 하고 어민들의 풍어를 기원하는 뜻이 있었다. 정월 대보름을 맞이 해 전 후를 기점으로 벌어져 사흘 내리닫이로 벌어지게 마련이었다. 성황당은 온통 환한 전깃불을 걸어 놓고 요란한 굿판이 벌였다. 그 곳에서 엄마는 여러명의 무녀들과 함께 오방색 쾌재자락을 펄럭이며 장군춤을 추는가 하면 항아리춤을 추었고 때론 시퍼런 작두 위에서 맨발로 징과 꽹가리와 장고 장단이 흐드러지는 가운데 겅중겅중 뛰었다. 그럴때 엄마의 표정은 몹시 무섭고 소름이 끼치기까지 하였다. 시퍼런 작두날에 금방이라도 어머니의 발바닥이 베일 듯 해 가슴을 졸이고 숫제 바지에다가 찔끔찔끔 오줌을 저리게 마련이었다. 사흘 내내 벌이던 굿의 마지막 날은 으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진을 치고 굿판을 벌였다. 긴 장대를 꼬나잡고 우뢰처럼 한바탕 장단이 바닷가를 휩쓸고 지나가면 천천히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데 그럴때면 그 마지막의 대미는 언제나 땅꼬마 인 엄마의 몫이었다. 유난이 키가 작은 엄마는 백사장에서 마지막 제를 올리고 한바탕 걸판지게 춤을 추고 나면 긴 장대를 꼬놔 잡고 주술을 외며 퍼렇게 일렁이는 바닷물속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처음에는 허리까지 바닷물이 찰랑거리다가 더 깊이 들어가면 이내 목까지 차올랐고 너풀거리는 물속으로 엄마의 모습은 금방 사라져버렸고 긴 장대 위 댓닢이 저 빙글빙글 맴을 돌며 저 혼자 움직였다.
그땐 모래사장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용왕님을 배알 하러 간거라고 수군거렸다. 용왕님이라면 별주부전에서 거북이 등에 업혀 뭍으로 나왔다가 토끼의 간을 먹고 살아난 그 설화의 주인공이 아니던가. 나는 문득 정순이 누나가 맨 처음 우리집에 들어오던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추운겨울이었고 목수인 인호아저씨가 매끈하게 깎아준 팽이를 마당에서 돌리며 놀고 있었다. 째찍으로 내리칠때 마다 팽이는 꼿꼿하게 몸체를 세우고 회전을 하였다. 그게 재미 있어 나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물을 쏱아 부은 마당 여기 저기에 얼음이 얼어 빙판처럼 미끄러웠다. 낮이 되자 날씨가 풀리면서 초가지붕 위에 얼었던 고드름이 마구 녹아 흘러 내렸다. 때문에 낙숫물이 처마에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지붕에서는 햇볕에 녹아 김이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그날 양지 바른 툇마루 한쪽에 앉아 엄마는 오방색 꽃종이로 이것 저젓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때론 날이 선 가위로 꽃종이를 자르며 뭘 만들고 있었다. 그것을 펴놓고 매만진다는것은 멀지 않아 엄마가 굿판으로 떠난다는것을 의미 하였다. 그럴때면 나는 괜히 심통을 부리곤 하였다. 바깥에 마음이 가 있는 그런 엄마가 몹시 싫었다. 흐드러진 장고 장단에 쾌재 자락을 펄렁이며 흰 버선발로 허공을 날뛰는 춤사위도 다 꼴보기 싫었다. 운명적으로 무녀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어머니의 삶을 나는 증오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게 늘 불만이었다. 제발 제발 집에만 있는 그런 엄마 였으면 하였다. 때문에 여느 아이들의 엄마가 나는 몹시 시샘이 나고 부러웠다. 그래서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 혼자 집에 터덜터덜 걸어 오면서 오늘은 굿판으로 떠난 엄마가 지금쯤 집에 왔을까 하는 것이 오로지 나의 그날 그날의 관심사였다. 아침에 분명히 마당께 키큰 미류나무에 까치가 깍깍, 우짓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행여나 오늘은 어쩌면 엄마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고 부풀어 있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어쩌나다가 마당가에 댓돌 위에 엄마의 하얀 고무신이 얹혀져 있진 않은 날이면, 그 허탈감과 허전함은 이루어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삽작에서 들어오며 댓돌에 정갈하게 엄마의 흰 고무신이 얹혀져 있는 것이 눈에 뛸양이면 나의 마음은 정전 속에 갑자기 켜진 전깃불처럼 마음이 온통 환해 졌다. 엄마는 집에 오면 하얀 슈미즈 차림으로 빗자루로 마당을 쓸거나 집 안팍을 청소 부터 하였다. 그동안 집을 떠나 있음으로 해서 벌어진 틈을 그렇게 해서 차차 매워 보려는 마음에서 였는 지 모른다.
내가 연방 채찍을 휘드르며 한참 팽이를 돌리느라 정신이 팔려 있을때 였다. 얼굴을 빨강색 마후라로 꽁꽁 동여 매고 눈만 빠끔이 내 놓은 젋은 여자가 주춤주춤거리며 마당에 들어섰다. 크지도 적지도 않은 중키 였다. 얼굴은 형태는 달걀모양 갸름 하였고 피부가 퍽이나 창백 하였다. 그게 정순이 누나였다. 전혀 못 보던 낯선 여자여서 나는 한참 동안 멀뚱멀뚱 거리며 마냥 바라보았다. 툇마루에 앉아 간혹 휘파람을 불며 일에 열중 하던 엄마가 뭔가 인기척을 느끼고 급기야 고갤 돌렸다. 알록달록한 꽃종이를 매만지며 작업을 하던 어머니와 여자는 잠시 몇 마디 얘기가 오고갔고 이내 옷칠이 된 밥상이 마루 위에 펼쳐졌다. 나는 그것이 점을 보기위한 수순 임을 잘 알고 있었다. 정순이 누나는 수돗가에서 손잡이를 잡고 펌퍼질을 하더니 놋그릇에 냉수를 담아 상위에 놓고 복채를 꺼내 놓았다. 시퍼런 배춧닢이 두어장 물그릇 옆에 놓여졌다. 정순이 누나는 마룻바닥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엄마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모습이 뭔가 기품이 있고 정갈하고 단아 해 보였다. 어머니는 주술을 불러 들이려는지 혼잣소리로 흥얼흥얼 거렸고 급기야 입에서 묘한 '휘파람' 소리를 냈고 손에서 쩔렁거리며 흔들던 엽전을 상위에 휙 내던졌다. 대여섯개의 엽전은 거칠게 소리를 내며 땍떼구르르 굴렀고 몇 개가 상위에서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엄마의 입에서 광기가 뒤섞인 거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윽고 뭔가 알수 없는 혼잣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깨를 개구리처럼 움츠렸다가 파들파들 떨었다. 정순이 누나는 큰 고함소리에 그 자리에 얼어붙듯 망부석처럼 꼼짝 않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왠지 죄인처럼 초라한 형색이 이었다. 뭔가 안절부절 해 보였다. 나는 뭔가 잘 이해를 할 수 없어 한참동안 몰래 그 모습을 오도카니 선체 훔쳐 보았다. 엄마와 정순이 누나 사이에는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이상한 기류가 한참 동안 형성이 되었고 정순이 누나가 급기야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소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나는 그 울음이 의미 하는 게 뭔지를 알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철이 없었다. 그 이후 정순이 누나는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건강이 안 좋아 타지에서 이곳 어촌 마을에 잠시 요양을 왔다고 하였다. 자세한 것은 집에서 얘기를 하지 않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 정순이 누나는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며 엄마를 '이모'라고 했고 아버지는 편의상 오빠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색한데로 나는 잊어버렸다. 내가 학교에 다니고 부터는 정순이 누나네 집에 더욱 자주 놀러 갔다. 큰 함석집의 주인 할머니는 혼자 살고 있었는 데 귀머거리에다가 눈에는 백태가 끼어 앞을 잘 못 보셨다. 마당에는늘 흐드리지게 꽃들이 다투어 피어 있었고 수돗가에는 물방울이 똑 똑, 떨어지는 미세한 소리가 늘 들리곤 하였다. 뒤란은 대밭과 붙어 있어 바람에 댓잎 스치는 소리가 서걱거렸다. 정순이 누나는 노오란 니스가 칠해진 방에서 무릅을 꿇고 정갈하게 앉아 연신 뜨게질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저리는지 종아리가 드러난 다리를 이리 저리 바꿔 앉곤 하였다. 나는 그저 그림처럼 조용히 앉아 뜨게질 하느라 여념이 없는 정순이 누나를 몰래 훔쳐 보는 악취미가 있었다.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빳빳하게 풀을 먹인 옥양목처럼 차갑고 선명한 늘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래서 때론 부드럽고 온화 하기보다 차가왔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눈망울은 늘 먼산 그 너머를 향하고 있는 듯 고즈넉 하였다. 유난이 얼굴의 윤곽이 선명했던 정순이 누나의 옆모습은 그래서 어딘가 폐허처럼 쓸쓸하기도 하고 적막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정순이 누나가 벽에다 외우라고 써놓았던 '구구단'이나 '국민교육헌장' 등을 암기 하느라 정작 정신이 없었다. 때론 나는 방바닥에 게으르게 누워 딱지와 구슬을 주머니에서 쩔렁거렸기도 하였다. 그때 정순이 누나가 뜨게질 하던 실뭉텅이를 나의 벌렁거리는 가슴에 가만히 대며 넌지시 말하였다.
"원구야. 내가 지금 뭘 뜨는지 알아?"
"글쎄......"
"보면 모르니.원구는 바아보."
"그럼 뭔데 누나아?"
"우리 원구가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털실로 쪼끼를 떠는 중이란다."
나는 괜히 즐거워서 힛히히, 웃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날 노느라 고단했던지 누워 있다가 그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낮잠속에서 실로 기이한 꿈을 꾸었다. 꿈은 너무도 생생 하였다. 아아, 눈 내린 벌판에서 사냥꾼의 총에 맞은 노루 새끼 한마리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어디론가 정처없이 달아나고 있었다. 노루가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핏자국이 눈밭에 아주 선명하였다. 소름이 쫘악 끼쳤다. 그런데 그날 내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나는 그 묘한 기척에 처음에는 눈을 뜨지 못하고 누운체 있었다. 귀는 열려 있었지만 나는 정작 가위에 눌린 듯 가만히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주변에 가느다란 흐느낌이 귓가에 잦아지고 있었다. 그 낙숫물 떨어지는 듯한 소리는 정순이 누나의 흐느낌 소리였다. 나는 차마 곤혹 스러워 눈을 떨 수가 없었다. 그냥 귓등으로 듣고만 있었다. 금방 꾼에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나는 어릿어릿 하였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정순이 누나는 참다가 더이상 견딜수 없어 터져 나온 일종의 속울음소리 였다. 정순이 누나는 문득 팔을 뻗어 나의 조그맣고 앙증스런 손을 가만이 움켜 쥐고 있었다. 따뜻한 체온이 금세 내 손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가만이 힘을 줘서 손을 움켜 쥐었다. 그런 일련의 행위가 나는 여전이 의문이었고 그렇다고 나는 부모님에게 단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뭔가(?) 말못할 비밀이 있다고 어렴풋이 추측 할 뿐이었다.
어느 날 방안에서 뜨게질을 하던 정순이 누나가 화장실을 갔을 때 나는 잽싸게 문갑을 열어 안에 있는 뭔가를 찾아 잽싸게 더듬었다. 언젠가 내가 방안에 들어올 때 내가 갑자기 나타나자 손에 쥐고 있던 것을 황망히 감추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이 나와 관련이 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호기심을 잠재울 수 없었다. 나중에 정순이 누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슬며시 문갑 안에 넣었다. 그리고 고리를 철사로 괘어 놓았던 것이다. 정순이 누나가 방을 비우자 나는 잽싸게 철사고리를 벗겨 내고 안을 더듬었는데 두툼한 책이 한권 나왔다. 그건 흔히 볼 수 있는 가정 백과 사전이었다. 그런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이상하다 하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러나 정작 내가 백과사전의 책장을 들출때 였다. 안에서 사진 한장이 팔랑거리며 떨어져 나왔다. 나는 그것을 뚫어져라 응시하였다. 정순이 누나와 아버지가 함께 서 있고 간난애기시절의 내가 정순이 누나의 품에 안겨 있는게 아닌가. 배냇옷을 걸치고 아래를 그냥 내놓은채 찍은 단 한장의 흙백사진은 틀림없이 나의 모습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얼굴 모습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양 나는 놀랍고 그리고 떨면서 얼른 사진을 책깔피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고리에 철사를 다시 괘어 놓았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정순이 누나가 바구니에 감홍시를 담아 들고 나타났다.
"원구야 입이 심심하지. 감홍시 갖고 왔다 먹어렴."
"웬감이야?"
"삭힌 거라서 맛있을꺼야. 모양이 아주 걀쭉 하다. 이쁘다. 홋호호."
정순이 누나는 볼우물이 패이는 특유의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아까 정순이 누나는 분명이 울었는 데 갑자기 웃으면 어디 어디에 털이 난다고 상상하며 키득거렸다. 집에 바쁜 농번기가 끝나자 아버지는 으례 그러하 듯 땔감을 하러 다녔다. 겨우살이를 준비 해야 아궁이에 불을 지펴 한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정순이 누나도 함께 동행 하게 되어 나도 그날은 따라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새벽 숫돌에다가 쓱삭 쓱삭 낫을 시퍼렇게 갈았고 리어카에다가 지게와 짐을 간단하게 싣고 산으로 향했다. 아주 먼산에 간다고 하여 나를 떼어 놓으려고 하였으나 나는 바락바락 고집을 부리며 따라갔다. 그날 정순이 누나는 처음으로 농부의 부인처럼 머릿수건을 두르고 몸빼 바지 차림이었다. 정순이 누나는 치마만 입는 편이라 나는 그날 처음 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고 혼자 킬킬 대었다. 아버지는 농구화에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수레를 끌고 갔는데 나는 그 수레를 타고 있었다. 산속을 깊이 들어갔을 때 한낮이 되어 있었다. 겹겹이 가파른 산봉우리들이 높이 치솟아 있었다. 가끔 장끼나 꿩이 푸드덕 거리며 날아올랐다. 나는 산 아래 공터에서 혼자 놀고 있었고 아버지와 정순이 누나는 낫을 챙겨 새끼줄을 말아 쥐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보고 절대 자리를 뜨지 말라고 당부 하였다. 위험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기다리기가 무료하고 심심해 끝내 당부를 거역하고 하이에나처럼 산 언저리를 어슬렁 거렸다. 인적이 없는 산속은 괴괴하고 고적 하였다. 솔바람 소리만이 쏴아쏴아, 들리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산속으로 발을 들여 놨다. 다복솔이 어거져 있었고 어디선가 다람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위로 오를수록 숲이 울창하고 컴컴하였다. 그런데 어느 묏등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뭔가 지즐대는 소리가 들렸기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한 새소리이거니 하였다. 그런데 분명이 그건 사람의 인기척이었다. 그것도 정순이 누나와 아버지 두 사람이었다. 정순이 누나는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채 가볍게 흐느끼며 울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런 정순이 누나의 등을 어루만지며 어쩔줄 몰라 하고 있었다. 연신 아버지는 당혹스런 빛을 감추지 못하며 정순이 누나의 등을 토닥거리고 있었다. 얼마전 나는 정숙이 누나의 집에서 본 나의 모습의 흑백 사진과 누나의 울음소리는 뭔가 연관이 필시 있을꺼란 생각이 불현듯 그때 들었었다. 그건 참으로 알수 없는 일이었다. 어른들의 세계에 나는 정작 복잡하고 혼란스워 하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아일뿐이었다. 한창 밝고 씩씩하게 뛰어 놀 악동에 불과 하였다. 하지만 그 후 나의 의혹은 눈덩이처럼 증폭 되어 갔다. 어둑한 새벽녘이었다. 나는 자다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깨어났다. 그러나 나는 일어날수가 없었다. 그런데 불을 꺼놓은채 아버지와 엄마는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다. 간간히 엄마의 흐느낌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일어날 생각조차 못하고 싸움을 그대로 엿듣고 있었다. 어머니는 전에 볼 수 없이 흥분해서 한껏 목청을 높여 나가고 있었다.
"그래 , 걔가 아이를 찾아 나타 나셨구먼요. 당신이 떠돌이 시절 만나 알게 됐던 걔가 정순이었단 말이시. 나원 참 속이 홱 뒤집어 지고 눈깔이 흰창이 다 나올라는 구먼요. 그렇다면 이제 와서 나보고 어쩌자구는 거이."
"여보오? 진정하시구려. 그게 말하자면 다아, 내 업보요. 내가 새삼 무슨 변명이 필요 하겠소."
"워쩜, 그렇게 두 사람이 감쪽같이 나를 속일 수가 있었수. 걔가 원구 생모라는 것을 왜 여태 숨겼는지 말좀 해보시우! 이 억장이 무너져 말이 안나온다 카이! 흑흑 ..."
"당신은 신의 딸이라 이미 알고 있었을 께 아니오?"
"어허, 신의 밥을 먹는다고 어찌 나의 일을 알까. 중이 제머리 못깎는 법...분명이 말해 두지만 걔 오늘부로 이 마을을 당장 떠나라고... 내가 그러더라구 꼭 전하우. 그렇지 않을 땐 칼부림이 날끼라고. 그래도 엄한 낳은 정 보다가 기른 정이 크다는걸 내가 확연히 깨닫게 해줄것이오만 ."
"걱정 할 것 없소 아마 원구 어매. 지금 쯤 떠낳을 꺼구만. 내가 단단이 일렀소. 다시는 이 마을에 두번 다시 발걸음질 하지 말라구 말이오. 그땐 내가 다릿몽둥이를 확 분질러 놓겠다고 ..." "허어, 그래도 발 달린 짐승이 어딜 못 갈까."
"정말 마지막으로 날 한 번만 더 믿으보라고 간청 하지 않소." 아버지는 숫제 어머니에게 무릅을 꿇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나는 왈칵 하는 격정을 끝내 못참고 그만 방문을 와락 열어 제끼고 맨발로 마당으로 총알처럼 튕겨져 나갔다. 마당에는 이미 눈이 강산처럼 하얗게 쌓여 있었다. 아니 온 세상이 눈천지였다. 나는 정순이 누나, 아니, 나의 어머니 집으로 내 달렸다. 뒤에서 원구야아! 하는 어머니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정순이 누나의 집은 방문이 열려진 체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골목길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내달렸다. 정순이 누나가 마당에서 부터 걸어나간 발자욱이 계속 골목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큰 소나무들이 빽빽한 동구 밖 솔밭에 다달았다. 솔밭은 다리목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눈물을 뿌리며 그 솔밭 길을 넘어지고 꺼꾸러지고 구르면서 소리치며 내달렸다. 먹이를 발견한 초원의 야생마처럼 말이다. 그러나 앞은 누군가의 발자국만 끝없이 찍혀 있었고 주변은 온통 사방은 눈,눈 천지 였다. 나는 너무도 아득해 그 자리에서 어머니! 어머니! 하고 손나팔을 하며 크게 외쳤다. 그러나 공허한 대답 대신 큰 왕소나무 위에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눈덩이가 송두리째 하르르 아래로 쏱아져 내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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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참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세상에...... 잘 읽었습니다 감사 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