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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한비야의 열혈 팬 봄산, 드디어 그의 흉내를 내며 늦바람 여행을 떠나다.
기 간: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16박 17일
7월 26일 강남터미널 3:20분 해남 행 고속버스 - 8월 11일 4:50분 임진각 발 문산 행 시내버스
준비물: 기능성 반팔 티 1, 저녁에 잘 때 입을 티 1, 반바지 2, 저녁에 입을 간편한 바지 1,
양말 1, 수건 1, 손수건 1, 속옷(?) 4, 칫솔 칫솔, 침 뜸통, 작은 책 2...
가지 않고 후회하기 보다 걸어보고 나서 후회하겠다며 드디어 길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허리가 좋지 않는데 어떻게 할거냐고, 날마다 35km가 넘는 길을 걷는다면서 그게 가능하기냐 하겠냐며....
그럴때마다 나는 사람들에게 대답했다.
"저, 진짜 걸어보고 싶었거든요. 한 이틀 걸어보면 걸을 수 있을지 아님 포기할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가지 않고 후회하기 보다는 걷다가 왜 이짓을 했지 하며 후회하는 것이 낫겄네요. 한번 걸어 볼라요."
7월 27일 이른 아침 6시 30분, 해남 버스터미널에서 땅끝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한가했다. 30분 여를 달려 땅끝에 도착해서 곧바로 땅끝모텔에 있는 인도행 팀들과 합류했다.
7시 30분, 드디어 땅끝을 출발했다. 출발한 지 채 10여 분이 지나서 반대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다른 도보여행 팀들을 만났다. 서로가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송호리, 산정, 어란, 화산을 지나 계속 걸어갔다.
지천에 노란 꽃이 피어있다. 멀리서 보니 굉장히 아름다운 꽃밭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호박꽃이다. 밭에 호박을 가득 심어서 꽃밭을 이루어놓니 이 또한 장관이다.
50분 걷고 20분 쉬기를 반복했더니 어느새 점심식사 시간이다.
점심은 화산의 만호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먹었다. 식사 후 교회 안에서 달콤한 낮잠시간을 즐겼다.
2시부터 오후 걷기가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풀을 뽑는 할머니들, 농약을 치는 할아버지들이 보인다. 옹기종기 모여 풀을 뽑던 할머니들이 말을 보낸다.
“아따, 더운데 고생많소!”
“어데까지 가요?”
경운기, 오토바이, 트럭, 승용차를 타고 가는 모든 사람들이 신기한지 아님 익숙한지 손을 흔들어 주며 인사를 건넨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어느새 율동 길손민박에 도착했다. 으악, 길손민박은 오래전에 민박을 접은 간판만 민박집이었다. 좁고 낡은 시설에 이불도 샤워시설도 거의 마을회관 수준이었다. 조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방을 이리저리 옮기며 운영자 측과 신경전을 벌였다. 2인실 방에 무려 5-6명이 들어가서 자란다.
몸이 고단해서였는지 방이 좁고 샤워시설이 엉망이었어도 잘들 잔다. 나도 물론! 우리 방은 조금 큰 방이어서 열한명이 잤다.
이튿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누군가의 핸드폰에서 모닝콜 소리가 들렸다. 다들 주섬주섬 챙기며 일어난다. 샤워시설이 열악하다보니 차례로 들어가서 씻어야 했다. 서로 배려하면서 서둘러 씻었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먹고 하모니카 님의 안내로 스트레칭을 한 후 출발했다. 화산 고천암 방파제 위를 걸어서 출발했다. 이틀 째 되는 날인데 선두 조와 후미 조의 차이가 멀어졌다. 카미노 님이 득달같이 소리를 질러댔다. 오전 걷기가 단축되었다. 황산실고로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오전에 선두와 후미 조의 차이로 인해서 걷기가 조금 단축되었던 탓으로 인해 오후에 걷는 시간이 늘어났다. 더구나 오늘 걸을 거리는 38km. 점심식사 후 비가 오시기 시작했다. 다들 비옷을 챙겨 입고 걸었다. 계속 빗발이 굵어진다. 걸으면서 보니 황산면이 참 넓다. 2년 전엔가 우황리 공룡 박물관을 한번 다녀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몰랐는데 한나절을 걸어도 황산면이 이어진다. 오후 내내 비를 맞으면서 걷는 길이 편하지가 않다. 계속해서 후미 조의 사람들을 차로 실어 나른다.
나? 역시 수도 없이 갈등을 느꼈다.
‘읔, 힘들다. 도대체 점심 식사 후 빗속에서 20km를 걷는다니, 이건 말도 안돼....’
‘다음 번 차가 오면 그때는 실려가야지...’ 몇 번씩 차에 실려 떠나는 것을 생각하며 걸었다
‘그래 오늘만 걷는 거다’를 주문처럼 외우며 걸었다. 저녁 8시가 넘어서 목포 영산강 하구언을 지나 모텔에 도착했다. 물에 빠진 생쥐가 이런 꼴일까?
방에 들어가니 이미 룸메이트들이 들어와 있다. 날마다 한 두명이 룸메이트들이 바뀐다. 인사를 나누고 먼저 씻었다. 환희님이 배가 아프다고 누워 있었다. 침을 놔 주었다. 그리고 나도 뜸을 떳다.
‘과연 내일 일어나서 걸을 수 있을까?’
여전히 남도 지방의 인심은 후하다. 아, 목포의 민어낙지무침회를 다시 먹고 싶다.
아침이다. 어젯밤에는 거의 인사불성이었는데 거뜬하다. 이 비결은? 내가 혹시 파워 레인저?
아침 출발시간보다 5분 여 늦게 출발했다. 까미노 님의 까칠한 소리를 또 들어야만 했다. 매일 반복되지만 영 적응이 안된다.
영산강 제방을 넘어서 목포시에 들어섰다. 아침부터 강행군이다. 주위에 내가 좋아하는 무화과 노점이 참 많다. 하우스 재배용이란다. 언제부턴가 제철용 과일이 거의 없다. 무화과까지 하우스 재배를 한다니 나중에는 감, 사과까지 하우스 재배용이 등장하겠다.
11시 쯤 카페 회원이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응원방문을 왔다.
‘아~~ 맛있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다.’
이제 한 시간만 걸으면 휴식이다. 점심을 먹으로 가는 한 시간, 하루 걷기를 마치는 마지막 한 시간은 유난히 길다. 딱 한 시간을 채워서 전남예술고에 도착했다. 밥이 나오지 않는다. 카페 회원이 맛있는 반찬을 해온다고 기다리란다.
‘그래, 맛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린다. 기다려서 먹자.’
진짜로 맛있는 것을 먹었다. 목포의 맛인 민어와 낙지를 섞어서 만든 민어낙지회와 게를 갈아서 만든 게장을 먹었다. 회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참 맛있게 먹었다. 민어회보다도 더 맛있는 것은 50인분의 특별요리를 해온 카페회원의 정성과 착한 마음이었다.
낮밥을 먹은 후 휴식시간에 다리에 침을 꽂고 누웠다. 오른쪽 다리 상거허 자리가 많이 아프다. 침을 뺀 후 30분 동안 휴식을 취했다.
목포에서 무안으로 가는 국도 길은 유난히 차가 많다. 차가 생생 달리다보니 사람들이 많지 않다. 가끔은 자전거 여행자들의 씩씩한 페달소리를 만나게 된다. 서로가 화이팅~~을 외친다. 무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목포대 앞에서 청계제일교회를 보았다. 할머니 몇 분이 모여서 이야기를 걷넨다.
“와따, 징하게 고생허요”
서로들 반갑게 참견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무안 6km 팻말을 두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마지막 6km가 오늘 종일 걸은 거리보다 멀게 늦겨졌다.
터미널 근처 대림장에서 묶었다. 우리 방에 또 새로운 룸메이트들이 들어왔다. 정도령 님과 장녹수 님이다. 정도령 님이 어제부터 몸살 중이라고 했다. 구당침을 놓아주었다. 뜸은 상처가 나서 싫단다. 한 시간 후, 기분이 좋다고 해서 나도 덩달아....
유침 후 내 몸에 뜸을 떴다. 오늘은 특별히 발바닥 아시혈에!
3일째 열심히 걸었다. 오늘도 여전히 35km를 걸었다.
함평 엄다면의 지방도로는 최고로 아름다운 길이었다.
30일 아침이다.
무안에서 함평으로 들어가는 지방도로 길이 지금껏 걸었던 길 중에서 최고로 이쁜 길이다. 함평 엄다면으로 이어지는 길이 얼마나 이쁜지 자꾸 눈을 돌려 길을 구경하게 된다. 조금 가다보니 백로, 왜가리 서식지가 있었다. 산 전체가 백로와 왜가리로 하얗다.
3일간의 무리한 걷기로 인해서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전략을 짰다. ‘출발은 선두 조와 함께 도착은 후미 조와 함께!’
이제부터 내가 걸을 페이스다.
무리하게 선두 조와 걷지 않으니 마음도 몸도 편하다.
구름도 가고 나도 간다. 어차피 혼자 떠나는 길이지 않는가! 떠나는 길 위에서 만나게 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떠나자...
주포 주유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주포를 지나 영광으로 들어가는 길에 함평고 학생들이 함성을 지르며 환영해 준다. 대학입시를 앞둔, 방학도 없는 이들에게 우리의 도보여행은 자유, 그 자체로 보이지 않을까^^
날씨가 너무 더웠다. 덕분에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었던 내 다리와 팔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되었다. 읔, 햇볕 알레르기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저녁에 숙소에 도착 하자마자 냉찜질과 뜸을 떴다. 왼쪽 둘째 발가락에 작은 물집이 보였다. 뜸으로 태웠다. 간단히ㅋㅋㅋ
침과 뜸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었다. 허리도 아프고 물집도 생겼고... 꾸물럭 거리는데 룸메이트들이 일어나서 짐을 챙긴다. 아침부터 뼈다귀 해장국을 먹었다. 일어날 때와는 달리 출발이 상쾌하다. 허리도 ok. 어제처럼 출발은 선두 조, 도착은 꼴지로 걸었다. 오늘 걸을 거리는 좀 짧아서 30km. 영광을 떠나서 고창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23번 국도를 계속해서 걸었다. 아, 지루하고 재미없는 길이다. 그늘 한 점 구경할 수 없을 정도다. 선두 조와 꼴지 조가 거의 2km 정도, 30여 분 거리다... 모두가 쳐진다. 점심식사 장소인 매산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미역오이냉채에 맛있게 먹었다. 오늘 저녁부터 내일 점심까지 식사당번이다. 시장 보러 가는 일 때문에 서로 티격태격, 걷고 싶은데 두 시간 먼저 빠져서 시장보고 저녁준비를 해야 한단다.
‘어쩔 수 없지 뭐, 나도 그동안 공짜로 밥 먹었는데...’
식사당번을 하는 내내 저녁식사와 다음 날 아침식사 그리고 점심식사를 책임져야 했다. 걱정할 것 없이 간단한 요리로 사람들을 쉽게 실망시켰다. 오늘 날씨는 장난이 아니다. 점심을 먹은 줄포성당은 신부님께서 직접 오셔서 격려를 해 주셨다. 힘이 넘치는 비타 500을 선물로 주셨다.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두 번씩이나 먹었다. 저녁에 부안에 도착해서 거의 인사불성으로 쓰러져 잤다. 더위 때문에 환자들이 많이 발생했다. 해비 님은 응급실 치료를 받았고, 세레나 님은 건초염이라고 걷지 말라고 했단다..
부안은 중소도시다. 주변의 상가가 요란한 곳에서 잠을 잤다. 러빙유 모텔은 외관이 무척 화려해 보였다. 그렇지만 취사 시설은 너무 열악했다. 7조가 식사준비로 많은 고생을 했다. 덕분에 2일 아침 20여 분 늦게 출발했다. 여전히 23번 국도를 따라서 걸었다. 유난히 자전거 여행자들이 많이 보인다. 세 번째 휴식처에서 미쓰 리 님이 종아리에 쥐가 나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급하게 승산과 곤륜 위중 등에 침을 꽂아 줬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구당 선생님은 쥐가 날때 승산자리에 침 한방만 꽂아도 된다고 하셨는데, 이상하다!
점심식사후 부안 문화회관 옆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후 시간에는 부안을 지나 김제로 들어섰다. 두 번째 쉼터에서 복숭아 파티가 벌어졌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걷다가 드디어 내 발바닥에도 문제가 생겼다. 용천 옆으로 발 안쪽 부근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다. 맨 꼴찌다. 중기와 비비파스 님이 나를 챙긴다. 한발자국도 뗄 수가 없을 정도다. 어쩔 수 없이 차에 실렸다. 목적지 한 시간을 눈 앞에 두고서....
오늘은 37km를 걸었다. 물론 나는 5km 이상을 빼 먹었다.
한 눈을 팔고 걷다보면 많은 경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밤 발바닥 통증으로 걸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짐을 챙겼다. 날마다 짐을 챙겨 떠나는 유목민의 생활이 그리 싫지가 않다.
익산의 거리는 참 깨끗하다. 더구나 원불교와 관련된 것들이 참 많다. 원불교 교당, 본산, 대학교 등등....
거리가 깨끗하고 조용하다. 해남, 무안, 함평 등 남도 지역에서 많이 보이던 가로수는 배롱나무였다. 진한 꽃분홍 색의 꽃과 연한 연분홍 색의 꽃들이 길가는 나그네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는데 익산도 거리거리마다 배롱나무 천지다. 햇살이 없어서 걷기에는 아주 좋다. 여전히 발바닥이 아팠지만 조심조심 걸었다. 가는 길에 유난히 이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함열성당이다. 들어가서 잠시 구경을 했다. 길게 구경할 시간이 없다. 그만큼 쳐지니까!
점심은 석매교회에서 먹었다. 응원팀들이 수박과 맥주를 가지고 찾아왔다. 오후에는 발바닥에서 왼쪽 엄지발가락 쪽으로 통증이 늘어났다. 라온하제 님과 별마루 님이 말벗이 되어 주며 함께 후미에서 걸어 주었다. 늦게 강경에 도착했다.
강경은 젖깔로 유명한 도시답게 온 거리가 젖깔집이다. 덕분에 저녁식사에는 명란젖과 조개젖, 창란젖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강경에서의 숙소였던 충남파크랜드는 깨끗하고 좋았다. 오랜만에 공중전화를 발견해서 목사님과 시골에 계시는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참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강경에서의 좋은 기억 중 또 하나, 논산에서 강경으로 넘어가는 성동면 시골 길에서 아침 이른 시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옆에 있는 수원갈비집 화장실을 이용했다. 수원갈비집 사장님과 사모님의 친절한 서비스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고생한다며 냉장고에서 시원한 수박을 꺼내 썰어 주시고 숫자대로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누어 주셨다. 여기까지가 시골 인심이었다. 내가 경험한!
오늘은 날씨가 무척 더웠다. 두 번째 휴식처에서 하모니카 님의 멋진 하모니카 연주 실력과 노래가 더위와 피로에 지친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발바닥 때문에 무척 조심스럽게 걸었는데, 아직까지는 걸을 만 했다. 드디어 부여에 도착했다. 저녁은 통영에서 얼려서 가져온 멍게 비빔밥을 먹었다. 준혁이 아빠가 직접 가져 오셨다.
하얀박꽃 하나에도 가슴이 환해진다
부여에서는 사비장에서 하루를 묶었다. 부여와 공주를 잇는 백제 큰길은 5분에 한대 꼴로 차량운행이 뜸했다. 이렇게 곳곳을 길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용하는 차량들이 적다니 도대체 행복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낭비라고 해야할까...
부여에서 공주로 넘어가는 길은 백제 큰길에 이어서 지방도 651번이 연결되었다. 더구나 지방도 651번은 금강을 끼고 도는 길이라서 아주 아름다운 길이었다. 햇살은 조금 따가왔지만 강바람이 솔솔 불어와 노래까지 절로 나왔다. 점심식사는 대학 2리 마을회관에서 먹었다. 식사 후 회관 뒤 숲속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번 여행 중 최고의 휴식처였다.
공주 백제 체육관 옆 크리스탈 모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면서 살펴보니 모텔의 나무 벽에 하얀 박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고추와 방울토마토도 달려 있었다. 하얀 박꽃이 하루를 시작하는 내게 다가와 힘이 되어 주었다.
역시 아침부터 좋은 기분이 이어진다. 점심을 먹으로 교회에 들어서니 교회 옆에 있는 산 위에 너무도 선명한 원형 무지개가 떴다. 언젠가 백두산 천지에서 원형무지개를 본 적이 있더랬는데 그것보다 훨씬 크고 선명하다. 사람들에게 원형 무지개가 떴다고 구경하라며 이야기 했더니만 모두들 구경하고 탄성을 지른다. 작은 것 하나에도 감동하고 기뻐하는 단순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공주에서 전의 가는 길은 참 멀었다. 더구나 점심 식사 후 출발부터 내린 비가 숙소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오늘은 각자가 개별 행동이다. 비가 오시고 갈길이 멀다보니까 같이 움직이는게 쉽지 않다. 솔낭구 님이 화가 많이 났다. 온 몸에 비를 몽땅 맞고 나서 솔낭구 님께 이야기했다.
“와, 오늘은 아이스크림 안 줍니꺼?....”
오늘의 최고 히트작이라며 다들 웃는다.
저녁시간이 되면 온 몸이 파김치처럼 힘이 빠지지만 그래도 또 행복하다. 오늘 하루 걷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전의에서 성환, 천안으로 가는 길은 1번 국도를 따라 쭉 걸어갔다. 길이 있으니까 걷는 거고 걷다보면 또 하루 해가 저물곤 한다.
한신대 교문 앞 제일복사 집 주인 봉애씨, 여전히 한신대를 지키며 살고 있다
천안을 거쳐 평택으로 그리고 평택을 거쳐 병점을 통해 한신대 입구에 있는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짐을 풀지도 않고 땀내 나는 몰골로 학교 앞 건물들을 살폈다. 혹시 현숙이 언니네 미용실이 아직까지 있는지, 봉애씨네 복사집이 있는지... 아쉽게도 현숙이 언니네 미용실은 없었고 봉애씨네 복사집은 있었다. 봉애씨는 무지 외반증으로 발바닥을 수술했다면서 불편한 발바닥으로 걸으면서 무척 반겨주었다.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만날 때는 한결같다. 서로가.
찜질방은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 샤워하는 소리 등등 별로 편안한 밤을 보낼 수가 없었다. 인덕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모텔은 휴식을 취하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덕원 성당의 착한 신부님의 넉넉한 웃음이 다만 우리를 편하게 해 주셨다.
시청앞에서, 다시 임진각으로!!!
드디어 서울시청을 향하는 날이다. 인덕원을 거쳐 사당동, 방배동, 동작대교를 지나 용산 가족공원 입구에서 주먹밥을 먹었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싸온 씻은 묵은지 주먹밥은 내게 참 맛있는 밥이었다. 이번 여행 동안 나는 집에서보다 훨씬 더 잘먹었다. 먹은 걸로 생각해보자면 집보다 유목민의 생활이 더 좋지 않을까?
시청 앞에는 많은 이들의 친구와 가족들이 나왔다. 꽃다발을 준비해 온 이들, 플랭카드를 만들어 온 이들... 참 다양하다.
시청에서 서로가 고생했다며 축하의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가 즐거워하고 축하하는 시간 나와 세레나 님을 비롯해서 다섯 명이 임진각으로 향했다. 임진각까지 가는 길은 서울 도심을 통해서 1번 국도로 향하는 길이었다. 3호선 지하철 길을 따라 구파발까지 거의 쉬지 않고 걸었다. 저녁 늦게 삼송리에 있는 작은 여관에 들렸다. 늦게 알군과 별마루 님이 합세했다. 다음날 예슬 이모님까지 일행이 여덟으로 늘어났다.
새벽부터 비가 오시기 시작했다. 임진각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역시 만만찮았다. 종일 비를 맞고 걸었다. 통일로 길은 빗속을 뚫고 과속하는 차들의 물폭탄을 피해야하는 어려운 길이었다. 그렇지만 다들 비장하게(!) 걸었다. 새벽 5시 40분에 떠난 길이 오후 4시쯤에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끊어진 철교를 바라보며 저 다리를 통해 남은 북녘 땅도 걸어볼 수 있으리라.
16박 17일의 도보 여행이 끝났다. 장장 550km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 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각자가 다 다른 이야기를 안고 길을 걸었고,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들을 나눌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난 좋다. 길을 걷다보면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사람을 만나다 보면 따뜻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직은 살 만한 세상임을 깨우칠 수 있어서 좋다.
함께 걸을 수 있어서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이들
비가 오시는 날 서로의 어깨를 기대며 함께 우산을 쓰고 걷던 장교수님 부부, 매일 새벽같이 엄마의 다리에 인슐린 주사를 나주고 발 맛사지를 해주던 착한 딸 세레나와 그의 엄마, 나를 뻣뻣녀(그가 내게 스트레칭 개인교습을 해 주었는데 내 몸은 전혀 소화해 내지 못했다)라고 놀린 소서노 님, 늘 조원들을 이끌고 다녔던 대전의 맨발로 님, 차량운전의 듬직한 일꾼 한량 님, 나만 보면 우리 엄마 어딨냐고 묻던 근수와 근수 엄마 그섬 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줄여서 마가사라고 이름지었던 아주 착한 아저씨 마가사님, 비오는 날 내게 반바지를 빌려줬던 아네모스 님,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업녀였던 선수 별마루 님 그리고 함께 걸었던 길 위의 벗들.... 모두가 고맙고 아름다운 이웃들이다.,
아마 한동안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얼굴에는 활짝 웃음꽃이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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