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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 忠 植 -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차가운 장미, Before the winter chill
- Avant l'hiver >
- 완벽한 줄 알았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
평온한 일상에 드리워진 ' 차가운 장미 ' ,
그 향기없는 삶에 불현듯 스며든 치명적인
유혹의 향기...
일생을 뒤흔드는 욕망의 끝, 그 '상처'어린 어둠이
처절하게 느껴지는 루이 말의 1992년 연출작
< 데미지 >...
안나(줄리엣 비노쉬 분)는
스티븐(제레미 아이언스 분)에게 속삭입니다.
" 상처 입은 사람은 위험해요,
사는 방법을 터득했으니까요! "
질풍노도의 한 시대를 불태웠던 로큰 롤 가수
제니스 조플린, 그녀의 불꽃같은 생애를 다룬
< 더 로즈 , The Rose > 에서부터,
향수(香水)를 향한 천재의 광기어린 집착을 그린
< 향수 , Perfume ; The Story of a Murderer >,
비극적인 결말의 비극적인 코미디로,
가장 고급스러운 장미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아름다움을 더불어 상징하는 < 아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 > 에 이르기까지,
때론 고혹적인 우아함으로, 다른 한편으론
치명적인 유혹의 대상으로 극단적 조명을 받었던
'장미'(薔薇)...
시리도록 차갑고도 아름다운 감성을 잔잔히
깨우는 영화 < 차가운 장미 > 또한 다르지 않지요.
영화는 장미를 '매혹'으로, 또 '위기'로도
표현합니다.
장의차 시트, 모포, 쿠션, 목도리 등 수많은 장치에
묻어있는 장미의 향취는 자못 특별한데다,
여기에 푸치니의 오페라 < 라보엠 > 중
‘미미의 테마’를 삽입하여 폐결핵을 앓는 미미와
가난한 시인 로돌포의 비련을 대치시킨 것이
그러하지요.
그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차가운 장미처럼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던 50대 부부의 삶 속에 감춰져 있던
날카로운 가시가 이들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감독 필립 클로델이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 < 차가운 장미 >.
정년을 2년 앞두고 있는 폴(다니엘 오테유 분)은
존경받는 신경외과 의사이자 실력있는 교수로서,
또한 성실한 남편으로서 사회적 명성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지요.
이처럼 거의 모든 걸 갖춘 것처럼 보이는 폴과,
30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해 온 지적이며 우아한
아내 루시(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분)...
이들 부부는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 지위를 모두
갖춘, 성공한 현대인의 표상과도 같은 인물들로
보여집니다.
더욱이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없는 도시 외곽에
위치한, 드넓은 정원을 갖추고 있는 이들 부부의
저택은 겉에서 보면 누구나 부러워할 공간이지요.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해서 왠지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두 사람만이 지내기에는 너무 큰,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통유리로 된 집에서
이들 부부는 외면적인 평온함에 안주한 채
변화 없는, 건조한 삶을 반복하고 있는 게지요.
일을 마치고는 매일 같이 피곤한 채 돌아오는
폴에게 루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합니다.
“당신은 수술로 바빠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난 너무 한가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라...”
뼈 있는 루시의 그 한마디 말을 듣는 순간에도
폴은 자신의 안온한 삶이 사실은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내와의 부족해진 대화와
소원해진 관계를 대가로 이뤄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영화는 그런 폴의 무료한 일상을 명징(明澄)한
시선으로 좆아갑니다만,
홀어머니 밑에서 치열한 노력 끝에 성공한 그는
휴가 한 번 가지 못한 채, 일에만 중독돼
살아갈 뿐이지요.
무미건조한 그의 삶에 그나마 물기를 주는 건
푸치니의 '내 이름은 미미'와 같은 아리아와
아내가 가끔 건네는 한 마디 위로 뿐입니다.
앞만 보고 내달려 왔으니 폴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가꾸었을 리 만무하지요.
아들과는 대화조차 제대로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벌어졌고,
'배려할 줄 모르는'성격 탓에 소중한 친구이자
동료 정신과 의사인 제라르(리처드 베리 분)
와도 점점 멀어지고 맙니다.
루시 또한 그런 폴 때문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은 아내였지요.
집안 일에 늘 바쁘지만,
홀로 있을 때면 사뭇 고독해지는 루시...
이들 부부의 삶과 관계는 서서히 흔들려대며,
급기야 두 부부는 감정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지요.
공고할 것만 같았던 둘의 관계는 한낱 먼지처럼
가벼워져 버립니다.
마치 영화 중반부에서 스치듯 지나가지만
인상깊게 각인되는,
'폴과 루시가 안개 속을 걸어가는' 시퀀스처럼
말이죠.
짧지만 강렬한 이 장면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이들처럼 각자의 마음을 감춘 채 짙은
운무 속에서 헤메이며 부유하듯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영화는 안개에 감춰진 삶을 표피적인
평화와 행복으로 가장하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이 지닌 공허한
욕망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바에 들른 폴.
그는 바텐더 루(레일라 벡티 분)가 '자기가
어렸을 때 폴에게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며
아는 체를 하자 흠칫 놀랍니다.
환자와의 접촉을 꺼리는 유명 의사가 으례
그러하듯,
폴은 그 말을 무덤덤하게 흘려버린 채 자리를
애써 피하지요.
그런데...
며칠 뒤 폴에게 한 묶음의 장미가 배달됩니다.
발신인도 메시지도 연락처도 없이,
진한 초록색 포장지로 싼,
'열렬한 사랑'을 의미하는 강렬한 붉디 붉은
장미꽃 다발였지요.
폴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내동댕이칩니다만,
꽃은 집과 병원을 번갈아 가며 매일 배달됩니다.
맨 먼저 루를 의심하는 폴,
그는 꽃집에서 붉은 장미를 고르고 있는 루를
발견하곤,
곧바로 뛰어가 왜 꽃을 보내냐고 그녀를 거세게
다그치지요.
하지만 이 꽃은 루의 친구가 루에게 주는 선물로,
민망해진 폴은 퇴근 후 루를 찾아가 사과하기에
이릅니다.
미국인이었던 폴의 아버지는 프랑스에 와서
폴의 어머니를 만났지만, 아들이 태어나자
미국으로 돌아가버렸지요.
홀로 남은 어머니에게 폴은 그야말로 '모든 것'
이었을터,
남에게 말하지 않았던 어렸을 적 이야기,
가리고 덮으면서 살아왔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루에게 털어놓으며, 그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폴은 친구 제라르에게 묻지요.
"만약 평소에 간절히 하고 싶었던 것 중에,
딱 한 가지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자넨 무엇을
할거야?"
제라르는 답합니다.
"그건 나한테 묻는게 아니라,
자네 자신한테 묻는 질문으로 들리네.
지금 자네 인생에 대해 불평하는거야?
자넨 너무 운이 좋았어, 그럴 자격도 없는데.
자네는 친절하지만 자기 생각밖에 안하지..."
" 이젠 늙고 주름만 가득한 어릿광대가 돼버렸어.
나에겐 그런 꿈이 없었네.
그저 인생에 끌려왔을 뿐이야..."
정신없이 앞만 보고 성실히 살아온 폴은 자신이
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위로해주지만,
정작 자신은 물론, 가족의 마음도 돌아보지 못했던
게지요.
콘서트장과 거리에서,
그리고 병원에서 자꾸 마주치게 되는 루...
두 사람의 만남이 거듭되면서 루는 폴을
유혹합니다.
'나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싶지 않느냐고,
젊은 몸을 탐하고 싶지 않느냐고'.
하지만 폴의 관심사는 욕정보다 자신의 본질을
찾는 열쇠였지요.
루는 쓸쓸하게 되뇌입니다.
" 난 당신보다 (마음이) 늙었어요.
너무 늦었다고요... "
육감적으로 남편의 변화를 알아챈 루시는
정원을 가꾸며,
애써 혼란스런 마음을 추스리면서도,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지 않냐'고 폴을 채근합니다.
폴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정확히 그게 뭔지는 자신조차 알지
못하지요.
수를 놓고 있는 아내를 좀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폴에게 루시는 말합니다.
" 젊을 적에 이런 모습이 섹시해서 반했다고
했잖아! "
집을 나온 폴은 호텔에 머물며 루와의 만남을
이어갑니다.
어이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부닥친 루시.
그녀는 폴을 힐책합니다.
"우리가 결혼한지는 백년 쯤 더 된거 같은데
실제로 함께 보낸 시간은 정확히 얼마나 될까?
여보...
우리가 있기나 한 거야? "
제라르는 명색이 루시의 남편인 폴에게
일갈하지요.
“ 내일 당장 루시를 데리고 멀리 떠나버리고
싶어! ”
수술하면서 손이 떨리는 증상으로 인해 휴직까지
하게 된 폴.
급기야 루가 낮에는 바에서 일하고 밤에는
매춘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크나큰 배반감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루를 잊지 못한 채, 카페를 계속 찾아가고,
음반을 선물하며, 차 안에서 데이트도 하는 폴...
둘에게는 신체적인 교감 따윈 없지만,
폴은 그녀를 통해 성공을 위해 접어두었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위안받는
셈으로,
이미 루에게 한껏 중독돼버린 폴은 그녀의
추악한 현실을 알고도 정작 이성적인 눈을
감아버립니다.
하지만 가지가 꺾인 채 유리병이 꽂혀 있는
장미처럼,
겉으로 보기엔 아름답지만 언제 시들지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는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
무너지고 말지요.
상황을 견디다 못한 루는 폴의 곁을 떠나가고,
폴은 잠적한 그녀의 흔적을 더듬게 됩니다.
어렵사리 찾아낸 루는 폴에게 '다정한 양귀비'
노래가 담겨있는 테이프를 선사하지요.
" 드릴 게 있어요.
할머니 유물인데, 언제나 가지고 다니던,
제 일부나 다름없답니다.
제게 남은 것 중 유일하게 순수한..."
흐느끼며 이별을 고하는 루.
"당신만은...
당신은 다른 사람과는 달라요.
당신이랑 같이 듣고 싶어요.
다 들으면 가주세요, 알겠죠! "
그렇게,
헤어진 루와 폴...
그러던 어느 날,
루가 자기 집 목욕탕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경찰에 의하면 마피아에게 연루됐던 그녀는
돈 많은 상류층 남자들을 몸으로 유혹하여 금품을
갈취한데 이어 살해해왔으며,
이번이 '완벽한 타깃'이었던 폴 차례였다는
것이었지요.
죽음으로 '마지막 남은 순수함'을 폴에게
선물했던 루...
' 죽을 뻔 했다는 것만 아세요' 라는 경찰의 말을
뒤로 하며,
폴은 넋두리처럼 되뇌입니다.
“그녀는 나를 움직였어요.
처음으로 말이에요.
아주 멀리 되돌려놨습니다.
모든 게 시작되기 전의 나로,
원래의 삶으로...”
감독 필립은 현대인의 삶에도 실낱과도 같은
'순수한 희망'의 순간이 존재함을 믿게 해줍니다.
수술을 앞두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가족을
기억해달라는 환자의 부탁을 폴이 품어주고,
또한 루의 순수한 진실을 발견케 되는 끝맺음이
그 희망의 증거이지요.
뇌 종양 수술을 앞둔 할머니 환자는 폴에게
얘기합니다.
"가족의 사진도, 추억거리도, 아무 것도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지만
지금 말씀드리는 건,
수용소에서 모두 죽어간 제 가족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단 한번이라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랬기 때문입니다.
수술이 성공하면 그 기억도 사라질 거 같아서
말씀드린 거에요.
선생님이 제거할 종양이 어쩌면 제 가족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드카이, 스타니아, 브레니아 스타츠카,
빅터와 슐로모 등 저희 말렉가의 사람들
말이지요..."
극 중 아내 루시와 함께 콘서트장을 찾은 폴이
루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푸치니의 오페라 < 라보엠 > 중 1막의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Sì, mi chiamano Mimi)...
이 외에도 3막 속 아리아 '헤이, 거기 초소병!
문을 여시오!'(Ohè là, le guardie! Aprite!)와
'사랑의 부름을 따라‘(Donde lieta uscì al tuo
grido) 등 ‘
오페라 < 라보엠 >의 미려한 아리아들은
화면 곳곳에 흐르며 극의 분위기를 오롯이
감싸주고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의 OST '다정한 양귀비' (Gentil Coquelicot) 또한 작품의 감성어린 잔향(殘香)을
그윽하게 드리우지요.
프랑스 특유의 언어적 아름다움과 '루' 역을 맡은
라일라 벡티의 관능적이면서도 불안함의
음색으로 불려지는 이 노래는,
진실과 거짓을 오가며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만
했던 루의 캐릭터가 지닌 슬프고 아련한 느낌에
깊이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 물망초와 장미는 정확한 말을 들려주는
꽃들이죠.
그러나 양귀비만 좋아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해요.
- - - - -
그녀를 사랑한 남자가 있었어요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죠
다음날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반쯤 벗은 채로 여름 햇살을 받으며
낮잠을 자고 있었죠
드넓은 밀밭 한 가운데에서
그렇지만 그녀의 심장이 뛰던
하얀 육체 위엔 붉은 피 세 방울이 꽃처럼
떨어져 있었죠
한떨기 아주 여린 양귀비처럼'
- 이 충 식 -
1. <차가운 장미 , Avant l'hiver - Before
the Winter Chill>
예고 영상물
https://youtu.be/n7QuJQnZj2Q
영화 < 차가운 장미 > 는
세속적 기준으로는 성공했지만, 본질적으론
공허하기만 한,
상처받기 두려워 마음을 꽁꽁 싸매야 했던
50대 폴의 인생과 그 허망한 삶에 찾아든
마법 같은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요.
영화의 프랑스 판 원제 'Avant l'hiver'는
'Before Winter'('겨울이 오기 전에') 의
의미입니다.
낙엽 쌓인 가을 프랑스 숲 속의 싸아한
나무향기가 화면 내내 배어 퍼지는 영화는
원 제목처럼 '추운 겨울이 오기 전',
꿈과 욕망이 없는 폴과 루시, 이들 중년 부부에게
생겨난 일을 무연하게 그려내고 있지요.
'장미'가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촉매제라면,
'겨울'은 그 의미가 열려 있는 주제어인 셈입니다.
영화 속의 '차가운 장미'는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되지요.
하나는 '싸늘하게 식어간 루'요,
또 다른 하나는 '순수한 루시의 가슴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장미'입니다만...
의문의 장미가 배달되면서 한 가정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는 < 차가운 장미 >는 명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지요.
그런 모호함, 애매함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과 가정에 내재된 위선은 두터운 켜를 이루고
있으며 종종 다른 얼굴로 위장하지요.
그렇게 멜로와 스릴러의 접경 지대에 있는 영화
< 차가운 장미> 는 한 가정에 은폐되어 있는 사실
혹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역설해 줍니다.
2. 영화 < 차가운 장미 - Avant l'hiver >
예고 영상물 - French 판
https://youtu.be/JC3_UhZrCuQ
죄의식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비밀스러운 삶과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슬픔으로 대변되는
섬세한 감정의 결에 주목해 온 필립 클로델이
예술적 감흥과 진한 감성을 품어내며 직조한
세번째 장편 영화 <차가운 장미>...
그는 극 중 병원에 걸려 있는 엑스레이,
집 안을 환히 비추는 커다란 창 등을 통해,
성공가도를 달려오며 어떤 것도 꿈꿀 필요가
없었던 남편과 우아한 얼굴 뒤에 공허함을
감춰 온 아내의 일상이라는 것이,
실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함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지극히 암시적인 은유를 건네고 있지요.
이렇듯 정적이고 담담한 방식으로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 차가운 장미 >는
문학과 삶의 양식을 고스란히 필름에 담아 내는
프랑스 영화 특유의 미학적인 체험을 절묘하게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경계에 걸쳐 있는 코드들을
활용하고 섞어서 인간 내면에 어우러진 드라마와
스릴러를 표현해 내는 연출 방식을 선호해 온
필립 클로델.
그는 '인물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특정한 사건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해 불현듯 깨닫게 되는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감정을 정치(精緻)하게
포착해내고 있지요.
오프닝에서부터 폴의 대사를 통해 루의 죽음을
알리고 러닝타임 내내 그녀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필립의 정교한
연출력은
극 전체를 관통해 온 슬픔을 증폭시키는 놀라운
반전(反轉)이 드러나고 난 뒤에도,
다시금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인물들의 거짓된 위선의 모습을
가감없이 담아내고 있습니다.
3. 푸치니의 오페라 < 라보엠 - La Boheme >
중 1막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
( Si, mi chiamano Mimi)
" 왜 자기를 미워하세요?
인생은 아름다움으로 가득찼다구요! " 라며,
폴은 루에게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속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를 틀어줍니다.
본명은 '루치아'이지만 '미미'라는 애칭으로
불려지는...
영화 속 '루'와 같은 처지인 그녀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지요.
파리 라티구의 어느 허름한 다락방,
로돌프가 혼자 글을 쓰는데 , 문드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촛불을 빌리러 온 옆집 아가씨 미미였지요.
하지만 로돌프가 들고 있던 촛불도 꺼지고,
어둠 속에서 미미는 열쇠를 떨어 뜨립니다.
열쇠를 찾던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게 되고 놀라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로돌프는 유명한 아리아 '그대의 찬손'
(Che gelida manina)을 부르지요.
"저는 시를 쓰고 삽니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부자처럼 지내요.
시와 노래의 아름다운 이상의 낙원에서...
그대의 눈길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에 미미는 그에 화답하며 , 자신을 소개하는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Si, mi chiamano Mimi)
를 노래합니다.
" 네, 제 이름은 미미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미미라고 부릅니다만,
진짜 이름은 루치아예요.
저는 집안과 밖에서 명주나 주단에 백합과
장미 수를 놓으며 살아가고 있지요.
사랑과 봄을 말하고 꿈과 환상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시(詩)라고 부르지요.
교회에는 자주 가지 못하지만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조그맣고 하얀 방에서 말이죠.
지붕 위로는 하늘밖에 보이지 않지만,
봄이 올 때면 햇빛이 맨 먼저 저를 비춥니다.
4월이 제게 먼저 첫 입맞춤을 해주지요!
꽃병의 꽃봉오리, 꽃잎 하나하나의 향기를
맡습니다.
너무도 달콤한 그 꽃향기!
허나 제가 만드는 꽃에는 향기가 없지요..."
- 미미역의 소프라노 레나타 스코트
(로돌프 역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https://youtu.be/0gBNgQh2f0A
4. 푸치니의 오페라 < 라보엠 > 중 1막 아리아
'그대의 찬손'(Che gelida manina)과
'내 이름은 미미' (Si, mi chiamano Mimi)
-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소프라노 피아마 이조 드 아미코
https://youtu.be/OkHGUaB1Bs8
-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테너 롤란도 비아손)
https://youtu.be/M7BsSD21yUA
5. 푸치니의 오페라 < 라보엠 > 중 3막 아리아
'사랑의 부름을 따라'(Donde lieta usci)
-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테너 라몬 바르가스)
https://youtu.be/cBpLH_MO92o
폴과의 순수한 사랑을 위해 희생적인 죽음을 택한 '루'의 순애보는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로돌프와 미미, 두 연인'의 안타까운 사랑에
절묘하게 콜라주되지요.
파리 교외 앙페르 세관 문 근처 마르첼로의
카페로 찾아온 미미.
그녀는 흐느끼며 로돌포에게 마지막 안녕을
고하고,
'미미의 이별 노래'라고 불리는 슬픈 아리아
'행복했던 시절이여, 안녕! 사랑의 부름을 따라'
(Addio, donde lieta usci)을 노래합니다.
그녀는 '꽃을 만드는 나의 외로운 생활로 다시
돌아가겠다'며,
'집에 있는 팔찌와 기도책은 다른 이에게 주고
로돌프가 선물한 모자는 추억으로 간직하겠다'고
말하지요.
그때 술집에서 싸움을 하던 마르첼로와 무제타가
밖으로 나와 다툼을 계속하는데,
이별하는 두 연인과 뒤에서 싸우는 두 연인
사이의 엇갈리는 이별의 4중창
'안녕, 사랑을 가르쳐주신 분이여'(Addio,
dolce svegliare alla mattina) 가 흐릅니다.
로돌프와 미미는 비록 헤어지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아리아 '정말로 이별이란 말인가?'
(Dunque e' proprio finta?)를 부르지요.
"겨울에 헤어지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봄이 오면 햇살이 벗이 되어줘 훨씬
나아질 것이오.
봄엔 꽃도 피고 새들도 지저귀겠지..."
첫댓글 거짓과 진실을 오가는 비련의 여인 루,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남편 폴,
위기의 폴을 바라보는 아내 루시,
그리고 흔들리는 루시를 바라보는 친구 제라르...
그들은 서로에게
어쩌면 치명적 상처일 수도 있는,
꺾여진 '차가운 장미'를 건네고 있는 셈일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