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소재문학작품상에 응모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응모 후 많이 기다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무국에서 내일 발표(통보)할 예정입니다.
포항을 글의 중심에 두고 글 쓴다는 일은 포항과 어떤 인연이든 인연이 있어야 함을
글에서 발견합니다.
입상자에겐 축하드리고, 입상하지 못한 분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내년도에
더 멋진 글, 감동적인 글, 포항 냄새 물씬 풍기는 글로 새롭고 신선하게 만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포항문인협회 회장으로 응모한 모든 분들과
커피 글 한 편(입상작 작품집에 실은 회원 원고) 앞에 두고 이야기 나눕니다.
연말, 건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커피나라에 착륙하다
포항문인협회장 하재영
컴퓨터를 켜자 잘 내린 커피 한 잔이 모니터에 떠오른다.
종종 바꾸는 컴퓨터 바탕 화면이 이번엔 커피 한 잔 풍경이다.
검은 커피에서 김이 모락모락 일며 그 향이 코끝을 건드린다.
“커피 한 잔 어때?”
내가 나에게 큰 소리로 묻는다.
“좋지!”
우연찮게 커피를 입에 대면서 곳곳의 커피명가를 유람하게 된 것도 10여 년 된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글을 가까이 할 때 난 커피를 애인처럼 곁에 두었다.
20대-.
스무 살 전후 다방 커피를 맛보면서 난 그 맛의 낯섦에 설탕을 자꾸 넣어 마시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과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종교와 철학과 문학을 주제로 밤 이슥토록 이야기도 나누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찾는 곳 역시 곳곳에 있는 다방이었다. 나를 끈질기게 따라오던 긴머리 소녀도 다방에서 만났고, 선을 보라는 어른의 지청구에 나간 다방에서 앞에 앉은 여자와 다른 커피를 시켜 당신과 결혼할 의사가 없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임시로 잡았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정식 직장을 잡은 객지에선 휴일 오전 종종 면소재지 다방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시켰다. 당시 다방 커피엔 계란 노른자를 넣어 주었다. 부실하게 영양 보충을 하던 내 일상에 그것은 기호식품이 아닌 영양가 높은 알찬 음식이었다. 참 그랬다. 당시 시화전을 다방에서 했기에 종종 그런 곳도 찾아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있다. 까마득한 옛날 같지만 낡은 책의 누런 세월 안에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아 있는 풍경이다.
30대-.
문학 공부에 몰두하던 30대엔 짙은 커피 한 잔이 자정을 전후해서 나의 머리를 맑게 해주는 청량제가 되었다. 책을 읽고, 글쓰기 연습을 하면서 홀짝거리는 커피는 그야말로 글의 뿌리처럼 글의 양분을 끌어오게 하는 에너지 공급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커가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후 늦은 밤 포트에 물을 끓이고 그것을 커피 담은 스텐 컵에 붓는 일은 즐거움이었다. 밤뿐만 아니라 대낮에도 커피는 내 곁에 있었다. 참 많이 마신 커피였다. 난 커피의 향에 무한정 빠져들 것처럼 빨려들어 갔다. 바닷가 다방을 찾아 뱃사람들 삶의 모습을 찾아보겠다고 발품을 팔기도 했다. 그게 구룡포에 있는 항구다방이기도 했고, 영덕 축산리에 있는 횟집 옆 지금은 이름 잊은 다방이기도 했다.
40대-.
시 한 편을 쓰고, 시 한 편을 낭송하고, 시 한 편을 발표하고 난 그 사이사이 술을 마셨고, 술 마신 후 커피를 마셨다. 커피가 사람에게 별로 유익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이 종종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십대의 나이 한 살 한 살은 낮은 냇물에 놓인 징검다리처럼 펄쩍펄쩍 뛰어야 할 위험한 시절이었다. 징검다리 돌 위마다 캔 커피 하나 놓여 있었다. 잘못 디딘 발로 놓인 캔 커피 한 통을 물에 빠뜨리기도 했다. 바쁜 하루 하루였다. 캔 커피를 마시는 일도 참 행복한 일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죽지 않고 쉰 세대를 맞이했다. 징검다리를 잘 건넜기에 다행 아니 참 고마운 일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종종 올려다본 40대는 그 커피의 원산지가 어딘지 그게 많이 궁금했던 시기였다.
50대-,
외국이든 국내든 여행 중에 커피는 늘 곁에 있었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터키인이 즐기던 커피 맛을 본 기억이 나의 머리에 짙은 향으로 남아있다.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 내에 있는 커피를 갈아 주는 가게 앞에서였다. 갓 볶은 커피콩을 분쇄한 커피를 사기 위해 터키인들은 줄을 섰다. 소문난 음식점에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듯 말이다. 그들의 커피 사랑을 슬며시 엿보면서 난 커피(튀르크 카흐베시 Turk Kahvesi - 가루를 끓여 위에 맑은 것을 마시고 찌꺼기는 버림) 한 잔을 시켜 마셨고 결국 그들이 즐기는 터키식 커피 도구를 구입하여 집까지 들고 왔다. 그리고 또 한 군데 있다. 포르투깔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마신 에스프레소는 아직도 혀 끝에 중후한 음감의 감칠맛으로 남아있다. 작은 잔에 거침없이 따라주는 작은 양의 에스프레소는 알약처럼 썼지만 그래도 이국의 향을 짙게 느낄 수 있는 풍미였다. 그 이후 난 여행 중 에스프레소 잔 하나씩 구입하는 습관을 갖게 되어 현재는 50개 이상의 에스프레스 잔을 책꽂이 앞에 놓아두고 있다.
문학한답시고 즐겨 마시던 술을 멀리하고 커피를 마시다보니 내 주변에도 커피숍 한두 개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나 때문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트랜드는 아무래도 커피가 대세인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막말로 자고 나면 커피숍 하나 들어선 기분이다. 내가 사는 효자동 아파트 앞 강변에도 많은 커피 전문점이 들어섰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처음 즐겨 찾던 곳보다 내 집 가까운 곳 커피숍을 편리하게 이용하게 된다. 걸어서 나가면 한 집 건너 한 집 꼴의 커피 전문점이다. 종종 강변을 걷는데 커피향이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나를 유혹한다. 그 유혹은 나를 한 달 젊게 하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난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2005년일 것이다. 오거리 근처로 향하던 발길을 신도시로 형성된 포항시 남구 이동지구로 옮기게 된 직후였다. 이동에 커피 전문점이 들어섰는데 그 주인과 잘 알고 있다며 소설가 J 씨가 나를 그 커피숍에 안내했다. 선술집 바텐더에 앉아 술을 마시듯 그 집 커피숍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쥔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그랬다. 건축사인 L 소장은 커피에 박학다식했다. 커피 박사였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의 커피 체험을 듣다보면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 커피는 게이샤라는 커피죠. 신이 내린 커피라고 하는데 커피 품평회에서 맛본 커피 마니아가 황홀한 맛에 신의 얼굴을 봤다고 하여 신의 커피라고도 하죠. 에티오피아에서 생산했는데 지금은 그곳에서 거의 나오지 않죠. 값이 비싸서 요즘은 구입하기도 아주 힘들죠.”
이후 난 동료들과 그곳을 자주 찾았다. 다양한 커피 맛을 볼 수 있었지만 가장 많이 마신 커피는 그야말로 케냐도 아니고, 브라질도 아니고, 코스타리카도 아니고 그냥 갓 볶은 커피였다. 커피 맛은 콩을 볶은 후 일정 시간 숙성된 것이 맛있다고 하지만 우린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시키기보다 최근 갓 볶은 커피를 그야말로 경상도식으로 마카 통일해서 마셨는데 그 향이 혀끝을 회오리바람처럼 돌돌 휘감았다.
그러다 보니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이야기처럼 핸드 드롭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휴일 아침이면 빵조각에다 내린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기도 한다.
커피 맛을 보러, 멋있고 맛있는 커피숍이 있다면 불원천리(不遠千里) 마다하고 찾아나설 준비는 되어 있다. 그것은 사치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문학을 윤택하게 하는 일이고, 내 생의 깊이를 향기롭게 하는 일이라 믿기에 쉽게 버릴 수 없다.
커피!
나쁜 커피! 착한 커피! 비싼 커피! 싼 커피! 달콤한 커피! 쌉쌀한 커피! …….
며칠 전 하와이에 갔던 동생이 선물한 코나 커피 한 잔 내려야겠다.
커피향이 벌써 코끝에 스치운다.
그 맛은 어떨지?
생의 앞날을 예측한다는 일은 커피 향을 맛보는 일이나 다름없음을 난 커피를 통해 종종 발견한다.
<2014년 11월,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