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회의 등장이 혹 기존 투연인들의 민속연이라는 기득권에 위협을 주나 싶어 우리의 목적은 스포츠화라고 표방하고 실제로도 아직 생활스포츠가 활성화되기 전이라 당시 문화체육부에 체육단체로 등록하기위해 문의를 하였더니 담당관은 연날리기단체가 무슨 체육단체냐며 아예 상담이나 접수조차 거절하였습니다. 서비스정신에 투철한 요즘의 공무원이 아닌 군사정권 시절의 공무원의 모습입니다.
서울의 연관련 단체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사천에서 상경한 회장님을 모시고 종로2가 한일관에서 만나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 쪽 연로한 회장님과 핵심관계자와 이한욱회장님, 남직현부회장님, 곽노승씨, A, 김학배 이렇게 7명이 만났습니다. 만남의 연락을 받았을 때, 생각보다 빨리 전국연날리기 단체가 하나로 되는 어떤 시발점이 되겠다 생각하며 가슴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그 쪽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연합회의 등장이 자신들의 연관련업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는지 인수합병을 제안하며 은밀한(?)조건을 제시하였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연날리기의 스포츠화임을 명확히 하여 그들을 안심(?)시키고, 나오는데 얼마나 씁쓸하고 실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학교 교사등 연날리기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조직하여 그들의 길을 갔으며 후에 몇 번 열렸던 한민족대회에서 연날리기는 꼬리연 높이날리기로, 그리고 그 이후의 연시합에서는 그들이 사회도 보고 대회장으로서 대회사도 하는데 실제 경험이 아닌 얘기를 하다 보니 신발위에서 발등을 긁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일산의 호수공원에 가면 그들 중 한명이 주축이 되어 방패연 날리는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 사람이 연싸움을 모르니 그냥 연올렸다 몇 번 튀김하다 내리고 헛헛하게 앉아 있다 또 한 번 올리고 하더군요. 그들에게 이 까페를 소개하고 연싸움의 세계로 안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연시합을 업으로 주관하는 사람들은 공공연히 연싸움 시합의 경비를 유치원생, 초등학생 꼬리연 높이날리기로 대체하면 한강변에, 해운대 백사장에 수백명 동원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고맙게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연싸움대회를 계속 열어왔는데요 그들의 출신의 뿌리가 연싸움에 있기 때문 일까요? 서울의 출신 배경이 연싸움에 있지 않은 한 연단체는 그렇게 꼬리연 날리기로, 학생들 연날리기로 나름의 행세를 하고 있지만... 얼마나 공허한 메아리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이벤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호인들의 연날리기 저변확대의 우선 목표는 방패연 연싸움의 저변확대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우리 민족혼이 깃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꼬리연날리기등은 그냥 오락이고 이벤트가 아닐까요?
그것들은 방패연 연싸움의 저변이 확대되면 저절로 따라오는 파생효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아집니다.순서가 바뀌면 파생효과로 방패연 연싸움의 저변이 넓어지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전통계승정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열과 성을 쏟아 붓는 이 연날리기가 단순한 취미오락에 그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카이트를 즐기시는 분들도 연날리기라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굳이 다른 점을 얘기하자면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태권도 선수 같은 마음이 아닐까요.
부산의 박영필씨와 박용규씨가 새로운 회원으로 가입을 합니다. 연합회원끼리 자주 함께 연날리며 친목을 다집니다.
이 과정에서 부산회원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그들끼리 을숙도에서, 맥도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단련한 까닭에 오늘날 부산연날리기가 전국을 석권하는 초석이 되었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90년대의 전국대회 8강이내에 연합회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상금의 20%를 기금으로 걷기로 하였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초까지 연합회 시합보조금이나 운영자금으로 충당되었습니다. 상금의 일부를 다시 연계로 환원하는 의미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연합회가 남긴 발자취 중 저 개인이 생각하기에 유일한 오점이라면 시합에서 연합회원끼리 서로 양보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정이 앞선다면 놀이이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친한 사이끼리 시합에서 마주치면 벌써 승부욕이 사그러드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하지만 나는 A조에서 16강 진출했으니 B조는 네가... 하는 것은 연날리기가 발전하는데 반드시 수정되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사제지간의 연을 맺고 해서 양보가 더 빈번할 것으로 보아지는데요, 진정 우리 연날리기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공사가 구분되는 깨끗한 승부가 필요하다고 보아집니다.
열정이 많이 줄어든 가운데 5회대회는 남해에서, 6회는 하동에서, 7회는 다시 남해에서, 8회는 함양에서, 9회,10회는 포항 호미곶에서. 모두 이한욱회장님이 연합회에서 교통비만 지급받아 발로 뛰어 만든 시합들입니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더욱 발전시켜 이어가지 못하고 이상의 총10번의 시합을 진행하고 연합회 활동은 기약없는 휴지기에 들어갑니다.
우승 상금을 낮추고 줄연을 너댓개 초정하는데 비용으로 씁니다. IMF의 영향으로 다른 대회의 우승상금이 50만원으로 내려갔지만 60만원~70만원은 유지하고 그 우승의 기록을 멋진 상패에 담아 남길 수 있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이 시기에 연합회에 가입한 서울의 오제환. 복기민, 송윤철, 이광옥. 부산의 김철석, 최석립. 진주의 한상건씨는 연합회가 다시 한번 꿈을 이어가는데 더없이 소중한 동지들이지만 초기 맴버들이 연날리기를 접는바람에 그 뜻만 남기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에 뚝섬에서 초보자클럽이라 하여 한 그룹의 투연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연날리기에 쏟는 열정은 자연히 좀더 발전된 연날리기를 추구하는 개혁의 열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의 열망이 우현택씨, 복기민씨를 중심으로 한마음대회가 열리는 촉진제가 되었는데요. 지금 그들은 연판을 떠나고 없습니다. 그들의 등장이 5년만 빨랐더라면 연합회와 그들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었을텐데요.
한마음대회는 좋게 성장하고 그 뿌리를 내려가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한 가지 건의하자면 일등의 상금을 더 높여서 그 상금의 50%정도를 일등의 이름으로 얼레와 연을 구입하여 저변확대를 위해 필요한 곳에 보낸다던지 그 사람의 이름을 건 올스타전 -그 해의 상위 랭크 10명이 모여 리그전으로 랭킹을 매기는 등- 을 연다던지 해서 좋은 뜻의 기금이 지금보다 더 다양하게 활용되는 방향을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2등 상금은 1등의 50% 미만이어야겠지요
전국대회 순위표를 보면 현재 연날리는 인구는 100명 정도로 보아집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조용히 연만 날리고 싶다’라는 분위기입니다. 적당히 연친구도 있고 사실 너무 많으면 연날릴 기회가 적어서 불편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연만 날리고싶다 라고 생각하면 연만 날릴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탄력받고 있을 때, 좀 더 저변 확대해야 자연 신입 창출되어 고사 걱정 없고, 또 힘이 결집될 때, 이익집단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줄 수 있으며 시합이나 어떤 행사를 할 때, 참가한 관계자나 관중의 눈에 행사하듯 보이며 스폰서가 본전생각 나지 않아 그 행사가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연날리기 단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전국을 크게 10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에 예전에 연날리기 대회가 열렸던 곳이나, 아마츄어라도 팀이 있는 곳을 권역에 포함시켜 34지역으로 편재할 때, 각 지역당 평균 15명의 회원, 즉 전국회원이 500명정도되면... 연만 날리십시오. 아무 생각 없이 연만 날리셔도 절대 말리지 않겠습니다. 저변확대는 자연발생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500명중 누군가는 전통 계승에 매달릴 것이고, 누군가는 더 좋은 도구를 만들기 위해 매달릴 것이고, 누구는 실개발에, 누구는 연개발에, 누구는 새로운 연싸움형태를 개발하고 연습하며, 누군가는 열심히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예산 따와서 학생, 어린이 꼬리연날리기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지방자치가 된 후 각 지방마다 문화예산은 집행되지 못해 남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연날리기를 스포츠화하기위해 또 열심히 얼레돌리고 연싸움공식 도식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