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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에서 팔만대장경까지 기록의 역사-금속활자
이 자료는 암각화에서 팔만대장경까지 기록의 역사-금속활자
수업활용영상에 대한 교육자료로
-초등 4학년 이상, 중학교 단체 수업용으로 진행할 경우
-총 2차 시로 진행할 경우에 적용하실 수 있도록 정리한 것이니 선생님들의 상황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적용하세요. ^^
1. 생각날기 홈페이지에서
수업활용영상-모의수업-별별강의-금속활자 를 클릭해서 영상을 보여주며 이미지텔링 하세요.
1) 인쇄의 역사 중 목판인쇄의 역사까지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영상으로 죽간 체험물에 대한 영상과 앞부분이 동일하니 암각화에서 춘추전국시대까지 기록의 역사를 학습했을 경우에는 복습용으로 보여주셔도 좋고, 많이 아는 경우에는 동영상을 중간부분(안 본 부분) 부터 보여주세요.
2) 앞에서 배운 부분이 나오면 때론 영상을 보면서 아이들이 설명하도록 해주셔도 좋습니다.
이미지텔링 지침서)
이번 시간에는 인쇄술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배워보자. 인쇄를 하게 된 이유는뭘까? 기록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인쇄를 하게 된 거야. 그런데 기록은 왜 해야 할까?
이 많은 것들을 공부하니 어떠니? 머릿속에 다 넣기 힘들어서 뇌가 힘들어 하지?
한데 이렇게 기록을 해놓으니 뇌가 어떻게 하니? 룰루랄라 하고 있지? 왜 그럴까?
우리가 알게 된 정보를 기억하려면 무척 힘들어.
그런데 기록을 하면 어떨까?
우리는 잊지 않으려고 기록을 해. 어딘가에 적어두면 머릿속에 생각만 하는 것보다 더오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지. 덕분에 우리는 옛날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발전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거야. 그러니 기록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겠지?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어디에 기록을 했을까?
이 아저씨들 뭐하고 있니? 돌에 뭔가를 새겼지?
무엇을 새겼을까?
새끼 업은 고래. 호랑이, 멧돼지. 사슴, 탈을 쓴 무당이 새겨져 있지. 나머지 돌에도 많은 것들이 새겨져 있어. 이것들은 왜 새겼을까? 아직 글자가 없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사냥한 것을 기록하거나 소원을 빌기 위해서 돌에 그림을 새겼어. 이것들은 남아서 옛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동물을 보았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기록이 되고 있어. 이렇게 그림문자로 새기면 어떤 점이 좋을까? 쉽게 알아볼 수는 있지만 복잡하고 정확한 전달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이를 보완해서 어떻게 했니? 글자를 만들었어. 글자가 생겨난 다음부터 사람들은 글자로 기록을 남겼어. 그러나 아직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어. 지금 우리가 쓰는 것과 같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어디다 기록을 남겼을까?
이 아저씨는 무엇을 만들고 있니? 파피루스라는 식물을 종이처럼 만드는 거야. 이 아저씨는 파피루스에 어떤 문자로 기록하고 있니? 파피루스에 그림과 상형문자로 기록하고 있는 거야. 이게 무슨 내용 같니? 그림을 보고 대충 알 수는 있겠지만 이 글자를 모르면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네. 파피루스를 만든 곳은 어떤 지역인 것 같니? 이런 식물이 잘 자라는 곳으로 이집트야.
이 아저씨는 어디에 기록을 하고 있니?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하고 있지. 뭐라고 적혀 있니? 글자를 모르니 읽기가 메롱~~.
여기는 점토가 많은 땅을 가진 나라인가 봐.
이건 중국 문명에서 탄생한 갑골문자야. 왕이 갑골문자를 들여다보며 뭐라고 하니? 왕이그렇다고 하면 믿어야 하니? 백성들은 지배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글자가 생겨난 다음부터는 어떤 사람만이 정보와 지식을 접할 수 있니? 글자를 배우고 파피루스나 점토, 갑골 등 기록할 수 있는 것을 구하고 보관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 우리는 옛날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니?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다양한 정보, 지식, 지혜 등을 알 수 있어. 그런데 이 시대 때는 어떤 사람들이 지식 정보를 공유했겠니? 지배층이겠지.
더 발전해서 사람들은 양피지를 사용했어. 양피지는 송아지나 양, 염소의 가죽으로 만드는 건데 양피지에 기록한 기록물을 봐. 이것이 가죽으로 보이니? 가죽을 이렇게 만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겠지?
이것이 양피지 만드는 그림이야. 지금 이 사람들이 짐승의 가죽을 넓적하게 펴놓고 칼로 문지르고 있지? 가죽이 부드럽게 될 때까지 계속 문지르는 데, 이것을 무두질이라고 해. 무두질이 끝난 다음에는 넓적하게 펴서 말린 다음 가죽을 석회로 하얗게 표백해서 완성하는 거야. 양피지는 질겨서 사용하기가 좋았지만 너무 비쌌어. 그러니 아무나 책을 읽을 수는 없었겠지?
이게 뭘까? 죽간이야? 죽간은 대나무로 만들었어. 그래서 대나무 죽 자를 써서 죽간.
나무로 만든 것도 있는데 뭐라고 할까? 나무 목을 써서 목간이야.
대나무를 글을 쓸 수 있게 얇게 만드는 것도 많은 시간과 힘이 들었지만, 글씨를 쓰다가 잘못되면 그 부분을 긁어내야 했어. 이걸 파내려면 어때? 많이 힘들었겠지? 여기에도 많은 힘이 들었을까? 그래. 이렇게 죽간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이었어.
이게 무슨 글자? 책이라는 한자야. 책이라는 한자가 나무나 대나무 조각을 끈으로 엮은 모양에서 나왔어.
게다가 이렇게 둘둘 말아서 죽간을 보관하려면 엄청 많은 자리를 차지했겠지?
이 수레 가득 싣고 가는 것이 책 한 권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 귀족이나 왕 이런 사람들이 죽간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래.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책을 볼 수도 없었던 거지. 혹시 남아수독오거서라는 말을 들어봤니? 남자로 태어났으면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야. 지금의 책으로 다섯 수레 읽으려면 어떠니? 무척 힘들어. 하지만 이시대때는 어땠을까? 구하기는 힘들었지만 읽기는 훨씬 쉬웠겠지.
어떤 그림이니? 종이를 발명하는 그림이야. 어느 나라에서 발명했니? 한나라의 채륜이 기원 전 105년에 발명했어.
중국의 한나라의 무제 때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채륜지가 발명되었어. 종이는 무제 이전에도 사용을 했었지만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이 없었대. 하지만 채륜이 만든 종이는 대량으로 생산하는 게 가능해 진 거야. 이 공이 얼마나 큰 지, 채륜지 발명에 대한 상으로 환관이었던 채륜이 제후의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해.
채륜지가 발명되기 까지 어디에 기록했니?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는 점토판을 사용하다가 세월이 흘러 양피지를 많이 사용했어. 그리고 중국에서는 흰비단이나 죽간을 사용했지?
하지만 흰비단은 값이 너무 비쌌고, 죽간은 무겁고 보관할 장소가 넓어야 했고 파피루스는 만들기도 까다롭지만 잘 찢어져서 보관하기도 까다로웠어. 양피지는 질기고 책으로 엮을 수 있어서 사랑을 받긴 했지만 너무 비싸고 만들기가 힘들었어. 그런데 종이가 이런 단점을 모두 보완해서 만들어진 거야. 어떠니? 정말 대단한 발명이지?
채륜지는 당나라에서 더 발달했어. 그러니 기록도 더 많이 하게 될까?
우리나라에는 언제 전해졌니? 삼국시대 때 종이가 전해져서 사용되었어.
이게 언제 일본에 전해지니? 610년에 일본에 전해졌지? 캬~~일본은 우리나라 덕분에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거네.
종이는 서아시아에는 언제 전해졌니? 9세기에 전해졌어.
유럽에는 언제 전해졌니? 13~14세기에나 전해졌어. 서양이 양피지를 사용하고 있을 때 동양에서는 종이를 사용했으니 기록문화가 훨씬 발전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지? 기록 문화만 발전했을까? 모든 문화가 함께 발전할 수 있어. 왜? 기록에 담겨 있는 지식과 지혜를 읽고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으니까.
기록이 왜 필요한지, 기록할 도구의 중요성, 종이의 발명과 전파를 배웠으니, 기록을 쉽게 퍼트릴 수 있는 인쇄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알아보자.
어떤 그림이니? 필사로 만든 성경이야. 필사가 무엇이니? 베껴 쓰는 것을 필사라고 해. 성경이지. 양피지로는 두꺼워서 펜으로 꾹꾹 눌러서 필사를 해야 했어. 그래서 성경을 한 권 필사하는데 몇 달, 몇 년이 걸리기도 했대.
어떤 그림이니? 수도사들이 성경을 필사하는 모습이야. 수도사들은 성경을 베끼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수도사들은 기도와 자신이 맡은 일, 성경을 베끼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어.
그런데 왜 이리 땀을 흘리고 있을까? 양피지에 종일 글씨를 쓰려니까 무척 힘들었겠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삼강행실도야. 이건 필사일까, 인쇄일까? 인쇄한 거야. 양피지는 인쇄하기가 힘들었지만 종이는 인쇄가 가능했어.
종이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종이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 책을 만들어 냈어. 종이로 만든 책은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책은 벽화나 비석처럼 무겁고 크지 않아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기 편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를 널리 전하기에 아주 간편한 도구가 되었어.
목판인쇄나 활자인쇄가 생겨나기 전, 이 책을 또 한 권 만들려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사람들은 손으로 책을 베끼는 필사를 해서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었어. 필사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책을 또 한 권을 만들 수 있고, 내용을 머릿속에 쏙쏙 집어넣을 수가 있어. 반면 많은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틀린 글자나 빠진 글자가 생기기도 했어. 그러나 가장 값이 싸고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책을 글씨로 똑같이 써서 베꼈어.
필사인쇄의 단점을 보안해서 발전시킨 인쇄 방법이 무엇이니? 목판인쇄술이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좀 더 빨리 글을 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목판 인쇄를 발명했어. 여기 목판을 새기는 사람, 먹을 묻히는 사람, 목판을 정리하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이 노력해서 책을 만들고 있네. 목판인쇄를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필사를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글을 적다가 틀릴 수도 있지? 하지만 목판인쇄를 하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좀 더 빨리 글을 전할 수가 있어서 좋았어. 아저씨가 종이에 인쇄를 하고 있지? 종이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인쇄를 할 수 있었던 거야.
이 아저씨가 인쇄하고 있는 것은 금강경이라는 불경이네. 왜 불경을 인쇄했을까?
동양에서는 불교를 많이 믿었다고 했지? 그만큼 부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이야.
이렇게 목판으로 인쇄한 것 중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로 길이가 7cm도 되지 않는 작은 두루마리이지만 끝까지 펼쳐놓으면 가로 길이는 6미터나 돼. 그러니 목판에 아주 작은 글씨를 꼼꼼하게 새겨 인쇄했겠지? 이렇게 섬세하게 만들었다니 정말 대단해.
만약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목판 인쇄술이 나왔을까? 아니겠지? 그래서 종이로 인해 인쇄술이 발달했다고 말하는 거야. 게다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751년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긴 종이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종이를 여러 장 덧대어서 찍어냈어.
1966년 당시 석가탑은 두 차례나 사리함을 노린 도굴로 금이 가는 등 손상이 심해 붕괴의 위기에 몰렸어. 이에 긴급하게 보수 작업을 하면서 2층 옥개석을 들어 올리데 그만 옥개석이 땅으로 떨어진 거야. 이때 땅에 내려놓았던 3층 탑신석과 부딪치면서 탑신석이 부숴졌으니 얼마나 놀랬겠어. 한데 이러한 덕분에 2층 탑신부 안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안에 들어있던 사리감을 발견한 거야. 사람들이 사리감을 열어보니 그 안에 있던 것이 바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유물인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이었어. 10월14일, 1200여 년 동안 사리함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던 유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 그런데 왜 탑 안에 다라니경을 넣었을까? 그 이유는 다라니경의 이름에 있어. 다라니는 '주문'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라니경을 석가탑 안에 넣으면 나쁜 일이 없어지고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작은 다라니경을 만들어서 석가탑 안에 보물처럼 숨겨둔 거지. 처음에 다라니경이 발견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었대. 불교가 널리 전파되었던 그 시대에 불경을 탑 안에 넣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두루마리를 풀어서 글자를 보고는 깜짝 놀란 거야. 왜 그랬을까? 이건 손으로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인쇄를 한 것이기 때문이야.
이렇게 발견된 다라니경은 751년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추정하고 있어. 다라니경이 발견되기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인쇄본은 770년에 간행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었어. 그런데 다라니경은 751년 무렵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니 일본의 다라니경보다 20년 이상을 앞지른 것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본이라는 당당한 이름을 가지지 못했어. 물론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지 못했지. 왜냐하면 아직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증거와 만들어 진 연도가 확실히 밝혀지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중국이 자기네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우기고 있기도 해.
[무구정광대다리니경의 참고사항]
무구정광대다리니경의 제작 년대는 대략 704년~751년 사이로 추정된다. 근거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다라니경이 처음 중국에서 한자로 번역된 것이 704년이고,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인 751년에 김대성의 발원으로 세워졌고 석가탑은 불국사와 함께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쇄문화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은 다라니경 내에서 확인되는 8자의 무주제자를 근거로 들어 700년~704년 사이에 중국에서 만들어져 신라로 보내진 것을 탑에 안치한 것이라 주장하였고 일본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정확한 제작연대가 불분명함을 들어 770년에 간행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런 우격다짐이나 흠집 내기를 넘어 다라니경의 명성에 의구심이 들게 하는 일이 2005년 일어났다. 다라니경을 석가탑 안에 넣었다고 기록한 1024년(고려 현종 15년)의 중수기문이 사계 전문가들에 의해 판독된 것이다. 1966년에 발견된 이후 40여년 만이다.
결락된 글자나 종이가 찢겨져 나간 부분을 감안해서 해당 기사 부분을 보자.
"대금도 한 묶음과 구리에 도금한 ○, ○칼 한 묶음, 무구정광다라니경…, 금으로 만든 병 하나, 수금대 하나, 사리 8○, 수금도 한 묶음, 두루마리로 된 무구정광다라니경 한 권, 수금대 하나 등을 이 탑에 안치하옵니다.
(○○矣臺錦刀冬音一銅鍍金○...○刀冬音一无垢淨光○羅尼[經]九偏全金甁一隨[錦]一舍利八○..○金○一隨錦刀冬音一无垢淨光○羅尼經一卷隨[錦]一右之安藏爲白置...)"
요컨대 1024년 석가탑 중수 때 여러 부장품과 함께 다라니경을 안치하였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다라니경이 통일신라 때가 아니라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탑 속에 넣었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은 탑을 창건할 때 넣었던 다라니경을 고려 때 보수하면서 도로 집어넣었다는 사실을 적은 것으로 보면 어느 정도 풀린다. 더구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 때 탑에서만 발견되며 고려로 넘어오면 '보협인다라니경'으로 완전히 대체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 다라니경이 발굴된 신라 탑은 10여기에 이르지만 고려 탑에서는 발굴된 예가 없다.
또 1007년 간행된 보협인다라니경은 정교한 인쇄기술로 제작된 반면 다라니경은 초보 수준이다. 인쇄기술로 봐도 다라니경이 보협인다라니경보다 나중에 제작됐을 가능성은 없다. 무주신자(武周新字,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가 제정하여 집권 당시만 일정기간에 사용했던 글자)를 일부 사용했으며, 서체가 고식이라는 점 등도 8세기 제작설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은 언제 만들었니? 700년 초에서 751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 진 것이지. 그 다음에 만들어진 것은? 770년에 간행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야. 그 다음에 만들어진 것은? 868년에 간행된 금강경이야. 1237년부터 1248년까지 11년에 걸려 만들어진 것은? 아주 유명한 팔만대장경이야. 그러고 보니 모두 불경이네.
팔만대장경은 팔만 개의 판에 인쇄를 할 수 있도록 글자를 새긴 판이야. 그러니 팔만대
장경판은 무척 많겠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이야. 목판을 보관해야 하니 장소가 무척 커야겠지?
목판의 양 끝에 넓적한 부분이 마구리인데, 경판을 보관할 때 글자가 맞닿으면 수분이 빠져나가지 못해 썩어버리거나 마찰 때문에 글자가 뒤틀릴 수 있어서 바람이 통하도록 마구리를 댄 거야. 다 만들어진 경판은 벌레가 경판을 좀먹지 못하게 옻칠을 한 후 보관했으니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했겠지?
팔만대장경을 쌓아 놓으면 높이가 얼마니? 대장경판을 쌓아 놓으면
그 높이가 3천 미터가 넘는데 이 높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보다도 높다고 해.
목판인쇄로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사람도 필요하겠지? 어떻게 만드는지 보자.
이 스님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팔만대장경에 새겨 넣을 내용을 정하기 위해
불교 경전의 내용을 수집하고,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첫 작업인 교정을 하는 거야. 새롭게 만드는 대장경이니만큼 완벽한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서 학자와 스님들이 심혈을 기울여 여러 판본을 보고 틀린 글자나 내용을 바로 잡는 것이지.
대장경판을 새기는 사업은 고려 고종 23년부터 38년이라는 16년 동안 진행되었는데 그 중 4년은 무엇을 새길까를 정하는 교정 기간이었으니 무척 어려운 작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그러고 보니 8만 장의 경판을 겨우 12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새긴 것이네. 엄청 고생했다는 것이 저절로 느껴지네.
목판을 만들기 위해 웃통을 벗고 나무를 자르고 있어. 나무를 보니 어떠니? 도끼질을 여러 번 해야 될 만큼 튼튼하고 곧게 잘 자란 나무지.
30년 이상 자란 나무를 사용해야 두꺼운 목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튼튼한 거야.
나무를 벨 때는 성장이 멈춘 겨울에 벤 다음 바닷물과 강물을 이용해 판각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나무를 운반했어.
이렇게 운반된 나무는 바로 목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 속에 2년 동안 담근 다음 소금물에 삶아서 말릴 때 갈라지는 일을 막았지.
소금물에 삶은 다음에는 목재 안에 스며든 수분이 적당히 마르도록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1년 동안 건조시켰어.
그래야 나무가 비틀어지거나 썩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거지. 나무를 벤 다음 3년 이상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목판을 만들 수 있었던 거지.
건조된 나무를 알맞은 크기로 자른 다음 대패질을 하고 있어. 대패로 꼼꼼하게 깎아내면 반들반들하고 평평한 판자가 만들어지겠지?
종이를 만드는 과정이야. 어떤 과정을 거치니? 목판을 만드는 데는 종이가 아주 중요한 재료였는데, 종이 공장이 없던 옛날에는 종이도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어.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인 한지는 닥나무로 만들어.
먼저 닥나무를 삶은 다음
껍질을 벗겨내고 계속 두들기면 찐득찐득한 덩어리가 되는데, 여기에 닥풀을 섞고 삶아서 묽은 종이죽을 만들어.
그리고 묽은 종이죽에 고운 체를 넣고 조심스럽게 뜨면 체 위에 얇고 고르게 종이죽이 퍼지게 되는데 이걸 말리면 한지가 되는 거야. 한지를 만들 때 두께가 일정하고 잘 찢어지지 않아야 좋은 종이라고 할 수 있어.
학자가 종이에 불경을 베껴 쓰고 있어. 이것을 판하본이라고 하는데 종이에 베껴 쓴 후에 목판에 붙이는 것이지.
여러 사람이 판하본 작업에 참여했는데 팔만 개의 목판에 새겨진 글씨가 한 사람이 쓴 듯이 모두 일정하다고 하니 어떠니? 그저 감탄만 쏟아지지.
뭐하니? 종이에 쓴 글을 목판에 새기는 판각작업을 하고 있어.
판하본 한 장에 글씨를 모두 쓰면 어떤 작업을 하니? 풀칠해서 판하본을 판목을 붙여
그런데 판하본을 목판에 뒤집어 붙이네.
뒤집어 붙인 판하본으로 글씨를 새기니 목판에 거꾸로 된 글씨가 새겨지는데 왜 종이를 뒤집어 붙였을까?
완성된 후에 먹물을 묻혀서 인쇄해보니 어떠니?
글씨가 올바르게 인쇄되었지? 이제 왜 판하본을 거꾸로 붙였는지 이해가 되니? 도장을 찍는 원리를 생각하면 되.
그런데 잘 못 써진 글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니?
경판을 도려낸 후 글자를 다시 써서 그 자리에 붙이지. 정말 대단한 정성이야. 이러한정성이 들어있기 때문에 대장경판에 새겨진 글자는 모두 5천 2백만 자 정도인데 한 글자도 틀린 글자가 없대. 정말정말 대단한 문화유산이야.
경판을 다 만들었으니 어떻게 하니? 인쇄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어.
대장경판에 새겨진 글자는 모두 5천 2백만 자 정도인데 이 글자를 한 줄로 쭉 늘어놓으면 서울부터 부산까지를 왕복할 수 있다고 해.
그런데 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다음 시간에 살펴보자.
2. 이 부분까지 1차 시 수업을 진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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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 수업을 진행을 진행하기 전에 1차 시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세요.
2. 이미지텔링 수업을 진행하세요.
그런데 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을까? 다음 시간에 살펴보자.
지도를 봐. 몽골족이 살던 지역은 어떤 기후였을까? 우리나라보다 북쪽이니 춥고. 땅의 한 가운데에 있어. 그러니 농사가 잘 안되었어. 먹고 살게 넘쳐났을까, 부족했을까? 초원지대에 살던 이들은 유목이나 무역을 하며 살기도 했지만 항상 먹을게 부족했어. 그래서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인한 정신과 불굴의 체력으로 버터야 했어. 그런데 개개인의 부족들이 뛰어나서 아주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 부족들을 하나로 뭉치기가 힘들었어. 그런데 부족끼리 흩어져서 살던 몽골 초원에 살던 몽골족을 칭기즈칸이 나타났어.
몽골족이 어디로 영토를 넓히니? 동, 남, 서쪽으로 마구 영토를 넓히지? 칭기즈칸이 워낙에 뛰어났었기 때문에 이들을 강력하게 이끌면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나라로 발전시켰어. 게다가 몽골인은 세 살부터 말을 타기 시작하여 소년이 되었을 때면 자신의 손발처럼 자유자재로 말을 부릴 수 있었어. 한 사람이 서너 마리의 말을 이끌고 가다가 타고 있는 말이 죽으면 옆의 말로 갈아타고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갔으니 엄청 빠르고 강했겠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점령했던 몽골이 어디를 침략했니? 고려를 침략하네.
몽골의 침입 경로를 기록한 지도를 보면 개경이 보이지? 첫 번째 침입 때 몽골이 기세등등하게 쳐들어 왔어. 그러니 어떡하겠어?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고려정부는 몽골에게 많은 선물을 주며 강화협상을 하자고 제의했어. 몽골은 이 제의를 받아들이고 철수했어.
그런데 지도를 보니 고려 정부는 어떻게 하니?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네.
그리고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어. 왜?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을 몰아내고자 만든 거야.
이쯤 되면 종교가 나라를 지키는 역할도 했다는 거네. 이것을 호국불교라고 해.
팔만대장경을 만든 또 다른 이유도 있어. 어떤 이유인지 보자.
강화도로 도읍만 옮기면 해결될 일이 아니지? 부려 먹을 백성들이 필요하겠지? 그래서 "20일 안에 강화도로 이사하지 않으면 군법으로 처리한다." 라고 하며 개경 주민들을 강화도로 이주하도록 했어. 당시는 여름이어서 장마비가 열흘 정도나 내렸다고 하니 백성들의 모습을 보니 어떠니? 지쳐서 말도 죽어 있고, 여기 어린 아이는 힘들어 주저앉았어. 발목까지 진흙에 잠길 정도로 눅눅한 땅에서 짐을 싣고 이사해야 했으니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그렇다면 남아있는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려조정은 피난을 가면서 백성들에게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섬이나 산성으로 들어가 몸을 지키도록 했어. 그러나 그곳에서 버틸 만큼 충분한 식량이나 물을 준비하지 못해서 백성들은 무척 힘들게 살았어. 그뿐 아니라 몽골군이 없을 때에는 농사를 지어야 했고, 강화도로 피난 간 고려정부에 세금도 꼬박꼬박 내야 했어. 더 힘들었던 건, 고려정부가 강화도로 피난을 가자 화가 난 몽골군이 다시 침략했던 거야.
지도를 보자. 몽골군은 전국토를 짓밟고 백성들을 못살게 굴어서 고려정부가 할 수 없이 개경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전략을 짰어.
그러니 고려를 구석구석 쳐들어가야겠지?
몽골 장군의 모습을 보면 말을 타고 있지? 몽골말은 유럽 말에 비해 체구가 작고 느리지만 사람을 태우고 하루 100킬로미터 이상 달릴 수 있는 지구력과 스스로 먹이를 찾아내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고 해.
더구나 몽골군은 원정을 떠날 때 1인당 5~10마리의 몽골말과 말린 고기만 가지고 가볍게 떠났어. 이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 지치면 갈아타고 가고, 식량이 부족하면 말을 죽여서 젖과 피로 목을 축이고 말고기를 먹고, 말의 뼈로 화살촉을 만들어 무기로 썼어. 그러고 보니 몽골은 말로 웬만한 건 다 해결하네. 이들은 네 다섯 살 때부터 말에서 잠을 잘 정도로 말과 친하게 지냈으니 전쟁을 할 때도 말과 한 몸이 되었겠지?
지도를 보니 개경보다 훨씬 남쪽에 있던 대구까지 쳐들어갔네.
이런 몽골군의 갑옷을 보니 비단으로 되어 있지?
반면 고려의 장군은 철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어. 두 갑옷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비단을 여러 겹으로 해서 갑옷을 만들면 화살을 막을 수 있고, 철갑옷보다 훨씬 가벼웠어. 그러니 몸이 날렵하겠지? 게다가 몽골 장군의 등 뒤에 맨 활이 보이니? 이들은 말에서 달리면서 등 뒤로 활을 쏘는 궁술이 아주 뛰어났어. 이런 몽골군이 떼거지로 몰려서 말을 타고 달려든다고 생각해 봐. 어땠을까? 아주 위협적이었겠지? 이런 모습을 하고 전 국토를 짓밟았던 거야.
이때 대구 부인사에 있던 초조대장경이 어떻게 되니? 불타서 사라지고 말았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그렇다고 당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 여기 용인 처인성에서 승려 김윤후가 백성들을 이끌고 용감히 싸우고 있네.
적장 살리타이가 용인의 처인성을 공격하다 승려 김윤후가 쏜 화살을 맞고 죽는 일이 벌어졌어. 완전 대단하지? 그러자 지휘관을 잃어버린 몽골군이 철수해서 돌아가면서 2차 전쟁이 끝이 났어.
1234년 몽골은 세 번째로 고려를 침입했어. 3차 침입은 예전보다 더 거세고 격렬해져서 전 국토를 짓밟고 백성들의 터전을 가리지 않고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 백성들마저 무자비하게 죽여 버렸어. 이때 경주에 있던 황룡사 9층 목탑도 불타고 말았어. (1357)
백성들은 어땠겠어? 몽골의 침입을 받으면서 무척 힘들게 살아야 했던 것이지.
그런데 강화도에서는 무엇을 만들고 있니? 백성들의 마음이 흩어지면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어. 그러니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야 할까? 불교를 이용해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고 부처님께 고려를 보호해달라고 빌고자 팔만대장경을 새기는 사업을 시작했어. 그러고 보니 종교가 나라를 지키는 역할도 했다는 거네. 이런 불교를 뭐라고 부르니? 호국불교라고 해.
팔만대장경의 역사는 위대한 기록의 역사이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전쟁의 시기에 만들어진 슬픔의 역사이기도 해. 이렇게 슬픔 속에서도 온 마음을 다해 만들어진 대장경은 '모든 나라에서 견줄 만한 상대가 없는 대장경이다'라는 화려한 찬사를 받고 있어. 대장경에 어떤 이름을 붙여주고 싶니?
3. 초성게임으로 복습을 해보세요.
1) 초성게임을 하며 활자에 익숙해지도록 해주세요
체험하기 전에 초성 게임 해보자.
선생님이 공부하면서 배운 단어나 문장을 불러주면 금속활자체험물에서 초성을 찾아보자.
예를 들어)
채륜~ 초성을 찾아서 들어봐. ㅊ.ㄹ! 그런데 ㅊ, ㄹ 이 어떠니?
거꾸로 되어 있어. 왜 그럴까? 팔만대장경을 배울 때 목판에 글자를 어떻게 새겼니? 거꾸로 글자를 새겼어. 그래야 인쇄를 하면 글자가 제대로 찍힐 수 있기 때문이었어.
그러니 글자가 거꾸로 되어 있어야 할까?
–이런 식으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석가탑 - ㅅㄱㅌ
양피지 -ㅇㅍㅈ
갑골문자 -ㄱㄱㅁㅈ
쐐기문자 -ㅆㄱㅁㅈ
목판인쇄술 -ㅁㅍㅇㅅㅅ
필사로 만든 성경 -ㅍㅅㄹㅁㄷㅅㄱ
최고의 목판 팔만대장경- ㅊㄱㅇㅁㅍㅍㅁㄷㅈㄱ
이번엔 선생님이 초성을 불러볼 테니 어떤 단어나 문장인지 맞혀봐.
ㅈ, ㄱ은? 죽간이야. 또 다른 단어 생각나면 말해봐. –이런 식으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ㅇㄱㅎ --암각화
ㅍㅁㄷㅈㄱ -- 팔만대장경
ㅁㄱㅈㄱㄷㄷㄹㄴㄱ ---무구정광대다니경
ㅁㅍㅇㅅ --목판인쇄
ㅁㄱㅇㅊㅇ --몽골의 침입
ㅇㅈㅌㅇㅍㅍㄹㅅ- 이집트의 파피루스
ㅊㄹㅇㅈㅇㅂㅁ -채륜의 종이발명
ㅁㅍㅇㅅㅍㅁㄷㅈㄱ-목판인쇄 팔만대장경
ㄱㅅㅎㅈㅇㅈㅈ -금속활자와 직지
4. 목판 인쇄 체험을 시켜주세요.
1) 예를 들어-ㅍㅁㄷㅈㄱ이 들어가게 해서 간단한 단어를 만들도록 합니다.
2) 초성게임 이외에도 선생님께서 알맞은 글자를 불러주시고 누가 먼저 맞추나 게임을 하셔도 무척 좋은 체험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을 할 테니 글자를 만들어 봐.
3) 금속활자 체험물을 구입해서 알맞은 글자를 만든 후에 풀이나 양면 테이프로 붙여주세요. 만약 금속활자 체험도 할 경우에는 나중에 활용할 수 있도록 살짝 고정만 되도록 해주세요.
4) 인쇄체험을 하도록 해주세요.
-이렇게 판에 붙여 놓은 것이 목판 인쇄야. 이걸로 인쇄 체험 해볼까?
-먹지와 종이(일반프린트 종이, 한지 등 부드러운 종이를 주세요.)를 주신 후에 인쇄 체험을 시켜주세요.
5) 인쇄 체험을 한 후 물어보세요. 필사랑 어떤 점이 다르니?
종이와 잉크만 있으면 계속 찍어낼 수 있지?
이때 종이 질에 따라 인쇄의 질도 달라질까?
필사를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글을 적다가 틀릴 수도 있지? 하지만 목판인쇄를 하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좀 더 빨리 글을 전할 수가 있어서 좋았어. 만약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인쇄할 수 있었을까? 종이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인쇄를 할 수 있었던 거야.
(사진에 있는 족자는 별도 판매하는 제품입니다.)
별도로 판매하는 족자를 구입해서 인쇄한 종이를 붙이고 옆에 간단하게 설명을 쓰도록 해주셔도 좋습니다.
5. 경우에 따라 대장경에 적힌 이야기를 들려주셔도 좋습니다.
대장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모은 책으로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글로 써서 남긴 것이지요. 팔만대장경에는 우화가 많이 새겨져 있어요. 하지만 팔만대장경의 내용보다는 가치를 중시하고 그것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기만 하죠. 그러니 시간이 되시면 팔만대장경에 들어간 이야기를 읽어주셔도 좋을 거예요.
여기에는 팔만대장경에 적힌 이야기 중 두 가지를 골라 각색을 한 동화를 소개하니 수업에 맞게 아이들한테 읽어주셔요.
참고로 생각날기에서 만든 역사동화 9 (고려편으로 몽골의 침입이 다뤄집니다.)의 수업활용영상에는 영상과 함께 성우의 목소리로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수업에 알맞게 활용하세요.
1)국왕을 감동시킨 원숭이 왕
옛날 어느 숲 속에 원숭이 왕이 5백의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만 심한 가뭄이 들어 원숭이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먹을 것을 구하던 원숭이 왕은 무리를 이끌고 숲속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국왕의 과수원으로 숨어들어 갔어요. 그리고는 오랜만에 맛난 과일을 실컷 먹었어요. 그런데 그만, 과수원을 지키던 병사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국왕에게 보고했어요. 이에 국왕이 화를 내며 원숭이들을 잡아오라고 명령했어요.
"배고픔 때문에 판단이 흐려져서 무리를 죽음으로 몰아넣겠구나."
라고 후회를 하던 원숭이 왕은 칡을 구해오라고 했어요. 원숭이들이 칡을 구해오자, 원숭이 왕은 칡을 엮어 밧줄을 만들었어요. 그런 다음, 칡 밧줄을 허리에 동여매고 밧줄의 다른 쪽 끝은 나무에 묶었어요. 그리고는 강을 훌쩍 뛰어넘어 반대편에 있는 나뭇가지를 붙들었으나 밧줄이 짧아 원숭이 왕의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말았어요. 힘든 상황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원숭이 왕은 무리에게 빨리 칡 밧줄을 타고 강을 건너라고 했어요. 무리가 다 건너가자 원숭이 왕은 겨드랑이가 찢어지면서 강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이튿날 새벽, 강변을 산책하던 국왕은 물에 빠진 원숭이 왕을 발견하고 잡아오도록 했어요. 잠시 후 잡혀온 원숭이 왕이 말했어요.
"미천한 동물이 배고픔 때문에 국왕의 과수원을 침범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은 모두 제가 저지른 것이니 나머지 원숭이들은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죄의 대가로 벌레 같은 제 몸뚱이나마 요리사에게 갖다 주면 한 끼 반찬은 될 겁니다."
그러자 국왕이 탄식하며 말했어요.
"이러한 미물도 그 무리의 우두머리라고 부하들을 끔찍이 위하는데, 나는 사람의왕으로써 지금까지 백성을 위해 무슨 일을 했던가?"
국왕은 눈물을 흘리며 원숭이 왕을 풀어주라고 명령했어요. 그리고 온 나라에 방을 붙여 앞으로는 원숭이가 먹는 것을 내버려둘 것이며, 만일 원숭이를 해치는 자가 있다면 도적과 같은 죄로 처벌할 것임을 알렸어요.
2) 높은 탑에 갇힌 석공
옛날 어느 나라에 아주 아름답고 높은 탑을 짓고 싶었던 왕이 있었어요. 왕은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석공을 궁궐로 불러 높은 탑을 만들도록 했어요.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석공은 '정말 사람이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아름다운 탑을 완성했어요.
높은 탑을 본 왕은 "오~~정말 아름다운 탑을 만들었구나. 수고했다."라는 칭찬을 하고서는 석공이 미처 땅에 내려오기 전에 높은 탑에 있던 사다리를 치워버렸어요. 그 석공이 다른 곳에 가서 더 훌륭한 탑을 세울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지요.
높은 탑에 갇힌 석공은 탑 아래로 내려올 방법을 찾기 보다는 탑에 갇혔다는 걱정으로 한숨만 쉬고 있었어요.
이 소식을 들은 석공의 식구들이 탑 아래로 달려와 울면서 말했어요.
"이제 이 일을 어찌합니까?"
"아빠~~앙앙앙앙"
식구들의 모습을 본 석공은 걱정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탑 아래로 내려갈 방법을 찾기로 했어요. 이리저리 생각하던 석공은 입고 있던 옷을 찢어 가느다란 줄을 만들어 탑 아래로 내려 보내기로 했어요. 그러면 식구들이 그 줄에 석공이 탑 아래로 타고 내려와도 될 정도의 굵은 밧줄을 매서 다시 올려 보내고, 석공은 그 밧줄을 타고 탑 아래로 내려오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지요.
석공이 자신의 생각을 탑 아래에 있는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자, 가족들이 석공의 의견대로 밧줄을 올려 보낸 덕분에 석공은 굵은 밧줄을 타고 탑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어요. 무척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힘든 상황을 극복한 석공의 지혜처럼 어떠한 순간에서도 지혜를 발휘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요.
팔만대장경에 적힌 우화를 들었다면 당시 사람들이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너희는 어떤 생각을 했니? 팔만대장경은 다른 고려의 어린이들에게도 불끈 힘을 주었을까? 이런 식의 질문을 나누셔도 좋을 거예요.
6. 역사동화 9와 함께 고려를 다룬 수업인 퍼즐한국사 9의 수업활용영상을 보면 당시
전쟁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이미지와 팔만대장경의 내용. 팔만대장경 만드는 과정을 성우의 목소리로 녹음한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