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아사세왕은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굶어 죽이고 왕권을 차지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머니 위제히 왕비마저 가두었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 늘 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마침내 왕은 부처님께 자신의 죄를 참회했습니다. 대승경전인 문수사리보초삼매경
(文殊師利普超三昧經)에는 아사세 왕이 등장합니다. 왕은 부처님께 자신의 죄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아버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나를 잡아 가두거나
생명을 위협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국토를 탐냈으므로 재물과 보배에 미쳐서
부귀와 영화에 홀리고, 산업(産業)의 자산에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로움을 즐기고 백성을 장악할 뜻으로, 반역을 꾀하여 아버지를 해쳤습니다.
그 뒤로 마음속에 의심과 걱정과 두려움을 품었으니, 스스로 편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즐거운 연회일지라도 즐겁지 않습니다. 앉거나 누워서 바르게 결정할 일이
있더라도, 중궁(中宮)의 채녀(采女)들이 교태를 부리며 즐겁게 할지라도,
홀로 조용한 곳에 있을지라도, 뭇 관료의 최고자리에서 국사를 듣고 처리할지라도,
밤낮 없이 두려운 근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비록 좋은 요리가 있을지라도
달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두 눈은 침침하여 앞이 몽롱하며, 심장은 항상 두근거리고
얼굴모습은 초췌하니, 어느 곳을 가도 편치 않습니다. 또 죽은 뒤에 떨어질 지옥도 두렵습니다.
<문수사리보초삼매경 5. 무오아품(無吾我品) - 동국역경원>
아사세왕은 부처님의 가피로 박수보살에게서 모습을 보지 않는 삼매를 배웠습니다.
경전은 왕의 수행을 소상하게 전합니다.
아사세왕은 곧바로 보이지 않은 경지와 매우 가까운 삼매에 들었다.
그 눈에 보여야할 모든 색(色)은 보이지 않았다. 남녀도 보이지 않았고
동자(童子)도 보이지 않았으며 동녀(童女)도 보이지 않았다. 또 크고 작은 것도
보이지 않았고, 장벽도 보이지 않았으며, 수목(樹木)도 보이지 않았고, 집도
보이지 않았으며, 성곽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보이는 것은 자기의 몸 모양뿐이다.
그 때 또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몸이 나타난 이에게 그 옷을 주십시오."
왕은 곧 스스로 그 옷을 입었다. 그러자 자기의 몸도 보이지 않으면서, 당장 일체의
색상(色相)도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또 다시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대왕께서 모든 색(色)의 형상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부드럽고 편안하게
의심을 관찰하십시오. 또 반드시 (평소에 품었던 아버지에 대한 반역)의
의심(의구심)을 보는 것처럼, 일체의 법도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합니다.
만일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보는 것으로서 온갖 보는 경계를 벗어난 것입니다.
<문수사리보초삼매경 10. 결의품(決疑品)>
이윽고 공도리를 깨달은 왕에게 박수보살은 묻습니다. 경에는 아사세왕이 일체법이
모두 허망하고 빈 도리를 깨달은 모습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박수보살이 물었다.
“대왕이여,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5역죄를 범한 자는 가차없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셨으니, 왕은 자신이 앞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을 아십니까?"
왕이 곧 답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박수보살이여, 어찌 여래께서 진리 그대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셨을 때, 어떤 법은 지옥으로 돌아가고, 이 법은 3악도에 떨어지며,
이 법은 천상에 나고, 이 법은 열반에 이른다고 보셨겠습니까?"
박수보살이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왕이 말했다.
“박수보살께서는 잘 살펴보십시오. 나는 이제 일체의 온갖 법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은 법은 모든 경법(經法)에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지옥으로 가든지,
천상에 나든지, 열반에 들지라도, 일체의 온갖 법은 모두 다 본래 그대로[如]입니다.
만일 공(空)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분별하여 공(空)에서 본다면, 지옥으로 가는 일도 없고,
천상에 나는 일도 없으며, 열반에 드는 일도 없습니다.
일체의 온갖 법은 무너지는 일이 없으므로, 일체의 온갖 법은 다 법계(法界)로 돌아갑니다.
그 법계는 나쁜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천상에 오르지 않으며, 열반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반역죄의 무간지옥이 곧 법계요, 온갖 반역의 근원이 바로 법계입니다.
그 본래 청정이 곧 온갖 반역이요, 온갖 반역이 바로 본래 청정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본래 청정이라고 합니다.
박수보살이여, 그러므로 일체의 온갖 법은 생기는 대상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나는 나쁜 세상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천상으로 올라가지도 않으며,
열반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중략)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지금 이 법회대중이 왕의 반역죄를 다 알고 있는데, 왕은 어째서 반역죄가 없다고 합니까?"
왕이 답했다.
“반역죄가 없습니다."
박수보살이 또 물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왕이 답했다.
“이전에 저지른 반역죄를 해탈하여 맺힘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보초삼매경 10. 결의품(決疑品)>
중국의 석두희천 선사는 방거사와 단하천연선사의 스승으로 뛰어난 선지식입니다.
원래 육조혜능대사의 제자로 있었으나, 육조대사의 유지에 따라 청원행사에게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큰 석대(石臺)위에서 수행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석두(石頭)선사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육조의 제자인 남악회양선사가 시자를 보내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해탈입니까?"
선사(석두)가 대답했다.
“누가 너를 속박했더냐?"
“어떤 것이 정토(淨土)입니까?"
“누가 너를 더럽히더냐?"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누가 너에게 생사를 주었더냐?"
시자가 이 말을 화상에게 전하니, 화상이 곧 합장하고 받들었다.
(조당집 제4권 석두선사편)
이처럼 공(空)도리는 일체 존재의 실상을 깨달아 생사의 미망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지공대사의 시 제6수와 7수에는 이처럼 생사윤회의 원인인 결업이 안과 밖이라는 망념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하여 일체법이 공한 도리를 깨달아 무구(無求) 무착(無着)의
태도를 취할 때 내외(內外) 유무(有無) 생사(生死)의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법문하십니다.
(如雲)