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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제 39군의 포풍-1부
제6 근위전차군과 함께 쐐기를 형성해야 할 제39군 사령관 류드니코프 상장 또한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습니다. 류드니코프는 재빠른 기습으로 상대할 일본 제107 사단이 후퇴해 재집결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작전 목표선까지 들이쳐 저지선을 형성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대싱안링 산맥에서의 적에 대해 피해 심한 정면공격을 회피할 생각이었습니다. 이 야심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39군은 제6 근위전차군의 우익에서 하루 당 5~6 킬로미터의 행군속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솔룬에서 하일라얼까지 탄탄히 확보함으로서 제6 근위전차군의 우측방을 방호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 39군 사령관 이반 일리이치 류드니코프
콧수염이 소인배다?
제39군이 최종적으로 정한 계획은 2단계의 작전으로 7일 동안 전선군 사령부에서 떨어진 작전목표에 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작전 동안 39군은 일본 방어군을 우회하여 대싱안링 산맥을 넘고 주공 병력은 Dzurkin Harul 과 Boto Nela 를 통해 Tiikhonera-Kakusupera 라인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첫 4일동안 1단계 작전이 수행되고, 2단계 작전으로로 솔룬과 하일라얼을 공격해 일본군을 분쇄하고 점령하는 일이 2~3일 할당되었습니다.
제39군의 작전 편성은 이 목적을 재빨리 달성하는 데 맞춰졌습니다. 39군은 3개 소총병 군단의 제대로 되어 있었으며 주공 축선으로 제61 전차사단이 야전군의 기동군을 이끌게 되어 있었습니다. N.N. 올레셰프 소장의 제113 소총군단과 I.S 베쥬글리 소장의 제5 근위소총군단이 저차 사단을 따라서 4~5 킬로미터의 공세 전면을 책임질 것이었습니다. 두 군단 모두 전차여단 1개씩을 선견대로 두고 있었습니다. 각 군단급 제대는 트럭에 탄 차량화소총병대대들과 1개 자주포대대, 1개 야포 대대, 1개 대전차대대, 그리고 2개 박격포 대대의 지원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61 전차사단과 각 군단 직속 전차여단들, 그리고 2개 소총병 사단이 제1 제파로 들이치고 뒤따르는 소총병사단들이 제2 제파로 후속할 것이었습니다. 하일라얼을 향한 2차 공세 축선은 I.I 포포프 소장의 제94 소총병 군단이 제1 제파로 들이칠 것이었고 제94 소총병 군단 소속 제124 소총병 사단이 야전군 예비대로 할룬-아샨 요새화 지대에 대한 공세를 지원할 것이었습니다.
전선군은 상당한 기갑과 화력 지원을 39군에게 지원하여 39군이 재빨리 일제히 화력을 퍼부어 일본의 국경 요새들을 가루로 만들 것을 약속했습니다. 39군은 지원받은 모든 기계화 전력들을 각 제파에 공급했습니다. 사실 39군은 기습적인 공세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포병전력은 필요가 없었지만, 돌파 이후 가해질 주공 축선을 형성할 군단마다 1개 박격포 연대와 1개 포병사단이 지원되었습니다. 2,000문의 야포와 박격포가 주공 지역에 포화를 퍼부울 것이었습니다.
진격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것은 대규모 중장비들의 진격이 선견대의 진격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포병의 진군이 철저하게 짜인 시간표를 통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제12 항공군 소속 1개 항공연대가 빠진 1개 항공사단이 39군의 공세를 지원할 것이었습니다. 작전 첫째날, 항공전력은 솔룬, 하일라얼 그리고 할룬-아샨의 요새화 지대와 일본 비행장들을 날려버릴 계획이었습니다. 각 군단마다 증강된 공병들이 대싱안링 산맥의 장애물 많은 험지에서의 진격로의 확보와 유지를 위해 지원되었습니다.
8월 2일, 말리노프스키가 39군 사령부를 시찰하고 류드니코프의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39군에게 집결 지대로 움직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날 저녁, 야전군 병력들은 120~130킬로미터에 이르는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제113 소총병 군단은 2개 종대로 행군해 8월 4일 0600시에 Ara Bulagin Obo에 도착했고 제5 근위소총병군단은 3개 종대로 행군해 8월 5일 0600시에 집결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제94 소총병군단(제 124 소총병 사단이 빠진)은 Herempte Nur 에 8월 3일 0600시에 집결했습니다.
제 124 소총병 사단은 8월 5일에 집결지역에 합류했습니다.
8월 6일에는 39군 전체가 그날 밤까지 집결지역에 합류, 긴 행군의 휴식을 취했습니다.
8월 8일, 황신의 시간에 제39군은 행군 강도에 비해서는 짧은 휴식을 끝내고 모든 공격 태세를 마쳤습니다.
이럴때 내가 안나오면 섭하지.
39군은 작전 암호 '몰니아'(번갯불)가 발동되고 자바이칼 전선군 참모장 M.V 자하로프 대장은 39군에 공세 시간을 제대로 맞춰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수색 병력들과 선견대의 소총 사단들이 진격로를 확보한 후 공세를 원할하게 할 교통정리를 8월 9일 0005시까지 마쳤습니다. 주력 병력은국경지대에서의 공세를 0430시에 실시하고 항공 전력들은 0530시에 출격할 것이었습니다.
8월 8일 밤, 마지막 정찰 부대가 작은 일본군 경계 초소에 들키고 돌아왔습니다. 정찰대는 일본군이 적대적인 행동을 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다른 야전군들과는 달리, 39군의 공세 지역의 하늘은 맑았고 공세 또한 완벽하게 진행됬습니다.
작전 개시 시간, 항공지원과 화력지원 없이, 제39군은 소만 국경을 넘었습니다. 야전군 선견대인 제61 전차사단과 군단 선견대들이 본대에서 20~30 킬로미터 앞서서 진격하고 1제대의 소총병 군단 소속 사단의 선견대와 정찰대들도 본대와 15 킬로미터 정도 앞서서 진격했습니다. 국경을 넘는데 성공하자 대대적인 포격이 진격종대 앞에서 작렬하며 화망을 형성했습니다.
발사 준비!
근데 8월에 작전 하는데 배경이 겨울이다?
지상군의 공세와 동시에 항공전력들이 솔룬, 왕예마오, 하일라얼에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길이 험하고 좁은 관계로 일어난 잠깐의 교통정체 빼고는 작전 첫째 날의 진군은 눈부시게 진행되었습니다. 일본군의 저항은 없었고, 화창하게 맑은 날씨는 좋지 않았던 길 사정을 죄다 보상해 주는 듯 했습니다.
류드니코프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날씨가 무척 화창하고 맑게 바뀌었다. Salkhit 산에서의 관측에서 우리는 우리 전차 사단과 전차 대대들이 단호한 진격을 하는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베쥬글리와 올레셰프의 군단 사령부도 볼 수 있었고 그들의 병력 배치 또한 볼 수 있었다. 1시간동안 우리의 진격 대열의 군인들, 전차들, 야포들이 경사진 곳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공세 첫날 동안, 모든 병력들의 진격종대는 형태를 어지럽히지 않고 첫째 날에 목표했던 지역에 다달았습니다. 솔룬으로 향하던 제61 전차사단의 공세 축선은 이미 100킬로미터를 돌파했고, 날이 저물 때, Boto Nela로 향하는 Urgen Gol 을 확보했습니다. 제113 소총병군단과 제5 근위소총병군단의 선견대는 Boto Nela북쪽이자 Urgen Gol의 서쪽 제방인 Dzurkin Harul근처의 Sel'dzin Gol에 다달았습니다. 본대는 25 킬로미터 정도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좋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울퉁불퉁한 도로 상황과 너무 화창한 날씨가 39군의 진격 속도를 조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거친 길은 타이어와 무한궤도의 운행을 방해했고, 후방 보급부대들은 선견대에 비해 지나치게 뒤쳐졌습니다. 게다가 8월의 뜨거운 기온이 연료 소모를 더 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소련군 군의관들은 갑자기 바쁘게 움직여야 했는데 아무리 39군이 사막에서 적응 훈련을 했다고는 하지만 8월 한여름의 화창한 날에서 햇볓을 그대로 내리쬐느라 지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각 사단마다 30~40명 씩은 일사병 증세를 호소했고 보급된 물은 열을 내리기에는 너무 부족했습니다.
일사병 환자를 진단하는 고려인 출신 소련군 군의관의 모습을 담은 기록사진
태양빛에 영 좋지 않은 곳이 이상해진 사병을 치료하고 있다.
결국 30~40 퍼센트의 장병들이 수통의 물을 다 비워버렸습니다.
이런 악재애도 불구하고, 113 소총병군단과 5 근위소총병군단은 공세 첫날이 저물 때 대싱안링 산맥에 도달했습니다. 일본군의 저항은 미미했습니다. 하루 동안 더 진군하니 대싱안링 산맥은 병사들의 뒤에 있게 되었고 일본의 국경 요새 지대들은 죄다 우회당해 버렸습니다.
39군의 본대가 대싱안링 산맥을 넘느라 고생할 동안, 제 94 소총병군단은 만주 북동쪽에서 진군을 시작했고 1939년에 할힌골 전투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를 지나갔습니다. 221 소총병 사단과 358 소총병 사단은 진격하면서 40킬로미터가 넘는 진격로를 확보하며 흩어져 있던 일본군 기관총 진지들과 만주국군 기병들의 산발적인 공격을 처리하며 하일라얼에서 남서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던 Hui Gol에 도착했습니다. 94 소총병군단이 하일라얼을 향해 진군할 때 124 소총병 사단은 일제히 할힌골 남쪽에서 포진해 할룬-아샨 국경 요새지대에서 뛰어나올 일본군의 공격을 경계했습니다.
일본군 제44군에게 공세가 가해진 8월 9일 0200시에 일본군 제3 방면군 사령부는 하일라얼과 왕예먀오를 비롯한 주요 거점들에 소련군의 폭격이 쏟아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제44군은 0300시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시 방어 계획을 가동시켰습니다. 0500시에 제107 사단 참모장이 전화를 통해 소련군의 공세에 사단이 궁지에 몰렸다고 보고했습니다.
"아샨 요새 지대로 전차를 동반한 적의 소총 사단의 공세가 시작되었고 시간이 갈 수록 늘어나고 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적 전차들이 국경을 넘어서 Sankuoshan 의 남쪽으로 파고들어서 사단의 배후를 들이치고 있다. 적 무선 통신을 감청했는데 우리 사단에 대한 적들의 공격 계획이 완성되어 간다 한다. 사단은 소련군에게 진짜로 공격받고 있고 소련군은 이곳에서 우리 사단을 분쇄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소련군 제124 소총병 사단의 일본군 요새 지대에 시작한 공세에 대한 정확한 평가였습니다. 일본 제107 사단에게 닥친 치명적인 문제는 이 다양한 축선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위협을 어떻게 막아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제44군은 근처의 117 사단과 63사단에게 107 사단을 지원하라고 명령했지만, 107사단을 조여오는 공세를 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다음 날, 제3 방면군 사령부는 제44군에게 107 사단으로 쏟아지는 적 공세를 다시 판단하고 Paichengtzu-Arshaan 라인과 Hsinganling 터널을 비롯한 적의 진군을 도와줄 만할 모든 교통 시설들으 파괴하고 장춘 근처로 사단을 후퇴시켜 제30군 경계 지역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습니다.
8월 10일의 늦은 시각, 소련군은 107사단과 44군의 통신망을 차단해 107사단이 상위 제대로부터 명령을 받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107사단은 일본군 답게 최후까지 저항하며 솔룬과 왕예마오로 가는 철도선을 내주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대항했지만 작전 종료까지 소련군을 좀 짜증나게 만드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8월 10일에서 12일까지 소련군은 고생하며 우차커우 남쪽의 대싱안링 산맥을 넘었고 일본군의 소규모 병력이지만 그 지역에서 중요한 군사적 거점을 점령한 일본군과 맞닥트렸습니다. 다행이도 전날만 해도 최고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치솟았던 무더위는 난데없이 만주의 변덕스러운 기온 변화 덕분에 19도에서 22도로 급락했습니다.
소련군은 다양한 지형의 계곡을 지나쳤지만 땅이 말라있어서 진격에 영향을 주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 계곡 지대를 건너자 공병 지원 없이는 지날 수 없는 뻘흙 지대가 펼쳐졌습니다. 소련군 공병들은 고생고생 하며 진격로를 열고 유지했습니다.
험한 고개들을 넘느라 지친 소련군 전차병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역시 짬밥은 양키들 레이션이 최고여."
"너 이새키 시베리아."
강들 또한 전술적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산맥 서쪽의 Sel'zhin Gol 과Siaburutan Gol 강은 장마철이 오며 불어났고 주변을 뻘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소련군 공병들은 이 강들에 6개의 가교를 부설했습니다. 대싱안링 산맥을 넘는 것은 연료 소비를 극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뜨거운 태양이 엔진을 가열했고, 험한 길이 엔진을 혹사시킴으로서 모든 차량들과 전차들이 할당량의 50퍼센트가 넘는 연료를 사용했습니다.
류드니코프는 어떻게든 우회로를 찾으려 했지만 지도가 워낙 부정확해 어떻게 상황을 딱히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L.G 바사네프 소장의 제192 소총 사단은 이 바위투성이 산맥을 2달 동안 넘어야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에도 불구하고, 5 근위소총병사단과 13 소총병군단은 61 전차사단을 선봉으로 세워 8월 12일에 일본군의 옆구리를 파고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솔룬과 왕예마오로 가는 진격로가 열렸고, 일본군은 소련군을 조금 성가시게 할 정도의 저항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우회당해 버린 제107 사단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계속-
이번 연재의 교훈 1. 기동화되고 차량화된 군대 앞에는 고정된 요새는 영 쓸모가 없다.
이번 연재의 교훈 2. 한여름에 행군하면 어느 나라 군대건 개고생한다.
이번 연재의 교훈 3. 겨우 이정도 번역하는데 2시간 넘게 걸렸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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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 연재의 교훈 4. 하도 오랜만이면 대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전투시에는 방어을 제대로 못하고 연재시에는 전에꺼 다시 보고 와야 한다) 올라와서 반갑다능.. 굽신굽신
역시, 8월 8일에 모든 준비를 맞췄기 때문에 포풍의 가호를 받았군요, 하지만 39군아 아닌 44군, 최소한 40군이었다면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이듭니다. "L.G 바사네프 소장의 제192 소총 사단은 이 바위투성이 산맥을 2달 동안 넘어야 했습니다." 이게 포풍의 정석이죠.
쿠어어 번역이라니ㄷㄷㄷ
오오오 황신
오늘의 교훈5 . 역시 번역투 위주의 구성은 재미없다.
님잔인요
순순히 후속편을 내놓는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번 연재에서 가장 와닿는 것-> 2번.
사진보니 지형 장난 아니던데 그 걸 8월달 때약볕 밑에서 행군한 알보병에게 잠시 묵념.
수고하셨습니다. ^^
역시 번역글은 반말로해야...(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