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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11-13절 말씀까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11.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1절에는 두가지를 말씀합니다.
먼저는 성벽이 건축되는 날- 즉 성전의 회복을 말씀하고 있고요
두 번째는 성전 회복이 이루어지는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오는 때에 다시 성전 회복이 이루어지지만
그때의 성전의 회복은 불완전한 성전회복운동입니다.
진정한 성전 회복은 성전의 모든 것들은 다 예표라고 했습니다.
누구의 예표?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즉 예수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진정한 성전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 땅이 지경이 넓혀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2절은 나라가 망함으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옴을 말씀하고 있고요
또 다른 편에서는 이방나라의 사람들도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요
사방각지에서 돌아오게 됨을 말씀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즉 세상 모든 족속들에게 복음이 전파됨으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민족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13절은 땅이 화폐해진다는 것인데...무엇 떄문에 땅이 황폐해지느냐
13절이 이렇게 말씀합니다...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주민의 행위가 뭡니까? 복음을 듣고 복음으로 돌아오지 아니하는 자는
그들의 마음이 황폐하고 마음이 황폐하니 행위가 황폐한 행위에 빠질 수 밖에 없고요...
이런 사람들이 사는 땅도 황폐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찾아본 말씀이 에스겔11:19절 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오늘은 마지막 3단락으로 넘어갑니다.
3단락의 주제가 [죄악을 사유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8-19절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보시겠는데 먼저 이 말씀이 있게된 배경상식을 갖고 말씀을 보셔야 합니다.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느냐 하면
앞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성전 회복이 이루어지고
지경이 넓혀지게 되는데...그때에 하나님을 떠났던 인간들...버림받았단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데...그들이 돌아 올때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이 기본 지식을 갖고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18.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18절과 19절을 보시면 같은 뜻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18절- 죄악, 허물... 19절 - 죄악, 모든 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없는 인간...복음을 받지 못한 인간들의 상태를 말하면서
이랬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복음으로 돌아오게 되면...
돌아온 자에게 주시는 은혜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즉 돌아오면 그 모든 추악한 죄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18절..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죄악도 사유하시고 허물도 사유하신다는 겁니다.
2)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우리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우리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는 겁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오는 자는 그가 어떤 죄에 빠졌든지 간에...
그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조차 하시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앞에 나아와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우리 죄의 문제를 처리하신다는 것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몇군데 찾아보고...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시103:11-13
11.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사38:17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이사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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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저는 성도님들의 배려로 한 주간 휴가를 가졌습니다.
미가서를 한주간 쉬었기 때문에 좀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다시 말씀을 이어보고자 합니다....휴가전에...미가서 마지막 장 마지막 단락에 넘어왔더랬습니다.
3단락의 주제가 [죄악을 사유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중에 우리는 18-19절을 먼저 보았습니다..
18-19절의 말씀을 보면서 이 말씀이 있게된 배경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느냐 하면
앞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성전 회복이 이루어지고
지경이 넓혀지게 되는데...그 때에 하나님을 떠났던 인간들...버림받았단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데...그들이 돌아 올 때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말씀이 18,19절이라고 했습니다.
18.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18절과 19절을 보시면 같은 뜻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18절- 죄악, 허물... 19절 - 죄악, 모든 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없는 인간들이란 모든 죄악과 허물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겁니다.
이랬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복음으로 돌아오게 되면...
돌아온 자에게 주시는 은혜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즉 돌아오면 그 모든 추악한 죄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18절..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죄악도 사유하시고 허물도 사유하신다는 겁니다.
2)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우리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우리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는 겁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오는 자는 그가 어떤 죄에 빠졌든지 간에...
그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조차 하시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와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우리 죄의 문제를 처리하신다는 것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몇 군데 찾아보았는데....대표적인 말씀이 시103편 11절 이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회개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멀리 던지신다는 겁니다.
이제 14절을 보시겠습니다.
14절은 기도입니다....누구의 기도냐 ....선지자 미가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분류한 분들이 이미 제목을 기도와 찬양이라고 지정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4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4절에는 포인트가 되는 두 단어가 있는데
이 두 단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 주의 지팡이이고.....2) 주의 기업의 양 떼라고 했습니다.
양에게는 2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1) 양은 앞서가는 주인을 따라간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양들은 주인이 가면 주인을 따라갑니다.
물론 때때로 어리석어서 자기 마음대로 가는 양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가다가...길을 잃기도 하고 가시덤불에 쳐 박히기도 하고...낭떠러지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양을 찾아나서서 찾도록 찾기도 하고요
때로는 위험에 처한 양들을 목자가 구해주기도 합니다.
2) 양은 주인이 품에 안고 그 목에 칼을 찔러도 가만히 있는다는 겁니다.
그만큼 주인을 신뢰하고...주인에게 자기 생명까지도 바치는 양이라는 겁니다.
3) 이러한 양떼가...주의 기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의 기업의 양떼라고 합니다.
성경에 기업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기업이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을 말합니다.
이 기업을 성경은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1) 하나님이 주신 땅이 기업 2) 자손이 기업입니다.
민34장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13.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 반 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
14.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기업을 받을 것이며 므낫세의 반쪽도 기업을 받았음이니라
민수기 36:7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지파들 중에 유일하게 땅을 받지 못한 지파가 있습니다.....그 지파가 레위지파입니다.
여호수아 13: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2) 기업이 자녀를 나타냅니다.
룻3:12,13
12.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13.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기업은 크게 보면.... 1) 땅이요...2) 자녀입니다.
이 땅은 세상의 땅이 아닙니다...가나안 땅은 천국의 예표입니다.
성도가 진짜 소망하고 들어가서 차지해야 할 땅은 천국입니다...믿으시면 아멘?
우리가 진심으로 천국을 소망한다면...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답이 있습니다.
왜 세상에서 갈팡질팡 우왕좌왕합니까?
왜 믿음으로 사는 것 같다가 지극히 세속적이 됩니까?
그 이유가 우리의 기업이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라0
이 고백이 그냥 나온게 아니라...그는 자신 몸에 있는 가시를 위하여 세 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0
이때...그가 올라간 곳이 어딥니까? 셋째 하늘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본 이후로...그는 세상의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주를 위하여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것이 기쁨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궁극적인 결승점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라면...답이 나옵니다.
무슨 답...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갖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자녀가 기업입니다.
당연히 우리 육신의 자녀도 기업이 맞습니다.
그런데 성경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면 진짜 하나님앞에서 나의 기업은...복음으로 낳은 자녀입니다.
빌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살전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어제 새벽에 우리는 양떼는 주의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기업에 관계된 구절이 270회 정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업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 분류를 해보면
1) 땅을 말씀하고 있고요. 2) 자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은 어느 땅을 말씀하느냐...가나안 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지파를 따라 기업을 받게 되는데...
이 기업은 다른 지파로 변경할 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부득이하게 땅을 팔거나 사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희년이 되면 사람이나 땅이나 원 주인에게로 돌려주는 법이 희년 법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땅...기업을 잃어서 안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왜 이 기업을 잃어서 안되는 겁니까? 가나안 땅은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의 문제 때문에 잃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이 희년법입니다.
성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만해도 기쁘고 행복하고 감동이 되고 좋아야 합니다.
이 믿음의 자리에 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업은 자녀를 말씀합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당연히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신약으로 넘어오면...우리가 복음으로 낳은 자녀가 기업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앞에 섰을 때 자랑이요 기쁨이요 우리의 면류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어제까지 우리가 주의 기업의 양떼에 대해서 말씀을 살펴보았더랬습니다.
그렇다면 1) 주의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주의 지팡이는 양떼를 지키는 목자의 지팡이를 상징합니다.
다윗이 시23편에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지팡이는 어떻게 생겼고...막대기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지팡이는 목자들이 전형적으로 들고 다니는 지팡입니다.
손잡이 윗 부분이 갈쿠리 모양으로 이렇게(모양을 그림) 되어 있는게 지팡이입니다.
이 지팡이는 크게 두가로 사용되었습니다.
1) 양들을 잘 못된 곳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건질 때
위쪽의 갈구리 모양의 그것으로 양의 다리를 걸든지..아니면 목을 걸어서 당겨 올릴 때..사용됩니다.
즉 양들을 건짐에 사용되는게 지팡이이구요
2) 양들을 인도할 때에...지팡이로 딴 길로 가는 자들을 땅을 툭 툭 쳐서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가야할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하는게 지팡입니다.
반면에 막대기는 어떻습니까? 막대기는 회초리와는 좀 틀립니다. 더 굵고 맞으면 더 아픕니다.
이 막대기는 어디에 쓰였을까요?
1) 양들을 맹수에게서 지킬 때...사용되는게 막대기입니다.
맹수들을 지키시는데...회초리까지고 지키겠습니까? 안됩니다..
막대기라야 한방으로 맹수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2) 양들의 잘못을 바로 잡고자 할 때...막대기로 때릴 때가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살펴 보았습니다만...
남북 이스라엘 백성이 경고와 경고에도 딴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할 때에
막대기로 자기 백성을 치신다고 했습니다.
그 막대기가 북이스라엘에게는 앗수로요...남유다에게는 바벨론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막대리고 쳐서라도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질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을 깨닫고 돌아올 때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평안과 안식과 위로...즉 안위가 있다는 겁니다.
이걸 깨닫는다면 은혜중에 은혜입니다...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심을 깨닫는다면..이게 은혜0
14절을 다시 봅시다.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14절에 이스라엘 백성을 두 번 반복하여 거론합니다..
먼저는 주의 백성이라고 말씀하고...다음으로 주의 기업의 양떼...라고 합니다.
즉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지팡이가 되사...뭐하시라는 겁니까?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떼라고 합니다.
이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상태인가를 말씀하는 말씀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갈멜산 속에 홀로 거주하는 양떼 들과 같다는 겁니다.
이들을 어떻게 하시라는 것이냐? 양떼를 먹이시되... 끝절에 먹이시옵소서...라고 합니다.
아무도 도와줄이 없는 갈멜 산속에 버려진 양떼...
그들을 지팡이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도와줄이가 누구시냐? 그분이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그 산속에서 먹을 것을 주셔서 생명을 보존해주실 이가 누구시냐?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는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서 살지만...
우리를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아니하면 우리의 수고와 노력은 아무것도 아님을 잊어서 안됩니다.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전도서 5:19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4절...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여기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옛날과 같이....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라고 합니다.
여기 옛날과 같이 란 어느 시대를 말하는 걸까요? 여러 학설이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출애굽시키시고
광야 40년동안도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아니하였음에도 그들의 생존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에서 생수를 주셨고
마침내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옛날과 같이...먹여 주시되...어디서처럼 먹여달라는 것이냐하면
바산과 길르앗에서처럼 먹여 달라는 겁니다.
바산과 길르앗은 최고의 땅을 말할 때...바산과 길르앗이 등장합니다.
요단강 동편 북은 바산이요...남은 길르앗입니다...
이 들 땅은 농사를 지어도...심지어 목축하기에도 너무나 좋은 땅
창세기 말씀에 빌리면...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땅이 바산과 길르앗입니다.
그러니까 요단 동편에서 최고의 풍요를 보장하는 땅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만이 엣날과 같이...풍요로 자기 백성을 먹여줄 수 있는 자임을 믿고 구합니다.
이런 미가의 기도는... 미가 선지자가 얼마나 자기 백성...이스라엘 백성...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가를 보여주는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지켜주시기를 원하여 기도해야할 책임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0
그것에 민6장에 축복기도입니다...지키시기를, 은혜베푸시기를...평안 주시기를...기도해야함을 믿으0
15.이르시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 하셨느니라
15절에는 세가지의 인칭 대명사가 등장합니다.
1) 네가.... 2) 중반절 내가.... 3) 그들에게...
첫 번째 인칭 대명사는 미가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면
두 번째 인칭 대명사는 하나님이시오
세 번째 인칭 대명사는 오고오는 시대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인칭 대명사에 대한 구분이 되어졌다면...
또 하나 이해해야 하는 단어가 있는데...15절 끝절에 보시면 이적을 보이리라...라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어떻게 구원해내셨느냐? 이적으로 구원해 내셨다는 겁0
그 이적이 무엇입니까? 장자의 죽음입니다.
장자의 죽음이라는 이적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내시고
40년 광야동안 무엇으로 이적으로 지키시고
결국은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의 힘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적으로 은혜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이라는 사단의 세력에서 구원하심에서 시작하여
가나안 땅 입성까지가 이적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이 이적의 역사가 모세와 함께 했던 시대만 있는게 아니라...
그 이후로 오고오는 하나님 백성들에게도 이적을 보이시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고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이적...그 이적이 무엇입니까?
그 이적은...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대속죽으심이 이적이요...
죽음으로 끝났다면 헛된 죽음이었을 뿐이지만...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이적입니다.
이 놀라운 이적은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이적입니다.
이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결국은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 이적의 은혜를 받은 자요...그 놀라운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 신앙과 부활신앙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날마다 죽는 십자가 신앙은 가지고 있어서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신앙인
즉 매일같이 죽기만 죽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성도는 진짜 십자가 신앙을 가진게 아닙니다.
다시 살아야 합니다...부활신앙을 가져야 합니다...진짜 믿음은 부활신앙에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과거의 나는 죽고...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거듭난 성도... 부활체로 살아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6.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여러 나라가 보고...라고 합니다....무엇을 본다는 겁니까?
15절에...이적을 보이리라...이 이적을 말합니다. 이적을 여러나라가 보게 된다는 겁니다.
출애굽 시대로 돌아가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에 무슨 이적이 있었습니까?
장자의 죽음이라는 이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애굽 왕과 그 신하들과 백성들은 어떤 포즈를 취했을까요?
아마도 너무 놀란 포즈를 취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너무 놀랄 때...우리는 ....헉....하면서 입을 막습니다.
너무 놀라면 입만 막는게 아니라...귀에도 아무것도 안들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 놀라는 일을 당했을 때는 기막힌 일을 당했다고 하쟎아요...
당시에 그 장자의 죽음이라는 이적을 본 사람이 애굽 왕과 그 신하와 백성들만이 봤습니까?
아닙니다 애굽 땅에 사는 여러 이방인들까지 봤던 겁니다...
여러 이방인들이 봤다는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이방인들...
이전 성경에서는 출12:38절에 중다한 잡족들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지금 개역개정에서는 수많은 잡족이라고 했습니다....중다한 잡족이나 수많은 잡족이나...
우리는 같은 말이라고 본다면...이 수 많은 잡족이란...같은 동일민족이 아닌...각각 다른 민족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여러나라가 보고...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나라가 장자의 죽음을 보고 뭐한다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한다는 겁니다.
자기의 세력이 뭡니까? 간단히 말하면 자기 편...
이것을 영적으로 말하면....자기들이 믿는 믿음...우상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장자의 이적을 보고...
우상을 섬기는 믿음을 가졌던 자기들을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장자의 이적을 보았을 때..너무나 기막힌 사건이라 입도 다물어지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이
놀라고 또 놀랐는데...어떻게 자기들이 참 신인줄 알고 믿었던 그 믿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중다한 잡족들이 따라 나온 겁니다.
출12:37,38
37.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38.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그렇다면 이 중다한 잡족들이 따라 나왔다면...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이 잡족들이 언제 애굽에 들어왔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그때가 애굽과 온 땅에 내렸던 7년 풍년과 7년 흉년 때에 들어온 것입니다.
어떻게 들어왔다...양식을 사러 왔다가...7년 흉년이라면
양식을 사야 하는게 한 두 번으로 끝날 수 있습니까?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 이 수많은 잡족...즉 여러나라 사람들이 애굽에 정착하게 된 겁니다.
이 중다한 잡족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애굽으로 왔다가...
이들은 영적으로 다시 살게 된 잡족들...이것을 좋게 말하면 여러나라....
더 좋게 말하면 열방들이 되는 겁니다...오늘 여기에 여러나라라고 번역된 단어가...
이전 성경에서는 열방들이라고 번역되었다가 재 번역된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하여 애굽으로 왔지만...장자의 죽음이라는 이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함께 따라 나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그게 은혜중에 은혜0
우리도 먹고 살기 위하여 교회를 나왔던 때가 있습니다.
교회오면 과자도 주고 빵도 주고 옷도 준다고 하니까..교회 나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교회 오면 병이 낫는다고 하니까...때로는 귀신이 떠나간다고하니까...
소원성취한다고 하니까...이런 저런 여러 사연과 문제가 있어서 교회 나왔지만...
그런데 그것 때문에 교회를 나왔다고 할지라도 예수를 믿었다면
그것을 통해서 나를 부르신이가 하나님임이심을 믿고
그것이 은혜중에 은혜임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7.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여러 나라들....이방이들이 이전에는 어떤 존재였고...
이적을 보고 하나님 앞에 나온 이후의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하는 구절이 17절입니다.
전반절는 하나님앞에 나오기 전....그 이전에 그들의 존재됨을 나타낸다면...
후반절 하나님앞에 나아온 그들의 존재됨을 나타내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앞에 나오기 전 그들은 어떤 존재였다는 겁니까?
뱀같은 존재였다....또 하나는 땅에 기는 벌레같은 존재였다는 겁니다.
뱀이야 더 설명하지 아니해도 이해하시겠지만...
뱀같은 존재라는 것은 타락하여 사단의 휘하에 있었던 존재였다는 겁니다.
땅에 기는 벌레 같은 존재...무가치한 존재라는 겁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이 구절과 너무나 동일한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내맘대로 고집하면 온갖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죄인이 용서받을수 있나요...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내맘대로 고집하며 온갖죄를 저질렀네...뱀같이 사는 거지요
벌레만도 못한내가 용서받을 수있나요...너무 똑같지 않습니까?
뱀같이 살고 벌레 같이 살던 우리가....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면...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로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은혜가 너무 크고 놀라워...두려워 하는 겁니다.
성도는 그 은혜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대속 죽음을 죽어셔야 했을 만큼 나는 죄인중에 괴수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앞에 두려움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무슨 두려움...이런 은혜를 받았는데...혹시라도 잘못된 길로 가지 아니할까?
또 다시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할까? 또 넘어지지 아니할까? 또 내고집대로 살지 아니할까?
이 두려움...이 두려움을 있어야 참 믿음의 사람이 되어진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제 새벽에 우리는 17절 말씀을 나누었더랬습니다.
17절 말씀에 이방인이나 오늘날 성도가 하나님앞으로 돌아오기 전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가를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뱀같고 벌레 같았던 존재라는 겁니다.
뱀처럼 땅을 핥았던 존재...벌레처럼 좁은 구멍 갇혀서 살던 존재라는 겁니다.
땅을 핥는다...땅에 것에 목숨을 거는 존재라는 것이...
좁은 구멍에 갇힌 존재라는 것은 더 넓은 세계...더 높은 곳을 보짐 못하였던 존재라는 겁니다.
그렇게 살았던 우리들이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되고 새 생명을 얻게 됨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그렇게 하나님앞으로 나와 새 생명을 얻게 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나타나는 증거가 무엇이냐? 그것이 두려움이라는 겁니다.
이 두려움은 죄에 대한 두려움...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나의죄 모두지신주님 십자가모진 그고통을 묵묵히참고 당하셨네 그은혜어찌 보답할까
흉악한 죄는내가짓고 고통은주가 당했으니 나어찌감히 고개들고 주얼굴뵐수 있으리까
눈물로 주께아룁니다 그피로이몸 사셨으니 충성된종이 되게하사 주위해살게 하옵소서
흉악한 죄는내가짓고 고통은주가 당했으니 나어찌감히 고개들고 주얼굴뵐수있으리까.
아 찬송 한절 한절에 죄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있는거 아닙니까?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의 문제점이 뭐냐?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겁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윤리적인 죄만 죄가 아닙니다.
신학적인 죄가 진짜 죄입니다...신학적인 죄가 뭡니까? 말씀을 따라 살지 아니함입니다....
윤리적인 죄도 죄지만...말씀을 벗어난 삶...이게 더 큰 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이 되어야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 수 있느냐....하나님앞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앞에 사는 세상사람들이야 사람만 안보면 무슨 짓을 해도 문제가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그때도 하나님은 보신다는 것을 잊어서 안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앞에 사는 자라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하루 하루를 허투루 살아서 안된다고 했습니다.
3실이 있는 날들로 살아야 합니다.... 진실로...성실로..신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진실-거짓이 없이 참됨 / 성실-정성스럽고 참됨 / 신실-믿음직하고 참됨
진실은 거짓 없는 하루....성실은 최선을 다하는 하루....신실은 믿음으로 사는 하루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14-17절까지에 나타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 이방인...오늘날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기도라면....
18-20절까지는 그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찬양하는 감사 찬양입니다.
18.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이 말씀은 출15:11에 있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5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을 높여 찬양한 찬양입니다.
출15장에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찬양하는데...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천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니까...이런 이런 신....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겁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만나야 하고 삶속에서 체험하고 함께하심을 누려야 합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함께하심이 체험되어지면 놀라운 은혜가 우리 안에 임하고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나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을 손 꼽아 본다면...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라고
찬양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니엘과 세친구들이나...아브라함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일하심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즉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그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앞에 나와서 회개한 자들은
그들의 죄를 사유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세밀히 표현한 말씀이 눅15장에 집나간 탕자사건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아들은 착실한 아들이 아니라....허랑 방탕한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자기 것인양 자기의 분깃을 내놓으라고 아버지를 협박합니다.
방탕한 아들이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하면 줄 부모 있을까요? 없습니다..그런데 줍니다.
왜 줬을까요? 나는 아마도 아들이 재산 안주면 오늘날로 말하면 떨어져 죽겠다든지..
그게 아니면 약먹고 죽겠다고 협박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한 아들을 잃을 지경이니
아들을 잃는 것보다는 재산을 잃는게 낫다는 생각에서 방탕한 아들에게 재산을 줬다고 봅니다.
주니까 몇 년이 못되어...그 재산을 흥청만청 다 써버리고 끝나 버렸습니다.
굶이 죽을 지경이 되어..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라도 먹고 생명이라도 살아보고자 하지만
그것조차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그때서야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 집을 생각하니...내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도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서...아들이라 하지 말고 종으로라도 살자...그래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네 죄를 네가 알렸다...그러니까 종으로 살아라...그랬습니까?
아닙니다...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리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간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아들을 목욕시켜라...
옷을 입혀라 신발을 신겨라...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그리고 동네 모든 사람들을 불러.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벌였다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뭐라고 표현하느냐 하면..
19.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회개하고 돌아온 자기 백성...아들의 죄는 ..기억조차 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우리가 하나님앞으로 돌아와 죄를 회개하였다면...
하나님은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애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인애가 뭡니까? 사랑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오..우리가 사랑하지 아니하면...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요일4:7,8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20.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20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허물을 사유하시고 사랑하시는가를
설명하는 내용이 20절입니다...옛적에 조상들에게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맹세가 있다는 겁니다.
그 맹세란게 뭡니까? 언약입니다...언약의 대표자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을 이어 받은 사람이 이삭이고..야곱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종종 이렇게 말씀합니다...아브람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때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렇게 누구누구의 하나님이라고 하심은 이들에게 하나님이 언약하신 대표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족장들이 받은 언약의 수여자들입니다.
그 언약의 수여자들이기에 그들이 죄악과 허물가운데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그 언약 때문에 그들의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아니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심에 성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신다고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야곱이 야곱된 것이요
아브라함에게는 인애를 베푸신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인애가 뭡니까? 어질인 사랑애...어진 마음, 즉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함이 인애입니다.
아브라함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이 사랑함으로서 아브라함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성도됨의 과정을 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있게 됨은...
1)야곱 같은 우리를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신 하나님의 은혜요
2)아브라함에게 하셨듯이 우리에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하신 그 사랑에 의하여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점점 성숙해져 가는 성도가 되어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스라엘 백성됨...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됨...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하나님의 백성됨...다...하나님의 성실과 인애임을 믿으시고..
오늘도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성실히 일하시고...인애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복된 하루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