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
마음만 돌이키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느긋함이었을까?
삼십 여년 엄마와 아내로만 살았다.
팽개쳤던 나를 문득 발견했을 때
여기저기 흩어진 부스러기마냥 초라해서
나는 없었다.
늦깎이로 시작한 글쓰기...
내 안에서 포롱포롱 되살아나는
나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
없어 진 줄 알았던 내가
내 안에 고스란히 있다는 걸 발견하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은 언제나 새로운
또 하루
나를 조곤조곤 사는 일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아
고즈넉한 풍경 속에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일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아
2018년 2월 조금리에서 . 사선자
■ 차례
Ⅰ. 고즈넉이
동빈항을 바라보며
알갱이와 쭉정이
삼베이불
고드레돌
산바라지
쌍가락지
창포와 꽃창포
창포지의 봄
마수거리
Ⅱ. 지대로 살면
갈미
뒤웅박
물텀벙이
보자기
하얀제비꽃
장애(障礙)
도리깨질
써레질
질경이
Ⅲ. 남이 아니더라
미끼
김치국밥
통조림
거북등껍질
사람을 믿는다는 것
빙탄지간(氷炭之間)
개 족보
구렁이
Ⅳ. 딱, 고만큼
문짝과 창호지
밤 줍기
장독대
표고버섯을 따며
인연
죽
황제나비
거머리
Ⅴ. 눈썹달 아래
가을을 담다
지진
졸혼에 대한 생각
명품교육
명절 증후군
커리어-우먼
자유여행
이야기 할머니
□ 작가론
확고한 신념과 미래지향적 자기철학 / 유진 (시인.수필가)
■ 표사의 글
수필을 쓰려면 인간과 자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어야하고, 세상사를 꿰뚫어 보는 예리한 관찰력과 비판의식도 있어야 합니다. 수필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련된 문장으로 독자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학적 요소를 고루 갖추고, 수필적 자아인 개인사적 문제를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개인을 넘어 보편성을 찾아 수필작품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켜 수필문학의 진수眞髓를 보여줍니다. 작가는 지천명을 넘어서 원숙한 결실을 거두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생명의 불꽃을 사르고 있습니다. “내가 행복해지는 가장 좋은 길은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임을 형상화한 사선자 님의 수필세계는 삶의 진수를 깨닫는 행복의 미학입니다. —이 현 복 (수필평론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저녁 어스름 풍경 속에는 막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있는 석양이 있고, 양지바른 야산에 종가가 있고, 사랑바위와 할아버지의 시조창이 있고, 할아버지의 쓸쓸한 고즈넉이 있다. 하루 중에 가장 가득차고 여유로운 시간의 그 고즈넉함을 좋아한다.
길쌈과 바느질, 푸새와 다듬질까지 여인의 손에서 두 번 태어난다는 삼베......친정 엄마가 손수 짜신 삼베로 만든 홑이불을 손질하며, 편견 없는 햇살아래 초록의 싱그러움이 묻어있는 바람의 결을 만지며 뿌듯해진다.
‘여인’ 이라는 뉘앙스에는 윤리와 정의, 예절과 품위의 전통성이 들어있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미래지향적인 자기철학으로 규칙적인 리듬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다만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ㅡ 유 진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