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 』 (Perfect Number, 2011, 한국, 감독 방은진, 넷플릭스)
수학천재였지만 현재는 변두리 고등학교 교사인 석고(류승범)는 흠모해왔던 이웃 화선(이요원)이 전남편을 살해한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불안해하는 화선과 조카를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라며 완전범죄를 위한 계획을 짠다. 시신이 발견되자마자 화선을 용의자로 지목한 형사 민범(조진웅)은 그녀를 감시하는 과정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석고와 재회하게 된다. 그는 석고와 화선 사이의 묘한 감정의 흐름을 간파하고, 형사로서의 사명과 동창으로서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며 사건을 파악해간다. 화선은 석고가 짠 설계도를 따라 단 한 번의 거짓 진술도 할 필요 없이, 완전하게 살인사건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한 천재 수학자의 완벽한 알리바이가 시작된다!
허풍당당한 중국풍 『용의자 X적 헌신(2017, 중국, 소유봉)』과 기세달달한 인도풍 『자네 잔: 용의자 X(2003, 인도, 수조이 고쉬)』를 거쳐 눈물만장 한마당 『용의자 X (2011, 방은진)』까지 함께 한 뒤, 마침내 꼼꼼쫀쫀한 일본판 원저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에 닿았다.
한 시절 추리소설의 늪에 빠졌었다. 그림 맞추기 퍼즐에서 튀어나온 전혀 엉뚱한 조각에 뒤통수를 맞는 유쾌한 허탈감은 좀체 빠져나오기 힘든 마력이었다.
“사람이 풀기 힘든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어려운지. 단, 해답은 반드시 있어. 어때 재미있지 않나?” 물리학자인 탐정은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렇다! 여전히 재밌다.
그리고는 예전에 물리학자에게 속아 넘어갔던 학생은 못내 킥킥거린다.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착각하기 쉬운 맹점을 살짝 찔러주지요.”
“예를 들면 기하학 문제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은 함수문제라는 식이죠.”
나중에 탐정은 친절하게 풀어서 일러준다.
“이번 문제를 알리바이에 중점을 두고 생각하고 있어. 가장 수상쩍은 용의자가 알리바이를 내세우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게다가 그 알리바이가 잘하면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 약점이 보여. 어떤 실마리만 발견하면, 그것을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감각이야. 그런데 그 실마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완전히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바로 그런 덫에 걸려 있어.” 아하~ 허허실실이라는 허방다리였구나.
원작 <용의자 X의 헌신>이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푸는 것, 둘 중에 뭐가 더 어려울까?’라는 질문을 통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였다면, 영화 <용의자 X>는 ‘진실을 밝힌다고 해도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문제’라는 진실과 행복의 딜레마를 정서적 차원에서 구현하는 데 안간힘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주인공과 두뇌싸움을 벌여야 하는 물리학자를 제외하고, 관객의 논리와 감정의 충실한 대리인이 될 수 있는 형사를 복잡한 살인사건과 불가해한 사랑을 설명해줄 안내자로 설정했다. 이를 통해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 대신 눈물겨운 멜로의 외피를 입게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이런 게, 바로 사랑이 아닙니까?’ 라는 호소에 마냥 공감하기에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누군가의 목숨 건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한낱 부속처럼 내버려진 또 다른 애먼 누군가가 죽어간다. 그렇다! “서스펜스를 무릎 꿇린 멜로”(박평식)임에도, 그 지고지선의 멜로에 우리가 온전히 무릎 꿇을 수 없는 까닭이다.
‘순결하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적은 글’이라는 아득한 「순애보(純愛譜)」와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모든 것을 바치는 이야기’라는 아뜩한 「순애보(殉愛譜)」의 가깝고도 먼 거리.
‘
목숨을 걸면 무엇이고/ 무섭고 아름답겠지./ 나도 목숨 건 사랑의/ 연한 피부를 쓰다듬고 싶다.’ (마종기의 「성년의 비밀」 중에서)
애꿎은 피비린내가 가신, 말간 피부 말이다.
첫댓글 유쾌한 허탈감과 허허실실 허방다리, 그리고 공감하기 어려운 사랑과 범죄의 이야기, 기대됩니다. 이거 넷플릭스 보면 나옵니까? 형님.
중국풍, 인도판에다 한국마당까지 다 있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